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인터뷰] (85) 육지에서 말고기 식당 운영하는 최원길
54년 말띠 인생이 말고기 식당을 차렸다? 대천 해수욕장이 있는 보령에서 말고기 식당을 운영하는 최원길(49) 사장을 본 첫인상은 마르지 않는 샘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현실에 짓눌려 어느 날 갑자기 삶이 버겁다는 생각이 들 때 나도 뭔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주는 ‘엔돌핀’ 같은 사람이라고나 할까.
말이 필요 없다. 그를 보면 왠지 모르게 힘이 솟는다.
한없이 순수하고 선해 보이는 눈빛과 검게 그을린 구릿빛 얼굴에서 열심히 살아온 땀 냄새가 진하게 느껴진다.
그는 인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렇다고 유명세를 타는 거창한 사람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 정반대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고향지킴이로 살아오면서 조용히 자기 할일만 죽어라 해온 소시민이다.
온 국민이 힘들어 못살겠다고 아우성치던 IMF 위기도 그렇게 이겨냈고, IMF 시절보다 몇배나 더 힘들고 어렵다는 지금도 그는 자신 앞에 닥쳐온 총체적 불황을 이겨내기 위해 조용히,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그가 보령에서 말고기 식당을 차린 것도 따지고 보면 불황을 이겨내기 위한 그의 치밀한 생존전략이다.
‘구멍가게’ 종업원으로 출발하여 벽돌을 쌓아 올리듯 차근차근 자신의 꿈을 키워온 그는 비록 작은 규모지만 자그마치 4개 업체를 거느린 중소기업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보령에서 전기공사 건설업을 13년째 해오고 있는 성실맨. 전기건설업인 ‘성일전기’와 자재 납품업체인 ‘대성산업’ 그리고 아내와 함께 전기자재 판매업인 ‘대일전기’를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교 졸업이 최종학력이라고 당당히 밝히는 그는 충남 보령시 미산면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고향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는 보령 토박이.
미산초등학교를 졸업하고 72년 대천에 나와 전기 자재 판매 종업원 생활을 4년 하다가 우연한 기회에 그 가게를 인수해 사장이 된 특이한 케이스다.
가게 주인이 다른 사업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인수 권유를 받고 ‘새파랗게 젊은 나이’ 22살에 종업원에서 신분이 바뀌어 전기 자재 판매 가게 주인이 되었다. 사장한테 그만큼 신임을 받았다는 증거가 아니겠는가.
가게 인수자금은 고향 마을에서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빌린 돈으로 마련했고, 집에서 농사를 짓던 형이 가게를 도와주었다. 두 평도 안 되는 가게 방에서 2년을 형과 같이 먹고 자고 했다.
당시 그는 전투방위로 하루 24시간을 꼬박 근무하고 이틀을 쉬면서 가게를 운영했다. 부대 근무 할 때는 형이 가게를 운영하고 부대에서 나오면 그가 운영했다.
형이 결혼한 뒤로도 그는 계속 가게에서 생활하다가 2년 후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만난지 5개월 만에 결혼을 했다. 아내도 고향사람.
결혼을 하고 나서 형에게 가게를 하나 내드리고 그의 가게는 아내와 둘이 운영했다.
가게를 운영하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돈을 벌어 대천에 ‘대일’이라는 이름의 가게 다섯 개를 운영하는 것이 소원이었다.
젊은 시절 뭐든지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열심히 뛰다 보니까 장사도 잘됐다. 그리고 어느덧 세월은 흘러 그의 꿈은 이루어졌다.
대일 비닐봉지 공장도 했고, 대일 조명 전시장도 대천에서 최초로 가장 크게 했었다.
그리고 대일 전업사라는 전기설비도 했고, 아내 이름으로 대한상사라는 업체를 차려 전기 판넬 제작도 했다.
원래 하던 대일전기까지 그가 그토록 하고 싶어 하던 다섯 개의 가게를 실제로 운영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막상 해보니 장난이 아니었다. 사람 구하기가 너무 힘들고 인력관리 또한 쉽지 않았다.
