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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에서] 행시 짓기 놀이 유감
2008/02/20 00:00
입력 조회수 : 52
방송의 오락 프로그램을 보다가 보면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 중의 하나가 삼행시나 사행시 짓기이다.
그런데 출연자들이 삼행시나 사행시라고 지은 것을 보면
운에 첫 글자만 억지로 꿰어 맞췄을 뿐 각 행의 의미가
전혀 연결 되지 않아 행시라고 부르기가 민망하기 까지 하다.
그런데도 자기들 끼리는 잘했다고 박수를 치면서
한 술 더 떠서 시인을 해도 되겠다며 추켜 세운다.
볼 때마다 속이 불편한 장면이다.
그럴 때 마다 어차피 오락인 것을
필자가 별나서 혼자만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고
누구에게도 그렇더라는 말도 하지 못 했었다.
그러던 참에 우연히 오락프로의 그런 것을 볼 때마다 불편 하다며
할려면 좀 제대로 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물론 오락이니 깊은 의미를 담을 필요가 없다고 할수도 있겠지만
그 존재 자체가 아무렇게나 다루어도 될 만큼 근본없는 시가 아니기에
의미를 정리해 본다.
흔히들 삼행시, 사행시 등과 혼동하는 行詩는
조선시대에 과거에서 18구로 짓던 시를 말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인재 등용은 행시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 자체가 하나의 완전한 장르이므로 운의 숫자에 따라 달라지는
삼행시나 사행시 등과는 전혀 별개의 시라고 할 수 있으며
운의 숫자에 따라 불러지는 삼행시나 사행시는 굳이 나누자면
破字詩(파자시) 혹은 解字詩(해자시)에 속한다.
破字詩(혹은 解字詩)는 한자어를 분해하여 분해된 글자를 운으로 삼기에
글자를 깨뜨린다 하여 그런 이름으로 불린다.
예를 들어 '仙鴻'이라는 글자가 있다면
'仙'을 '人'과 '山'로 나누고, '鴻'은 '江'과 '鳥'로 분해하여
'人山江鳥'를 운으로 하여 짓는 사행시가 되는 것이다.
파자시의 대표적인 시인으로는 破韻詩(파운시)로도 유명한
흔히 김삿갓으로 부르는 김병연이 있다.
시제의 글자들 하나 하나를 운으로 삼아서 짓는 오늘날의 삼행시나 사행시들은
옛부터 선비들이 글 단련을 위한 수단으로 삼기도 하였지만
거기에는 아주 엄격한 규칙이 있었다.
선비들이 정자에서 풍류를 즐기던 詩會(시회)의 풍경을 잠시 들여다 보기로 하자.
시회에서는 파자시로 文才(문재)를 겨루며 여흥을 삼았는데
구멍을 뚫은 바가지가 매달려 있고 그 밑에는 함지가 놓여 있다.
바가지에 부은 술이 함지로 다 떨어지기 전에 주어진 의제로 시 한수를 지어야 하는 것이다.
운은 주로 풍경이나 사자성어 또는 사람의 이름이 많이 쓰였다.
바가지가 비기 전에 미처 다 못지으면 벌주를 마시면 되지만
하나의 흐름으로 된 시가 아닌 운만 억지로 꿰어 맞췄을 경우엔 엄격한 벌칙이 따른다.
예를 들어 일락서산이라는 시제로
일:일찍 일어난 아침에 가을햇살 더욱 좋구나
락:낙숫물 떨어지는 소리에 아침새가 울고간다.
서:서동을 깨워 먹을 갈아 저 새소리 담고보니
산:산은 저 혼자 높고 푸르구나.
라고 지었다고 가정 했을 때,
얼핏보면 잘 지은것 같지만
이 시를 지은 선비는 온몸에 술을 끼얹히는 수모를 겪어야 한다.
첫 행에서 가을 햇살이 좋다고 하고는
마지막 행에서는 산이 높고 푸르다 하였으니 계절이 일치하지 않고
해가 서산으로 떨어진다는 의미의 시제와도 무관하므로
어거지로 운을 맞춘 야바위 글로 보는 것이다.
그 자리에서 축출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다시는 축에 끼지 못하는 벌칙을 감수해야 한다.
요즘말로 하면 왕따를 당하는 것이다.
절개를 중히 여기는 선비들이었기에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말장난으로 좌중을 기만한 것에 대한 응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옛 선비들의 규칙을
대부분의 출연자가 연예인인 오락프로그램에서그대로 적용하기는 어렵겠지만
최소한 뜻이라도 연결 되게 짓도록 진행자가 상기시키고
유도할 수는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즐겁기 위해 오락프로를 보는 시청자들에게
유아적인 말장난으로 안겨 주었던 씁쓸한 실소 대신
품격있는 즐거움을 줄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근래들어 즉홍적인 삼행시나 사행시 짓기는 방송이 아니라도
인터넷의 까페 등에서도 유행처럼 퍼지고 있다.
문인들 조차도 글단련의 방법으로 삼았던 행시짓기이기에
어휘력과 문장력 향상에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반가운 현상이라고 할 수 있겠으나
기왕 하려면 운을 마추는데 급급하지 않고 얼개를 제대로 짜서
투박하더라도 뜻이 흐르는 삼행시나 사행시들이 많이 지어 졌으면 한다.
*필자 주*
삼행시나 사행시 등은 운의 음과 첫 글자가 동일한가에 관계없이
세개나 네개의 행으로 된 시를 말함.
이 글에서 말하는 삼행시나 사행시는
세 개나 네 개의 행으로 되었으되 운의 음과 첫 글자가 같은 것을 말함.
박태준
grinbi@grinbi.kr
2005년 11월 27일 01:46
[
피플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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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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