[피플코리아]이경희 기자=“자~출발, 어르신도 오르는데~”
“친구야. 난 더 이상 위험한 바위는 못 오르겠다“
북한산 족두리봉을 오르면서 중년남성 둘이 나눈 이야기다.
벌써 내 얼굴이 다른사람 눈에는 어르신으로 보인가 보다.
귀에 들리는 남성들의 대화가 참 서글프게 만든다.
사람들 눈에 내 인생 나이가 벌써 가을로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벌써 10월이다.
어제 비가 내리고 갑자기 기온이 뚝 떨어진다.
찬바람이 옷깃을 파고 들고 약간 춥게 느껴진다.
모처럼 북한산 산행을 나선다.
이른 단풍을 살짝 기대하며 가을마중 산행이다.
북한산성은 하얀 꽃이 활짝 핀 꽃길이다.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가을햇살에 빛난다.
산성따라 돌틈에 핀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줄지어 핀 힐링의 길을 걷는다.
산행은 독바위역에서 시작한다.
맑고 높은 하늘아래 산길은 한산하다.
조금 오르니 화강암 암군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북한산은 언제 보아도 힘이 넘치는 산줄기다.
족두리봉을 뒤에 두고 비봉으로 간다.
”저기 보이는 곳이 향로봉입니까?“
”맞는데요. 어디 가시나요“
옷차림과 백팩이 산객이 아니다.
”향로봉 공사장에 가는 길인데 이렇게 험한 길인줄 몰랐습니다“
”저기 보이는 우뚝 솟은 향로봉은 통제구역이라서 우회하여 가야합니다“
일터로 가는 중년 남성이 서둘러 앞서 간다.
향로봉을 우회하여 비봉으로 가는 길에 기계음이 들린다.
바위 난간에 발줄을 설치하는 공사가 한창이다.
산길에서 만난 남성의 일터인 것이다.
좁은 비탈길이 공사중이라서 길이 없는 곳을 오른 부부 산객이 헐떡 거리며 내려온다.
”힘들다. 잠시 쉬면서 사과라도 먹고 가자“
”넓은 쉼터에서 자리 펴고 먹자“
부인의 요청에 남편은 단칼에 거절하고 오르막을 앞서 간다.
궁시렁 거리면서도 남편 뒤를 따르는 부인이 대견하다.
부부의 대화가 어디나, 누구나 다 똑 같은 풍경으로 다가온다.
향로봉과 비봉을 지나서 사모바위부터 가을꽃과 동행한다.
문수봉까지는 구절초가 드물게 얼굴을 내민다.
청수동암문을 지나면서 본격적인 꽃길이 열린다.
구절초와 쑥부쟁이가 한들한들 손을 흔들며 산객을 맞는다.
보라색이 짙은 투구꽃도 하얀 꽃무리에 합석하며 꽃잔치를 벌인다.
혼자가는 길에 꽃들이 반겨 힘들고 지루함을 잊는다.
창밖에는 가을빛이 물들고
내마음은 그대 그리움으로 물들었습니다
가을햇빛 비추이면
우울하고 어두운 마음을 말갛게 헹구고
단풍같은 고운 마음으로
이가을을 수놓고 싶습니다
송영희 ‘가을 꽃향기 머무는 날’ 시어가 딱 어울리는 산길이다.
북한산에 아직 단풍은 멀었지만 가을 꽃향기가 은은하게 유혹한다.
문수봉을 앞둔 성벽에 구절초와 쑥부쟁이 꽃이 눈부시게 곱다.
강하게 내리는 가을 햇살이 투명한 꽃잎을 통과하며 예술작품을 만든다.
문수봉을 지나면서 산성을 따라가는 꽃은 길동무가 된다.
대동문까지 티없이 맑은 꽃잎을 보면 발걸음이 나비처럼 날아간다.
늦더위 탓에 북한산 단풍은 없지만 꽃들과 함께하는 산행이 힐링의 가을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