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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순찬굿피플] 남도 바다 지키며 행복 퍼뜨리는 윤담ㆍ반수련 부부
2010/01/24 00:00
입력 조회수 : 53
강진 전통 찻집 '도향'에서 띄우는 新 '사부곡'
눈
망울이 참 맑고 깨끗하다. 칠순을 내다보는 나이라니 도무지 믿어지지 않는다. 눈망울 속에 고요한 바다가 누워 있다. 이 곳에 살게 된 연유를 물었다.
"우연히 지나가다가 여기가 내 집, 내가 살 집이라고 직감적으로 느꼈어요. 동행한 아내가 주저할 것 없이 사자길래 아내 뜻을 따랐어요."
주인 마저 떠나버려 볼품 없고 텅 빈 오두막이었지만 이들 부부는 자신들의 지친 심신을 달래기엔 안성맞춤이라고 믿었다. 가까스로 지급받은 퇴직금을 손에 쥐고 있었지만 단박에 전부 쏟아부었다. 곁 사람들이 '미친 짓'이라고 쑤근거렸다. 당시만 해도 볼품 없는 집터여서 투자가치가 없었기 때문. 당시 이 집의 주인은 지방대학 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었다. 시를 쓰는 분이라고 했다.
▲ ▲ 강진 땅에 정착한 지 12년. 전통 찻집 '도향'의 윤담 씨는 욕심을 내려놓은 게 아니라 아예 '버렸다'고 했다. ©가순찬 ©피플코리아
아홉 강줄기 구강포 오두막에 얼킨 이야기
시인 교수에게 돈을 지불하고 난 뒤에 안 사실이지만 슬픈 사연을 간직한 집이었다.
엎어지면 코 닿을 위치에 바다가 있었다. 아니, 바다로부터 지근거리에 오두막이 자리를 틀긴 했지만 얼추 내려앉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다를 '구강포'라고 불렀다. 아홉 강줄기가 합쳐져 만들어진 바다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 등잔불을 쓰던 그 옛날 노 부부와 어린 아들 이렇게 세 식구가 오두막에 살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기잡이 아버지를 둔 이라면 벌써 직감할지도 모른다. 이른 새벽 어제처럼 말 없이 바다로 나갔던 노인은 캄캄한 오밤중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변을 당했다. 노파는 창졸간 과부가 되어 아들을 바라보며 죽자사자 뒷바라지를 했다. 쓰리고 서러운 세월이 흘러갔다. 다행히 건장하고 반듯한 청년으로 아들을 키운 덕에 마음씨 고운 며느리를 맞아들이게 됐다. 아버지를 앗아간 한 맺힌 바다, 그러나 아버지를 품 안에 곱게 보듬고 있다고 믿던 그 바다를 휘젖고 다니며 아들은 열심히 노를 저었고 그물 가득 고기를 건져올렸다.
하지만 바다는 비정했다. 건장한 모습으로 배에 올라 손을 흔들던 착하고 우직한 아들마저 데려가버린 것. 아들은 쇠잔해진 노모와 아내, 아이 둘을 남겨둔 채 깊은 바닷 속 귀신이 되어 사라졌다. 쌍과부 처지가 된 고부에게 가시밭길이 드리워지는 순간이었다. 기구한 팔자와 맞닥뜨린 두 과부는 넋을 놓고 땅을 치며 펑펑 울었다.
회한과 원망 속에서 가슴을 치다가 지병으로 몸져 누운 어머니마저 세상을 떴다. 며느리는 식솔들을 데리고 무작정 도회지로 향했다. 아이들을 살리는 유일한 길이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를 양지바른 뜨락에 곱게 묻어드렸다. 그러고는 두번 다시 돌아오고 싶지 않은 오두막을 떠나며 입술을 꼭 깨물었다.
바다는 왜 자꾸 심통을 부렸을까?
