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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이야기 2. (향수....)
2005/06/22 00:00
입력 조회수 : 690
평상마루 위에 보라색 등꽃이 피어있고 그 위로 포도송이가 영글어져 매달려있는
친정집 마당은 여름이면 도심지의 어느 공원보다도 예쁘고 시원한 공간이었다.
유난히 나무와 꽃들을 좋아하시는 친정부모님은 집 마당에 가지와 호박 오이,
부추, 고추, 상치, 그리고 웅덩이를 파서 시골에선 보기 드물게 작은 연못을 만들어
물고기를 키웠고 그 작은 연못옆엔 항상 꽃들이 만개했다.
백합과 다알리아 붓꽃, 유자꽃,수세미꽃,박꽃, 장미, 매화, 채송화등 친구들이
놀러오면 꽃집 같다고 했을 만큼 작은 농장을 옮겨다놓은 것같이 꽃과 야채들의 속삭이는 소리로 가득했던 친정집..
그곳에서 그들과 함께 자라던 육남매나 되는 형제들은 이젠 새로운 둥지를 찾아
모두 빠져 나와버리고 두분만 덩그러니 큰집에 계시지만 아직도 우리와 함께 자라던
그꽃과 나무들은 부모님 곁을 떠나지 않고 터줏대감처럼 부모님과 함께 여전히
평상마루를 지키고 있다.
가끔 시내에 사는 큰오빠가 시골집을 정리하고 시내로 나오시라고 해도 정이 들어서
인지 부모님은 우리가 자랐던 그 시골집을 쉽게 떠나지 못하신다.
몇해전엔 손재주가 좋으신 아버지가 평상마루위에 파라솔을 설치해서 손자들이 가면
파라솔 아래서 물놀이를 할수 있게 만들었고 형제들이 다 모이는 휴가때가 되면
그 파라솔 아래서 한땐 아버지와 함께 호수로 꽃밭에 물을 주며 물장난을 하던
아이들이 이젠 그시절의 아버지 만큼 나이가 들어 삼겹살을 구워 소주를 마시며
어린시절로 되돌아가곤한다.
벌써 30년이 지나 이젠 나이살이붙어 허리둘레가 제법 굵어진 등나무와 포도나무는 아직도 한여름을 시원하게 그늘을 만들어주고 가을이면 제법 많은량의 포도도 먹을수
있게 하니 자연은 언제나 그대로인데 세월은 야속하게 사람만 변하게 만드는 것 같다.
아직도 휴가때 형제들이 모두모이는 밤이면 친정엄마는 잠을 잘 주무시지 않는다.
조금이라도 자식들과 많은 대화를 하고 조금이라도 더 웃기게 만들어주고 싶어
평상마루에 앉아 작은 시골동네에서 일어난 이야기를 해주느라
날이 새는 줄도 모르고 입이 쉴새도 없이 먹을 것을 가져다주며 앉았다가 우리들이
하나, 둘 꿈속을 헤매일 쯤에 들어가 몇시간 주무시곤 새벽 네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낯익은 도마소리로 우릴 깨우신다.
그런 친정집....
이젠 우리집이란 말이 어색하고 대신 친정집이란 새로운 이름으로 바껴버린
그집과 그시절의 여름밤이 많이 그립다.
내가 좋아하던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었고 내가 편안하게 몸을누이고 밤하늘에 별을 세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면 허전하고 무서워 엎드려 울던곳...
민애니씨가 쓴 만화에 빠져 초등학교 6년간을 매일 만화방구석에 쭈구리고 앉았다
불려와 혼이나도 나를 밀쳐내지않고 편히쉬게 해주었던 그 평상마루...
나이가 들면 점점 옛것이 그리워진다고 하더니 요즘은 그시절이 정말 많이 그립다.
성냥갑같이 빽빽한 아파트생활이 틀에 박힌 요즘사람들이 하나, 둘 전원으로
돌아가 텃밭을 일구고 농사를 지으며 노후를 보내려하는것도 아마 향수에 대한
그리움에서 일거 같다.
밤이되면 민소매옷을 입고 앉아 책을 보고 반딧불을 잡아 호박꽃에 넣어
꽃초롱을 만들던 그 여름밤....
이젠 내가 낳은 딸애가 유년시절의 나만큼 훌쩍 커버렸지만 망초꽃을 꺽어
소꼽장난을 하고 제비꽃과 토끼풀을 엮어 꽃반지를 만들어끼던 어린시절..
늘 마음속창고에만 쌓여있는 빚바랜 기억들을 들추어 볼때면 어느새 난 갈래머리를
곱게 땋아내린 예닐곱살의 계집아이로 돌아가 있다.
자운영
2002년 08월 05일
[
피플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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