조명을 사면 그가 가서 달아줘야 했고, 비닐 포장 공장도 판매를 하려면 시장으로 ‘구루마’를 끌고 직접 나가야 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시간이 모자라고 이 쪽 저 쪽 일을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그는 보령화력발전소 전기자재 납품에도 손을 대게 된다. 정직하게 살아온 덕분에 최원길이라는 이름 하나 믿고 신용으로 거래를 한 것이다.
물건하나 주문을 받으면 칼같이 갖다 주고 지금까지 그렇게 원칙을 지키며 거래를 해왔다.
사업을 하다 보면 거래업체 사람을 상대해야 하는 특수성 때문에 때로는 술 한 잔이라도 마셔야 할 법 하지만 그는 술을 단 한모금도 마시지 못한다.
보령화력에 납품을 하면서 그는 조명가게하고 대일 비닐 포장공장 등 두개를 정리했다. 대일 전업사는 동생한테 관리책임을 맡기고 그는 보령 화력 자재납품에 전적으로 매달렸다.
동생에게 관리를 맡긴 대일 전업사는 93년에 상호변경을 몇 번 해서 지금은 성일전기로 이름이 바뀌었다.
그는 올해에 또 일을 저질렀다. 바로 지금 하고 있는 조랑말 식당을 차린 것이다. 하지만 그가 말고기 식당을 차린 데에는 그의 치밀한 사업 전략이 깔려 있다.
그가 전기자재 납품을 해오던 보령화력에 지난 2001년부터 민영화설이 나돌기 시작하면서 구매나 공사 등 모든 조건이 전자입찰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경쟁을 하게 되면 이겨야 살아남는데 전자입찰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그것이 힘들어졌고, 그래서 그때부터 다른 길을 모색했다. 이것저것 궁리 끝에 제주도에 건너가 아는 분들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들어보고 말고기 식당을 육지에서 하면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1년에 걸쳐 한달에 두 번꼴로 제주도에 내려가 말고기를 취급하는 식당을 다니면서 나름대로 관찰을 해왔다. 그리고 내 땅에 식당을 차리면 경쟁력이 있지 않나 싶어서 지난 2월에 지금의 장소에 말고기 식당을 오픈 했다.
막상 오픈을 했지만 식당 운영에 대한 경험이 부족해서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손님마다 다른 입맛을 맞추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혼자서는 역부족이었다. 그래서 식당을 찾는 손님에게 한 가지씩 문제점을 지적해 달라고 해서 5개월째 접어든 지금까지 하나하나 고쳐나가고 있다.
음식점이 자리를 잡으려면 시간이 걸릴 것으로 그는 생각한다. 그러나 말고기가 사람에게 좋다는 자료들이 많이 나와 있어 장기적으로 볼 때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본다. 그의 설명을 들어보자.
옛날부터 말뼈는 관절이나 신경통에 좋다고 많이 알려져 있다. 말은 잠도 서서자고 생활도 서서 하기 때문에 뼈가 굉장히 강하다 해서 우리 몸에 좋다고 한다.
“말고기는 지방이 가장 적고 고단백질 음식으로 당뇨, 고혈압에 좋다고 해요. 그리고 말기름은 화상을 치료하는데 최고라고 합니다.”
말고기는 다른 육류에 비해 글리코겐 함량이 높아 달콤한 맛이 있고, 단백질 함량도 높아 아미노산의 비율도 떨어지지 않아 품질이 우수하다고 한다. 또한 말고기는 오메가 3계열의 불포화 지방산 함량이 많아 혈중 콜레스테롤을 저하시켜주고, 동맥경화, 고혈압을 비롯한 각종 성인병을 예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배우지 못한 것이 평생 한이 되었다는 최 사장. 사람들이 흔히 말하기를 배움이 첫째라고 하지만 그는 돈 있고 배운 사람한테 무시를 많이 당했기 때문에 그런 점은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름대로 그 소신을 지켜오고 있다. 인간적인 예의나 경우를 지켜서 현실에 맞게 살아가면 그것이 올바른 삶이라고 생각한다.
