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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젖어있는 열한개의 소품] (37) 이야기 둘 (9)
2005/12/30 00:00
입력 조회수 : 691
◇웨딩드레스 -돈으로 거래 된 사랑 9
나는 방송이 끝나자마자 스텝들에게 하는 둥 마는 둥 인사를 건네고 주차장으로 내달았다. 저만치 차가 보이기에 원격장치로 시동을 걸고, 걸어가며 휴대전화의 전원을 켰다. 언젠가 한 번 이용했던 이벤트 회사의 전화번호가 전화기 메모리에 입력되어 있을 것이다.
토요일이라 퇴근했을 가능성이 크지만, 혹시 모를 일이다. 누구라도 전화를 받기만 하면 추가 요금을 부담해서라도 이벤트를 열어줄 작정이다. 장소는... 용평에 있는 콘도가 좋겠군. 근처에 야간 개장하는 스키장도 있으니 이벤트가 끝난 뒤 적당히 즐길 수도 있을 테고... 혼자 살다보니 콘도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어서 분양 받은 것을 은근히 후회하고 있었는데, 오늘에서야 요긴하게 써먹을 것 같다.
좋아, 그러면 이제 대충 계획을 짜볼까?
이벤트 회사 직원들을 먼저 보내 준비를 시켜놓고, 나는 다인과 함께 느긋하게 그곳으로 간다. 아무 것도 모르는 다인을 앞세워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갑자기 불이 환히 밝혀지고 4인조 악단이 음악을 연주한다. 곧이어 샴페인이 터지고, 한 잔 마시다보면 특별 주문한 저녁식사가 들어온다. 처음엔 조금 놀라겠지만 다인도 분명히 좋아 할 것이다.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식사를 마치면 이벤트 회사에서 준비해 올 반지를 끼워주고... 반지? 가만... 그건 좀 쑥스럽겠는걸? 애들도 아니고... 그렇다고 우리가 진짜로 사귀는 것도 아닌데... 아니지, 비록 계약 관계이긴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우리도 엄연한 연인 사이 아닌가? 그렇다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리고 이벤트회사에 주문할 때 '우리는 계약으로 맺어진 관계니까 반지 같은 선물은 이벤트 품목에서 빼 주시오' 라고 할 수도 없는 문제이고 말이야.
이왕이면 좀 괜찮은 반지로 준비해 오라고 해야겠군. 1캐럿쯤 되는 루비나 사파이어가 박힌 반지 정도면 다인도 좋아하겠지. 너무 비싼 선물이라며 또 잔소리를 퍼붓기는 하겠지만, 보석 싫다는 여자는 없으니까. 그때 웨딩 드레스를 선물했을 때도 말은 싫다고 했지만, 그 뒤로도 혼자서 몰래 입어보고는 했었지. 그러니 오늘 선물도 속으로는 매우 흡족해 할거야.
자동차를 출발시키기 전에 이벤트 회사와 통화를 마치려고 입력된 전화번호들을 뒤지고 있는데, 갑자기 알람이 울린다. 음성 메일이 도착했다는 표시 같은데, 누구지? 메일 보낼 만한 사람이 없는데... 지금 진행중인 작품이 없으니 출판사에서 원고 독촉할 일도 없고... 혹시 다인인가? 그녀도 오늘이 100일 째 되는 날인지 알고 있었던 건가?
-새로운 음성 메시지 두 개가 있습니다. 메시지 청취는 1번... 삑!
-첫 번째 메시지... 저 다인이에요.
안내 음성에 이어 나오는 목소리는 역시 다인이었다. 그녀도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 분명하다. 아마도 그럴 듯한 저녁상을 자려놓을 테니 일찍 들어오라는 내용이겠지.
-진석씨... 저... 오늘...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머뭇거리는지 사뭇 궁금한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중국에 급히 들어가 봐야 할 것 같아요.
백산
수정일 2003년 03월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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