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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바람의 꽁트] (26) 직업이야기4 / 너, 기자 맞아? 4
2005/07/04 00:00
입력 조회수 : 687
안기자가 야근을 하면서 겪은 에피소드는 수없이 많다. 밤을 새면서 신문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중노동이다.
무엇보다도 안기자가 야근을 하면서 두려워하는 것은 물먹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사를 놓치는 것이다. 낮에 신문을 만들때야 사장을 비롯한 모든 간부들이 정상근무를 하기 때문에 기사를 놓칠일이 거의 없다.
그만큼 챙기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밤에 야근을 할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국장도 사장도 모두 퇴근을 해버리고 오직 야근자만 남는다. 야근을 하는 사람들만이 책임을 지고 신문을 만들 수 밖에 없다. 그날의 야근자는 그런 의미에서 철저한 그날의 전사들이다. 안기자는 처음에 신문을 만들면서 실수를 밥먹듯이 했다.
결혼을 소개하는 난에 부음이라고 내보내 난리가 난적도 있고 대통령을 개견자를 써서 견통령이라고 나간적도 있다. 어떤때는 신문이 인쇄되기 전에 오탈자를 잡아내기도 하지만 끝까지 잡아내지 못하고 신문이 나갈경우도 많다.
그런때를 두고 눈에 콩깎지가 끼었다고 한다. 밤에 집에 도둑맞을려면 기르던 개도 안짖는 다는 말은 신문을 만드는 데에도 적용된다. 실수를 할 때는 아무리 몇번을 확인하고 보아도 잡아내지를 못한다. 유명한 일화가 있다.
신문편집에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전설적인 선배가 있었다. 안기자는 그분의 첫모습을 보고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머리통이 유달리 크고 동글동글한 눈에 총기가 가득 넘쳐보였다. 머리가 뛰어난 수재였다.
알고보니 S대 법대를 나와 신문기자로 들어온 별종이었다. 감성 지성 순발력 등 신문 편집자가 갖추워야 할 모든 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타고난 편집자라고나 할까.
그분의 일화는 신문사내에서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온다. 속독까지 하는 그분은 아무리 원고량이 많은 장문이라도 단숨에 독파한다. 신생신문이 창간되었을 때 초대 편집국장으로 옮겨갔다.
새로운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욕이 넘쳤는지 신문첫판에서 기존의 틀을 완전히 깬 파격을 선보였다. 그때 언론계는 물론 전국의 독자들로부터도 난리가 났다. 세상에 어떻게 전국의 독자를 상대로 하는 권위있는 신문사에서 이럴수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다름아닌 가장 큰 뉴스가 되는 첫면 첫머리를 그냥 시커먼먹물색깔로 글자없이 나간
것이다. 어떻게 이럴수가 있는가. 독자들은 경악을 했다. 새로운 시도다 신선하다 등등 긍정적으로 봐준 극소수의 독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이단아 취급을 했다.
신문지면으로 보여준 그분의 파격은 그후로도 몇번 시도되었지만 결국은 기존의 두터운 고정관념의 장벽에 막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분의 그런 돌출적인 행동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혁명이었던 것이다.
천재는 고독하고 외로운것인가. 그분도 주변에 따르는 이가 많지 않았다. 항상 혼자 튀고 두드러졌기 때문일 것이다. 도저히 범인들이 범접하기 힘들 정도로 출중한 편집실력을 자랑하는 그분은 결국 후배들에게 인격적으로 존경받는 선배는 되지 못했던 것이다.
그분이 후배들에게 실력으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지만 왜 인간적으로 존경받지 못했는지는 그분의 외골수적인 성격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분은 일가지고는 호랑이보다도 더 무섭다. 그리고 자신이 천재인줄을 모르고 다른사람들이 자신의 수준에 따라주지 않는 것을 늘 못마땅해 한다. 처음부터 좁혀질수 없는 실력의 차를 그분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존심이 묵사발이 되도록 따끔한 질타를 당하고 나면 눈물이 쑥빠질 정도로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지고 초라해 질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그런 참담한 패자의 심정을 그분은 헤아리지 못한다. 어떻게 보면 자신의 잘난 맛에 상대방의 주눅든 심정을 몰라주는 것이 그분의 최대 단점이었던 것이다. 그런 그분에게 인간적인 정을 느끼기는 쉽지 않았다.
그렇게 하늘 무서운줄 모르고 천하를 호령할 것 같던 그분도 이제는 현업에서 사라지고 쓸쓸한 퇴출을 당했다. 안기자는 신문기자의 꽃이라는 편집국장까지 지낸 그분의 퇴출을 보면서 자신의 신문기자 생활의 말로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허전했다.
그분이 현직을 떠나면서 한말이 아직도 안기자의 머리속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많은
후배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신문기자는 특히 편집기자는 하고 나면 남는 것이 별로 없는 인생의 소모품이다." 희망적인 말을 듣기를 기대했던 후배들은 그분의 절망적인 말을 듣고 더욱 그분에 대한 존경심이 사라졌다. 어떤 후배들은 그분이 마지막 정을 떼고 떠나려는 것이라면서 인간적인 배신감을 느낀다는 악담까지 했다.
편집기자들은 술자리에 모이면 자조적으로 푸념섞인 넋두리를 하곤한다. 편집은 뼈를 깎는 대패라고. 순간순간 피를 말리고 생명을 갉아먹는 편집을 오래하면 제명에 살지 못한다는 말까지 나온다. 안기자는 그런 말을 들으면서 자신이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이 아닌가 하는 후회가 들기도 한다.
안기자는 야근을 마치고 새벽 4시가 되면 어김없이 후배들을 이끌고 청진동 해장국집을 간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퇴근하면 저절로 발걸음이 그곳을 향한다. 술집에 가자는 말 한마디 안하지만 마치 자석에 끌리듯이 청진동으로 걸어가는 것이다. 새벽을 여는 청진동 사람들. 그곳에 가면 언제나 만원이다. 아니 새벽이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을정도로 시끌벅적이다. 국물이 얼큰한 해장국 한그릇에 밤샘 야근의 피로를 덜어낸다.
안기자는 이슬보다 맑고 투명한 소주를 따라마시며 그날의 하루를 정리하고 집으로 발길을 돌린다. 남들은 하루일과를 힘차게 출발하는 출근길인데 안기자는 아침에 퇴근하는 남자가 되어 지하철에 몸을 싣는다.
이렇게 밤낮이 뒤바뀌는 생활 때문에 안기자는 경찰서에 불려간 적이 있었다. 옆집 주민이 거동이 수상한 사람이라면서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저녁에 집을 나가 새벽에 집에 들어오는 이상한 남자. 하루는 하루종일 집에서 빈둥거리는 실업자 같은 남자. 낮에는 한나절 잠이나 자고 오후 늦게 어슬렁거리면서 집밖을 배회하는 안기자가 간첩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안기자는 자신이 간첩으로 오해받았다는 생각을 하니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김명수
2002년8월23일
[
피플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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