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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바람의 꽁트] (19) 인생유전 4
2005/04/20 00:00
입력 조회수 : 688
문숙과 시어머니의 갈등의 골은 첫단추를 잘못낀 것처럼 걷잡을수 없이 깊어만
갔다. 세월은 흘러 드디어 딸 해님이도 초등학교에 취학을 했다. 해님이는 엄마아빠의 정을 받아보지도 못하고 쓸쓸한 고아나 다름없는 신세가 되었다.
대근이는 똑똑하지만 자존심강하고 황소처럼 고집센 마누라와 어머니의 갈등에 집에 들어오는것 자체가 싫어 학교수업을 끝내면 할일없이 시내를 배회하거나 친구들과 술을 먹곤 하였다.
아내는 더이상 이런 모습으로 학생들을 가르칠수 없다는 생각에 휴직원을 제출했다. 문숙은 집에 며칠을 틀어박혀 있다보니 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에 견딜수가 없었다. 문숙은 아이를 놔두고 혼자서 무작정 집을 나왔다.
문숙은 남편에게 간단하게 며칠 정처없이 나돌다 돌아올테니 찾을생각 하지 말고 아이 잘 돌보고 있으라는 메모만 남겼다.
그러나 막상 집을 나선 문숙은 마땅히 갈곳이 없었다. 친정집에는 죄송스럽고
면목이 없어서 도저히 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무조건 시외버스에 올라탔다. 청주행 버스였다. 청주에서 내려서 갈곳이 없었다. 다방에 들어갔다. 다방에서 커피한잔 마시고 나니 다시 갈곳이 없었다. 학교다닐때 그렇게 똑똑하고 공부잘하고 자신감 넘치던 당찬 여장부가 이렇게 초라하게 전락하다니 자신이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
문숙은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왔다 갔다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날이 어두워졌다. 문숙이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막막했다. 이대로 길거리에서 밤을 새울수는 없었다.
아이가 걱정되기도 했으나 집에는 전화를 하지 않기로 단단히 결심을 했다. 마음속으로 약해지지 말자고 몇번이고 다짐을 했다. 그러나 모성애의 본능은 자기도 모르게 전화박스쪽으로 자꾸만 시선을 돌리게 했다. 이를 악물고 꾹꾹 참으며 길을 걸었다. 자신을 비추는 가로등 불빛에 그림자가 길게 드러누워 걸음을 옮길때마다 함께 뒤따라 온다.
문숙은 여관에 들어갔다. 주인을 따라 올라갔다. 방에 들어갔다. 다리가 아프고
몸도 마음도 피곤하고 지쳐서 그냥 주저앉았다. 내가 왜 이럴까. 도대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엇기에 이렇게 생고생을 해야 한단 말인가.
문숙이는 밖에 나갈 기운도 없었다. 배가 고파 우선 음식점에 저녁식사를 배달
시켰다. 백반이 도착했다. 걸신들린것처럼 식사를 했다. 반찬하나 남김없이 싹 치워버렸다. 문숙은 자신이 비운 그릇을 내려다 보면서 시어머니에 대한 불만을 과식으로 해소한다는 옛말이 근거가 있기는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숙은 밥을 다먹고 나서 화장실에 들어가 몸을 씻고 자리에 누웠다.등따습고
배부르니 자신도 모르게 스르르 잠이 들었다. 문숙이가 집을 나온뒤에 남편이 돌아왔다. 집에 와보니 아이가 혼자 울고 있었다.대근이는 아이가 잠깐 볼일을 보러 외출을
했을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바닥에 있는 종이쪽지가 대근이의 눈에 들어왔다. 대근이는 그것을 들어서 펴보았다. 문숙이가 남긴 메모였다. 그제서야 대근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대근이는 당황했다.
순간적으로 닥쳐온 이 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좋을지 엄두가 나지 않았다. 대근이는 우선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가 받았다. "생전에 전화한통없던 네가 웬일이니" 어머니가 물었다.
"어머니 빨리 와주셔야겠어요. 지금 당장 내려와주세요" "무슨 전쟁났냐. 무슨
일인지 알고나 가자" 어머니는 숨넘어가는 듯한 아들의 다급한 소리에 틀림없이 무슨 사단이 났다는 불길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급해요. 오시면 알게 될테니까 어서 빨리오세요. 그럼 전화끊겠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전화를 받고 불안해서 자리에 앉아있을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서둘러 집을 나와 버스를 탔다. 아들의 집에 도착했다. 대근이는 어머니가 오시자 한숨 덜었다는 표정을 짓는다. 대근이는 어머니에게 마누라가 집을 나갔다는 얘기를 사실대로 해주고 메모쪽지도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독한년. 제자식 떼어놓고 나가다니 천하에 몹쓸것
같으니라구. 잘됐다. 이참에 단단히 버릇을 고쳐놓아야겠다" 한참만에 입을 연 어머니는 며느리에 대한 악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만해요 어머니 그사람도 마음이 편하기야 하겠어요. 얼마나 답답했으면 집을
나갈 생각까지 했겠어요" "그래도 조강지처라고 두둔하는거냐. 참 잘배워쳐먹었구나"
어머니는 소위 명문대학까지 나온 자식이 어쩌다 저꼴이 되었는지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제발로 잘못했다고 살살 빌면서 들어오기 전에는 절대로 이집에 발들여놓게 하지 말거라"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했다. 대근이는 뭐라고 설명하지 못할정도로 마음이
허전했다. 마누라가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대근이는 그러다가 마누라가 걱정이 되었다.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대근이는 처갓집에 전화를 해보았다. 마누라가 와있나 직접 물어볼수가 없어서 이리 저리 돌려서 말을 해보았다. 장모님이 하시는 말씀으로 봐서 처가짓에는 가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문숙이가 좀 부족한점이 많더라도 자네가 잘 다독거리고 챙겨주게나" 대근이는
장모님의 걱정스런 듯한 말을 뒤로 하고 전화를 끊었다. 도대체 마누라가 어디로 갔단 말인가. 대근이는 마누라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나 은근히 겁이 났다.
