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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 [바람의 꽁트] (38) 두남편 거느린 사연좀 들어보시라요
2005/10/01 00:00
입력 조회수 : 822
나는 올해로 칠순을 맞은 여자입니다. 나는 남편이 둘입니다. 두아내를 거느리고 사는 남자는 많이 있어도 여자가 두남편을 거느리고 사는 경우는 정말 흔치 않을 것입니다.
나도 알고 보면 인생이 기구한 여인이라우. 그럼 내가 왜 일처다부의 신세가 되었는지 사연 한번 들어보시라우.
때는 바야흐로 옛날로 돌아갑니다. 나는 이북출신입니다.고향이 황해도 하고도 해주에서 태어나서 자랐습니다. 결혼도 했지요. 꽃다운 나이 열여섯살때 꽃가마타고 시집을 갔습니다.
남편은 목수였지요. 가난하지만 성실하고 착한 남편이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남편이 옆에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했습니다. 남부러울것 없이 지냈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돈을 벌어오겠다면서 서울로 떠났습니다. 남편은 그렇게 훌쩍 서울로 떠났습니다. 결혼3년되던 해였습니다. 그것이 내인생의 운명을 바꿔놓을 줄이야. 나는 그때 아들녀석이 하나 있었습니다. 막 첫돌이 지났습니다. 그렇게 남편과 헤어져서 지낸지 일년이 되어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만 전쟁이 나고 말았습니다. 6․25가 터진것입니다. 나는 남쪽으로 내려갔습니다. 어린 아들녀석을 등에 업고 개나리 봇짐을 진채 부산까지 내려갔습니다. 가서 갖은 고생끝에 목숨은 부지할수가 있었습니다.
결혼을 한 어엿한 아낙네였지만 생과부가 된 것처럼 서럽고 외로워서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남편은 지금 어디서 무얼 하는지 걱정이 되어 밤을 꼬박세우기도 하였습니다. 제발 무사히 살아만 있어달라고 기도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아이는 그런대도 잘 자라주었습니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전쟁은 끝났어도 이제는 남편을 만날길이 없었습니다. 아이가 7살때 나는 전주로 올라갔습니다.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남편은 조실부모 하고 일가친척 하나 없는 3대독자였습니다. 나는 작은 단칸방을 하나 세얻어 살았습니다. 장사를 하였습니다. 그져 목구멍이 포도청이라고 이를 악물고 술장사를 했습니다. 돈은 제법 벌었습니다.
그렇게 고생을 하면서 세월은 잘도 흘렀습니다. 어느새 아이가 소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아이는 애비를 꼭 빼닮았습니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기를 학수고대하였지만 감감무소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남편없는 여자 혼자의 몸으로 물장사를 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벌은 돈 다 날리고 다시 빈털털이가 되었습니다. 내나이도 이제 서른이 훌쩍 넘었습니다.
나를 잘아는 주변사람들은 집나간 남편 이제 잊어버리고 더이상 늦기 전에 결혼해서 새출발 하라고 설득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남편이 꼭 돌아오리란 확신이 있었기에 그럴수는 없었습니다. 야속하게도 세월은 잘도 흘렀습니다.
아들녀석이 중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아들녀석도 엄마 그만 고생하고 결혼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아들녀석이 한편으로는 대견하기도 하고 또한편으로는 아빠를 생각해주지 않는 것같아 서운하기도 하였습니다.
아들이 중학교를 졸업하고 작은 회사에 취직을 하였습니다. 아들이 벌어오는 월급으로 그럭저럭 생계는 해결해나갈수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이었습니다. 평소에 잘알고 지내던 남자가 찾아왔습니다.
아들녀석도 아저씨라며 잘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들녀석은 은근히 그분과 내가 결혼을 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습니다.
그남자는 결론부터 말하면 지금의 제 남편입니다. 그때 그남자의 끈질긴 청혼을 받고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나이 서른 여섯살때였습니다. 결혼을 해서 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러니까 첫남편의 아들이 열여덜살때 둘째남편의 아들을 낳은 것이었습니다. 이를테면 배다른 형제입니다. 열여덜살의 나이차가 나는 형제. 큰아들은 자기의 어린 동생을 끔찍하게 아껴주었습니다.
남편은 정미소 사장이었습니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서른 여섯살이 되도록 결혼을 못하고 지내다 나를 만났던 것입니다. 나는 재혼을 하고 나서 이제 첫남편을 잊기로 하였습니다. 그런데 사건이 나고 말았습니다.
