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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자기계발 최고기록 도전자 김길주
2011/04/23 00:00
입력 조회수 : 55
도서 집필 22권, 자격증 40여 개, 교육 수료증 90여 개
직장인 자기계발 분야 최고 기록을 지닌 분은 어떤 사람일까? 도대체 얼마나 많은 도전을 하였는지 자못 궁금하였다. 위대한 인간의 가치는 돈이나 명예나 권력 등의 세속적인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자기 탐구를 거쳐 얻어진 말과 사상과 생활의 일치에 있다고 한다. 그의 서재에는 끊임없는 도전의 흔적들이 역력하게 남아있다. 40년간 쓴 메모노트 90여권이 빼곡히 서재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미국의 소설가 나다니엘 호손 (nathaniel hawthorne)이 쓴 ‘큰 바위 얼굴’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는 그를 수락산 귀임봉 아래 그의 서재에서 만나보았다. 그의 도전은 어디까지 계속될 것인가?
-무슨 기록에 도전하였으며 내용은 무엇인가?
▲ 김길주 © 피플코리아
▲자기계발을 지속적으로 꾸준히 계속해 왔다. 그것은 매일 밥을 먹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내 일상이었다. 도서 집필 22권, 취득한 자격증 40여 개, 교육 수료증 90여 개, 정부나 단체의 공모에 도전하여 받은 상 30여 개. 또 1971년부터 쓴 ‘메모 노트’가 90여 권쯤 된다. 메모노트는 주로 신문, 도서, 교육 자료나 단상들을 모아둔 자료집이다. 그리고 자작시는 300여 편 썼다. 이런 것들이 모아져서 2010년 2월에 사단법인 한국기록원으로부터 <직장인 자기 계발 분야 대한민국 최고기록> 인증서를 받았다.
-공부와 자기계발에 매진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나의 인생 멘토는 우리어머니다. 어머니 별명은 ‘강철 여인’이었다. 어머니를 따라 배운 점이 많고, 또 어린 날 너무 가난하고 초라하게 살았기 때문에 헝그리정신이 몸에 배어 있었다.
중소도시에 있는 우리 집은 지대가 높은 달동네였다. 우리 어려서는 아랫동네 입구에 수도가 하나 있었다. 그 수돗물도 하루에 두 차례 제한급수를 하였다. 항상 물이 부족했던 시절이다. 쉽게 이야기하면 1년에 목욕을 몇 번 못했던 시절이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인데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내 몸에 맞는 물지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손이 없는 집에서 내가 물지게를 져야 했다. 초등학교 4학년이 물지게를 졌으니 물동이가 땅에 닿아 질질 끌렸다. 중학교에 들어가서부터는 아예 학비를 벌기위해 돼지를 키웠다. 매일 30리가 넘는 학교 길을 걸어와 다시 짬밥 통을 지고 시내 식당을 돌며 짬밥을 모아와 돼지를 키워서 학비에 보탰다.
이런 어려운 환경 속에서 자라다보니 어린나이에 철이 들었다. 아마 초등학교 4학년쯤부터 ‘내가 우리 집안을 살려야 한다.’는 인생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참 우스운 이야기이지만...
또 다른 동기가 있다면 그것은 성격이다. 나는 내성적인 사람이다. 내성적인 사람은 생각이 깊고 인내심이 강하고 행동이 바르며 주로 앉아서 하는 사무직에 잘 맞는다. 그래서 운동이나 과학 예술 등 동적(動的)인 생활보다 인문 사회 쪽에 관심이 많고 독서, 서예, 글쓰기 등 주로 정적(靜的)인 활동을 좋아한다. 학습하기에 좋은 성격이다. 그런 성격과 행동이 잘 맞아 떨어져서 학습력을 높였던 것 같다.
-농협
경영
인(지점장, 상무, 전무) 생활을 하다 보면 많이 바빴을 텐데, 공부는 어떻게 했나.
▲ 주로 저녁 시간에는 학교나 학원으로 뛰어 다녔고, 출, 퇴근 시간을 토막시간으로 많이 이용했다. 그리고 주로 토요일 일요일을 독서실에서 많이 보냈다. 과거에는 고시원 같은 곳도 없었다. 그래서 유료도서관을 많이 이용했다. 근 20년 이상 휴가를 가본 적이 없고 휴가는 자격증시험 준비하는데 나누어서 사용했다.
