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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바람의 수필] (12) 닭 잡아먹고 오리발 내미는 사람들
2006/03/31 00:00
입력 조회수 : 760
오늘 늦잠을 잤다. 밤늦도록 이리 저리 뒤척이다 새벽녘에 겨우 잠이 들었다. 그런데 머피가 되었는지 눈을 뜨니 시간이 6시를 넘었다. 총알이었다. 눈떠서 5분 만에 옷 걸치고 군대 비상 걸린 듯이 집을 나왔다. 전철역 승강장에 도착하자마자 신기하게 기다렸다는 듯이 전철이 도착한다. 잽싸게 올라타고 자리를 잡아 앉자마자 고개를 숙인 채 생각에 잠겼다.
요즘은 솔직히 글을 쓰는 재미에 산다. 누가 알아주던 말든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티끌만큼이라도 붙잡아서 글로 남기고 싶다. 쓸 말은 많은데 시간이 없다. 업무에 쫓기고 생활에 쫓기고…. 바쁘게 정신없이 살다보니 정작 내가 뭘 위해 일하고 뭣 때문에 이렇게 뛰어 다니는 지모를 때가 있다.
흔히 속된말로 정신이 멍하다는 것이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하루라도 글을 쓰지 않으면 뭔가 잃어버린 것 같이 허전한 기분이 든다. 옛날 분들은 얼마나 어려운 상황에서 글을 썼을까 생각하니 지금은 너무 편리해졌다.
옛날에는 벼루에 먹을 갈아 붓으로 기름먹인 한지에 글을 썼을 것이다. 지금이야 연필 잡을 필요도 없이 손가락으로 컴퓨터 자판을 까딱거리기만 하면하고 싶은 말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해졌나.
사람은 살다보면 성격도 생각도 많이 바뀐다고 본다. 왜 어렸을 때 장래 꿈이 뭐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대통령이나 경찰이나 장군이나 선생님이 된다고 거침없이 대답하던 시절이 있지 않은가. 그러나 커가면서 꿈도 따라 바뀌어 간다.
성격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사람이 살다보면 남한테 한두 번 쯤은 억울하게 당해본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나는 사람을 쉽게 믿는 버릇이 있다. 그러나 앞뒤가 안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쉽게 믿지 않는 버릇도 있다.
아니 쉽게 믿던 사람한테 몇 번 발등 찍히고 나서 성격이 바뀌었다. 쉽게 믿다 한번 내발등을 찍은 사람은 절대로 믿지 않는다. 콩으로 메주를 쓴다해도 안 믿는다. 쳐다보지도 않는다.
믿는 사람을 발등 찍은 사람은 사람같이 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도 기회는 준다. 두 번까지는 속아준다.
그러나 세 번까지 속이면 그것으로 나와의 인간관계는 종을 친다. 거기에도 예외는 있다. 특별히 피치 못 할 사정이 있어서 사전양해를 구했다면 그런대로 사정을 봐준다. 그래서 한 가지 확실한 게 있다. 절대로 돈거래는 하지 않는다. 나름대로 경험으로 생긴 철칙이다.
돈거래를 잘못하다 친구 잃고 돈 잃고 하는 것을 주변에서 많이 보아왔고 나역시 경험자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가 왜 이렇게 나쁜 버릇이 생겼는지 말하자면 사연이 길다. 내가 서울에서 첫 직장을 잡았을 때 일이었다.
출근한지 한달쯤 지났을 때 회사로 전화가 왔다. 우리 회사 로비에 와 있으니 잠깐 내려오라는 것이었다. 밑도 끝도 없이 영문도 모르고 불쑥 받은 전화에서 무슨 일인지 궁금해 하면서 로비로 뛰어 내려갔다.
평소에 나를 친형처럼 따르던 후배녀석이었다. 녀석은 숨넘어가는 소리로 경찰에 불심검문으로 끌려가서 억울하게 피의자로 몰렸는데 벌금 30만원을 내라고 했다면서 지금 당장 내지 않으면 유치장에 들어갈 처지가 되었다고 돈을 꿔달라는 것이었다.
그때 월급이 30만원도 안되던 시절이었는데 그 돈은 내게 큰 돈이었다. 집에 전화를 걸었다. 마누라보고 통장에 있는 돈을 온라인으로 부치라고 했다. 돈은 내일 회사로 직접 찾아와서 꼭 갚겠다고 했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그러나 돈을 갚겠다는 녀석은 깜깜무소식 함흥차사였다.
마누라가 조심스럽게 물어왔다. 오늘 돈 받아왔느냐는 말에 오늘은 내가 바빠서 못 만났다고 얼렁뚱땅 둘러대고 말았다. 이녀석이 괘씸했다. 다음날도 또 소식이 없었다. 전화를 걸어봤다. 미안하다면서 내일 꼭 찾아가서 갚겠다고 해서 그 말을 또 믿었다.
그러나 또 오지 않았다. 한달이 지났다. 이제는 아예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마누라한테 신용이 떨어져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사람 믿기 좋아하더니 서울은 그런 곳이 아니라면서 비아냥거리는 마누라말에 자존심이 상했지만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안되겠다 싶어 이 녀석한테 전화를 걸어 나오라고 했다. 만났다. 돈을 줄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더욱 나를 화나게 만든 것은 경찰에 잡혀간 것이 아니라 그 돈을 가지고 유흥가에 가서 친구와 술을 퍼마시는 데에 썼던 것이다.
