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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21) 3차례 악성암 이겨내고 활기찬 제2인생사는 컴퓨터노인 김덕희
2005/12/24 00:00
입력 조회수 : 698
다른 건 몰라도 건강하나만은 자신한다고 평소 큰 소리 뻥뻥 치던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느 날 갑자기 암선고를 받으면 십중팔구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낙심천만의 기분이 들 것이다. 그만큼 암은 우리에게 아직도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 무서운 암을 거뜬히 이겨낸 사람이 있다. 컴퓨터 학원에 다니는 김덕희(63)노인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한번도 아니고 무려 3차례나 암을 앓았다가 그때마다 병마에서 벗어나 건강하고 활기찬 삶을 살고 있다.
남들은 발병 소리만 들어도 숨이 막히고 오금이 저린다는 난치병을 그는 무슨 비법이 있기에 한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이겨냈을까 그것이 알고 싶어 그를 만나 보았다.
그는 요즘 컴퓨터 학원에 다니고 있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컴퓨터와는 완전히 담을 쌓고 살아온 오리지널 컴맹이었다.
자판은 커녕 한글을 치는 키보드가 뭔지도 모르던 사람이 지금은 컴퓨터로 한글을 치고 멀리 프랑스에 나가 공부를 하고 있는 딸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인터넷서핑을 즐긴다. 자신이 생각해도 신기할 정도로 놀라운 변신이다.
그가 병마를 이겨 낼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 바로 그것이다. 아무리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 할지라도 반드시 벗어날 수 있다는 의지와 희망을 그는 지금 이 순간까지 버리지 않았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고 마음 가는 곳에 몸도 함께 따라 간다는 말을 증명해 보였다고나 할까.
전국의 이름깨나 알려진 산은 거의 다 밟았을 정도로 산을 좋아하고 건강에는 자신 있던 사람. 그런 그가 처음 암에 걸린 것은 90년이었다.
병원 검진에서 직장 종양을 발견하고 수술하여 완쾌 되었으나 94년에는 신장에 종양이 생겨서 오른쪽 신장을 떼어내고 나았다. 그러나 그의 암과의 싸움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2002년에 세 번째로 암 선고를 다시 받은 것이다. 의사말에 의하면 발병 원인은 먼저 두 번이나 암을 앓았기 때문에 다시 전이가 돼서 몸에 퍼졌다는 것이다.
일단 흉부와 다리에 퍼진 암 세포를 떼어내기 위해 작년에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흉부는 갈비뼈를 다 드러내고 심장을 보호하기 위해 보조판을 댈 정도로 대수술이었다.
가슴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는데 다리가 문제였다. 다리에는 동맥 혈관이 워낙 많아서 수술도중 피가 너무 많이 나오는 바람에 암세포를 다 도려내지를 못했다.
그래서 다리수술 후에도 남아있는 암세포를 제거하기 위해 16주동안 방사선치료를 받았다. 그때 고통은 말도 못한다. 이틀에 한번씩 항암주사를 맞다 보니 고열로 온몸이 떨리고 식욕이 없어 기진맥진 상태로 지내야 했다.
4개월에 걸친 항암치료가 끝나고 경기도 여주 고향집에 내려가 텃밭에 손수 야채를 심고 채식위주로 식사를 하면서 투병생활을 했다.
지독한 병마에서 벗어나기 위해 개인적으로도 노력을 많이 했지만 그가 다니던 교회에서도 신앙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병이 나자마자 교회에서 그의 빠른 쾌유를 위해 하루도 안 빠지고 교대로 당번을 정해 한달동안 릴레이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암을 앓고 나서도 좌절감이 안 들고 반드시 극복할 수 있다는 의지가 강해서 시골로 내려갔다.
고향집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무공해 야채위주 식사를 하면서 지내다 보니 몸의 회복이 빨랐다.
처음에는 기운이 없고 현기증이 나서 몸을 움직이기조차 힘들어 방안에서도 벽에 손을 대고 지팡이를 짚고 다녔으나 시골에 가서 살다보니 기적같이 좋아졌다.
이제는 완전히 나아서 교회도 열심히 나가고 활동도 마음대로 할 수 있다. 세차레나 암에 걸려 수술을 몇 번이나 했지만 원래 부지런한 성격으로 지금도 가만히 있는 것 보다는 뭐라도 보고 듣고 배우려고 노력한다. 컴퓨터 학원에 다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교회에서 성도들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봉사도 하고, 성가활동도 열심히 하다 보니까 몸이 아프다는 걸 못 느낀다.
담당의사가 그를 보고 ‘다른 사람 같으면 이런 경우 암세포 전이가 계속 되고 통증이 심하게 오는데 선생님은 오히려 암세포가 줄어들고 통증도 거의 없으니 기적같은 일이 일어났다’ 면서 의아해 한다.
“가능하면 인생을 즐겁고 젊게 살려고 노력하다보니 병마도 쉽게 극복하지 않았나 싶어요. 시골에서 무공해 생활하고, 교회서 열심히 신앙생활하고 컴퓨터 학원에 다니다 보니 알게 모르게 그런 것들이 큰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강원룡 목사를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강원룡 목사와의 첫 인연은 7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67년말에 결혼하여 시골 여주에서 살다가 69년 서울에 올라와 판잣집 다락방에서 생활을 하던 중 70년에 아카데미 하우스에 들어가 운전기사로 일했다. 강원룡 목사를 그때 처음 만나 그때부터 88년까지 꼬박 18년을 강목사의 운전기사로 일했다.
