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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302) 국립극단 예술감독 이윤택
2007/01/25 00:00 입력 조회수 : 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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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릭이사람] (302) 국립극단 예술감독 이윤택

늘 새로운 형식의 연극을 시도하고 대중과 호흡하는 연극인 이윤택(52). 우리나라 현대 연극사에 그만큼 큰 족적을 남긴 인물도 드물 것이다.

부산 가마골 소극장에서 연극을 시작한지 20년 만에 국립극단 예술감독으로 한국 연극의 정점에 오른 그는 국립극단 53년 사상 단원 출신이 아닌 외부인이 총책임을 맡은 최초의 주인공이 되었다. 

시인, 소설가, 기자, 희곡, 시나리오, TV 드라마 작가, 안무, 영화감독 등 장르를 뛰어넘는 종횡무진 활동으로 문화게릴라라는 닉네임이 붙은 그는 우체국 직원, 염색기사, 책 외판원, 신문기자 등을 전전하다 연극판에 뛰어들어 한국을 대표하는 연극연출가로 우뚝 섰다.

부산출신으로 그 흔한 인맥도 학맥도 없이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던 기성연극계에 큰 파문을 일으키며 쌓아올린 그의 이력은 실로 눈부시다.

그가 연출한 작품은 늘 그만의 색깔로 관객을 매료시켰다.  ‘오구-죽음의 형식’은 무려 270만 관객을 기록하며 14년째 장기 공연을 해오고 있다.

90년대 한국 실험 연극의 기수로 등장한 그의 작품은 독창적이면서도 한국적인 정서가 짙게 깔려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한때 성악도를 꿈꾸었다는 그는 신문기자로 활동하던 80년대 시대상황은 급변하는데 몸으로 실천하지 못하는 관념적 글쓰기에 회의가 들어 혼자 하는 글쓰기 보다는 함께 어울려 살아야겠다는 실천의 방법으로 연극을 택했다.

혼자 있을 때는 사색을 즐기지만 일단 사람들과 어울리면 사색을 구체화 시켜 행동으로 옮기려는 성격이 연극과 딱 맞아 떨어져 인생유턴을 한 것이다. 

“70년대 연극하면 집에서도 사회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천덕꾸러기 신세였죠. 그래서 신문기자 하면서도 연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다가 86년에 사표내고 연희단거리패와 가마골 소극장을 창설, 개관하여 지금까지 이끌어오고 있습니다.”

부침이 극심한 연극계에서 이례적으로 연희단거리패가 지금까지 사라지지 않고 18년째 연극을 계속해오고 있는 원동력은 바로 그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강력한 집단성이다. 99년부터는 밀양연극촌에서 단원들이 같이 먹고 같이 생활해오고 있다.

이 감독에 의해 극작, 연출, 연기훈련 등 전 과정이 주도되는 연희단거리패 연극은 88년부터 서울 공연을 단행, 산씻김, 오구, 바보각시, 어머니, 햄릿 등으로 한국 연극의 새로운 공연양식 흐름을 주도하고 98년 ‘느낌, 극락같은’으로 서울국제연극제 작품상, 희곡상, 연출상, 무대미술상, 신인연기상을 휩쓸면서 한국 현대연극의 중심극단으로 자리 잡았다.

▲     ©피플코리아
1990년부터 해외공연을 단행, 한국 연극을 해외에 소개해온 연희단거리패는 언제든지 공연 가능한 고정 레퍼토리를 확보하고 있으므로 연중무휴의 국내외 공연이 가능한 극단이다.

‘어머니’, ‘햄릿’ 등은 초연 이후 고정 레퍼토리로 정착되면서 공연이 계속되고 있으면서 동시에 협연형태의 대극장 공연을 지속적으로 전개해왔다.

연희단거리패는 서울 대학로에 게릴라극장과 부산에 가마골소극장을 확보하고 60명의 단원을 거느린 국내 최대 극단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는 앞으로도 계속 연희단거리패 단원들과 생사고락을 함께 할 생각이다.

