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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바람의 꽁트] (33) 우리의 영원한 전설 양단장
2005/09/04 00:00
입력 조회수 : 792
세상사람들이 모두 지구를 떠난다해도 난 안떠날꺼야. 이땅에 술이 남아 있는한 나는 떠날수가 없어. 술과 결혼한 남자. 술이 몸에 나쁜것이라면 모두 마셔서 없애버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를 양단장님이라고 부른다.
광화문의 양단장은 주선이다. 바둑으로 치면 기성이다. 그를 지칭하는 수식어는 끝이 없다. 광화문의 영원한 술통. 광화문의 주선. 광통회 교주.
술한잔 걸치고 술취해 바라보면 세상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는 그분을 존경하고 따르는 후배들은 줄을 잇는다. 내가 그분을 만난것은 10년전이다. 낯선 회사에 들어오니 머리가 희끗희끗하고 키가 장대같은 분이 첫눈에 들어왔다. 바로 양단장님이다.
첫인상이 냉정하고 차갑게 보였다. 그리고 깡마른 체구에 6척장신의 키가 더욱 커보였다. 알고보니 태권도가 6단이었다.
학교 다닐때는 악명을 날리던 주먹패도 2단옆차기 단 한방으로 날려버렸다는 무시무시한 무용담을 듣고는 역시 보통은 넘는 분이라고 생각했다.
양단장은 백전노장이었다. 현역 최고령 야근대장으로 백발을 휘날리며 업무에 몰두하는 모습을 후배들은 그져 바라만 보아도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나는 술에 약하다. 소주는 기껏해야 석잔이고 막걸리는 한사발이고 맥주는 500cc가 정량이었다. 그런 내가 양단장을 따라나섰다.
양단장. 사내에서 아무리 높은 분도 그렇게 불렀다. 사장도 그를 부를때는 양단장이었다. 운동하면 양단장. 일에도 양단장. 노는데에도 양단장. 이에는 이. 몸에는 몸. 주먹에는 주먹. 일에는 일. 모든것을 두루두루 섭렵한 분이었다.
모르는 것이 없는 박학다식의 만물박사. 술집에서 마주한 그는 또다른 면모로 나를 놀라게 했다. 아무리 매스컴을 타는 방송가의 스타라 해도 그렇게 재미있고 배꼽빠지게 웃기고 울리는 구수한 입담을 본적이 드물었다.
확실한 스타였다. 그는 술을 마시는데에도 독특한 철학이 있다. 시킨술은 몽땅 마신다. 피같은 술을 단 한방울이라도 남기는 법이 없다. 안주가 남으면 술을 더시킨다. 술이 남으면 당연히 안주를 더시키고. 즐겁게 마시고 즐겁게 취한다.
모든 스트레스를 술한잔에 깨끗히 날려버리고 오늘의 일은 잊고 새로운 내일의 아침을 맞는다. 술이 음식이고 음식이 술이다.그에게 술은 몸을 지탱해주는 산소와 같은 것이다.
나는 양단장에 첫눈에 반했다. 고등학교 선배였다. 인구 3만밖에 안되는 소도시의 고등학교 12년선배.
양단장은 주량이 약한 나에게는 술을 권하지 않는다. 나는 양단장이 술을 권하지 않는 유일한 단 한사람이다. 그러나 양단장의 주법은 모든 사람에게 예외없이 적용되었다. 단 한사람의 열외인 나만 빼고.
그래도 후배들은 양단장을 좋아하고 따랐다. 근무가 끝나면 어김없이 마시러 가는 그분은 사내에서 뿐만 아니라 광화문에서는 전설로 통했다. 주변의 회사에서 술을 즐긴다는 분들은 양단장을 모르면 간첩이었다.
술자리에 가면 그는 속전속결이다. 한잔마시면 한잔 준다. 숨소리보다도 더 빨리 술잔이 돌아간다. 술 마시고 잔돌리는 소리가 휙휙 날정도로 빨리 마시다 보니 일인당 한병 마시는데 한시간도 안걸린다.
양단장이 술집에서 최고의 VIP대접을 받는다. 일년에 360일을 술마시는 전설적인 분. 두달에 단 하루만 빼고 매일같이 술을 마신다.
단하루를 마시지 않는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당신의 몸 컨디션이 정상인가 아닌가 체크하기 위해서 두달에 하루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단장의 술마시는 철학은 술자리에서 그친다. 술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나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변한다. 얼굴에 취한기색 하나 없어 술한잔 안마신 것 같이 보인다.
후배들은 양단장을 따라 마시다가 취해서 이튿날 회사에 지각을 하더라도 양단장은 단한번도 그런일이 없다. 밤새 술집에서 보내도 회사에는 칼같이 늦어도 5분전에 출근한다.
