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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바람의 수필](14) 설레임과 두려움 가득한 기다림의 미학
2006/04/10 00:00
입력 조회수 : 842
혹시 누구를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려 본적이 있습니까. 기분좋은 기다림이 있죠. 첫사랑에 들떠서 기분이 날아갈 듯 설레임을 가득안고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약속시간을 기다리는 기분은 그야말로 하늘을 나는 이상일것입니다.
그런 때 기다림은 만날생각에 기분이 들떠 정말로 일분이 왜 그렇게 길고 지루한 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애타게 기다렸는데 무정하게도 상대방이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은 경우 무척이나 화가 날것입니다.
그래도 오겠지 하면서 계속 기다리겠지요. 무슨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나 고민 걱정하면서 한시간이 넘도록 아마 기다릴 것입니다. 그래도 안나타나면 배신감을 느끼겠지요. 그러나 정작 한시간이 더 지나가 버리면 걱정이 앞설것입니다. 아니 이인간이 혹시 무슨일이 일어난 것은 아닌가 하고 말입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드디어 뿅하고 나타났을 때 그 기분 무어라고 말로 설명할수 없을 정도로 묘할 것입니다. 약속을 어긴 배신감에 미웁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아무런 탈없이 나타나 준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것입니다.
그러나 다음에 또 약속을 어기면 사정은 달라지겠지요. 영영 만나기 싫어질정도로 이미지가 나빠질 것입니다. 살다보면 세상일이 자기뜻대로 되기 어렵듯이 만나고 싶지 않은 약속도 있을수 있습니다.
가령 왕따로 시달림을 당하는 착하고 마음여린 학생이 문제학생과 약속을 했다면 말입니다.
아주 소위 주먹깨나 쓰고 악명을 날리는 폭력학생이 잔뜩 겁을 주고 한학생을 지목하여 너이자식 방과후에 뒷산 소나무 아래로 남으라고 했을 때 그 학생의 강요된 약속을 기다리는 심정은 정말이지 죽을 맛이겠지요.
이친구가 나를 왜 만나자고 했을까 혹시 또 날 괴롭히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들로 걱정반 두려움반에 가슴이 두근 거리고 겁에 질려 기다리게 될것입니다. 약속이란 그렇게 무서운것이지요. 기다리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분좋은 기다림은 한없이 기다릴수가 있지요.
과연 설연휴때 시골에 계신 부모님께서 객지 떠난 아들딸들이 오기를 기다리는 부모 마음을 생각하면 알것입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집에 올시간이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부모님은 그야말로 눈이 빠지게 기다릴 것입니다. 집앞에 아니 동구밖까지 나와서 고개를 쭉빼고 먼길을 내다볼것이 눈에 훤합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가슴벅차고 기분좋은 기다림이지요.
아슬아슬한 기다림도 있을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출퇴근때 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합승하는 카풀제도 그렇겠지요. 차가 밀리거나 해서 제시간에 대지 못한다면 도심차선에서 한없이 기다릴수도 없고 속이 타겠지요.
또 입술이 바짝바짝 타들어가는 그런 기다림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에 시골에 계신 부모님이 임종을 앞두고 서울에 있는 자식이 오기를 기다릴 때 그 심정은 이루 말로 설명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부모님은 숨이 넘어가기 전에 마지막 가슴에 모든자녀를 품고 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데 자식이 지금 고향으로 오고 있다면 자식도 부모도 애간장이 타겠지요.
부모님 임종을 볼수 있다면 그나마 다행이겠지만 그렇게 해서도 부모 임종을 못보았다면 그 자식은 평생의 한이 될 것은 물론이겠지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기 전의 아주 오래된 일입니다.
당시 열다섯살쯤 된 남동생과 함께 상경을 했습니다. 며칠 다녀가려고 서울에 왔는데 어느덧 뉘엿뉘엿 해가 저물고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전에 서울에 와본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둘다 서울지리를 잘 몰랐습니다.
날은 혹독하게 추운 한겨울이었습니다. 귀가 떨어져 나갈정도로 시리고 손은 꽁꽁 얼어서 그렇잖아도 가뜩이나 촌티가 나는 우리 형제는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동생과 나는 평화시장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일종의 자수성가한 아는 고향아저씨한테 가서 인사를 하고
식사대접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인사하고 둘이는 아저씨가 자신의 집에가서 자고가라는 것도 거절하고 상가를 나왔습니다. 그리고 특별하게 갈곳도 없고 해서 시내구경이나 할겸 시내버스를 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그만 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내가 먼저 차에 올라탔습니다. 당연히 동생이 따라 올라탈줄 알았는데 동생이 머뭇머뭇 하다가 금새 시내버스 문이 닫히고 출발을 하였습니다.
그때 둘다 촌놈이고 시내버스가 그렇게 빨리 문을 닫을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운전기사한테 사정사정하였더니 운전기사가 바로 문을 열어주었습니다. 정신없이 뛰어내려서 동생이 있던 그곳으로 눈썹이 휘날리도록 달려가보았지만 이미 날은 어두어질대로 어두어지고 동생은 눈에 보이질 않았습니다.
