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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젖어있는 열한 개의 소품] 이야기 하나 (12)
2005/07/11 00:00
입력 조회수 : 687
◇까만색 반부츠-누군가를 대신한 사랑 (12)
살며시 눈을 떠보았습니다. 한 겹 물막이 드리워 가볍게 흔들리고 있는 제 시야 속으로 닿을 듯 가까이 와 있는 당신의 모습이 확대되어 들어왔습니다. 잔잔히 가라앉아 있는 당신의 눈동자 속에는 더 이상 우울함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알 수 없는 열기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그런-남녀가 살갗을 맞대고 있을 때 본능적으로 일어나는-열망이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어쩌면 정반대일지도 모르는 그런 열기였으니까요.
"유..."
저는 그동안 불러오던 대로 이사님이란 호칭을 써야 할지 민석씨라고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머뭇거렸습니다. 그러자 당신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습니다. 마음 편한 미소와 함께 말입니다.
"이사라는 직함과 민석이라는 이름 중 한 가지를 버려야 한다면 나는 미련 없이 직함을 벗어 던지겠습니다. 직함보다는 이름이 훨씬 사랑스럽기 때문이지요."
언제나처럼 당신은 그렇게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뭔가 불편함을 느끼는 듯하면 어느새 앞질러 처리해버리는 그런 자상함으로 말이지요. 저는 눈물이 채 마르지 않은 얼굴로 살며시 미소지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았어요. 그렇게 하지요."
이렇게 대답은 했지만 막상 이름을 부르려니 어색해서 입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당신에게 방금 하려고 했던 말은 입안에서만 맴돌고 있었습니다. '키스 해주세요... 키스 해주세요...' 어쩌면 당신도 이런 제 마음을 읽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두려웠겠지요. 마음 속에 절실한-어쩌면 애절한-사랑을 묻어둔 채 다른 여인과 가까워진다는 사실이 말입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우리는 다시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잠시후 STAY IN MY LIFE가 끝나고 다른 곡이 흘러나오기까지 잠시 공백이 생겨났지만 우리는 춤추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춤추기에 더욱 몰입해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마치 뭔가를 잊기 위해 다른 일에 열중하는 사람들처럼 말이지요. 하지만 왠지 허전하고 어색한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저..."
어색함이 싫어서 제가 먼저 말문을 열었습니다.
"저도 부탁이 한 가지 있어요."
"무슨..."
"좀 더 편한 말투를 쓰시면 안 될까요?"
"이랬습니다, 저랬습니다, 하는 말투가 거북했던 모양이군요."
"조금은..."
사실 이런 문제는 부탁이나,강요보다는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바뀌는 편이 좋다는 것을 저도 모르는 바는 아니었습니다. 어떻게든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어보고 싶었을 뿐이지요.
"알겠소. 그게 편하다면 노력해 보겠소."
백산
수정일 2002년9월2일 10시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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