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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바람의 수필] (31) 파업전철 막차 지옥철 현장
2006/11/29 00:00
입력 조회수 : 678
나는 평범한 시민이요. 샐러리맨이다. 나는 출퇴근할 때 전철을 이용한다. 출퇴근하면서 시내버스를 타본적이 거의 없다. 복잡한 서울도심을 거치기 때문에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자가용을 몰고 회사에 다닌적은 더더욱 없다. 나는 집이 쌍문동이고 회사는 정동이다.
집에서 걸어나와 쌍문역에서 전철 4호선을 탄다. 동대문운동장에서 5호선으로 갈아타고 서대문역에서 내리거나 아니면 동대문운동장에서 2호선이나 1호선으로 갈아타고 시청역에서 내린다. 시청역에서 내릴때면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돌아 예원학교를 걸어서 지난다. 예원학교 정문을 지나자마자 눈에 들어오는 것은 배꽃이 연상되는 이화여고 후문이다.
이화여고 후문을 지나자마자 창덕여중 정문이 나온다. 길양편에 줄지어 늘어선 은행나무가 그림같이 아름다운 가로공원을 걸어서 지나면 바로 나의 평생직장 평생일터인 낡고 허름한 18층 건물이 보인다. 30년이라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건물은 유리창이 누렇게 바랠정도로 우중충하고 퇴색이 되었다. 요즘 속속들어서는 최신식 인텔리전트 빌딩에 비하면 박물관 취급받기 딱맞는 건물이다.
그러나 나는 이건물을 헐어내고 최신식 건물로 짓는다면 반대하고 싶다. 왜냐고 묻는다면 자신있게 대답할 것이다. 우리문화는 소중한 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낡은 건물은 소리소문도 없이 어느순간에 사라져 버리는 시대다. 요즈음 시골을 가봐도 초가집은 구경하기가 힘들다. 아니 거의 볼수가 없다.
내고향 충청도 칠갑산 두메산골을 가봐도 초가집은 단한채도 없다. 완벽하게 사라져 버린 초가집. 아마 이시대에 초가집을 구경하려면 민속촌에나 가봐야 가능할 것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사라진 초가집을 내고향에서는 다시는 볼수 없게 된것이다. 내가 지금 몸담고 있는 회사 건물도 뜯고 새로 지어야 할정도로 낡고 허름하다.
지금은 회사가 어렵고 IMF시대라 새건물로 짓고 싶어도 돈이 없어서 못짓겠지만 어느순간에 사라져 버릴지 모른다. 이건물도 30년전에 처음 새건물이 완성되었을때는 최첨단의 최신식 18층 빌딩이었다. 아름답고 예술적인 건물로 당시에는 서울의 명물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하나 거들떠보지도 않는 구식 구닥다리 건물로 전락한 것이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년사이에 이렇게 하늘과 땅차이로 변한 것이다.
이렇게 낡고 우중충한 건물 요즈음 서울 도심에서 구경하기 힘들다. 모두 뜯기고 없어졌기 때문이다. 내가 뜯지 말고 있는그대로 보관하고 싶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이 한없이 낡고 썩어 문드러진 건물이 헐리고 나면 영원히 이런 건물이 이땅에 존재하지 않을 것만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건물을 문화재로 보관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말이 안되는 어거지라는 것을 잘알고 있다. 지금까지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회사까지 걸어오면서 생각한 것이다. 여기까지 걸어오는데 머리속은 꽤 많은 생각들이 오고갔지만 실제로 걸리는 시간은 10분이 채안된다. 그러니까 내가 10분도 안되는 시간동안에 내 머리속에는 이렇게 많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시간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한다. 덕수궁 돌담길을 끼고 돌아 10분도 안되는 짧은 순간이 나에게는 하루 24시간중 사색의 여유를 즐기는 유일한 시간이다. 전날 하루동안 있었던 일이며 집에서 마누라와 하루를 지냈던 이야기를 한이불속에서 주고 받았던 생각을 떠올리는 일이며 회사에 가면 무엇을 할까 등등 가지가지 생각들이 10분도 안되는 사이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나에게는 이시간이 간이 어쩌면 하루중 가장 소중한 시간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소중한 덕수궁 돌담길 끼고 돌아 회사에 오는 10분의 사색을 하는 즐거움을 요즘 며칠동안은 잊어버렸다. 머리속이 텅빈체 터덜터덜 걸어온 기억밖에 안난다. 바로 지하철 파업 때문이다.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꾸벅꾸벅 졸기도 하고 신문도 보고 책도 보는 재미마져 잊어버렸다.
아니 사색을 즐기기는 커녕 파행운영되는 전철이 행여 안전사고나 나지 않을까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불안하기만 하다. 오히려 평소에 전철문화를 사랑하고 아끼던 내가 전철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이다. 파업을 하는 요즘 며칠째 받은 스트레스가 활기 넘치던 내자신을 짜증나게 만들었다.