지금은 본인의 의지만 있다면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은 매우 좋아졌다. 시설 좋은 무료도서관도 많아졌고, 인터넷 동영상 교육방송 등 학습 장비들이 너무 좋아졌다.
몇 년 전부터 중요한 자격시험 준비를 할 때에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고시원에서 잠을 자며 출, 퇴근을 하기도 했다. 경영학 박사학위를 취득할 때도 마지막 논문 쓰는 과정에서 몸과 마음의 고생을 많이 했다.
-농협에서 최근까지 근무하셨는데 직장에서 근무한 이야기를 해 달라.
▲농협에서 40년을 근무했다. 요즘 같은 조기퇴직시대에 지루할 정도로 오래 근무했다. 농협이 좋은 직장인 줄은 알고 있었지만 직장을 나와 보니 뼈저리게 느낀다. 나는 상고를 졸업하고 열여덟 살에 농협중앙회에 입사하였다. 그때는 은행직원의 인기가 짱 이었다. 고관대작 집안의 예비신랑감 1위가 판검사와 의사 그리고 은행대리였던 시절이다.
노무현대통령은 자서전에서 자신이 농협중앙회 입사시험에 떨어졌다는 글을 썼다. 옛날에는 은행 들어
가기
가 쉽지도 않았고 그만큼 인기도 높았다.
가난하고 못나고 약하고 부족한 상황에서 나의 취업은 모든 상황을 역전시켰다. 부모보다 더 든든한 직장의 배경이 생긴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충성스럽게 일했다. 너무너무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며 일했다. 그 당시는 통금이 있던 시절인데 매일 아침 9시에 출근하여 매일 밤 11시 반에 퇴근을 했다. 누가 시켜서 했다면 그렇게 못했을 것이다. 그러다보니 시골 촌놈을 중앙회본부로 추천해 주는 선배들이 나타났다.
선배들 덕분에 과분하게도 중앙회신용보증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그리고 28세에 서울지역농협 점포장으로 승진하였다. 직원시절이 열심히 일하던 시절이었다면 책임자시절은 나를 관리하는 시절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왜냐하면 책임자는 실력과 인격과 리더십을 고루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 쓰는 것과 자격증이 많은데 처음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무엇인지?
▲나는 자기계발에 일찍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이 업무와 관련된 책을 한 권 쓰고 싶었다. 성공한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어 하는 자산 1호가 자기서적이라고 들었다. 무엇에 대해서 쓸까를 고민하다. 그 당시 일본농협에 대한 관심이 워낙 높던 때라 일본농협에 대해서 쓰고 싶었다. 그래서 미리 일본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고 1985년 일본연수를 갈 기회가 생겼다. 일본을 다녀와서 <일본농협제도와 운영에 관한 연구>라는 책을 썼다. ‘이 책이 당신이 쓴 게 맞느냐?’ 등 당시 대단한 반응을 일으켰다.
책 쓰는 일은 중독과 같았다. 처음 쓸 때는 너무 힘들어서 다시는 책을 쓰지 않을 것 같았는데 얼마간 시간이 지나니 또 책이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책 쓰기에 발목을 담그기 시작했다. 그 후로 여러 권의 책을 썼다.
그 다음은 자격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금융 및
경영관련
자격증 다섯 개만 취득하려고 했다. 그런데 다섯 개를 취득하고 나니 욕심이 생겼다. 마치 풍선처럼 욕심이 커져갔다. 그래서 많은 자격증을 취득하였다. 그 후로 학위공부를 하였다. 석사,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학습은 내 삶의 일부였다. 그냥 편한 생활이었다. 남들은 힘들어 하지만 나는 그렇게 살아 왔으니 노는 것보다 오히려 그게 즐거웠다.
혹자들은 그러면 업무는 언제 했느냐고 물을지 모른다. 업무는 물론 낮에 근무시간에 했다.
그냥 한 게 아니라 1987년 서울농협 첫 종합업적평가에서 60여개 점포 중 1위를 차지했다. 그래서 지점직원들이 모두 100%의 특별상여금을 받았다. 당시는 대단한 반응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그 후로도 총 다섯 번이나 1위를 달성했다. 아마 최고기록일 것이다.
-이렇게 바쁘게 사셨으면 분명 잃어버린 게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매우 내성적인 사람이다. 남 앞에서 숫기가 없다. 쉽게 말해 까불고 놀 줄 모른다. 그냥 점잖 빼는 새침때기다. 이것은 성격의 문제이니 노력하면 조금은 고쳐지겠지만 근본은 변하지 않는다.
