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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실버] (7) 독도호적 1호 송재욱
2006/04/25 00:00
입력 조회수 : 779
본적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산30번지. 호주 송재욱(宋在郁·60). 현주소 서울 노원구 공릉동.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1987년 11월2일 독도에 호적을 옮긴 사람이다. 그는 왜 일가족 6명의 호적을 모두 독도로 옮겼을까?
▲ © 피플코리아
독도호적 1호의 주인공이 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전호적은 전북 김제. 대대로 한학자 집안이었다. 부친도 평생을 도포입고 갓쓰고 한학을 하셨다. 어려서부터 제사와 족보를 하늘같이 여기는 집안 분위기가 그는 웬지 싫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집이야말로 개혁을 해야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으로 교회도 다니고 민족운동도 하게 되고 본적도 독도로 옮기게 되었다.
4남1녀중 차남. 중학교 졸업후 고등학교는 서울로 유학을 왔다. 서울에 와서 보니까 또다른 지역차별을 실감했다. 그는 분노했다. 이렇게 좁은 나라에서 이럴수가 있나 싶었다. 옛날 우리의 조상들은 한반도에서 더 나아가 중국 만주벌판까지 영토를 넓혀가면서 떵떵거리고 살았는데 이렇게 좁은 땅에서 싸우고 지지고 볶다니 이래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1987년 당시 독도의 유일한 주민이었던 최종덕씨의 사망으로 독도가 무인도가 되었다는 내용의 기사를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그내용을 보고 전북 김제군으로 되어있는 호적을 독도로 옮기기로 결심했지요."
그러나 호적을 옮기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고향에 가서 서류를 떼어가지고 자신의 생일인 10월19일을 맞아 울릉도에 들어갔다. 기왕이면 생일에 맞춰서 호적을 옮겨야 더욱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라는 인정을 확실하게 받으려면 사람 나무 식수 등 3가지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하루라도 빨리 호적을 옮기고 싶었습니다. 직접 그곳에 호적을 옮겨야 사람이 살았다는 근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먼훗날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한일간에 독도분쟁이 벌어진다면 그곳에 사람이 살았다는 증거가 있어야 일본이 아무소리 못할것 아닙니까?"
그런데 쉽지가 않았다. 남들의 눈에 엉뚱한 사람으로 비쳐지기 일쑤였다. 심지어 미친사람 취급을 받기도 했다. 담당공무원을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숱한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서류를 내밀고 사연을 털어놓으면 담당공무원들은 서로 미루기만 하고 처리를 안해주는 겁니다. 서울에 사는 사람이 아무 연고도 없는 곳으로 왜 본적을 옮기려고 하느냐면서 혹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는 눈치였어요. 호적계장과 입씨름도 많이 했지요. 3일동안이나 경찰서등을 뛰어다니며 설득을 얻어냈습니다."
당시 울릉읍 호적계장이 우선 자신의 집주소로 송씨의 주민등록을 이전시켰다가 11월 2일자로 본적을 독도로 옮겨주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역사나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향우회를 조직했다. 나름대로 지역차별을 없애고 싶어서였다. 향우회에서 앞장서서 좋은 일을 하다보면 그만큼 이미지가 좋아질거라고 생각했다. 월요일마다 30분일찍 학교에 나와 교문안팎을 깨끗히청소했다. 처음에는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던 학생들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대학은 서울시립대 전신인 서울농업대학에 들어갔다. 농촌을 부흥시켜보겠다는 꿈을 실현하고 싶었다. 대학시절 농촌봉사활동을 많이 다녔다. 민족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흥사단강의도 열심히 들었다. 그러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영토문제 특히 독도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일본인들은 무슨 일만 벌어지면 신사참배니 뭐니 하면서 똘똘 뭉치고 난리를 피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매사를 너무 쉽게 생각하고 너무 쉽게 잊어먹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특히 독도 문제만 해도 그렇습니다.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백날 천날 말로만 외쳐봤자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직접 행동으로 몸으로 보여줘야지요. 그런 생각만 하면 피가 거꾸로 끓어오릅니다. 그래서 호적을 옮긴 것이구요."
독도로 호적을 옮기고 나서 그는 또다른 불편을 겪기도 했다. 호적등초본 하나라도 뗄일이 있으면 서울에서 울릉도까지 내려가거나 행정우편을 이용해야 했다. 선거가 있을 때도 마찬가지. 현지에 내려가 투표를 하거나 아니면 부재자 투표를 했다. 그러나 누가 강제로 시킨 일이 아니라 자청해서 겪는 불편이었다.
독도로 호적을 옮기기까지 가족들의 반대도 컸다. 주위에서 보는 눈도 곱지 않았다. "심지어 내가 경영하는 중소기업이 부도가 나서 아무도 몰래 외딴섬으로 도망을 가려 한다는 소문까지 나돌때는 정말 마음이 아팠습니다."
