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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젖어있는 열한 개의 소품] 이야기 하나 (3)
2005/04/26 00:00
입력 조회수 : 647
◇까만색 반부츠-누군가를 대신한 사랑 (3)
아! 사장님께서 말씀하시던 그 분이시군요? 먼저 알아 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제가 뒤늦게 인사하며 명함을 건네자 그의 얼굴에 계면쩍은 미소가 감돌았습니다.
잘 나가는 선배님 덕에 얻은 자리입니다. 시쳇말로 낙하산을 잘 탄 것이지요. 모자라는 점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봐주십시오.
겸손이 지나치시네요. 벤처기업의 선두주자였던 분이라고 사장님께 말씀 들었는걸요.
사장님께서 필요 이상의 말을 하신 모양입니다. 자그마한 회사 하나 말아먹은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말끝을 흐리는 그의 눈빛이 왠지 우울해 보였습니다. 아니, 깊숙이 숨겨져 있던 감정의 그늘이 드러나고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습니다. 괜한 말을 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어 얼른 화제를 돌렸습니다.
넥타이가 아주 잘 어울리시네요.
상투적인 말이었음에도 워낙 특별한 모양의 넥타이였기에 어색한 느낌은 들지 않았습니다.
가냘픈 장미 한 줄기가 수놓아져 있는 연두색 실크 넥타이였지요. 가늘고 긴 까만 색 줄기에 채 피지 못한 작은 꽃망울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잎새 하나와 함께 매달려있는 모습이 애처로워 보였습니다.
지난해 여름에 아내가 결혼 십 주년 선물로 만들어 준겁니다.
솜씨가 뛰어나신 분이네요. 저는 엄두도 못 낼 일인데... 보기 드물게 아름다운 넥타이에요.
그렇긴 한데 가끔 가슴이 아픈 게 탈입니다. 가시가 자꾸 찔러서 말입니다.
줄기에 비해 가시가 날카로운 걸 보니 그럴 것도 같네요.
저는 단순한 농담인 줄 알고 이렇게 받아치며 가볍게 웃어주었습니다. 하지만 며칠 후에 사장님으로부터 그 넥타이에 대한 내력을 들었을 때 저는 망치로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느낌이었습니다.
혹시라도 그 친구의 넥타이는 화제로 삼지 말아요, 이 팀장. 그 넥타이는 지난해 뇌종양으로 죽은 아내가 남긴 유품이거든. 그래서 그 친구의 아내 사랑이 워낙 각별했다는 걸 아는 사람들은 모두 모른 척 하고 지내고 있지.
스스로의 경솔함을 원망하고 또 원망해야 했습니다. 그것이 그의 아내가 남긴 마지막 선물이었을 줄 제가 어찌 알았겠습니까? 그 넥타이 속에는 정해진 시한을 거꾸로 헤아려 가며 한 땀씩 수를 놓고 있는 아내의 애절한 모습이 있었고, 어렵게 일군 회사가 기울어져 사랑하는 아내를 요양조차 시키지 못하는 사내의 절망 어린 눈물이 있었음을 저는 정말로 알지 못했습니다. 장미의 가시가 왜 그리 크게 느껴졌으며, 그의 웃음이 왜 그렇게 허무하게 보였는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바로 당신이었다는 사실은 절대로... 절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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