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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바람의 수필] (26) 하룻동안 겪은 행운 그리고 머피의 법칙
2006/07/26 00:00
입력 조회수 : 674
청천 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 있다. 하늘은 티없이 맑고 푸른데 번갯불이 번쩍거리고 벼락이 때리는 경우를 말한다. 맑은 날씨에 비가 올때도 있다. 보기 드물지만 한여름에 하늘은 해가 쨍쨍한데 한쪽에서는 소낙비가 몰려오는 것이다.
나도 경험했다. 등줄기에 땀이 줄줄 흘러내릴정도로 무더운 날 구름한점없는 하늘에서 갑자기 소낙비가 내리는 것이었다. 바람을 타고 저쪽산에서 이쪽산으로 장막을 두른것처럼 몰려오는 것이 눈에 선명하게 보였다. 그야말로 소낙비가 장막을 친채 내쪽으로 달려드는 것 같았다. 소낙비를 피하려고 걸음아 나살려라 악을 쓰고 달렸지만 결국은 고스란히 비를 맞았다. 눈깜짝할사이에 나를 스치고 다시 소낙비는 저만치 달려가는 것이었다. 도저히 믿을수 없는 현실이 눈앞에서 일어난 것이다.
오늘은 내게 청천하늘에 날벼락 같이 도저히 이루어질수 없어 보이는 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 특별한 날이었다. 짧은 하루동안에 좋았던 일과 나빴던 일이 동시에 일어난 날이다. 상대적으로 극과 극의 경험을 동시에 맛본 것이다. 잘하려고 해도 해도 자꾸 어긋나기만 하는 머피의 법칙과 기가 막히게 하려고 마음먹은 일이 착착 이루어지는 행운도 따른 하루였다.
내 생애에 오늘같이 희한하고도 웃기는 일은 다시는 경험하지 못할 것 같다. 먼 훗날 내가 지구상에서 사라지고 없더라도 오늘 내가 겪은 하루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지금 이글을 쓴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휴일이라 모처럼 여유를 즐기며 느긋한 마음으로 아침을 먹고 TV를 보고 있었다. 목욕탕에 가서 이발을 하고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목욕을 했다. 집에 오니 시간이 어느새 11시가 넘었다. 점심밥을 먹고 나니 졸음이 밀려온다. 시간을 보니 오후1시가
조금 넘었다. 30분만 자고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으로 눈을 붙였다.
눈을 떴다. 잠깐이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을 보니 2시20분이다. 아이쿠 늦었구나. 회사에 3시까지 출근하려고 했는데 시간이 늦은 것이다. 적어도 3시까지 가려면 2시에는 집을 나서야 하는데 이미 시간이 2시를 넘어 30분이 다 돼갔다. 무조건 일어나 신발장에 구두를 꺼내신고 마을버스 타는 데로 달려갔다.
막 뛰어가고 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마을버스가 서있다.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하고 버스에 오르니 버스가 출발한다. 어긋나면 길게는 10분까지 지연될수도 있는 버스정류장에서 단 1분 1초도 허비하지 않고 기적같이 시간이 맞아 떨어진 것이다. 지하철역까지 가는 동안 길도 막히지 않았다.
버스가 가는 곳마다 푸른신호등이 켜져 평소에 그렇게 막히던 도로를 거의 논스톱 질주를 한다. 이런날은 정말로 드문경우다. 전철역까지 평소에는 10분이 넘게 걸리는 시간이지만 5분도 채 안걸렸다. 정확하게 지하철역 입구에서 버스가 멈췄다. 버스에서 내려 헐레벌떡 전철역 구내로 들어갔다.
전철역 승강장에 내려가니 전동차가 들어온다. 마치 내가 도착하는 시간을 미리 알고 기다리기라도 한것같다. 내가 전동차를 기다린 것이 아니라 전동차가 나를 기다려준 것 같은 착각까지 든다. 전동차에 오르니 바로 내앞에 빈자리가 있다. 명절 때 미리 좌석을 예약한 귀성버스를 탄것처럼 사람이 많은데도 어쩌면 그렇게 신기하게도 내앞자리가 나 있는지 너무도 신기했다.
자리에 앉아서 꾸벅 졸면서 갔다. 눈을 뜨니 동대문역이다. 내가 내려야 할곳에서 정확히 눈을 뜬 것이다. 출입문까지 열려있어 동작빠르게 내렸다. 환승역으로 가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5호선승강장으로 가니 전동차가 와서 멈춰있다. 재빠른 동작으로 뛰어들어갔다. 역시 예약이라도 한것처럼 빈자리가 있어서 앉아서 갔다. 옆사람이 내게 신문을 읽으라는 듯 옆에 놔두고 내린다.
박찬호가 등판해서 치욕의 완패를 당했다는 기사가 눈에 띈다. 메이저리그 사상 최악의 기록의 불명예를 뒤집어썼다는 내용이다. 1이닝 같은 타자에게 두 번의 만루홈런을 얻어맞았다는 것이다. 바쁜 와중에도 승객이 던져놓은 신문을 보고 시기적절하게 빅뉴스까지 챙긴 것이다. 서대문에서 내려 조급한 마음에 빠른걸음으로 회사에 도착해서 시계를 보니 오후 3시 10분이다. 이렇게 빨리 올수도 있다니 깜짝 놀랐다.
집에서 회사까지 40분밖에 안걸린 것이다. 평소에는 꼬박 1시간이 걸리는 거리였다. 똑같은 코스로 똑같은 교통편으로 왔는데 무려 20분을 단축했으니 한마디로 기적이었다. 기분이 좋았다.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여유를 가져본다. 밀린 일을 처리하다 보니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다른날보다 집에 일찍 가려고 서둘러서 회사를 나왔다.
