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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3) 눈병고치고 일류 옷디자이너 된 이임준 2
2005/07/25 00:00
입력 조회수 : 710
1987년. 시대패션디자인 학원에 신청을 하였다. 그의 운명이 또한번 바뀌는 순간이었다. 패션을 시작하기에는 할아버지나이였다. 36세. 늦깎이로 학원에 등록했다는 자체만으로도 다른사람들에게는 큰 화제거리였다. 무엇을 꼭 해보고 싶어서 등록한 것은 아니었다. 옷만드는 재주가 있어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옷계통에는 아무런 경력도 없는 문외한이었다.
눈치료는 되었지만 당장은 사회적응이 어렵겠다는 생각에 학원이나 다니면서 머리나 식힐 셈이었다. 조카뻘되는 어린 수강생들과 함께 배우는 것도 쑥스러웠다. 학원비용은 부인이 충당했다.
선긋는 것부터 도식화 디자인등 모든것이 하나같이 어려웠다. 그림소질은 전혀 없는데 도대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수가 없었다. 여자수강생들이 이상한 눈초리로 힐끔힐끔 처다볼때마다 주눅이 들었다. 선생역시 안쓰럽다는 표정을 지어보이곤 했다. 그래도 열심히 다녔다. 나름대로 즐거움이 있었다. 시간이 갈수록 나이어린 수강생들과도 친해졌다. 어렵거나 잘모르는 것을 친절하게 알려주기까지 하였다.
주말이면 교외등으로 MT도 하면서 학원생들이 함께 어울렸다. 선생님과 소주를 마시며 터놓고 지내다 보니 친구처럼 친해졌다. 그후 학원생활을 재미있고 즐겁게 할수가 있었다.
남들은 1년 배우면 되는 과정을 2년씩이나 다녀야 했다. 너무나 기초가 없었기 때문이다. 중간에 디자인쪽을 포기하고 패션 패턴쪽으로 전공을 바꿨다. 죽을 힘을 다해서 열심히 배웠다. 학원에서 3시간 배운것을 집에 와서 그대로 해보았다. 옷만드는 제도를 스케치북에다 그대로 옮겨보았다. 학원에서 배운대로 종이위에 그려보는 작업은 큰고통이 아닐수 없었다. 여름에 땀을 찔찔흘리며…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보기는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학원 졸업후 사회진출하면 패션디자이너가 되는줄 알았다. 막상 졸업을 하고 보니 나이가 많아 서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기술을 더 익히기 위해 한달에 50만원씩 주고 3개월간 패턴 개인지도를 받았다. 그러나 역시 사회는 그를 인정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았다. 어떻게 배운 기술인데…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여성옷을 만든다는 것으로 만족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그를 필요로 하는 회사가 나타났다. 한번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았다. 오늘이 있기까지 얼마나 힘들게 살아왔나 생각하면 불섶이라도 뛰어들 것 같은 용기가 솟았다. 다양한 기술을 배우기 위해 될 수 있는한 여러곳을 거쳤다. 그럴때마다 월급은 올라가고 기술도 조금씩 향상되어갔다. 쉬운일이 어디 있으랴만 옷만드는 것 역시 장인정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는 비로소 일류디자이너라는 인정을 받았다.
세월은 흘러가고 여러곳을 두루 두루 거친 끝에 내쇼널브랜드에 취직했다. 여성브랜드로는 국내에서 최고의 수준을 자랑하는 회사였다. 여성캐주얼 브랜드 데무라는 곳에서 6년간 일하면서 기술을 계속 쌓아나갔다. 지금은 동방패션 플래닝이라는 프로모션에서 여성캐주얼 옷을 만들고 있다. 뒤늦게 디자인에 뛰어들어 남들보다 몇배의 노력으로 일류 패터너의 자리까지 올라섰다. 늦게 시작하여 땀으로 얻어낸 기술이기에 디자이너라는 자부심 또한 남다르다. 지금 그는 남들보다 적어도 두계절이나 앞서간다. 최소한 두계절 이후에 유행할 패션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기술력이 인정받으면서 차츰 가정도 안정되어 갔다. 가장 어렵고 힘들때 희망과 의지를 일깨워준 사랑하는 아내. 무엇으로 보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집에다 미싱한대 갖다 놓고 다양한 옷을 만들어 보았다. 동네 아줌마들로부터 옷을 만들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한번 해보기로 했다. 아내와 함께 원단을 구입하여 옷을 맞추어 주었다. 아줌마는 맞춤옷이 너무 마음에 든다면서 얼마냐고 물었다. 집에서는 처음 만들어본 옷이라 알아서 달라고 했다.
그런데 옷이 마음에 들었다며 거금인 35만원을 주고가는 것이다. 이씨부부는 예상하지 못한 큰돈을 받고 가슴이 두근두근 했다. 옷만드는 게통에 입문한지 6년만에 느끼는 뿌듯함이었다. 이후부터 자신감이 생겼다. 용기를 내어 집에서도 본격적으로 옷을 만들었다. 동네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빠르게 퍼져나갔다. 옷을 잘만든다는 소문이 한번 퍼지자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회사에서 퇴근하고 나면 또다른 맞춤옷을 만들어 내느라 밤을 새우기 일쑤. 아무리 바쁘고 힘들어도 자신이 만든 옷을 입고 만족하는 사람들을 보면 신바람이 났다. 어느새 그에게 일류디자이너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녔다.
나이드신분 결혼앞둔 아가씨까지 그를 찾는 단골이 계속 늘어났다. 직장에서 벌이보다 집에서 만드는 맞춤옷 수입이 훨씬 좋았다. 이씨는 회사가 끝나기 무섭게 집에 달려와 부인을 도왔다. 손님들 사이즈 재고 패턴 뜨고… 며칠후 가봉하고 옷을 완성하여 건네주기까지의 과정들이 눈코뜰새 없이 반복되었다. 너무너무 피곤하고 힘이 들어도 불어나는 통장을 보면 신이 났다.
이대나 홍대근처는 물론이고 압구정 갤러리아 백화점 앞에 까지 장사할만한 장소를 물색하러 돌아다녔다. 그런데 때아닌 IMF가 온 것이다. 많은 회사가 퇴출되는 과정에서 의류업계도 연쇄 부도가 났다. 제살 깎아 먹는식으로 덤핑이 판을 쳤다. 창업을 이루려던 그의 꿈은 일단 다음으로 미루어 놓았다.
오늘의 생각으로 내일을 기다리지 말자는 신념으로 살아가고 있다. 무엇을 해야겠다는 뜻이 있고 생각이 있으면 주저하지 말고 일을 저질러 보라. 그대에게 반드시 희망이 있을 것이니.
요즘 그는 날새는 줄도 모르고 늦게 배운 디자인에 푹빠져 지내고 있다. 다가오는 이번가을에는 그가 만든 캐주얼을 입은 여성들이 전국의 거리를 누비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기사는 피플코리아의 허락없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전재나 무단사용을 금지합니다.
<피플코리아 김명수기자/
www.people365.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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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5/16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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