그런 양단장을 사내에서는 술배 따로 밥배따로 있는 것처럼 술집에서 양단장 회사에서 양단장 따로 있다는 말도 한다. 나는 양단장을 무척이나 따랐다. 고등학교 선배였기 때문에 더욱 따랐고 양단장의 인생철학이 좋아서 따랐다.
양단장은 술을 마시면 꼭 노래방을 간다. 아니 술집에서 아예 노래방을 예약해둔다. 양단장이 오면 당연히 노래방으로 가는 것을 알고 술집 주인이 노래방을 미리 예약해 두었다가 술자리가 끝나면 정중하게 노래방으로 모신다.
노래방에 가면 양단장은 인기가수가 된다. 목소리가 유난히 크고 성량이 풍부해서 노래를 부르면 가수보다 더 잘부른다. 그런데 양단장이 노래방에서 한가지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마이크를 한번 잡으면 놓치를 않는다. 한시간이면 혼자서 다섯곡은 부른다. 후배들에게 마이크 잡을 기회를 주지 않는다. 그래도 양단장곁에는 언제나 후배들이 줄을 잇는다.
막말로 우리회사에서 양단장 술 한번 안얻어먹은 사람 없다고 할정도로 술집에 가면 통이 크다. 언제 어느때고 술집에 가면 술값을 낸다.
양단장은 술을 좋아해서 술마시러 왔는데 당연히 술값은 자신이 내야 한다면서 후배들의 입을 막았다. 양단장은 후배들에게 술마실때 잔한잔 숟가락 한개 더 얹어놓는 것이라면서 즐겁게 후배들의 술값을 계산해준다.
어쩌다 후배들이 술값을 내려고 해도 용납하지 않는다. 양단장은 술마시면서 후배들을 사정없이 때리기도 한다. 술잔을 왼손으로 받거나 하면은 어김없이 주먹이 날아온다.
주법을 어기면 추호의 용서도 없다. 그래서 양단장의 양옆에 앉은 후배들은 언제나 양단장의 손놀림을 예의주시하면서 방어태세를 갖는다.
얘기하다 언제 어느순간에 느닷없이 주먹이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이다.양단장은 온정이 듬뿍담긴 사랑의 매라면서 장난삼아 주먹을 날리지만 머리를 맞는 후배들은 죽을 맛이다. 그래도 후배들은 양단장을 즐겁게 따라다닌다.
양단장에게 유일하게 단 한방도 맞지 않은 사람이 있다. 바로 이글을 쓰는 주인공인 나. 후배들은 양단장이 고등학교 후배라고 봐주는 것이 눈에 훤히 보인다면서 질투섞인 푸념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 양단장은 맞을 짓을 안하니까 그런거라면서 슬쩍 웃어넘겼다. 나는 안다. 양단장이 나를 마음속 깊이 아껴주고 있다는 것을.
한번은 내가 개인적인 사정으로 회사에 사흘을 무단결근 한 적이 있다. 그때 양단장께서는 후배 2명을 집에 보냈다. 나를 설득해서 회사에 출근하라는 엄명을 내렸다. 때로는 거칠고 호탕하면서도 그런 자상한 일면의 양단장의 모습은 나를 감격시켰다.
부담없는 선배. 하늘같이 높고 까마득한 선배지만 왠지 모르게 맏형같이 포근하고 안기고 싶은 선배다. 때로는 후배들의 고민을 들어주며 어려운일을 해결해주는 카운슬러 역할도 한다. 양단장은 지금 회사를 그만 두셨다.
환갑을 눈앞에 둔 나이에 직장에서 구질구질하게 눈치보면서 다니는 것이 싫다면서 깨끗하게 사표던지고 당당하게 걸어나오신 분이다.
그런 양단장의 호쾌하고 딱부러지는 성격때문에 마지막 사표쓰고 회사를 나온 그모습까지 후배들에게 멋진 추억 멋진인상으로 남았다.
지금도 양단장은 회사 근처에 종종 나타나신다. 일주일에 한번쯤은 사랑하는 후배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정든 술잔을 돌리는 즐거움을 누리며 살고 있다.
자신이 술을 못마시는 날에는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이라면서 자신이 술을 마시는 것은 그만큼 건강한 증거라고 말하는 양단장은 내가 지금까지 만난 선후배중에 가장 인상깊은 선배가 아닌가 싶다.
자신의 월급의 절반을 술값으로 날려도 얼굴한번 안찌푸리고 내조를 해주신 양단장의 사모님도 존경스럽다.
김명수
수정일 2002년 10월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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