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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실버] (22) 광복 이후 줄곧 역사의 중심에 서왔던 강영훈 전총리
2006/08/12 00:00
입력 조회수 : 709
우리 사회에서 강영훈 전 총리(82)만큼 다양하고 폭넓은 이력을 지닌 인물도 드물다. 육사 교장, 대학원장, 주영·로마교황청 대사, 국회의원, 국무총리, 적십자사 총재, 세종재단 이사장 등 정부 요직은 물론 굵직한 단체의 최고책임자 역할을 두루 두루 맡아왔다.
또한 그는 성품이 강직하고 올곧은 삶을 살아온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 이미지가 깨끗하고 청렴결백한 지도자상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목하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몇 년 전 현충일에 국립묘지를 찾은 한 참배객의 눈에도 그는 역시 달랐다. 광복 이후 줄곧 역사의 중심에 서왔던 원로 지도자임에도 불구하고 단 한명의 수행원도 없이 혼자 현충원을 찾아와 조용히 참배하고 소리없이 사라진 것이다.
엄숙해야 할 국립묘지에서 자신을 과시라도 하기 위한 참배인양 수행원을 줄줄이 사탕처럼 꿰차고 요란스럽게 나타나는 여느 지도자들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강 전 총리는 머리도 꼭 5평짜리 허름한 동네 이발소에서 깎는다. 한국전쟁이 터지던 50년 현재 살고 있는 집에 이사 온 뒤 총리 때나 대한적십자사 총재 때나 변함없이 지금까지 50년 넘게 단골로 다니고 있다.
격변의 50년 세월을 역사의 중심에서 비껴나 본 적이 없는 입지전적 인물답게 그에 얽힌 일화 또한 숱하게 많다.
이승만 대통령 시절 자신도 모르게 차관을 발령 받았다가 뒤늦게 알고 대통령 앞에서 못하겠다고 소신 있게 거절하여 철회시킨 사례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황인성 전 총리와의 끈끈한 인연도 흥미롭다. 자유당 정권 말기인 1958년 추석 직후 육본 관리부장인 강영훈 중장에게 “전방 사단의 한 경리장교가 ‘떡값’으로 중앙경리단 간부들에게 1만원, 경리단장에게는 5만원을 상납했다”는 투서가 들어왔다.
강 중장은 즉시 진상 조사를 지시했다. 대부분의 경리장교들이 투서 내용대로 ‘떡값’을 받았으나 경리단장 황인성 대령만은 돈을 받지 않고 도리어 크게 호통처서 돌려보냈음이 밝혀졌다. 강 중장은 황 대령을 불러 “내 밑에 이렇게 훌륭한 장교가 있는지 몰랐다”고 격려했다. 그 일이 계기가 되어 가까워진 두 사람은 지금까지 꾸준한 관계를 유지해 오면서 가장 신뢰하고 존경하는 인물로 서로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후 강 전 총리는 5·16 군사혁명 세력에 반대함으로써 ‘반혁명 분자’로 몰려 ‘장성 투옥 1호’를 기록하고 예편한 뒤 ‘자의반 타의반’으로 미국에 건너가 머무는 동안 가까운 친구들조차 감시의 눈길을 의식해 전화 한 통 없었다.
황 대령은 준장을 거쳐 1961년 8월 조달청장에 오르는 등 승승장구하면서도 늘 군 선배로 존경해온 강 전 장군의 처지를 가슴아파했고 한국에 남아 있던 그의 노모를 70년 작고할 때까지 정초마다 찾아가 세배를 드리는 등 아들 노릇을 대신해 주었다.
이토록 인간으로서 ‘품성’을 갖춘 사람이 일에서도 진가를 발휘한다는 것이 강 전 총리의 경험이고 믿음이다.
총체적 경제 불황에 정국 불안까지 겹쳐 한치 앞도 예측하기 힘든 요즘 그 어느 때 보다도 깨끗한 지도자가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 지도자로 그는 우리사회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서울 충정로 자택으로 그를 찾아가 만나 보았다. 그리고 그가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필자가 찾아간 날 강 전 총리는 약간 감기기운이 있었지만 8순 노인 답지 않게 여전히 정정하고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이 단정한 모습이었다.
-요즘같이 변수가 많은 시대적 상황에서는 조직을 이끌어가는 CEO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보는데요.
대통령을 포함한 나라의 지도자는 말할 것도 없고 CEO는 무엇보다도 인격이 있어야 해요. 현실을 올바로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판단력이 필요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어야 됩니다.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으면 현실에 대한 인식과 판단이 아무리 옳다 해도 끌고 가지를 못하지요.
그리고 어떤 목표를 세워가지고 끌고 가려면 모든 것을 혼자 할 수 없으니까 여러 사람이 각자 자기 몫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리더십이 있어야 해요.
물론 그런 리더가 되려면 청렴결백해야 하지요. 자신이 먼저 솔선수범해야 하고 성실하게 원칙을 지켜야 합니다. 자기는 뭘 자꾸 주워 먹으면서 남보고 올바로 하라고 말할 수는 없지요. 요즘 신문지상으로 매일같이 나오는 내용을 보면 참 한심해요.
지금은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자금 부정 있으면 다 털어 내놓고 자신부터 이제는 절대로 이런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그게 바로 리더십이지요. 자기 몸부터 던지겠다는 마음으로 올바른 일을 위해서 뛰어야 하는 데 서로들 왜 나만 가지고 그러냐는 식으로 하니까 답답해요.