▲ 손수 꾸민 찻집엔 일년 내내 정감이 넘친다. 손님들이 남긴 흔적(왼쪽) 이 눈길을 끈다. © 가순찬
다시 세월이 흘렀다. 버려진 오두막을 기웃거리는 이가 있었다. 시를 쓰는 교수였다. 까닭도 없이 집이 마음에 들었다. 보면 볼수록 내 집같고 편안했다.
지방대학 국문과 교수이자 시인인 그는 아내를 설득해서 집필실을 겸해 오두막을 사기로 했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흡족했다. 몸만 들어와 눞히면 마음이 평온하고 머리가 맑아졌다. 강의가 있는 날엔 오두막에서 구상한 싯귀를 학생들에게 들려주면서 흐뭇해했고 쉬는 날엔 온종일 뒤란에 머무르면서 풀포기와 생나무를 어루만지며 정성을 다했다.
▲ 정성껏 차를 끓여 내밀 때도 특별한 행복을 맛본다. 늘 웃는 얼굴로 자신의 삶에 윤기를 더하고 있다. © 가순찬
그런데 바다가 또 공연한 심술을 부린 것일까. 몇 해도 안 되어 시인 교수는 부인과 이별해야 했다. 서글픈 헤어짐이었다. 오두막은 또 다시 주인을 다 잃고 쓸쓸히 내팽개쳐지고 만다.
단지 서글픈 사연으로만 듣고 넘길 수 없는 기구한 이야기다. 내가 돈을 주고 산 집에 이런 내력이 붙었다면 그 기분은 어떨까.
야생화 꽃밭 위에 전통찻집, 아름다운 발상
▲ 외딴 오두막 초가집 텃밭에 전통 찻집을 지었다. 분위기가 아늑하고 편안해서 단골 손님이 많이 찾는다. © 가순찬
"이 집에 머물던 분들이 참 안됐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모두 착하고 소박한 분들 같은데…, 그 분들의 아름답고 고운 마음까지 고스란이 물려 받았다는 고마운 마음에 가슴이 쿵쿵 뛰었어요. 서툰 솜씨로 집 안팎의 낡은 구석구석을 꼼꼼히 손 보고 밭을 일궈 꽃을 심고 가꾸기 시작했어요. 오며 가며 들르는 길손들을 위해 작은 찻집도 꾸몄지요. "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마음을 출렁거리게 한 것은 눈 앞에 탁 트인 바다(구강포 ; 九江浦)였다.
섬을 바라보며 녹차 향기에 잔뜩 취해 있던 어느 날 주름살 깊은 아낙이 찻집 문을 열고 들어섰다. 한참 동안 자리에서 바다를 내다보던 아낙은 머뭇머뭇 하다가 주인에게 슬며시 눈길을 돌렸다. 아낙은 다름아닌 그 옛날 이 오두막집의 며느리였다. 시어머니를 양지 바른 곳에 묻고 식솔들을 앞세워 황황히 서울로 떠났던 여인.
불현듯 여인의 꿈에 시어머니가 나타났다고 했다. 시어머니의 환몽에 화들짝 놀란 며느리는
"어머니, 어쩐 일이신가요? 혼자서 지내시려니 외롭고 많이 불편하시죠?"
하면서 자책감에 식은땀을 흠뻑 적셨노라고 했다.
"에미야, 그게 아니다. 나는 꽃밭에 파묻혀 너무너무 편안하게 잘 지내고 있으니 아무 걱정 말거라."
도대체 무슨 연고로 '꽃밭'에 파묻혀 살고 계신다는 말씀인지 도무지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여인은 날이 밝자 고속버스 터미널로 달려가 강진행 차표를 끊었노라고 털어놨다. 찻집과 다붓하게 이어진 안채(살림집)까지 주위는 온통 야생화 천지로 변해있었다. 남도의 봄바람을 타고 살랑거리는 야생화는 이제 막 싹을 틔운 어린 야생화부터 제법 자태를 드러낸 것들 까지 쳐다보는 이를 뭉클하고 신비스럽게 했다. 들녘과 바다 그리고 세상 가득 술처럼 말갛게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남도의 정취를 한껏 아름답게 물들였다. 눈이 부시도록 황홀했다.
