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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바람의 꽁트] (34) 납량시리즈1 / 내가 만난 도깨비
2005/09/09 00:00
입력 조회수 : 788
무더운 여름 잊혀졌던 옛날 호랑이 담배피던 시절을 떠올려보시면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자그럼 슬슬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세상에는 참 황당한 일도 많다. 그중에서 내가 겪은 이 일은 두고 두고 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악을 써도 잊혀지기는 커녕 더욱 뚜렷히 뇌리속에 각인되는 것이다. 이쯤되면 잊는 것은 포기하기로 하고 아름다운 추억으로 간직하려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군대가서 1년만에 상병달고 첫휴가를 나왔다. 고향행 버스 목적지에서 내렸다. 집에까지는 아직도 8km.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깊은 밤. 한치앞도 안보일 정도로 칠흙이었다. 할수없이 비를 맞으며 걸어가기로 작정하고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길이 밝아졌다. 앞에 아리따운 아가씨가 한손에 호롱불을 한손에 우산을 받쳐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발걸음을 빨리해서 그 여자를 따라 잡았다. 여자는 나에게 우산을 씌워줬다.
내앞에는 내눈을 의심할정도로 진귀한 일이 벌어졌다. 칠흙같이 어둡던 길은 대낮같이 환하고 곧게 펼쳐진 신작로 길로 바뀐것이었다. 이게 웬 떡이냐. 가슴이 흥분해서 두근반 세근반 뛰기 시작했다. 세상에서 가장 멋져 보이는 이 여자는 다정다감한 나의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호롱불에 우산을 받쳐준 비단결같이 착한마음에 얼굴까지 환상적으로 예쁜 여자.
세상에 이런 여자는 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런 행운을 내가 장님 코끼리 문고리 잡듯이 잡았으니 행운치고는 메가톤급 행운이라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걸어 가면서 군대얘기를 열심히 해주니까 귀가 솔깃해서 재미있다고 깔깔댔다. 얼굴 예쁜 이여자는 웃는 모습도 왜그렇게 귀여워보이는 지 내정신은 완전히 뿅가버린 상태였다.
이 환상의 여인은 고향동네 떠난지 꽤 오랜만에 시골에 볼일이 있어서 오는 길이라고 했다. 그런데 한가지 알수 없는 것은 아가씨의 이야기를 들어본즉 고향이 같은 마을인데 도대체 본기억이 전혀 나지를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어려서 고향을 떠났다고 하더라도 누구누구네 살던 사람이라는둥 이름이 뭐라는둥 생각이 날만도 한데 전혀 감도 잡히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려면 어떠랴. 지금 내눈앞에 절세미인이 나타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인데.
나와 얼굴 예쁜 여자는 그렇게 도란도란 얘기하며 어느덧 한시간을 걸어왔다. 드디어 우리동네도 얼마 남지 않은 거리까지 왔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여자는 동네앞 갈림길에서 우리집은 저쪽으로 가야 한다면서 나와 다른 길로 방향을 틀었다.
여전히 길은 대낮같이 환했다. 잘가라고 손을 흔들고 나는 내집으로 들어갔다. 대문을 열었다. 환하게 불이 켜져 있다. 내방으로 들어갔다. 들어와서 군복을 벗었다. 벽에 옷을 걸었다. 양말도 벗었다. 양말을 벗어 마루에 내놨다. 농문을 열어 이불을 꺼냈다. 이부자리를 깔고 잠자리에 누웠다. 피곤했던지 금새 잠에 골아 떨어졌다.
그런데 온몸이 쑤시고 아프고 정신없을 정도로 악몽에 시달렸다. 눈을 떴다. 기절할뻔 했다. 내가 누워 잠이 들은 장소는 깊은 산속 깊은 계곡 가시덤풀 속 이었다. 손하나 빠져나올 틈이 없이 촘촘하게 돔처럼 생긴 가시덤풀 속에 어떻게 해서 들어와 있는지 정말로 불가사의였다.내몸은 온통 피투성이 상처로 얼룩이 졌다.
어제일은 분명 아가씨와 같이 오다가 집앞에서 헤어져 집에 돌아와 잠에 들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도저히 알수없는 일이었다. 손으로 땅을 얼마나 긁어댔는지 열개 손톱이 닳아 없어질 정도였고 온몸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어제의 황홀함은 간데없고 얼굴까지 흙으로 범벅이 되어 차마 눈뜨고 볼수 없을 정도로 가관이었다.
비는 어제 처음 출발때처럼 억수같이 내리고 있었다.옷은 분명이 벗어서 벽에 걸었는데 아침에 살펴보니 가시덤불에 걸려 있었다. 신발도 양말도 땅바닥에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럼 난 어제 어떻게 된거야. 분명히 묘령의 여인과 같이 걸어오다 서로 잘가라고 손을 흔들면서 헤어졌는데 지금 내가 처해있는 상황을 보니 도저히 앞뒤가 맞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일이 벌어질수 있다는 말인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내살을 꼬집어 보았지만 내살만 아픈 엄연한 현실이었다. 말로만 듣던 도깨비. 나는 직접 이렇게 온몸으로 경험했다.
20년이상 세월이 흘렀지만 나는 지금도 자신있게 외친다. 세상에는 도깨비가 분명히 존재한다고. 그리고 그때 만난 환상의 그여인은 내가 만난 도깨비였다고.
김명수
수정일 2002년10월20일 17시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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