오후 6시 30분이다. 오전에 출근할 때 일이 떠올라 기분이 좋았다. 그러나 내게 좋은 일만 일어날 것 같은 예감은 전철을 타면서부터 여지 없이 뭉개져 버렸다. 전철안에서 갑자기 속이 불편해진다. 아침 점심을 너무많이 먹은 것이 탈이 난 것 같다. 중간에 내려서 화장실이라도 갔다 올까 생각하다 그냥 타고 가기로 했다. 그러나 갈수록 참을수 없을 정도로 심해진다. 계속 참았다.
인내력을 시험이라도 하는 것처럼 뱃속에서는 전쟁을 일으켰다. 나도 이를 악물고 참아가며 기어이 끝까지 왔다. 화장실로 달려갔다. 10년묵은 체증이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이었다. 전철역 출구를 나왔다. 마을버스가 서있다. 집에 조금이라도 빨리가려는 생각에 망설임없이 곧바로 서있는 버스에 올라탔다. 집에까지 걸어서 가더라도 15분이면 가는 거리였다.
10분을 넘게 달려도 내릴 곳이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번쩍 들어 버스 창문 밖으로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펴 보았다. 엉뚱한 방향이었다. 내가 가려는 방향이 아니었다. 도저히 알수 없는 지역이었다. 버스를 잘못탄 것이다. 전철역에서 반대편
출구로 빠져나온 것이 잘못이었다.
내가 가려는 쪽과 정반대방향의 버스를 올라탔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마음은 급한데 버스는 그런 내사정을 몰라주고 사정없이 내달렸다. 한참을 가서야 버스가 멈췄다. 부리나케 내렸다. 처음본 거리라서 도저히 방향을 알아낼수가 없었다. 택시도 눈에 보이지 않았다. 무조건 걸었다. 다리가 아플정도로 걸었다. 택시를 잡을 생각으로 조금씩 앞으로 앞으로 걷다보니 거의 십리는 걸은 것 같다.
낯익은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이제는 방향을 알 것 같다. 잘못탄 마을버스에서 내려서 이제껏 집과는 반대방향으로 걸어갔던 것이다. 내가 왜 이럴까. 속으로 참 멍청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내렸던 전철역으로 다시 가서 반대편의 마을버스를 타면 되는 것이다.
그럴 생각으로 계속 걸었다. 그런데 바로 코앞의 거리로 짐작을 했던 전철역이 아무리 걸어도 보이질 않았다. 또 뭔가가 잘못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주변 거리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가늠을 하기가 힘이 들었다. 설마 이번에야 맞겠지 하고 생각하면서 계속 가던 방향으로 걸었다. 그런데 분명 시간상으로 지금까지 걸었으면 전철역에 충분히 도착하고도 남을텐데 아직도 전철역은 보이지 않았다.
아아 속타는 이심정. 집에 빨리 가려고 회사에서 다른날보다 일찍 나왔는데 오히려 시간이 더 오래 걸린 것이다. 안되겠다 싶어 택시를 잡아타기로 했다. 마침 주유소가 있다. 빈택시들이 줄지어 서있다. 택시에 타려고 문을 열었다. 기사가 안간다고 손을 내젓는다.
나는 마음속으로 빈택시인데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택시의 문을 열었다. 또 안간다는 식으로 손을 내젓는다. 웬일일까. 빈택시마다 계속 문을 열어도 계속 안간다는 택시들 뿐이다. 빈택시가 가득한 주유소에서 결국은 택시를 못잡고 다시 걸었다. 택시가 눈에 띄지 않았다.
발바닥이 아파서 더 이상 걷기가 힘들정도였다. 날은 어두워서 방향이 어느방향인지 종잡을수가 없다. 주변엔 건물도 보이지 않는다. 빈택시가 한대 온다. 양손을 흔들어대니 앞에 와서 멈춘다. 택시에 올라탔다. 길은 왜 그리 막히는지 짜증이 난다. 나를 약올리기라도 하듯 택시가 지나는 곳마다 빨간 신호등으로 변한다.
머피의 법칙이 철저하게 적용되었다. 어렵게 어렵게 집앞에까지 왔다. 택시에서 내렸다. 몸도 마음도 지칠대로 지쳤다. 엘리베이터앞에 서니 1층에 있던 엘리베이터가 갑자기 올라가 버린다. 한참을 서있어도 올라간 엘리베이터는 내려올줄을 모른다. 아이 짜증나. 엘리베이터가 내려온다. 문이 열린다. 할머니가 혼자서 타고 있다.
할머니가 짐을 내린다. 할머니가 짐을 싣느라고 승강기를 잡고 있었던 것이다. 벨을 누르니 마누라가 문을 열어준다. 햇살처럼 환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대하는 마누라를 보는 순간
쌓였던 피로가 눈녹듯이 사라진다. 시간을 보니 오후 8시다. 회사에서 집에까지 오는데 한시간 하고도 30분이나 더 걸렸다.
회사에 출근할때는 40분밖에 안걸렸는데 이게 어찌된 일이란 말인가. 무려 50분이나 더 걸린 것이다. 모처럼 맞은 휴일이라 집에 조금이라도 빨리가려는 욕심에 회사에서 일찍 서둘러서 나왔는데 오히려 평소보다 훨씬 더 걸리다니.
아무리 운이 나빠도 이럴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마지막 남은 오늘의 하이라이트. 구두를 벗는데 짝이 틀리다. 오늘 내가 신고간 구두가 한짝은 헌구두고 한짝은 새로산 새구두였다. 어쩐지 걷는데 발이 아프더라. 내게 철저하게 적용된 머피의 법칙이 완성 되는 순간이었다.
<피플코리아/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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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03년 11월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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