대근이는전화번호가 적힌 수첩을 보고 마누라가 갔을 만한 곳을 여기 저기 전화해보았다. 그러나 마누라의 소재를 찾을길이 없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걱정이 태산같았다. 아무리 미운 며느리지만 막상 집을 나가 버린다면 어린 아이는 어떻게 키운단 말인가. 그날은 그렇게 보내고 다음날이 밝았다. 근이는 혹시라도 마누라로부터 전화가 오면 즉시 자신에게 연락을 해달라고 몇번이고 어머니에게 신신당부를 해놓고 학교에 갔다.
할머니는 해님이를 학교에 보내주고 다시 집에 돌아와서 며느리의 전화를 기다렸다.
그러나 집을 나간 며느리의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자신이 며느리에게 너무 심하게 한것은 아닌가 하는 자격지심이 들었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집나간 며느리를 용서할수 없는 일이다.
문숙이는 날이 밝자 마자 여관을 나왔다. 또 갈곳이 없었다. 무조건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왔다갔다 했다. 그래도 아직 점심때도 되지 않았다. 문숙이는 식당에 들어가서 식사를 하고 다시 거리로 나왔다.
또하루가 지나고 저녁노을이 지기 시작한다. 문숙이는 다시 여관을 찾았다. 친정어머니에게 전화를 해본다. 어머니가 반갑게 받는다. 어머니는 당신의 딸이 집을 나온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하고 있다. 문숙이는 전화를 끊었다.
"엄마 죄송해요" 문숙이는 혼자말로 중얼거리며 눈물을 흘렸다. 잠이 오지 않았다. 밤늦게까지 이런저런 고민하다가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또하루 날이 밝고 아침이 되고 이리저리 배회를 하다보니 저녁이 되었다. 사흘째
여관에서 밤을 새웠다. 거울을 보니 얼굴이 반쪽이 된것처럼 핼쓱해졌다. 자신이 아닌 전혀 다른 여자가 거울속에 서있는 것 같았다. 문숙이는 가방을 챙겨 여관을 나와 시외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시어머니 얼굴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한번 나갔으면 무슨 염치로 집에 다시 돌아와" 시어머니가 냉정하게 쏘아부친다. 문숙은 아무대꾸도 하지 않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면서 엄마의 눈치를 살핀다.
시어머니는 며느리가 오자 다시 시댁으로 돌아가셨다. 문숙이는 자신이 다시
들어오기는 했지만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까마득 했다. 문숙은 해님이에게 돈을 집어주고 나가서 뭐 먹고 싶은거 사먹으라고 한다. 해님이가 얼굴을 활짝 피면서 좋아서 뛰어나간다.
조금 있으니 남편이 들어온다. 남편이 걱정 많이 했는데 아무사고 없이 무사히
돌아와 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면서 아내의 표정을 살핀다. 아내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자리에 누워있다. 문숙은 사흘간의 이유없는 외출사건이 있은 후에도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하기만 했다. 문숙은 이제 불면증에 우울증까지 생겼다.
문숙은 이대로는 숨이막혀서 도저히 살수 없다고 생각하고 다시 남편에게 편지를 썼다. "변덕이 죽끓듯 하는 당신의 어머니 비우 맞추면서는 도저히 살수 없어서 집을 나가니 해님이 잘키우고 잘먹고 잘살기 바란다" 문숙은 자신이 남긴 메모를 방바닥에 던져놓고 집을 나왔다. 이제는 이집과는 완전히 인연을 끊겠다는 굳은 각오를 하고 친정으로 갔다.
친정어머니가 반갑게 뛰어나온다. 해님이가 없는 것을 보고 어머니의 표정이 확
달라진다. 어머니는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려다가 입을 다물어 버린다.
문숙이는 방에 들어가 아무말도 없이 누워버린다. 어머니가 들어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본다. 문숙이는 눈물을 흘리면서 집을 나왔다고 사실대로 얘기한다.
"아이는 어쩌구"어머니가 묻는다. 아이는 남편이 키우기로 했다고 둘러댄다. "이제 남편한테 소박을 맞았으니 챙피해서 어떻게산다냐" 어머니는 땅이 꺼질듯 한숨을 쉬지만 딸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겁이나 더이상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아버님은 가많이 지켜보고만 있다.
아버지가 부른다. "기왕지사 이렇게 된일 팔자가 그러려니 하고 잊어버리거라.
그리고 새출발해라. 그것이 너의 팔자라면 어찌하겠나" 문숙은 아버지의 담담한 말을 듣고 눈물이 쏟아졌다. 문숙은 안다. 아버지의 속마음을. 당신의 딸자식이 마음상할까봐 속으로 끙끙 앓고 계신것이다.
이렇게 두사람의 결혼생활은 가면 갈수록 꼬여만 갔다. 머리좋고 똑똑하고 천재소리 듣던 두 남녀가 결혼을 하였으면 보통사람들보다 훨씬 더 행복하게 잘살것 같았는데 사회생활은 학교와는 또 달랐다.
문숙은 학교에서 우등생이 사회에서 열등생이 되고 학교에서 열등생은 사회에서 우등생이 될수 있다는 고등학교 3학년때 담임선생님의 말을 떠올리며 자신의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기로 굳게 마음을 먹는다. 세상은 학교에서 매겨지는 성적순이 아니었던 것이다.
김명수
[
피플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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