잃어버린 동생걱정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생각해보십시오. 낯설고 물설은 서울땅에서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잃어버린 그때 제심정이 어떠했을지를 말입니다. 정신없이 이곳 버스정류장서 저곳 버스정류장까지 뛰어도 보고 버스타고 가보기도 하고 하면서 추운 겨울에 동생 찾으려고 난리부루스를 추다 보니 나는 그야말로 사색이 되었습니다.
아까전에 만났던 고향아저씨께 혹시 동생이 다시 다녀갔나 해서 가보았습니다. 아저씨 말이 그때 둘이 함께 왔다 나간이후로 안왔다고 하더군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는데 안왔었다는 말을 들으니 정말이지 맥이 팍풀렸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솔직히 그때는 나도 몰랐습니다. 머리속에는 그져 잃어버린 내동생 찾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이리뛰고 저리뛰고 하다보니 내가 왜 이렇게 뛰는지 나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나간 사람같았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지나 통행금지가 넘었습니다.
속으로 엉엉 울음이 나왔습니다.평소에는 있으나 없으나 그져 그런 동생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꼭필요한 보배같은 동생이라는 생각이 자꾸 들기 시작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동생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에 절절하게 각인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혹시 사고라도 나지 않았나 방정맞은 생각에 어떻게 해야할지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통행금지가 넘자 경찰들이 순찰을 돌면서 사람들을 검문하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검문 경찰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제발좀 잃어버린 내동생을 찾아달라고 사정을 했습니다.
그렇게 울면서 애걸복걸 하니까 경찰도 안됐는지 어서 빨리 동생을 찾으라고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시간은 어느덧 새벽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얼어죽지만 않으면 좋겠다고 그당시 종교도 없는 나는 저절로 두손모아 기도를 하는 내모습에 나자신도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사람이 절박하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은 순간이었습니다. 아는 집에 들어가 자고 내일 다시 찾을까 생각도 해보았지만 밖에서 추운날씨에 오들오들 떨면서 형이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며 밤거리를 헤메고 다닐 동생을 생각하면 차마 그럴수 없었습니다.
거의 새벽 4시가 넘어 통금해제가 되었습니다. 동생이 겪을 고통을 나도 짊어지겠다는 생각으로 길가에 접어놓은 포장마차에 기어들어갔습니다. 한겨울 혹한에 포장마차 밑에서 잠을 자려고 누웠습니다. 땅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가 그야말로 얼음장보다 더 차게 느껴져 소름이 오싹오싹 했습니다.
그래도 동생이 고생할 생각을 하면 나는 이것도 호강이라는 생각으로 이를 악물고 버텼습니다. 추위는 그런대로 정신력으로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개가 낯선 손님을 그냥 놔둘리 없었습니다. 큰소리로 잡아먹을 기세로 거세게 짖어댔습니다. 혹시 내게 공격하지 않을까 겁을 먹었지만 공격은 하지 않고 짖기만 해대서 그냥 마음놓고 눈을 감고 잠을 자려고 노력해봤습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추위와 싸우며 동생생각 하면서 엎치락 뒤치락 하다보니 날이 훤하게 밝아왔습니다. 평소같으면 혹한속에 길거리에서 잠을 자면 분명히 나는 얼어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긴장을 하고 걱정에 정신이 바짝 들었기 때문에 살아남을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그추운 한겨울에 밖에서 자고도 얼어죽지않은 것은 지금생각해도 기적이었습니다. 포장마차 밑에서 기어나왔습니다. 다시 동생을 혹시나 만나지 않을까 하는 심정으로 거리를 해메기 시작했습니다.
동생을 만난다는 것이 불가능 해 보였지만 내게 제발 그런 기적이 오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잃어버렸던 장소를 중심으로 수도 없이 걷고 또 걸었습니다. 거의 점심때가 되었습니다. 동생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거의 불가능해보였던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동생과 나는 서로 부둥켜 앉고 엉엉 울었습니다. 다시 만나게 해준 하느님께 고맙다고 마음속으로 외쳤습니다. 그당시는 이산가족을 만난 기분이었습니다. 그때의 그 추운 겨울의 똥줄타는 기다림은 차라리 절규였습니다. 극적인 만남으로 우리는 둘이 어깨동무를 하고 식당에 가서 먼저 식사부터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동생에게 하루밤 어디서 어떻게 지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그런데 동생의 말이 나를 허탈하게 만들었습니다. 동생은 형이 먼저 타고 가길래 바로 뒤따라 오는 시내버스를 타고 다음정거장에서 내렸답니다.
거기서 당연히 내가 있을줄 알고 기다렸는데 한시간쯤 돼도 안와서 아는 친척집에 찾아가서 편안하게 잠자고 아침 든든하게 먹고 그리고 느긋하게 다시 헤어졌던 장소로 나온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런줄도 모르고 밤새 애가타게 기다린 것이 후회가 되고 분할 정도로 속이 상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만났다는 걸로 우리는 너무 기뻤습니다. 그리고는 다시는 떨어지지 말자고 둘이 손을 꼭 잡고 다녔습니다. 그날의 뜻하지 않은 사건은 형제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준 교훈이었습니다.
<김명수
www.people365.pe.kr
>
수정일 2003년 06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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