“최종학력이 초등학교 졸업으로 가방끈이 짧은 제가 사람들을 상대해보면 돈이 있고 배움이 많은 사람에게는 인간대우를 못 받는 사례가 많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사는 한 인간차별은 안하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우리 직원들에게도 그런 점은 철저히 지키고 있습니다.”
한때는 사업이 잘돼 종업원을 50명까지 두었는데 지금은 절반으로 줄였다고 한다. 그만큼 국내경기가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그런대로 경영이 괜찮았는데 올 들어 매출이 크게 줄었다고 털어놓는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났으면 중학교를 들어갔을 텐데 그렇지 못해 진학을 포기했지만 부모님에 대한 원망은 안한다는 효자.
빚에 쪼들리던 아버지가 5년 전에 복막염으로 쓰러지셨는데, 원인은 빚 때문에 생긴 화병이었다. 4남3녀 중 4째인 그는 아버지가 진 빚 7천만 원을 모두 갚아주었다. 부모님에 대한 지극한 효심이 하늘에 닿아 복을 받은 것은 아닐까.
그동안 거래해온 화력 발전소의 납품 시스템이 전자입찰 제도로 바뀌다 보니까 종전방식으로는 일하기가 무척 까다로워졌다. 그러면서 경영도 어려워져 다른 활로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게 바로 지금 하고 있는 말고기 식당. 그러나 아직은 자리를 잡지 못했다.
일주일에 이틀은 산에 가서 약초를 캐는 사람. 친구의 삼촌인 심마니 아저씨를 따라서 지금까지 2년째 산에 다니고 있다.
전에는 단순히 심마니 아저씨를 따라만 다녔는데 식당을 운영하려면 손님을 끌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산에서 산약을 캐다가 약초술을 담아서 식당을 찾는 손님들에게 한잔 드리고 싶어서 일주일에 이틀은 산에 가서 약초를 캐고 운이 좋으면 산삼도 캔다. 산에 가서 산더덕(사삼)을 많이 캐온다는 그는 산삼의 왕으로 불리는 봉삼까지 캐본 경험이 있다고 한다.
옛날과 달리 요즘은 건강에 대해 신경을 많이 쓰는 시대가 되었다. 따라서 그는 일반 소고기와는 달리 말고기는 맛을 위해서 먹기보다는 건강식품으로 가능성이 많다고 본다.
식당사장이기 이전에 기업인. 그가 피부로 체험하는 국내 기업 환경은 매우 안 좋다. 5일제 근무만 해도 그렇다. 공무원으로서는 5일제 근무가 가능하겠지만 영세기업에서는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경영자 입장에서 5일제 근무로는 채산성을 맞출 수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지금 하고 있는 기업을 살려보겠다고 다짐한다. 최선을 다하면 안 될 게 없다고 생각한다. 기업이 아무리 어려워도 지금까지 해온 기업을 포기할 생각은 없다는 그의 말에서 투철한 장인 정신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지만 한번도 좌절해 본적은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배움은 짧지만 몸으로 부딪쳐서 목표로 삼은 것을 이루지 못한 것은 없단다.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식당도 그는 꼭 자리를 잡을 것으로 확신한다.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말고기 식당을 하기 위해서 제주에 직접 조랑말 목장도 차렸다. 제주도에서 잡은 고기가 항공으로 광주까지 와서 거기서 냉동차를 이용해서 잡은 지 몇 시간이면 이곳 식당에 도착한다.
고기의 신선함은 그만큼 보장한다는 그의 설명이다. 제주도에서 아침에 잡은 고기로 이곳 보령의 말고기 식당에서 점심을 먹을 수 있다. 참 편리한 세상이다.
기업을 살리기 위한 투자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대안으로 말고기 음식점을 차렸다는 최원길 사장. 그의 소망은 그가 운영하는 기업도 예전처럼 경영여건이 좋아지고 말고기 음식점도 자리를 잡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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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 김명수기자 www.peoplekorea.co.kr> 2003년 06월22일 09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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