솔직히 인간관계를 맺을 사적인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직원들에게는 간섭을 줄이고 행동으로 솔선수범했다. 특별히 끈끈한 관계를 맺거나 대중적으로 인기를 얻은 것은 없다. 또 저녁시간에 학교나 학원을 다녔으니 고객접대는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했다. 물론 가족들과의 대화시간도 없었다. 동전의 양면처럼 어찌 보면 놀 줄도 모르는 바보처럼 산 것이고, 나 자신을 일으켜 세우기 위해 없는 시간을 쪼개가며 남보다 두 배 세 배 더 열심히 산 것으로 볼 수 있다.
-직장 내 주변 사람들은 이러한 자기계발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장은 선배, 동료, 후배가 공존하는 조직이다. 그중 이해관계에 따라 시선도 달라진다. 나와
경쟁관계
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객관적으로 볼 것이고 경쟁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주관적으로 평가할 것이다. 누가 어찌 보든 자기계발이 나쁜 짓은 아니다. 불량한 짓도 아니고 야비한 짓도 아니다. 직장 조직 속으로 들어가 보면 불량하고 야비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하나은행 초대은행장을 지내신 윤병철 행장은 은행원들의 자기계발을 독려하고 철저하게 관리하신 분이다. 30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어떠한가? 100년 은행을 자랑하던 한일, 조흥, 상업은행 등 많은 은행들은 사라졌다. 후발 하나은행은 지금도 잘 나가고 있다.
자기계발은 자신의 성장발전에도 좋지만 조직의 성장발전에도 매우 좋은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업무개선과 고객서비스의 질이 향상된다는 점이다.
나도 주변에서 ‘김길주는 일은 안하고 자기계발만 한다.’는 악의적인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내가 직접들은 적은 한 번도 없고 박쥐처럼 뒤에 숨어서 한 마디씩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었다. 지금 그런 사람들은 잘 되고 있을까? 아마 이 글을 여러 사람들이 읽을 텐데 그들은 딱 양아치 신세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나 좋은 점을 벤치마킹하고 동기부여 받는 사람들은 나날이 새로워지고 있을 것이다.
-소중히 여기거나 특기할 만한 이력은?
▲남들에게 나름대로 인정받은 것이 있다. 그것은 ‘정도맨’ ‘기획력의 천재’ ‘글 잘 쓰는 사람’ ‘공부하는 사람’ 등 이다.
개인
적으로 특이한 이력은 28세에 농협 최연소 점포장을 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내가 점포장으로 가니 부하직원들의 1/3 정도가 나보다 나이가 많거나 비슷한 또래였다. 이 후
경영자
생활 30년을 쭉 그런 환경에서 살았다. 그러니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을 것이고 감회도 새롭다. 또 다른 것은 33세에 책을 쓴 것이다. 아마 이것도 농협 최연소 도서발행인일 것이다. 또 시인이 된 것도 특이 할만하다. 나보다 남들이 더 인정해 주니까. 또 정부의 공모에서 채택되어 큰 상을 받은 것도 자랑스럽다. 국가생산성대상, 국가품질경영상은 ‘품질경영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미국의 말콤 볼드리지상과 같은 기준으로 평가하여 주는 상인데 유공자부문에서 수상의 영광을 갖게 되었다.
자랑스런농협인 상은 농협 금메달 상으로서 단 한명만 시상하는 상인데 2002년 전무시절,
경영혁신
과 업적향상에 기여한 공로로 수상하게 되었다. 서울직장인상 대상, 신지식인우수상도 모두 공모를 통해 받은 상들이다. 그래서 상에 대해서는 자신감도 있고 자부심도 있다. 그밖에 경영학박사, 한국 신지식인, 한국최고 기록보유자, 대학외래교수 등도 농협직원 중에서는 거의 없는 특이한 이력들이다.
내가 남들보다 이룬 것이 있다면 그것은 1~2년의 노력으로 된 것이 아니고 40년간 이어져 온 계속의 힘으로 이룬 것들이다.