강목사가 방송위원회 위원장으로 가면서 바늘에 실 가듯이 그도 함께 따라가 차량관리를 맡았다. 강목사가 2년 임기를 마치고 그만둔 이후로도 그는 계속 방송위원회에서 근무하다가 97년말에 정년퇴직을 하고 1년을 더 거기서 촉탁으로 일했다.
촉탁을 그만두고 집에서 몇 달 쉬다보니 뭐라도 해보고 싶어 마음이 답답하고 몸이 근질근질 해서 물건 나르는 데 몇 개월, 주차관리를 몇 개월 하다가 다시 오라는 제의를 받고 2000년 6월에 아카데미 하우스에 들어가 강 목사를 모시기 위해 다시 운전대를 잡았다.
그렇게 20여년 세월을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며 강 목사를 모셔왔다. 그러다가 세 번째 암이 발병하는 바람에 아카데미 하우스를 그만두고 지금까지 왔다.
방송위원회 그만두고 집에서 쉬는 동안 자동차 정비학원에 등록하여 3급 정비 기능사 자격증을 딴 경험이 있어서 이번에도 컴퓨터학원에 등록을 했다.
자판도 모르던 완전컴맹이 학원에서 몇 달 배운 실력으로 지금은 한글타자는 물론 인터넷을 하고 컴퓨터를 즐긴다.
포토샵도 익혀서 단순한 그래픽 정도는 다룰 줄 안다. 내친김에 자신의 실력을 점검해 보고 싶어 컴퓨터 그래픽 기능사 시험에까지 도전해 보았으나 학원의 열화같은 성원에도 불구하고 아깝게 탈락,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그는 그동안 몰랐던 새로운 사실을 배운다는 사실이 즐겁단다. 빵의 본고장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있는 딸과도 전화나 편지대신 이메일을 수시로 주고받는다니 참으로 놀라운 변신이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열심히 살아온 덕분에 먹고 사는 것은 크게 걱정 안 해요. 돈은 못 벌더라도 이런 생활 하는 자체가 즐겁습니다.”
병은 완쾌됐다고 보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는 없는 일. 병원에서 의사들도 제일 걱정하는 게 그 같은 경우는 뼈로 전이가 되는데 그 경로를 찾을 수가 없다고 한다.
수술을 안했으면 3개월을 넘기기 힘들다는 소리를 들었다는 그는 그때 수술해서 완전히 낫고 지금까지 왔으니 앞으로는 하고 싶은 일 마음대로 하면서 행복하게 남은 인생 살아가라는 담당의사의 말이 아직도 귀에 생생하단다.
“당시 MRI 촬영결과를 보고 담당 의사가 ‘솔직히 말하는데, 얼마 못 살 테니까 지금까지 사신 것 모두 정리하세요.”라고 말하더군요.”
그러면서 기왕 수술하려면 암부위를 몽땅 도려내야 하니까 왼쪽 다리를 자르라는 권유를 받았다. 그래서 더 자세히 알고 싶어 큰 병원에 갔더니 담당의사가 하는 말이 다리를 절단하지 말고 수술만 해보고 좋은 쪽으로 생각해보자고 권했다.
병원에 입원했는데 이번에는 흉부외과 의사가 ‘수술하면 그나마 더 얼마 못살게 되니까 하지 말라’고 계속 권하는 것이었다. 어떤 의사는 하라고 하고, 어떤 의사는 말라고 하니 도대체 누구 말을 들어야 한단 말인가.
가족들은 그의 눈치를 보느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침묵만 지키고 있고, 나머지 그를 아는 주변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그에게 수술하면 죽으니 절대로 수술하지 말라고 적극 말렸다.
그래서 그가 직접 담당의사를 만나서 “내가 수술해도 됩니까?” 하고 물어봤더니 “본인만 원하면 해드리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수술을 했고 그 덕분에 지금은 두발로 마음대로 걸을 수 있게 되었고, 가슴수술도 잘되어 기침하면 가슴이 울리고 잘 때 통증이 심하던 것도 완전히 나았다.
‘당신같은 경우는 수술하면 쉽게 죽으니 수술하지 말라’는 많은 사람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자신의 의지대로 수술을 결심한 것이 결국은 완쾌라는 좋은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그는 지금 하루하루를 즐겁게 살고 있다. 학원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도 즐겁고 자식같이 젊은 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는 것도 좋단다.
컴퓨터 산업디자인 과정을 배우면서 따라가기 힘들어 인터넷 한달과정을 따로 배울 정도로 열정 또한 대단하다. 지금 배우고 있는 5개월 과정을 모두 마치고 기회가 생기면 다른 과정을 더 배우고 싶단다.
“학원 다니고 학원 5개월 과정이 끝나면 프랑스에 다녀올 생각입니다. 가서 딸도 보고 바람도 쏘일 겸 20일 정도 여행을 하고 올 생각입니다.”
3차례나 악성암에 걸리고도 그때마다 나을 수 있다는 강철같은 의지로 결국은 병마를 물리치고 활기찬 제2인생을 살아가는 컴퓨터노인 김덕희.
아프고 힘들었던 때를 생각하면서 그는 다시 태어난 기분으로 남은 인생을 즐기면서 즐겁게 살고 있다.
* 이 기사는 피플코리아의 허락없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피플코리아에 실리는 기사의 모든 저작권은 오직 피플코리아에 있습니다.
<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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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02월23일 11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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