이 감독은 단원들과 친하게 지내지만 연극 작업을 할 때만큼은 서슬이 퍼럴 정도로 엄격하다고 털어놓는다.

가족으로는 부산에서 교사로 근무하는 아내와 두 딸이 있다. 쉬는 주말엔 대부분 연희단거리패가 있는 밀양 연극촌에 가있고 부산 집에는 한달에 한두 번 가는 것이 고작이다.

요즘같은 난세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하루가 다르게 요동치듯 급변하는 현 시대를 그는 고정관념이 바뀌는 난세, 격동기라고 규정한다.

“난세일수록 부화뇌동하기 쉬운데 이런 때일수록 이치에 맞게 행동하고, 삶의 규칙, 체면을 스스로 지켜야 버틸 수 있지 이리 저리 흔들리는 세상에 같이 흔들리면 안 되지요.”

▲     ©피플코리아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 등 외형으로 사람을 평가하던 시대는 이제 갔다. 신용불량자가 쏟아지고 사회제도 자체가 붕괴되는 상황에서 가장 큰 재산은 역시 지위나 돈이 아니라 사람이라고 그는 말한다.  

“혼돈의 시대일수록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은 살아남는데 사회적 지위나 돈에 매달린 사람이 돈이나 지위를 잃으면 살아갈 수가 없지요.”

제도적, 근본적인 것을 워낙 싫어하다 보니 무정부주의자라는 소리까지 듣는다는 그는 스스로를 이상주의자라고 말한다.

“현실자체가 제게는 악몽이고 혼돈입니다. 제도적이고 관습으로 굳어진 낡은 현실을 파괴하고 새로운 이상을 꿈꾸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지요.”

문화 연극 이상주의를 실현 할 수 있는 공동체로 그는 밀양연극촌을 꼽는다. 그는 밀양연극촌을 자신이 꿈꾸는 문화 이상촌으로 만들 계획이다.

밀양연극촌은 연극제작, 교육, 포럼 등 다양한 연극 운동을 전개해 나가는 종합예술촌으로  야외극장, 실내 스튜디오극장, 게릴라 천막극장, 대연습실, 무대 제작실, 숙소, 춤꾼 하보경 기념관 등을 마련하여 지속적으로 새로운 연극 공연 활동과 연구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

서울과 부산에서 활동하던 60여명의 프로단원들이 99년 9월 입촌하여 그동안 전국 각지에서 여러가지 연극 작업을 해왔고 2000년 6월부터는 500석 규모의 야외무대와 실내 스튜디오 극장을 마련하여, 주말공연으로 밀양시민과의 만남을 실천하였다.

2001년부터 개최한 '밀양공연예술축제'는 젊은 연극인들의 만남의 장을 열어주었으며 스튜디오극장, 숲의 극장을 비롯하여 밀양실내체육회관에서도 꾸준히 공연을 올리면서 밀양의 자랑이자 경남의 명물로 자리 잡고 있다.

▲     ©피플코리아
제도권 안으로 들어온 ‘연희단 거리패의 대장’. 예술감독을 맡은 이후 그는 국립극단 운영에 일대 혁신을 불러일으켰다.

가장 큰 변화는 기존의 수직적 구조를 수평적 구조로 바꿔 국립극단 내부 갈등을 모두 없앤 것이다. 총책임을 맡으면서 군림하지 않고 작품 위주로 시스템을 바꾼 결과다.

극단을 이끌면서 겪는 어려움으로 그는 예산 문제와 짧은 공연 준비기간을 꼽는다. 예산이 적다보니 고민 끝에 한편 비용으로 두 편을 만들기로 했다. 올해 제작하는 작품만도 8~9편에 이른다.

그동안 ‘뇌우’와 ‘인생차압’ 등을 선보였고 현재 레퍼토리 복원사업으로 인간 냄새 물씬 나는 서커스 악극 ‘곡예사의 첫사랑’을 공연중이다.

