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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바람의 꽁트] (28) 직업이야기6 / 너, 기자 맞아? 6
2005/07/17 00:00
입력 조회수 : 731
탈옥범 신창원이 잡혔다. 그시간에 신문사는 전쟁터를 방불했다. 안기자는 그날 정상근무였다. 그러니까 저녁 6시30분에 나오는 첫판 제작을 담당하는 날이었다. 오후 다섯시. 번갯불에 콩볶듯 편집을 끝내고 제작국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순간 테레비에 스파크뉴스로 나오는 단 한줄. 신창원 검거. 안기자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마음속으로 '앗 뜨거라' 하면서 편집국으로 다시 뛰어올라갔다.
반사적으로 시계를 보니 5시 20분. 이미 기사마감시간이 20분이나 지났다. 각부서에서는 난리가 났다. 기사마감이 다 끝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기사를 다시 받아 확인해볼틈도 없이 처리를 했다.예정되었던 톱기사가 순식간에 날라가고 신창원검거기사가 실린 것이다.
우선 첫판은 그렇게 대충 막고 넘어갔다. 나머지는 밤에 야근자가 보충을 한다. 전혀 예측불허였던 돌발성 기사로 도깨비 춤추듯 만들어 놓은 첫판신문을 야근자가 몇번이고 보충취재를 거쳐 최종마무리 신문을 만들어 낸다.
야근자는 남들이 잠을 자는 고요한 밤에 발이 닳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뛰어다니면서 신문을 만든다. 신문을 만들다 보면 시간이 눈깜짝할새 흘러가버린다.
필수인원만 남은 야근때 이렇게 돌발사고라도 터지는 날이면 더욱 죽을 맛이다. 마감시간도 잘 지켜지지 않는다. 시간을 붙잡아 매놓고 싶을 정도로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란다. 그렇게 젖먹던 힘까지 다 써대면서 만들어 놓은 신문이 만에 하나 잘못되기라도 하면 그날은 죽는 날이다.
신문사에서 가장 큰 죄는 물먹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문에도 사각시간이 있다. 야근을 할 때 가장 조심하고 경계해야 할 시간이 바로 이시간이다. 신창원검거가 새벽 1시40분에 되었다고 가정해 보자. 그러면 조간신문이 그기사를 다루기 어려울 것이다. 바로 신문 제작이 다끝나고 인쇄가 되어 나올시간이기 때문이다.
만약 다른 신문사가 윤전기를 멈추고 시내판에 그기사를 실었다면 특종이 된다. 특종이 되면 영광이지만 낙종이 된 나머지 신문사는 초상집이 된다. 밤에 야근을 하면서 죽을 고생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징계와 문책만 있을 뿐이다. 위로 연대책임을 물어 그날의 야간국장까지 줄줄이 사탕으로 징계를 먹는다. 심한 경우에는 모가지가 달아나기도 한다.
삼풍사건이 무너질 때 모방송사가 경쟁사보다 단 몇초 먼저 소식을 보도했다고 해서 세계적 특종을 했다고 몇 년을 울궈먹었던 것은 언론사에서 보도경쟁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볼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몇 년전에 모 대학에서 시험지가 사전에 유출되는 사건을 석간신문이 특종을 했다. 특종을 한 신문사는 거액의 특별사례금과 함께 축제파티가 벌어졌고 낙종을 한 경쟁사는 편집국장을 비롯한 줄줄이 문책인사가 단행되었다.
하루 하루를 숨죽이면서 홍수처럼 쏟아지는 뉴스를 재료로 재미있고 영양가 있고 맛있는 요리를 만들기 위해 피튀기는 시간싸움을 해야 하는 것은 편집기자의 숙명이요 피할수 없는 운명이라고 안기자는 생각한다. 십년을 넘게 그런 생활에 젖어 지내다 보니 이제는 편집중독증에 걸렸다. 마지막 한방울의 땀까지도 모두 쏟아내는 열정을 불태우며 편집에 몰두하다보면 꼭 미친사람 같다. 무엇 때문에 이렇게 혼신을 다해 일을 해야 하나 자괴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일이끝나고 화장실에 가서 참았던 소변을 보는 순간에 하루의 전쟁이 끝났다는 후련함과 함께 묘한 쾌감이 밀려온다.
그순간을 위해 제자리를 어김없이 돌아오는 시계바늘처럼 자기도 모르게 다시 편집을 뒤풀이 하는 것이다. 마약중독환자가 마약을 끊어야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행동으로는 마약을 찾는 것이라고나 할까. 새벽 4시에 청진동에 가면 언제나 편집기자가 있다.
안기자는 청진동 해장국집에서 신문을 돌려본다. 안기자 뿐만 아니라 다른 조간신문사의 편집기자들도 야근을 마치고 쌓인 피로를 한잔의 술로 씻어내기 위해 새벽 4시가 되면 그곳으로 몰려들기 때문이다.
서로의 손에는 자신이 밤새 만들어 낸 신문이 한부씩 들려 있다. 신문을 서로 바꿔서 읽어본다. 마치 자신이 만든 신문이 잘못됐나 잘 됐나 비교품평회라도 여는 기분이다.
