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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정신 칼럼 제23호] 고양이
2005/06/21 00:00
입력 조회수 : 666
야채장수들은 모두들 잠든 시간에 농수산물시장에서 구입한 각종야채와 생선들을 가지고 동네 골목골목을 다니며 확성기로 주부들의 아침잠을 깨운다
그리고 그들이 싣고 온 콩나물이며 두부며 고등어등은 주부들의 손에 조리되어 사랑스런 가족들의 식탁에 올라간다
내가 그 야채장수를 하던 시절이 있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돈을 주고 사오는 것도 아니고 돈을 받고 판매 하는 것도 아니었다
주부들을 상대 하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20대 남성들을 상대 하는 것이다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사단에서 부식을 수령하여 중부전선의 철책을 지키고 있는 전우들에게 정량을 공급하는 일이었다
내가 이 일을 하고 싶어 하게 하게 된 것도 아니었다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명령이었기 때문이다
불과 몇개월 전 까지만해도 명령도 없었고 복종도 없었다
있다면 자유와 방탕만이 존재 했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자고 싶으면 자고 놀고 싶으면 놀고 학교가고 싶으면 학교가는
무질서의 극치를 맛보고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고 일어나라면 일어나고 일하라면 일해야 하는
명령과 복종과 질서만이 존재하는 사회였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자유와 방탕속에는 보이지 않는 구속이 있었고
명령과 복종 그리고 질서속에는 보이지 않는 자유가 있었다
풍요속에는 보이지 않는 빈곤이 있었고
빈곤속에는 보이지 않는 풍요가 있었으니
이곳 생활이 그랬고 군대생활이 그랬고 나의 임무가 그랬다
김일병 아니 엄밀히 말하면 이등병이었다
그러나 곧 일등병으로 진급하긴 할거다
하지만 임무상 직책상 작대기 하나를 더 붙이고 움직였다
아침시간이 끝나면 운전병과 선임하사 그리고 김일병은 1개조 특공대가 되어 함께 움직인다
사단 부식창고로 가서 부식을 수령한다
철책을 지키고 있는 전우들에게 맛있는 먹거리를 공급해 주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김일병이 속한 대대의 예하부대엔 각 중대가 있고 그아래 또 각 소대가 있었다
그들이 중부전선의 철책을 지키고 있었다
낮에는 낮의 색깔로 밤에는 밤의 색깔로 화장을 하고 북의 도발을 경계한다
여름엔 더위와 싸워야 하고 겨울엔 추위와 싸워야 했다
외로움과의 싸움이고 자기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적들이 많은 전우들이었다
그들이 먹을 음식이다
닭고기도 싣고 이면수도 실었다 파와 무우도 실었다
국방색 냉장차이다
부식차는 주로 비포장 군사 도로를 달린다
철책을 향하여 달리고 또 철책을 따라 달린다
운전병과 선임하사 중간에 탄 김일병은 한참 곱셈을 한다
각 소대별 인원과 그날의 정량을 곱한다 그러면 그 소대에 내려 놓을 양이 나온다
계산이 끝난 김일병의 시선이 앞을 향한다
꿩 새끼들이 도로 앞을 막는다
병아리처럼 떼를 지어 도로를 점령하고 있다가 우르르 도망친다
이번에는 산토끼가 길에 나와 있다
옆으로 피하면 될 것을 차량 앞으로 죽어라 도망간다
한참을 쫓고 쫓기다 옆의 숲속으로 사라진다
저 앞 비무장 지대의 갈대 숲은 넓은 평야이다
노루들이 뛰어 놀고 새들이 난다
3.8선 저쪽에도 노루들이 있고 새들이 날고 있다
3.8선 저쪽에도 우리와 똑같이 생긴 군인이 있고 우리와 똑같은 국민들이 있다
그들도 코리아인이고 우리도 코리아인이다
3.8선만 없었다면 우리의 친구들이었다
3.8선만 없었다면 이곳에서 철책을 사이에 두고 총을 겨누고 있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명령이었다
우리는 명령을 받고 모두 이곳에 있었다
우리들의 차량은 도착하는 곳마다 환영을 받았고