이번 공연은 국립극장과 경기도문화의전당이 기획하고 연희단거리패와 동춘곡예예술단이 함께 만든 작품으로 동춘곡예예술단의 기상천외한 공중곡예, 마술, 차력 등 20여 종의 서커스와, 옛 악극 스타들의 만담, 주옥같은 옛 노래들이 장장 2시간 30분 동안 펼쳐진다.

옛 유고슬라비아의 작가 류보미르 시모비치 원작 ‘유랑극단’을 원작으로 해 극작가 박용재가 극본을 쓰고 다시 박용재, 박현철, 이윤택 3명이 공동구성한 작품이다. 이윤택 연출.

한여름 밤 탁 트인 남산 기슭의 야외 공간에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세대 모든 계층이 함께 울고 웃고 박수치며 볼 수 있는 곡예사의 첫사랑은 8월 29일까지 국립국장 하늘극장(오후 8시)에서, 9월 8~29일에는 경기도 문화의전당내 야외 천막극장(오후 7시30분)에서 공연된다.

1960년 4월 서울 용산시장 언덕배기에 가설천막을 친 유랑극단 ‘삼천리곡마단’에서 벌어지는 2박3일간의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으로 펼쳐지는 이 공연은 ‘대중극으로서의 예술’, ‘예술로서의 대중극’을 지향한다.

“연극은 10대 20대만 보는 게 아니고 30~50대 이상도 볼 수 있는 것, 연극은 어렵고 재미없는 것이 아니라 재밌는 볼거리 충분히 보여주면서도 할말은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     ©피플코리아
곡예사의 첫사랑에 4.19를 담은 건 이유가 있다. 4.19 당시에 민주화는 이루어졌지만 물적 기반이 없어서 결국은 군부 정권에 넘어가고 말았다.

그는 지금도 당시 상황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본다. 상당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는 하지만 경제파탄, 국제적 고립, 국민간의 불신이 중첩되면 결국 지금도 4.19사회와 마찬가지로 붕괴될지 모른다는 것이다.

민주화는 이룬다 하더라도 국가로써의 정체성을 확보하지 않으면 한반도를 둘러싸고 급변하는 세계정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종속의 신식민 시대가 올지 모른다고 그는 경고한다.

그의 이름 앞에는 문화게릴라라는 꼬리표가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학연 지연 없는 사람이 설치고 다닌다고 해서 제도권 사람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는다.

“예술감독 되니까 이제는 저를 보고 제도권 사령관이라고 부르더군요. 하지만 전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어요. 여기서 영원히 출세할 사람도 아니고 다만 한국 연극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 왔을 뿐입니다.”  

이윤택이 말하는 대중문화, 대중연극은 무엇인가. 그가 말하는 대중은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대중을 말한다.

“글을 읽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들인데도 별 생각 없이 사는 대중들이 많아요. 그런 대중들을 깨우쳐 끊임없이 생각하고 판단하도록 연극을 통해 시도하는 것이 바로 제가 말하는 대중문화 대중연극이지요.”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은 다양한 삶의 이력들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사고의 유연성을 가져다주었고 그것이 결국 지금 하고 있는 연극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말한다.

그가 연출한 작품은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국립극단에서 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계속된다. 9월에는 코엑스 아트홀 개관기념으로 손숙씨 주연의 ‘어머니’가, 10월에는 동숭홀에서 강부자씨 주연의 ‘오구’가 공연될 예정이다. 

연극에 쏟는 그의 열정과 에너지는 끝이 없어 보인다. 앞으로의 계획을 물으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사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죽을 때 남길 유언으로 고온(Go On)이라고 써놨어요. 제가 죽더라도 제가 해온 일련의 작업들이 중단되지 않고 남은 사람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 꿈이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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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korea.co.kr>

2004년 08월18일 09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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