잘만들었으면 꼭 내가 다른 신문사를 눌러 이긴 것 같아 기분이 좋다. 기분이 좋으면 술도 술술 잘 넘어간다. 그러나 그 반대가 되면 그날은 재수 옮붙은 날이다. 집에가서도 찜찜해서 잠이 안온다. 안기자는 한번 이런 경우도 있다. 자신이 만든 신문이 죽을 썼다. 밤새 애써만든 마지막판 신문을 느긋하게 훑어보았다.
이제는 하루일과가 다 끝났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담배를 한 대 입에 물었다. 그리고 막 퇴근을 하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그순간에 윤전부에서 뛰어올라왔다. 날짜가 틀렸다는 것이다. 그소리를 듣는순간 하늘이 무너진 것 같았다. 신문을 펼쳐보았다. 아니 어떻게 이럴수가.
1999년 6월 25일이 1998년 6월25일로 잘못 들어간 것이다. 머리속은 백치가 된것처럼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져 어서 빨리 윤전기를 세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우선 윤전기를 세웠다.
시간이 흘러갔다. 1초 1초가 그야말로 뼈를 깎는 순간이었다.
정신없이 내달려 시간을 당겨보았지만 눈깜짝할새 신문은 10만부나 돌았다. 종이값만 해도 엄청났다. 그날은 술먹을 기분도 나지 않았다.
야근일지에 이실직고를 하고 도망치듯 회사를 빠져나왔다. 안기자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목욕탕에 가서 때를 씻었다. 마치 그날의 악몽을 떨쳐내기라도 하려는 듯 피부가 벗겨나갈 정도로 박박 밀고 또 밀었다.
집에 들어가니 오전 10시가 넘었다. 현관문을 열어주는 마누라와 눈이 마주친다. 남편의 기색이 않좋은 것을 눈치챈다. 마누라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남편의 눈치를 살핀다.
안기자는 전화 플러그를 뽑아버린다. 회사에서 연락올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안기자는 비록 내일 불벼락을 맞을지라도 오늘은 잊자고 생각한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는다.
결국 안기자는 그날 뜬눈으로 하루를 보내고 회사에 출근했다. 이미 회사에서는 집에 수십차례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전화플러그를 빼어버렸으니 연락이 될 리가 없었다.
안기자는 살인죄라도 지은 것처럼 고개를 들지 못했다. 그렇게 엄청난 실수를 하고 나면 실수가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징크스가 된다.
그래서 편집기자는 실수를 두려워한다. 군대서 제식행군할 때 꼭 발이 틀리는 사병과 마찬가지라고나 할까. 그런 사병을 군대서 고문관이라고 한다. 한번 찍힌 고문관은 더욱 주눅이 들어 틀리기 일쑤다.
고참한테 얻어맞고 그러다 보면 안틀리려고 마음먹어도 자신도 모르게 다시 왼발할 때 오른발이 나가는 것이다. 골프스윙을 할때 어깨에 힘이 들어가면 자세가 흐트리는 이유나 다를 것이 없다.
그래서 멀쩡한 사병도 한번 틀려 얻어맞고 나면 얻어맞은 바로 그것이 악몽처럼 떠올라 계속 틀리게 된다. 참으로 묘한 징크스가 아닐수 없다.
그러나 세상이 어디 슬픔뿐이랴. 안기자는 처음 신문사에 들어와서 자신이 마치 장관이라도 된 착각이 들었다. 날마다 유명인사가 얼굴을 보였다. 장관이 바뀌면 인사차 들린다.
국회의원에 당선되면 당선인사를 하러 온다. 정당 당직인사가 있으면 총장이 찾아온다. 연예인 스타도 안방처럼 드나든다.
안기자에게는 모든 것이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마치 그런 유명인사들과 신분도 지위도 동격인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오는 사람마다 부서를 돌면서 고개숙여 잘부탁한다고 인사를 하니 간덩이가 부을만도 하지…
안기자가 속한 편집부가 어디 야유회라도 가는 날에는 여기저기서 [축 장도]라는 격려금이 날아들기도 했다. 명절이면 제법 두툼한 봉투가 들어왔다. 지금은 달라졌지만 안기자가 신문기자 생활을 갓시작한 초창기때는 그런 분위기가 대세를 이뤘다.
명절에 행여 봉투를 받지 못한 자가 있으면 부장이 챙겨줬다. 심지어 어떤 부장은 명절때나 어디 야유회라도 갈 때 짜게 구는 외근 부서가 있으면 간접적으로 괴롭혀 굴복을 시켰다.
끝내는 부대끼다 못해 뜻에 없는 봉투를 갖다 바쳐야 했다. 안기자는 그런 신문사 풍토에 대해 뭔가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자신도 타락의 물이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안기자는 겉으로는 개혁이니 정의니 사회의 공기니 떠들어대는 신문사가 정작 내부에서는 개혁이 안되고 권위적이고 고리타분한 개혁의 대상이라는 것을 고참기자가 되면서 알게 되었다.
김명수
수정일 2002년9월9이07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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