우리를 맞이하는 전우들 모두도 건강하고 씩씩했다
가는 곳마다 아름다운 경치가 있었고 전우들의 우정이 있었다
어느 날이었다
이 날도 3인조 특공대는 부식을 수령하기 위하여 사단 부식창고로 갔다
그 날은 부식 만이 아니었다
고양이 세 마리를 실어야 했다
최전방 우리 소대원들이 먹어야 할 식량을 쥐새끼들한테 약탈 당하곤 했기에
식량 창고를 지킬 경계병이 필요했던 것이다
전우는 철책을 지켜야 했고 고양이는 전우들의 식량을 지켜야 했다
그러니까 고양이도 우리들의 전우였다
우리는 철책 앞에서 경계근무를 하는 전우들의 먹거리를 공급하기 위해서
쥐새끼 경계병은 그 먹거리를 쥐새끼들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함께 차를 탔다
우리 3명은 앞에 탔고 경계병 3명은 뒤에 탔다
하지만 경계병은 고양이였기에 묶여야 했다
부식차 뒤 좌측에 끈을 다소 여유있게 하여 묶어 두었다
부식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어서다
차량은 전방을 향하여 전방으로 나갔다
아무리 특과병도 군대는 군대였다
춥고 배고프고 졸린 곳이 군대였다
나른한 봄 유난히 졸린 봄날이었다
뒤에 탄 고양이들이 먼저 졸았을 것이다
이어서 선임하사가 고개를 떨구고 끄덕거렸다
곱셈을 마친 김일병이 졸았다 아니 혼이 나갔다
다음은 운전병 차례였다 운전병도 어느새 혼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가면 낭떠러지가 나온다
조금만 더 가면 절벽이 나온다
하지만 차량은 너무도 지쳤는지 그 곳에 미쳐 도달하기 전에 곤두박질 친다
차량이 하체를 내보이며 옆으로 꼴사납게 드러누워 버린 것이다
쿵하는 소리에 세 사람의 나갔던 혼이 돌아왔다
운전수는 운전대를 잡고 턱걸이를 하고 있었고 선임하사는 땅바닥에 김일병은 선임하사 위에 포개져 있었다
헬기가 불시착한 듯 했다
운전수가 기어 올라왔다 다음엔 김일병이 기어올랐고 약간의 어깨부상을 입은 선임하사가 기어 올라왔다
본부에 연락이 취해졌고
차량이 발을 땅바닥에 디뎠다 드러난 하체를 감추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태가 수습되고 냉장차의 뒷문이 열렸다
앗! 이럴수가
경계병 3명이 목을 메고 숨져 있었다
차량이 옆으로 누우면서 끈의 길이가 모자랐던 것이다
너무 비약이 심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때 김일병에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웬지 고양이 세 마리가 세 사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희생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낭떠러지에서 굴렀으면 고양이는 살았을지도 모른다 고양이의 생명은 높이가 문제가 아니라 끈의 길이가 문제였으니까
웬지 고양이 세 마리를 태우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경계병의 목숨이 희생되지 않았더라면
조금 더 가다가 낭떠러지 위에서 굴렀을 것이고 우리 세 사람의 목숨이 희생되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웬지 고양이 세 마리의 희생이 우리 세 사람의 생명을 대신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 김일병은 주특기를 찾아 부식장사 대신 모기약과 방독면 그리고 화학탄 장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 김일병의 국방부 시계는 돌아갔다 쉬지 않고 돌았고 계속해서 돌았다
세상은 참고 견디는 자의 것이라고 했던가
참고 견디니 김일병은 상병이 되고 병장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향 앞으로~ 가! "라는 전역명령이 떨어졌다
김일병은 그 후에도 야채장수나 검은 고양이를 보면 그 때 일을 생각해 내곤 한다
김동주
2002년8월10일 09시59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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