"꽃밭에 파묻혀 편안히 지내신다는 어머님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제 알게 됐어요."
더운 차를 한 모금 마시고 찻잔을 내려놓으며 여인은 나즈막하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내 바다가 곁에 있으니 더 행복해요"
찻집 이름을 '도향(陶鄕, 도자기 마을)'이라고 붙였다. 강진은 청자로 유명한 곳.
봄 기운이 흠씬 무르익고 있었다. 맑고 신선한 해풍이 산자락에까지 다가와 뭉게구름을 구석구석 씻어주는 듯 했다. 지저귀는 새 소리, 간지럽게 살랑거리는 바람, 풀꽃들이 행복에 겨워 미치겠다는 듯 재잘거렸다.
아침 저녁 그리고 밤낮으로 바다를 쳐다볼 수 있어서 참 좋겠다고 했더니 찻집 주인은 "저 바다는 내 것이다, 그래서 너무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강진군 대구면에 정착한 지 12년 째. 강진 사람 다 된 그는 서울에 남아있는 또래의 친구들에게 해산물과 곡물을 바리바리 올려보낼 때마다 "머리 싸매고 살지 말고 내려와 행복하게 함께 살자"며 으름짱을 놓는다고 털어놨다.
▲ 인터뷰 내내 찻집 주인의 얼굴엔 희망과 신념이 넘치고 있었다. 아름답고 향긋한 체취가 느껴졌다. © 가순찬
부인은 아들과 딸이 사는 서울로 며칠 출타중이라고 했다. 자녀들이 강진에 자주 내려오느냐고 물었다.
"IMF로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게 되어 25년 직장생활을 접어야 했어요. 당시엔 저뿐만 아니라 어린 아이들에게도 고충이었죠. 풀밭 위에 덩그러니 버려진 초가집 오두막을 사서 나무와 풀꽃에 정성을 쏟아 이렇게 아늑한 공간을 꾸몄죠. 해마다 휴가철이 되면 아이들뿐만 아니라 옛날 직장 동료들이 여길 꼭 들러요. 바다 건너 저기가 해남 땅끝인데 주변 경치도 좋고 편안한 분위기여서 행복하다고 야단이죠."
"보름달 뜨면 구강포에 오세요"
▲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자 사위는 한 폭의 수묵화처럼 변해버렸다. 강진 구강포 오두막 자리였던 '도향'의 '사부곡'은 한밤중까지 이어졌다. © 가순찬
25년여 몸 바쳐 일한 직장생활이었지만 그 역시 IMF의 직격탄을 맞고 휘청거려야 했다. 번민과 갈등 속에서 죽음이 어른거리던 암울한 시절, 잠시 머리를 식힐 요량으로 지나치던 강진 땅에서 새 인생의 전환점을 발견한 것.
그런 그에게 베푸는 삶이란 이제 거창하거나 장황할 게 없다. 아름다운 사람들과 함께 숨쉬며 착한 마음을 나누고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 더욱이 해안 도로를 스쳐 지나가는 길손들이 간간이 차를 세우고 들러 이마에 맺힌 땀이라도 식혀주니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 일이겠는가. 욕심을 버리고 분수에 맞는 삶 속에서 알짜 행복을 찾았기 때문이다.
정성껏 차를 우리던 그가 먼 바다로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
"일년 중 보름달을 볼 수 있는 날이 열 번 정도인데, 밤 열 한시부터 한 시까지 두 시간 동안 구강포 바다를 바라보면 누구나 시인이 됩니다. 달빛이 무더기로 쏟아지는 모습이 그렇게 아름답고 환상적일 수 없어요."
먼 옛날 어부 부자를 홀연히 데려가버린 바다, 시치미를 뚝 떼고 헛기침을 하고 있는 구강포 바다를 두고 하는 말이었다.
* 이 기사는 피플코리아의 허락 없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피플코리아에 실리는 모든 기사의 저작권은 오직 피플코리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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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순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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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3월 14일, 전남 강진군 대구면 저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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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순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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