송씨는 지금까지 독도를 수차례 다녀왔다. 1990년 푸른독도가꾸기모임 회원들과 함께 울릉도에서 동백 향나무와 흙을 독도로 싣고가 나무를 심기도 했다.
대학졸업후 그는 한때 학교에 남아 조교생활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학문에는 적성이 맞지 않았다. 학교에 남아달라는 교수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뿌리치고 나와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IMF이후에는 사업도 그만 두었다.
부인 계명의씨(58)씨는 공릉동 이화유치원 원장님. 20여년째 유치원을 운영해오고 있다. 1968년 결혼. 교회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10여년동안이나 지켜본 끝에 괜찮은 여자다 싶어 프로포즈를 했다. 몇달만에 결혼을 했다.
송씨는 새천년 첫날에도 독도땅을 밟았다. 새천년 첫날 본적지에서 독도 일출을 보고 싶어 풍악호를 탔다. 독도 새 밀레니엄 해맏이 행사에 참가한 그는 동해 해상의 풍악호 선상에서 일출장면을 바라보면서 독도의 평화를 기원했다.
"일본인들이 소리소문없이 독도로 호적을 옮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때 가슴이 철렁했습니다. 우리의 호적이 먼저 올라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고향 선산주변에 5천5백여평규모로 동심원이라는 공원을 조성중이다. 청소년들에게 꿈을 심어줄수 있는 공원을 하나 만들자는 생각에서 20여년전부터 준비해왔다. 지역감정을 없애고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한나라 한마음 한뜻이 되자는 의미에서 공원이름을 동심원(東同童心園 )이라고 지었다.
그는 또하나의 꿈이 있다. 다름아닌 제주 하루방 한쌍을 독도로 옮기는 것. 하나에 무게가 2톤이나 나가기 때문에 그혼자 옮긴다는 것은 아무래도 벅차다. 그래서 하루방을 옮겨줄 후원자를 찾고 있다.
여러차례 돌을 옮겨 보려고 시도를 해봤지만 아직까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5년전이었다. 독도에 접안시설을 한다는 신문기사를 보고 공사를 맡은 회사에 전화를 했다. 제주 하루방을 독도로 옮기고 싶은데 그렇게 해주면 어떻겠냐고…
건설회사측에서 하는 말이 포항해항청에서 허락을 하면 해주겠다는 것이다. 곧바로 포항으로 달려갔다. 해항청에서 이유를 물어보기에 이렇게 대답했다. "옛날부터 한국의 섬에는 하루방을 수호신으로 모셨다는 그런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독도땅에도 하루방 수호신이 있다는 역사적 근거를 만들고 싶었다."
그랬더니 담당자도 좋다는 것이다. 담당자말이 말로만 하지 말고 공문을 정식으로 띠우고 하루방 사진도 정밀하게 찍어서 보내달라는 것이다. 그러면 보름이내에 결과를 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달이 지나도 연락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서 이유를 물어보았다. 담당자 말이 본청에 올렸는데 답장이 없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보라는 것이다. 그래도 소식이 없었다. 결국은 공문을 보낸뒤 두달이 지나서야 이렇게 답장이 왔다.
성의는 고맙지만 정부공사에 민간이 관여해서 시설을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 저런 사유로 독도에 하루방을 세우고 싶은 꿈을 아직까지 이루지 못했다. 지금도 그가 조성하는 공원주변에는 독도에 보낼 하루방 한쌍을 세워놓았다.
선산에 세워놓은 하루방을 어느단체에서건 나서 주기만 한다면 아무때라도 독도에 옮겨놓을 생각이다. 상당한 재산을 털어가면서 10여년전에 사들인 하루방이다. 독도에 옮겨놓고 싶어서. 지금이라도 그일을 맡아줄 시민단체나 후원단체가 나와주면 좋겠다. 정부에서 해주면 더욱 좋고… 개인이 하기에는 경비도 문제지만 허가도 맡아야 하기 때문에 너무 벅차다.
그는 독도문제에 관한한 정부에 대해서 할말이 많다. "대한민국 국민이 독도에 구경가겠다고 하면 왜 못가게 합니까? 우리땅이라면 우리국민이 가고 싶을때 마음대로 갈수 있게 해줘야 당연한것 아닙니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조국순례 국토 대행진이라는 코스를 독도까지 넣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소년들에게 독도땅을 밟아보게 함으로써 독도사랑 나라사랑 하는 마음을 심어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렇지 못한 현실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독도에 본적을 옮긴 사람은 이후로 계속 늘어나 현재 3백에서 4백여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그는 만약 정부에서 독도에 주민을 거주시킨다면 제1호로 나설 계획이다. 독도에서 독도 주민으로 살다가 거기서 생을 마친다면 그보다 더 한 영광은 없다고 생각한다.
<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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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8/25 14:2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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