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463) 충효예정신으로 세계평화실천운동 펼치는 김철운 한국물가협회 회장 (2)
물가협회 김철운 회장은 2000년 2월26~3월4일까지 북한에 다녀왔다. 남북노인돕기와 민족화해협력 목적으로 북한 민화협과 회담하고 돌아왔지만 사실은 전쟁을 막으려고 갔다.
“1999년 10월 새벽기도 하니까 자꾸 눈물만 나오고 기도가 막혀요. 2000년 정월 새벽 기도 중에 그 해 10월16일 전쟁난다는 암시를 줘요. 아차 싶어서 전쟁 막으러 북한 간다고 마음먹으니까 한민족 선교회에 끼어서 가게 되더라고…”
한민족 통일 선교회 방북단에 감리교에서 같이 가는 조건으로 1400만원 내라고 해서 OK했다. 대신 남북화회협력및 남북 노인돕기사업 회담은 별도로 하겠다고 했다.
북경서 2월26일 오전 11시30분 고려항공을 탑승하기로 되었으나 비행기 고장으로 7시간이나 출발이 지연되었다. 오후 6시30분 평양행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옆자리 한 칸 빈자리 옆에 여성이 앉아 있어서 명함교환을 하고 보니 윤이상 작곡가의 딸이었다.
북한에 왜 가냐고 묻는 윤여사의 질문에 남북 노인돕기․민족화해협력 하러 간다고 했다. 그랬더니 지금 평양에 당배배급이 떨어져서 야단이니 담배 서너 보루만 사가지고 가서 이틀에 한 갑씩만 주면 올 때까지 대접을 잘 받고 올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윤 여사는 남쪽에서 회담을 하러 북에 오는 분들이 회담시 반공법 문제로 김일성장군 김정일 장군이라는 표현을 못해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 못하게 말을 하고 간다며 그저 장군이라고 표현하면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장군이리고 말하면 반공법에 걸리지 않고도 김일성장군 이야기인지 김정일위원장 야야기인지 모두 알아듣는다는 윤 여사의 조언을 들었으니 우리가 평양에 가는 길을 하나님이 인도하심을 더욱 확신할 수가 있었다.
“평양에 도착하여 외인백화점에 들렀을 때 담배 4보루 몽땅 사 가지고 가서 그다음 날 내놓으니까 좋아서 어쩔 줄 몰라요. 덕분에 회담을 잘 이끌어 갈수 있었습니다.”
북한에 들어가 엘리베이터 타고 주체사상탑에 올라갔을 때 꼭대기에서 갑자기 전기가 나가 15분간 일행 6명이 갇혀 있었다.
순간 백두산 3/4하고 압록강 수풍댐과 신의주가 한국전쟁 때 모택동이 전쟁 참여조건으로 김일성이 중국에 넘겨줬다는 메시지를 영감으로 받았다. 민화협과 그날 저녁에 회담하면서 영감으로 받은 메시지를 확인했다.
“‘내가 죽는 줄 알았다. 주체사상탑 올라갔는데 갑자기 왜 정전이냐? 이게 다 625전쟁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백두산 3/4하고 수풍댐과 신의주를 김일성 장군이 중국에 넘겨줬기 때문에 생긴 일 아니냐?’ 그러니까 다 끄덕끄덕해요. 나도 그 사실을 그때 처음 알았어요.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몰랐던 사실이야.”
기도 중에 영감으로 받은 전쟁을 막아야겠다는 급한 마음으로 막상 북한에 들어가 보니 상황이 심각했다.
“이판사판 다 굶어 죽게 된 처지에 10월 되면 벼 수확하니까 북에서 쳐내려오면 다 차지할 수 있지… 그렇게 해서 전쟁 막고 남북 정상회담 성사시켰지… 북한 가서 보니까 그 쪽에서 흡수통일을 걱정하더라고… 그래서 내가 ‘민주화 시켜라’ 그랬지. 통일 돼야죠.”
김철운 회장은 한반도가 세계평화중심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핵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 4대 강국이 의견을 조율해서 만들어가야 하는데 정치인들이 방법을 몰라서 그러는지 지금까지도 남북 화해가 안 되니 안타까울 뿐이라며 속내를 털어놓는다.
또한 김 회장은 농산물만은 자급자족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식량의 무기화 될 날이 머지않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가 20년 전부터 강조해온 말이다.