1999년 4월 23일. 오늘도 회사에서 하던 일을 서둘러 끝내고 나왔다. 보통때같으면 밤10쯤 돼야 퇴근할텐데 오늘은 정확하게 오후 9시 15분에 내자리에서 일어났다. 전철이 끊기면 나는 집에 가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평소보다 무려 한시간을 일찍 나온 것이다.
달리다 싶이 빠른 걸음으로 지하철역까지 갔다. 시청역은 막차를 놓칠 것 같아 5호선의 서대문역으로 갔다. 보통때 8분정도 걸리던 거리가 얼마나 빨리 걸었는지 4분도 채 안걸렸다. 전철은 이미 막차가 끊어질락 말락 간당간당했다. 다시 뛰다시피 계단을 내려갔다. 내려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도 마음이 급해서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뛰어내려갔다.
숨돌릴 여유도 없이 뛰어가니 5호선 전동차가 승강장 구내에 진입했다. 승객이 발디딜 틈이 없이 만원이다. 몸을 밀치고 간신이 들어갔다. 이미 전철 객실은 승객들이 바글바글 했다. 몸을 움직일수도 없을 만큼 꽉 들어찬 승객들이 마치 짐짝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대문 운동장에서 내렸다. 다시 부리나케 환승역으로 뛰어갔다.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에서 아까처럼 마음이 급해 계단을 정신없이 뛰어올라갔다. 얼마나 빨리 올라갔던지 숨이 목까지 차올라 헐떡헐떡 거렸다. 4호선 승강장에 도착했다. 시간은 이미 30분이었다. 막차가 끊기는 시간이었다. 승강장 구내는 마지막 전철을 놓치지 않으려는 승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전철 승강장 시작부터 끝까지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다. 인간사슬을 방불케 할정도로 다닥 다닥 붙어있다. 몸을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숨이 막혔다. 드디어 전동차가 진입했다. 전동차가 멈추어 섰다. 전동차 출입문등 투명한 유리창에 승객들이 보였다. 전동차 출입문에 비친 승객들을 보는 순간 내머리가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것처럼 강한 충격을 받았다.
전동차 안에는 도저히 사람이라고 볼수 없을 정도로 사람들이 꽉 들어차 있었다. 전동차 안에 있는 사람들을 보니 마치 쌀자루속에 꽉차게 담겨있는 쌀과 같다는 생각이 갑자기 든다.
타고 있는 승객들 하나하나가 쌀자루속의 가득찬 쌀의 한톨한톨과 같이 보이는 것이다. 전동차를 타려고 출입문 밖에서 애간장을 타면서 기다리는 사람도 이미 발디딜 틈이 없을정도로 승강장을 가득 메웠는데 전동차 안에도 사람들로 가득찬 것이다.
전동차 안에도 전동차 밖에도 도저히 사람이 아닌 무슨 바글바글하는 외계인집단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라면 저렇게 많이 탈수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순간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전동차 문이 열렸다. 전동차 안에 있던 사람들이 구름처럼 밀려나온다. 자신의 힘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거대한 물줄기에 휩쓸려 떠내려가는 것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밀려서 튕겨져 나온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지도 모른다.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치고 비명소리가 터져 나온다. 얼마나 쏟아져 나왔을까. 그러나 미쳐 다 내리기도 전에 전철은 출입문을 닫겠다는 안내의 멘트가 흘러나온다. 안에있던 사람도 밖에 있던 사람도 순식간에 몸을 움직인다. 안에서 내리려는 사람들은 서로 몸을 밀치고 내리려고 아우성이고 밖에 있는 사람들은 마지막 전철이 끊기기 전에 타려고 아우성이다.
서로 서로 제갈길을 가려고 밀치고 떠밀고 하는 모습이 아비규환이다. 치열하게 접전을 벌이는 전쟁터를 방불할 정도다. 세상에 서울사람들이 4호선 마지막 전철에 다 몰려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전철 파업이 빚어낸 동대문운동장역 4호선 당고개행이 끊기기 직전의 전철의 모습이다. 죽어도 타야 되겠다는 의지로 저돌적으로 밀고 들어가는 승객들의 처절한 모습을 보니 인간의 절박한 심정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만 같다.
어쩌면 가장 가슴 밑바닥에서 우러나오는 그느낌 그대로가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오늘의 마지막전철이 끊기기 전에 무슨수를 써서라도 타겠다는데 망설여 질게 무엇이 있겠는가. 적어도 승객들의 머리속에는 오직 하나의 목표가 주어져 있을 뿐이다. 죽어도 마지막 전철을 타야겠다는 단 하나의 목표.
이순간만큼은 다른 생각들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런 외골수적인 생각 때문에 저렇게 짐짝같이 계속 들어오고 나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수많은 사람들이 꽉차서 더 이상 들어갈곳이 없을 것 같은데 계속 해서 꾸역꾸역 승객들이 들어간다. 비명소리와 아우성 소리가 끊이지를 않고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두발로 서있어야 할 인간의 몸이 사람들 때문에 구겨질대로 구겨지고 뒤틀릴 대로 뒤틀려서 제대로 서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 자신의 몸을 자신의 의지대로 균형잡고 서있을수가 없다. 사람들끼리 어깨가 닿고 가슴까지도 서로서로에게 밀착되어서 숨도 제대로 쉬기 힘들다.