괘씸해서 뺨이라도 한찰 갈겨주고 싶었지만 그날은 꾹 참고 말았다. 그런데 그 후 일년쯤 지났는데 이 녀석이 회사로 또 찾아왔다. 이 녀석 또 숨넘어가는 소리였다. 이번에는 자기 조카꼬마애가 교통사고를 당했는데 당장 급하니 수술을 하고 응급조치를 취해야 하는데 선수금 50만원이 필요하다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었다.
참으로 기가 막혔지만 애부터 살려놓고 보아야 되겠다는 생각에 또 마누라한테 전화를 걸어 사정 얘기를 해주고 통장에 있는 돈을 온라인으로 부치라고 얘기를 했다. 마누라도 찜찜해 하면서도 그렇게 하겠다고 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그런데 이 녀석 또 그 이튿날이 되어도 돈을 가져오지 않는 것이었다.
퇴근 후에 병원에를 가보았다. 참으로 기가 막혔다. 병원에서 의사가 하는 말이 다친 곳이 하나도 없는 데 무조건 입원시켜달라면서 보호자라는 분이 떼를 쓰니 어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할말이 없었다. 이 녀석을 밖으로 불러내서 심하게 몰아붙였다.
그런데 이 녀석 더욱 가관이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오는데 운전기사가 급브레이크를 밟는 바람에 뒷자리에 앉아있던 녀석과 조카가 앞에까지 밀려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심을 잃고 넘어져 목이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는 것이었다. 내친김에 치료비와 위자료라도 받아내야 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한번 쥐어박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결국은 병원에서 내쫓기고 말았다.
녀석한테 두 번씩이나 어이없게 당하고 나니 마누라가 믿었던 후배에게 발등 찍힌 기분이 어떠냐면서 놀려댔다. 이제는 두 번 다시 사람 믿지 말라면서 교훈으로 삼으라고 제법 훈계까지 해댔다. 그렇게 그 일은 넘어가고 세월이 흘렀다. 결국은 십년이 넘어갔다. 이제는 까마득히 잊었지만 이 녀석은 신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또 한 친구가 있다. 직장에서 만난 직장 동료다. 참으로 친했다. 그러나 돈거래가 흐린 친구다. 팍팍 쓰는 스타일이다. 돈을 팍팍 쓰다보니 항상 돈이 필요한 것이었다. 이런 친구는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 돈을 쉽게 빌린다. 틈만 나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돈을 꿔달라고 한다.
나도 처음에는 속았다. 아니 순진하게 그가 하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다. 돈을 1백만원만 꿔달라고 했다. 마누라에게 전화를 했다. 서로 집에까지 왔다 갔다 하는 친구라서 마누라도 이 친구를 잘 알고 있다. 온라인으로 즉각 부쳤다고 마누라에게서 전화가 왔다.
또 내일 갖다 준다는 것이다. 그런데 또 함흥차사였다. 그렇게 속아 넘어갔다. 인간관계는 잃고 싶지 않아서 예전같이 잘 지내자고 말을 해주었다. 그러나 웬걸 몇 달이 지나서 또 손을 내미는 것이었다. 정말로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지만 또 집으로 전화해서 빌려주고 말았다. 버릇이 잘못 들은 사람은 어쩔 수가 없었다.
더욱 내가 놀란 것은 이 친구 마누라가 훨씬 더 월급을 많이 받는 맞벌이였다. 둘이 벌면서도 저렇게 돈을 빌려 쓰는 친구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결국은 돈을 떼이고 말았다. 언제나 빌려달라고 손을 내미는 그런 친구는 나뿐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행동해서 돈을 꿔갔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결국은 이 친구한테도 10년이 넘었지만 돈을 받지 못했다. 지금은 신용이 나로부터 완전히 바닥으로 추락한 불행한 친구가 되고 말았다.
또 한 친구. 액수가 컸다. 5백만원을 달라는 것이다. 집이 몇 채인데 지금 당장 막아야 될 돈이 필요한데 어음 부도나듯이 지금 막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사정을 듣고 보니 그냥 외면할 수가 없었다. 또 집에 전화를 걸어 마누라에게 온라인으로 부치라고 했다. 이번에도 마누라는 믿는 친구라 두말 않고 부쳐왔다. 그런데 또 이 친구 돈을 꿔갈 때는 사정하더니 갚으라고 하니 오리발이었다.
아무리 갚으라고 해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내일 당장 갚겠다는 말을 믿고 준 돈인데 결국은 악다구니를 쓰고 별짓을 다해서 3년이나 지나서 받아냈다. 돈을 꿔주고 친구 잃은 격이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이친구도 돈 잘 버는 맞벌이부부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았다.
돈거래가 흐린 사람은 주위로부터 평이 안 좋았다. 결국 나한테 신용을 잃은 자들은 하나같이 주변사람들로부터 이미 인심을 잃은 자들이었던 것이다. 은행에서 개인 신용 파산자로 선고받는 것처럼 나로부터 신용파산자로 분류된 사람은 주변사람들로부터도 이미 파산자가 되어있었다. 나는 이렇게 3명의 믿는 사람으로부터 발등을 찍히고 나서 성격이 바뀌었다.
사람을 믿되 한번 발등을 찍은 사람은 절대로 믿지 않는 나쁜 버릇이 생겼다.
<김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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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03년 06월0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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