“세계가 사막화돼가고 있어요. 흙비, 산성비 내리고 마구잡이 개발로 농토가 갈수록 줄어요. 그럼 식량을 구할 수가 없는 시대가 와요. 식량이 무기화될 수밖에 없지. 우리같이 농토가 부족한 나라는 살기 어려워져. 그런 면에서 대책이 시급해요.”
그는 지금부터라도 농산물을 자급자족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고 농토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면서 그때 그때 환경 변화에 따라 농산물 유통을 효과적으로 하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한다.
“저온 냉장시설해서 과다생산 때는 저장으로 출하조절해서 가격 안정시키고 농민들의 피해를 막아야 하는데 그걸 왜 못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김철운 회장은 물가협회를 창립히여 창립이념으로 인화단결 성실봉사 공신제일 공정무사 조시정확으로 운영하면서 ‘인사는 공정하게 하되 능력 기준으로 인사를 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 국가예산지원이나 기업의 지원을 배제하고 독립적 운영자금으로 공신력을 확보해야 한다는 원칙을 지켜오고 있다고 말한다.
김철운 개인은 유한하나 물가협회는 영원해야 하기 때문에 주인의식이 확고한 후계자에게 이양함으로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확신한다.
충효예실천운동본부 창립하고 총재로도 활동하고 있는 그는 기도 중에 주신 인간성회복을 시켜야 자연도 회복된다는 말씀을 받고 충효예실천덕목으로 나라사랑, 부모사랑, 이웃사랑, 자연사랑으로 삼고 충효예실천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그는 또 충효예천실천덕목인 세계사랑 부모사랑 이웃사랑 자연사랑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평화실천운동본부를 설립했다. 세계평화실천운동본부가 지금까지 살아온 그를 총결산하는 일이라며 그는 또 한 번의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물가협회도 세계평화를 위해서 한 일이라는 걸 이제 알았어요. 물가협회를 했기 때문에 한국데이터베이스산업협회와 충효예실천운동본부를 창립 했고 그걸 바탕으로 세계평화실천운동도 하고 있어요. 물가협회를 통해서 무소유를 배웠으니까.”
그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전부를 쏟아 세계평화실천운동본부를 위해서 살겠다고 다짐한다. 나이 70이 넘었으니 이제는 세계평화고 가정평화고 모두 손 떼고 가족과 실컷 놀러 다녀야겠다고 맘먹는 순간 갑자기 허리를 꼼짝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 치신 것이다.
“서울대 병원에 가도 아무런 증상이 없어요. 그날 밤 기도 중에 ‘하나님이 날 혼내나 보다’ 신호가 오더라고요.”
그의 입에서 “하나님 잘못했습니다. 허리를 고쳐주셔야 가정평화, 세계평화를 할 것 아닙니까?”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리고 다음날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 그를 또 고쳐주셨다.
“낯선 사람이 목욕탕 안으로 들어오면서 나를 보고는 대뜸 “어디 편찮으십니까?’ 묻기에 ‘허리가 아파서 꼼짝을 못하겠습니다.’ 했더니 ‘내가 허리 전문입니다.’ 하기에 ‘당신은 누구요?.’하니 ‘강서한의원 김선하 원장’이라며 그리로 오라고 하며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날 10시30에 찾아가 목 양쪽에 침 4방을 놓고 움직여 보라고 하는데 거짓말 같이 나았다.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이름으로 세계평화실천운동하고… 어떻게 할지 방법을 몰라서 또 기도하고. 세계평화테마파크 제목을 받고 장소로 어디가 좋을지 몰라 또 기도하니까 경상도 일월산으로 응답을 주시더라고. 그 지역에 가서 보니 천하의 요지야.”
그는 경상도 영양군과 봉화군 울진군 영덕군에 일월산을 중심으로 세계평화테마파크를 건설하여 우리나라가 세계평화중심국가가 되어야 한다는 21세기 우리 민족의 사명을 완수하는 그날까지 남은 인생을 올인 할 계획이다.
거기에 세계평화대학, 세계민속문화대학, 세계평화실천운동 본부가 세워지면서 1개 군에 50개 나라씩 200개국의 세계 평화촌을 건설하고 각 나라마다 가장 핵심적인 문화를 살려 세계 문화를 모두 볼 수 있도록 할 예정이다.
“경상도 일월산에 세워지는 세계평화테마파크를 중심으로 지구촌 동서남북에 그런 테마파크 4개가 더 생겨야 한다고 봐요. 그것도 우리나라가 중심이 돼야 하죠.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서 세계 평화주를 모집해요. 1달러씩.”
