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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젖어있는 열한개의 소품] (32) 이야기 둘 (4)
2005/11/28 00:00
입력 조회수 : 894
◇웨딩드레스 -돈으로 거래 된 사랑 4
탈고 뒤에 찾아오는 긴장의 이완 때문인지 졸음이 몰려온다. 이제 세상의 가식 따위는 훌훌 털어 버리고 휴식에 들어갈 시간인 모양이다. 알몸과 알몸이 맞닿는 그 보드라움을 만끽하면서... 그런데 다인의 알몸을 생각하니 왠지 그냥 자기는 힘들 것 같다. 그녀의 느낌은 언제나 특별하니까... 가만! 그러고 보니 그녀와 내가 함께 한지 내일이 꼭 한 달째 되는 날인 것 같은데...? 그렇다면...
또닥또닥!
기분을 좋게 만드는 도마질 소리가 주방에서 들려온다. 어릴적 어머니의 향수를 떠올리게 만드는 이 소리를 듣노라면 커튼 사이로 비쳐들어 모자란 잠을 깨우는 아침 햇살도 싫지만은 않다.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조금 게으름을 부리고 있노라니 구수한 청국장 냄새가 문틈으로 스며들어 코를 간질인다. 당장이라도 일어나 주방으로 달려나가고 싶지만 괜히 머무적거려진다. 이상한 기대감과 함께.
딸칵!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다인이 들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진석씨, 식사하세요."
그녀가 어깨를 살며시 잡아 흔들며 연변 교포 특유의 억양으로 잠을 깨우지만 나는 계속 잠들어 있는 척 한다.
"진석씨..."
그녀가 코 소리를 약간 섞어가며 다시 불러도 나는 여전히 자는 척 한다. 그리고... 쪼옥, 소리가 날 정도로 진한 키스 세례를 받고서야 나는 겨우 잠에서 깨어난 듯 기지개를 켠다. 그리고 그녀를 확 끌어안는다. 이렇게 하면 꼭 신혼부부 같은 느낌이 들어서 좋다. 아직 결혼을 해보지 않아서 잘은 모르고,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만, 흔히들 말하는 신혼부부의 달콤한 감정만큼은 한 번쯤 느껴보고 싶었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신혼 이후의 결혼 생활은 한 마디로 딱 잘라서 싫다. 한 여자에게 평생을 묶여 산다는 것도 싫고, 귀찮은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는 부담감은 더욱 싫다. 나는 그저 남녀간의 좋은 한 때를 즐기고 싶을 뿐이다.
"계속 이러고 있다간 찌개가 다 졸겠어요."
약간은 투정 어린 그녀의 책망을 듣고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가 될 것 같다.
아침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늦은 식사를 마친 뒤 우리는 시내로 나왔다.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다인은 이리저리 고개를 내두르느라 정신이 없이 없을 지경이다. 그리고 조그만 구경거리만 발견해도 내 팔을 흔들며 좋아라 종알거린다. 꽤나 즐거운 모습이다. 그러고 보니 계약을 맺은 이후 함께 외출 한 것은 오늘이 처음인 모양이다. 아무리 계약 관계라고 하지만 내가 조금 심했던 것 같다. 이렇게 좋아 할 줄 알았으면 진작에 데리고 나올 것을...
물론 그녀가 집안에만 묶여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서울 지리에 어두운 그녀가 혼자서 멀리 외출 할 수는 없었을 테고, 바깥 구경이라고 해봐야 시장 나들이가 전부였을 텐데 말이다.
나는 원래 나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지만 그녀가 워낙 즐거워했고, 조금은 미안한 생각도 들었기에 그녀가 원하는 만큼 돌아다녀 주었다. 그렇게 서너 시간쯤 지났을까? 뭔가 중요한 생각이 난 듯 문뜩 놀란 표정으로 그녀가 물어왔다.
"지금 몇 시나 됐어요?"
"한 시 이십 분. 왜?"
백산
수정일 2003년 01월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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