세상을 살다보면 어떤 때는 밑지는 일도 생기고 또 어떤 때는 충무공 같이 백의종군하는 그러한 설움도 받고 자기 몸부터 던지는 살신성인의 각오로 올바른 일을 위해서 뛰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도 우리나라에 충무공 같은 위인이 있으니까 우리가 목표를 세워서 저 조상같이 해야 되겠다는 생각을 하잖아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일하고 땀 흘려서 돈을 벌려고 하지 않고 서비스업 등에 뛰어들어서 쉽게 벌려고 하는 것도 문제가 아닌지요.
정치하는 친구들이 돈을 몇 백 억씩 척척 거두어 대는데 어느 누가 힘들게 일해가지고서 벌려고 하겠어요.
-그동안 워낙 많은 요직과 직책을 맡아오셨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을 텐데요.
국무총리 2년 및 대한적십자사 총재 시절 등이 떠오르네요. 당시 노태우 대통령께서 장관 경험도 없는 날 보고 누구는 태어날 때부터 자리를 맡느냐고 하면서 국가 장래를 위해 맡아 달라고 권해서 할 수 없이 총리를 맡았지요. 적십자사 총재는 한 6년 했는데 7개 항목 중에서 나는 인도주의와 자원봉사 정신에 중점을 뒀습니다. 처음 총재를 맡았을 때는 자원봉사대원이 채 3만이 안되었는데 6년 만에 6만여 명으로 배가 운동을 하고 나왔지요.
-평화통일을 하려면 우리가 정말로 남쪽에 자유민주주의 사회를 만들어야한다고 강조를 하시던데요.
우리가 자유민주주의를 못하면서 북한 공산주의 사회를 비판할 자격은 없다고 봅니다. 북한은 공산주의 독재를 하지만 우리도 무슨 독재를 하거나 정치인들이 부패 하면 공산주의 독재를 하는 저쪽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지요.
-오명 장관과도 특별한 인연이 있다고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무슨 사연인지 말씀해 주시지요.
63년 여름 ‘반혁명 분자’로 몰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 머물고 있던 나에게 뜻밖의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오명 대위였습니다.
제가 육사 교장이었을 때 생도였던 오 대위가 어학연수 차 동료 장교 3명과 함께 샌터바버라에 왔다가 혼자 은사인 날 만나러 왔던 것입니다.
오 대위와 함께 식사를 하고 사제간의 정을 나눈 나는 제자를 샌터바버라까지 태워다주면서 ‘이처럼 당당한 인품의 젊은이들이 있는 한 한국에는 미래가 있다’는 희망을 가졌지요.
기대했던 대로 오 대위는 훗날 체신부 장관을 지내면서 전국의 전화망을 획기적으로 확충하는 등 정보통신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오명 장관을 보더라도 인간 됨됨이가 제대로 된 사람은 하는 일도 틀림이 없어요.
한번은 박대통령 시절 경제 부총리를 중심으로 경제부처 장관들이 재벌총수들하고 회의를 한 적이 있어요. 당시 재벌을 통폐합하려는 정부안을 내놓자 정주영 씨가 벌떡 일어나서 “여기는 엄연히 자유주의 국가인데 정부가 무슨 권리로 개인재산을 멋대로 통폐합을 한단 말입니까?”하고 따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장관들이 말 한마디 못합디다. 그때 오명이 하도 답답하니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제가 한마디 하겠습니다. 정주영회장님 말씀이 천번 만번 지당합니다. 그러나 지금 가지고 있는 사업이 정회장님 개인사업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따지고 보면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도와줘서 은행 대출해주고 이렇게 성장한 것이지요. 노골적으로 말하면 정 회장님은 관리인에 불과합니다.”하더군요.
참으로 엄청난 충격 발언이었지요. 그랬더니 머리 회전이 빠른 정주영 회장이 ‘십분만 커피브레이크 주시오.’하고 재벌들을 데리고 나갔다 들어와서 ‘정부안 찬성이오.’ 하더라구요. 경제부처 장관들이 한마디도 못하고 있을 때 이렇게 한마디로 분위기를 잡아버렸어요. 오명이 그런 사람이오. 그런 재치와 아이디어가 있으니까 체신부장관하면서 그 많은 업적을 남겼지.
-불교를 믿다가 가톨릭 신자가 된 것도 사연이 있다고 들었는데요.
한국전쟁 때 불교를 믿다가 중도에 딱 그만 두었어요. 시기 질투 이런 것을 버려야 된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용서하라는 이야기를 자꾸 듣다보니까 용기가 없어지는 거예요. 당시 민족주의 정신으로 무장된 나는 일본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고통을 받고 나라도 빼앗겼는데 증오심을 안가질수가 없더라 말입니다. 그래서 불교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52년 워싱턴에서 필리핀 무관 권유로 성당엘 처음 나가게 되었습니다. 난 자격이 없다고 하니까 이태리 계통 신부님이 ‘당신이 자격이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알지 당신이 어떻게 알 수가 있냐?’고 하시더니 ‘당신은 자격이 있다.’ 하면서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어요.
-앞으로도 특별히 하고 싶은 일이 있으신지요.
지금 젊은 분들이 잘한다는 데 옆에서 성원하는 것 밖에 나이든 원로로서 더 할 수 있는 일이 뭐있겠습니까. 이제는 다음세대가 잘해주기를 바라고 뭐 성원할게 있으면 하고 그런 것 밖에 없지요.
수고하셨습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이 기사는 피플코리아의 허락 없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피플코리아에 실리는 모든 기사의 저작권은 오직 피플코리아에 있습니다.
<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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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1월08일10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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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기자 김명수의 인물탐구식 인터뷰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 좋은 분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 피플코리아 운영자 김명수 / 전화 017-707-4827 이메일 people365@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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