물가협회는 1988년 5월부터 홈페이지(www.kprc.or.kr)를 개발하여 운영해오고 있다. 2000년6월 물가협회가 출자하여 주식회사 KoreaPDS(www.koreapds.com)도 설립하였다. KoreaPDS에서 특허출원하여 개발한 물가예측프로그램(秘價)은 물가협회 회원들의 국제경쟁력을 높이고 효율적인 경제활동과 물가안정에 도움을 줄 뿐만 아니라 물가협회 발전에도 크게 기여하였다.
KoreaPDS에서 국재 원자재 예측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국내 대기업 등 100여개 회사가 KoreaPDS에서 만든 프로그램을 쓰고 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가 세계정보산업의 중심국가가 돼요. 50개 국가가 동일한 금액으로 출자를 하면 대표회사가 있어야 하잖아요. 우리 KoreaPDS가 주축이 돼서 데이터뱅크를 운영하게 되며 현재 68개 국어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번역시스템으로 번역 유통되는 정보가 어마 어마해요.”
예를 들어 세계경제나 미국 경제를 컴퓨터로 치는 순간 미국 경제가 그라프로 뜬다. 귤을 치면 곧바로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귤의 상품 정보가 뜬다. 그럼 자기가 필요한 상품을 골라서 실시간으로 구매할 수 있다.
세계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운영하는 대표회사가 우리나라에 있으면 그 자체로 우리나라의 공신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셈이 된다. 따라서 정보산업중심국가가 되는 것이며 세계평화중심국가를 이룩하게 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하고 있다.
김철운 회장은 우리나라가 정보산업의 중심국가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한다. 그 조건은 우리 민족의 특성이 말하여 주고 있다. 삼한사온이 뚜렷한 지역에 사는 사람은 손재주와 색 분별력이 뛰어나고, 판단력이 빠르며 적극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리적 장점도 많아 세계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고 삼면이 바다이며 대륙과도 접하고 있다. 남북이 통일되면 5대양6대주로 탁 트인 나라가 되어 세계물류중심국가가 될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가지고 있다.
세계 200여 국가가 가지고 있는 정보와 인간이 필요로 하는 모든 상품을 판매하고 운송을 담당하는 종합물류정보 데이터뱅크를 운영할 수 있는 칼자루를 우리가 쥐고 있는 셈이다.
김철운 회장은 물가협회를 쉬는 동안에도 많은 일을 했다. 운전면허를 취득하고, 컴퓨터를 배웠다. 충효예실천운동본부를 사단법인으로 세우고, 물가협회 상임고문으로 있으면서 물가협회 홈페이지를 구축하여 협회 수입을 끌어올렸다.
3억6000만원에 수주한 용역사업을 포기하고자 함을 알고 이를 만류함으로서 1억6000만원의 수입증대를 가져오게 했다.
그는 이 모든 것 또한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은혜 덕분이라고 믿는다. 직원들로부터 신뢰성을 얻게 하시어 물가협회장으로 복귀하게 하신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릴 뿐이다.
김철운 회장이 1997년 11월15일 회장직에서 물러나 다시 자리에 오른 2000년 2월23일까지 불과 2년여 사이에 회장이 3명이나 바뀌는 혼란이 거듭되었다. 마침내 대타협을 이루고 2000년 2월23일 물가협회장에 세 번째로 복귀하였다.
타의에 의해 회장직을 물러날 때마다 음해하고 시기하는 세력들의 배신과 모략과 고발로 다시는 복귀할 수 없도록 철저하게 장벽을 쌓았으나 이 장벽을 하나님은 무너뜨렸다.
김철운 회장은 많은 유혹과 압력을 뿌리치고 물가협회를 지켜왔으며 공정성을 유지하여 왔다.
“이제는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통하여 국가경제와 정보산업발전을 이루고자 합니다. 충효예실천운동을 통하여 도덕성 회복과 신용사회를 건설하고 세계평화 실현이 나의 마지막 사명이며 목표임을 확신합니다.”
김철운 회장은 남은여생을 세계평화에 쏟겠다는 각오를 다지며 오늘도 간절한 기도로 길을묻고 길을 찾는다.
그는 자신이 배우고 익힌 컴퓨터로 직접 워드를 쳐서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자서전을 펴내고 저서 ‘충효예와 인격’, ‘충효예윤도’, ‘참사랑실천의길’이 있다.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라는 자서전의 제목만으로도 알 수 있듯이 이 책 속에는 그의 신앙고백이 절절히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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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 김명수기자
www.peoplekorea.co.kr>
2010년 12월08일 21시2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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