첫남편이 찾아온것입니다. 첫남편은 아직도 재혼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는 첫남편을 만날수가 없었습니다. 아니 만날 자신이 없었습니다. 이미 기다리다 지쳐서 다시 결혼을 하여 자식까지 둔 몸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괴로워서 견딜수가 없었습니다. 재혼하지 않고 조금만 더 참고 기다릴걸 그랬나 싶어 후회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오히려 입장이 곤란한건 나보다도 지금의 남편이었습니다. 지금의 남편은 자신이 죄라도 지은 것처럼 미안해 하였습니다.
나는 그냥 이렇게 미적미적할수는 없었습니다. 만나서 다시는 내곁에 나타나지 말라고 매정하게 결판을 내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첫남편을 만났습니다. 남편은 그간의 사정을 담담하게 털어놓았습니다.
서울에서 일거리를 찾아 제법 자리를 잡아가는 마당에 전쟁이 났습니다. 북한으로 들어갈수가 없었습니다.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가족을 영영 만나지 못할 것 같아 겁이 났지만 어떻게 할 도리가 없었습니다. 부산까지 내려갔습니다. 피난생활을 부산에서 하였던 것입니다.
그러고 보니 두사람은 같은 부산에서 피난생활을 하면서 서로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운명의 짓굿은 장난 같았습니다. 전쟁이 끝나고 다시 남편은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그때부터 마누라인 나를 찾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백방으로 돌아다니면서 찾아보았지만 한강백사장에 흩어진 모래알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목수일을 하면서 전국을 떠돌아다니기로 작정을 하였습니다.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중에 이곳 전주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전주에서 물어물어 내가 있는 곳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행색을 보아하니 초라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하기사 조강지처 찾겠다는 일념으로 그때까지 고생하였으니 돈을 모을리가 없었겠지요. 차라리 돈이라도 많이 벌어놓았다면 눈딱감고 외면하고 박절하게 문전박대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평생을 날 찾아 해멘 초라한 모습의 전남편을 보고는 외면할수가 없었습니다.
지금의 남편과 상의를 하였습니다. 남편은 같이 지내자고 하였습니다. 눈물이 나게 고마웠습니다. 그렇게 해서 두남편이 한지붕아래서 한솥밥먹고 함께 살게 된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장난이지요.
아들은 생부를 보고서도 크게 반가워하는 기색이 없었습니다. 첫돌때 생이별을 하였으니 그럴만도 하지요. 그러나 피는 못속이는 가 봅니다. 한달도 안돼서 아들녀석은 아빠를 끔찍히도 따랐습니다.
그러나 나는 죽을 맛이었습니다. 남편 하나도 비위맞추기 힘든 데 두명이나 모시고 살아야 하니 그 심정이 오죽 하겠습니까. 우선은 큰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안방에 첫남편이 거주 하고 사랑방에 둘째남편이 지내기로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서로 큰아버지 작은아버지로 부르게 하였습니다.
잠은 한달씩 자기로 하였습니다. 첫남편과 한달을 지내고 다음달은 둘째남편과 지내는 식이었습니다. 서로 질투는 절대로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만약에 질투를 한다면 당장에 이혼도장을 찍고 말겠다고 엄포를 놓은 약발이 먹혀 들어간 것입니다.
두남편은 서로 형님 동생 하면서 사이가 좋았습니다. 다행이었습니다. 어려운 일은 서로 도와주고 좋은 일은 서로 좋아했습니다. 어쩌면 나와 두아들 그리고 두남편은 모두가 전쟁의 피해자 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내인생을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이것도 내게 주어진 운명이라고 생각하면 굳이 피해가고 싶지 않습니다. 자랑할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부끄럽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죽는 순간까지 두남편과 두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갈 것입니다.
비록 남들이 이상한 집이라고 손가락질을 할지라도 나는 개의치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인생에 충실했고 앞으로도 마음가는 대로 정직하게 살아갈 것을 굳게 다짐합니다. 내가 감기라도 걸려 누우면 두남편이 서로 먼저 달려옵니다. 감기약을 사오고 다리를 주물러 주고 이마에 얼음물수건을 얹어주고 말입니다.
이럴 때는 나보다 더 행복한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행복이 넘칩니다.
김명수
수정일 2002년11월16일09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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