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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젖어있는 열한개의 소품] 이야기 하나 (19)
2005/09/15 00:00
입력 조회수 : 763
◇까만색 반부츠-누군가를 대신한 사랑 19
"예쁜 선물로 준비할게요."
"선물까지는..."
"아이와 첫 대면인 데다가 생일까지 겹쳤는데 맨손으로 갈 수는 없잖아요?"
"그럼 간단한 것으로 부탁하겠소."
"걱정 마세요. 저도 부담 가는 선물을 해 줄만큼 부자는 아니니까요."
가벼운 농담까지 섞어가며 받아 넘겼는데도 당신의 눈에는 우울한 빛이 여전히 남아 있었습니다. 저를 담고 있지 않은 그런 눈빛은 싫었습니다.
"추워요..."
저는 당신에게 팔짱을 끼며 몸을 기댔습니다.
"이럴 땐 따끈한 오뎅 국물이 좋던데..."
약간은 애교가 섞여 있는 제 투정이 싫지는 않았던지 당신은 제 어깨를 살며시 감싸안으며 근처에 있던 포장마차로 발길을 옮기셨지요.
우리는 그 날 밤 당신의 아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며 오랜만에 많은 술을 마셨습니다. 아이의 이름은 재민이라고 했습니다. 상냥한 성격이고 공부도 제법 하는 데 자주 돌봐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안타까워 하셨지요.
저는 재민이가 당신을 닮았냐고 물어봤습니다. 당신은 은근히 자랑스러운 눈길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당신을 닮았다면 저도 재민이를 충분히 사랑 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사흘은 그렇게 길지 않았습니다. 재민이에게 줄 선물을 고르기도 전에 다 지나갔으니 말입니다.
어떤 것을 선물해야 좋아할까... 장난감? 초등학교 삼 학년 아이의 선물로는 조금 유치한 면이 있었습니다. 자전거? 그것은 이미 가지고 있을 것 같았고... 게임 CD? 너무 흔해서 성의가 없어 보였습니다.
재민이를 만나기로 한 그 날 퇴근 무렵까지도 저는 선물에 대한 고민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고민을 해도 마땅한 선물은 떠오르지 않고 머리만 지끈거렸습니다.
결국은 퇴근시간 까지도 선물을 결정하지 못한 저는 당신에게 도움을 청하기 위해 수화기를 집어들었습니다. 바로 그 순간 당신이 사흘 전에 했던 말이 문득 떠올랐습니다.
"녀석은 나중에 고생물학자가 될 모양이오. 공룡한테 관심이 아주 많거든."
그 말이 왜 그제야 생각났는지 모르겠습니다. 조금만 일찍 깨달았더라도 선물로 고민 할 필요가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저는 당신에게 전화를 걸어 근처 백화점에서 만나자고 전하고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먼저 백화점에 도착한 저는 공룡 모형을 종류별로 구입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더군요. 공룡의 종류가 그렇게 많은 지는 저도 그 날 처음 알았습니다.
계산을 마친 뒤 점원에게 특별히 부탁해서 예쁘게 포장을 하고 있을 때 당신께서 완구코너로 찾아오셨습니다.
무려 다섯 개나 되는 선물 박스를 보고 당신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나무라지는 않았습니다. 그냥 조용히 웃어주고는 아무 말 없이 선물을 나누어 들어 주셨지요.
백산
수정일 2002년10월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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