몸이 붙어있는 상대방이 숨을 쉴때마다 배가 들락 날락 거리는 것까지도 느낄 정도다. 물밀 듯이 쳐들어오는 승객들을 보면서 참으로 인간이 막다른 골목에 부딪치면 무서울정도로 괴력을 발휘한다는 것을 실감할 수가 있었다.
아직도 다못타고 들어오려는 승객들이 사력을 다하면서 몸을 들이밀고 있는데 전동차 출입문이 닫힌다. 사람들이 있는 힘을 다해 어깨로 팔로 문을 열어보려고 밀어본다. 그러나 출입문은 닫히고 만다. 못탄 사람들의 낙담한 표정이 눈에 들어온다. 전동차가 다시 출발한다. 타지 못한 한 승객이 원통하고 분하다는 표정으로 움직이는 전동차쪽으로 주먹질을 해댄다.
전동차가 한역 한역 멈춰설때마다 내리려는 승객들이 몸을 요리조리 움직이는 바람에 아수라장이 된다. 그야말로 전철안은 이리저리 물결치듯이 사람들이 흔들린다. 내려야 할곳에서 내리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구르는 승객들. 답답하고 숨이 막혀 얼굴을 오만상으로 찌푸린 승객들. 사람들끼리 몸과 몸이 천지사방으로 맞붙은 전철안에서 움직이고 싶어도 움직일수가 없는 여자들은 체념한 듯 흔들리는 사람들의 물결속에 몸을 내맡긴채 차라리 눈을 감고 있다.
이 복잡한 전철안에서 명상에 잠길리는 없고 눈을 감고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내가 내려야 할 쌍문역에서 전동차가 멈춘다. 길고긴 30분의 지옥철 경험. 영원히 잊을수 없는 추억을 만들어놓은 전동차안에서 나는 빠져나왔다. 무사히 목적지까지 타고 왔다는 안도의 한숨이 나도 모르게 새어나온다. 구름같이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이 계단을 올라간다.
전동차가 출발하고도 한참이 지나서야 한꺼번에 무더기로 내린 사람들이 계단을 다 빠져 나간다. 드디어 쌍문역 셔터문이 닫힌다. 시간을 보니 10시가 조금 넘었다. 마지막 전동차가 떠난 쌍문역에 사람들이 여기 저기 아직도 많이 눈에 띈다. 너무 일찍 전철이 떨어졌다는 듯 아쉬운 표정을 짓는 승객들을 보노라니 파업을 하는 사람들이 야속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들이 이렇게 까지 피해를 입는데 파업을 해서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얻어낼수 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솔직히 지금 무엇 때문에 무엇을 요구하며 파업을 하는지 그이유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저 노사가 서로 양보하지 않고 타협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 꼭 열차가 서로 마주보고 달리는 것같이 위험천만하다는 생각이 든다.
시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힌 지하철 파업. 안전사고라도 나면 누가 책임질 것이며 그동안 시민들이 입은 피해는 어쩌란 말인가. 파업하는 직원들과 중재하는 서울시와 서울지하철 공사측에 시민의 한사람으로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마지막시간에 파행적으로 운행하는 파업전철을 꼭 한번이라도 타보라고. 그리고 얼마나 소름이 끼칠정도로 불편하고 숨이 막히는지 피부로 직접 느껴보시라고 .
그렇게 무고한 시민들에게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파업을 해서 무엇을 얼마나 얻어낼것인지 분규가 끝나는 날 시민들에게 꼭 파업의 결과와 성과보고를 해주기를 바란다. 시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전철이 당신들의 파업 때문에 시민을 볼모로 잡는다는 것을 이해할 시민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분명한 명분이 있는 싸움은 열번 백번이라도 해야 한다. 샐러리맨의 한사람인 나도 그런 대의명분이 분명한 싸움이라면 지지할수 있다. 이번 전철 파업도 분명한 명분이 있다면 싸워야 할 것이다. 시민들도 이해할수 있는 분명한 명분이 있다면 말이다.
그렇다면 정말로 사생결단이 날때까지 싸워도 시민들은 이해할 것이다. 그렇지만 어정쩡한 명분을 내건 파업은 당장 때려치우고 백기를 드는 것이 백번 낫다. 적당히 투쟁하는 시늉이나 하다가 적당히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질 때 시민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 파업을 중단한다는 성명이나 내고 슬그머니 노사타결을 한다면 그거야 말로 노조도 사측도 정부도 여론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노조가 그런식으로 타협을 한다면 결국 처음부터 적당한 정도의 실리를 얻으려는 속셈으로 파업을 한셈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노조도 사측도 정부도 얻어낼 것은 쥐꼬리 만큼이요 잃은 것은 남산만한 소탐대실이 될 것이다.
시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면서 까지 파업을 불사한 서울지하철 노조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끝까지 두눈 부릅뜨고 지켜볼것이다.
<피플코리아/김명수
www.p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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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04년 06월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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