-여러 자격증과 수료증이 많던데 투자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배우는 비용은 아끼지 않고 썼다. 우선 우리 집을 보면 알겠지만 책이 많다. 한 5,000권 쯤 될 것이다. 한 권에 만원씩만 해도 5천만 원이다. 아마 버린 책도 이만큼은 버렸을 것이다. 또 자격증 취득도 비용이 많이 든다. 쉬운 자격증도 개인이 독학해서는 붙지 못한다. 학원을 다녀야 시간과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 30여개의 자격증에 평균 50만원씩만 계산하면 얼마나 될까? 1천 5백만 원이다. 거기에 석사, 박사과정의 수업료가 얼마나 비싼가? 아- 생각나는 부분이 있다. 박사학위에 도전할 때 일이다. 내가 아는 어느 박사께서 절대 박사학위 공부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그 돈으로 지금 땅을 사놓으라고 했다. 그러면 그게 훨씬 높은 기대수익을 가져다 줄 것이라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박사학위에 도전하였다. 또 7 habits, 카네기리더십과정 등 고가의 교육을 많이 수강하였다. 아마 교육비로 들어간 돈도 2천만 원은 더 들었을 것이다. 이것저것 합하면 교육비로 지출한 돈이 약 2억 원 정도는 될 것이다. 교육의 결과가 곧 바로 소득으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내가 좋아서 도전하고 좋아서 수강한 것들이니 후회는 없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해 달라.
▲부모님은 시골에 살고 계신다. 서울과 시골을 왔다 갔다 하신다. 나는 8남매의 맏이로 태어났는데 어려서 주위 어른들로부터 맏이는 장가가기 힘들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그래서 장가를 안 갈까도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장가는 갔고 아들만 둘을 두었다.
큰 아이는 일본에서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있고, 작은 얘는 핸드폰부품업체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작은 아들이 먼저 결혼하여 출가시켰다. 그래서 지금은 두 부부만 살고 있다.
아이들 교육에 성공했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아이들이 성장하여 사회생활을 하면서 반듯하고 멋지게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자신의 일들을 착- 착- 알아서 잘 해결하고 리더십도 있고..... 더 지켜봐야 되겠지만 앞으로 기대되는 점이 많다.
나는 가진 것 없고 못난 사람이라 그 틀을 깨기 위해 매사 열심히만 살았지 가족들에게 살갑게 대하지는 못했다. 열심히 공부하며 살았고 그러다보니 곁눈 팔일도 없었고, 나쁜 일을 할 겨를도 없었다. 누구보다 가족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이해도 잘해주고 있다.
아이들이 아버지를 충분히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남들이 못하는 큰 행사장의 주인공이 여러 번 되었으니 마음으로 느낌이 있을 것이다.
코엑스 모라토리움 무대에 두 번 섰다. 세종문화회관 세종홀무대에 세 번 섰다. 63빌딩 대연회장, 힐튼호텔 대연회장, 충무아트 홀, 공무원연수원 등 10여 차례 큰 무대에서 좋은 상을 받았다. 이런 광경을 여러 번 지켜보았다. 또 아버지 책이 나오고, 아버지 시비가 세워지고 이런 현상을 눈으로 보았으니 말은 안 해도 마음의 느낌은 충분히 있을 것이다.
큰 아이는 일본에서 고생하면서 돈을 벌어 한국으로 송금하고 있다. 국내나 외국이나 모두 일자리가 없어 어려운 시기인데 외국에 나가 돈을 벌어오니 분명 애국청년이다. 또 돈에 대한 목표가 강하다. 아버지생활이 돈에 무관심해서 그런지 일찍이 돈에 대한 자립심이 강하다. 참 착하고 좋은 리더감이다.
아내는 평범하고 전형적인
가정
주부다. 성격은 나와 비슷한 내성적이다. 서로 성격이 비슷해서 서로를 잘 이해하면서 살고 있다.
-혹시 지금 도전하여 쓰는 책이 있는지 궁금하다.
▲책의 가칭 제목은 <continue - 모든 성과는 계속에서 나온다.>이다. 주요 내용은 3차원 성공공식 s=tccm(성공= 타깃+계속+창의+큰마음)을 담고 있다. 핵심내용은 우리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올바른 방향과 목표를 설정해야 하고, 그것을 향해 계속 도전해야 하며, 특히 창의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원칙중심의 큰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내용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많이 회자되고 있지만 꿈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계속 도전하는 열정이고 에너지이다. 세상의 모든 성과는 계속으로부터 나온다. 그 믿음을 세상에 심어서 국민성공시대의 성공교과서를 만들고 싶다. 이 책을 꿈꾸는 자에게는 성공지침서가 되고 직장인에게는 동기부여서가 되며, 젊은이에게는 희망보고서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썼다. 녹슬어 사라지는 인생이 아닌, 닳아 없어지는 인생을 살고 싶은 사람의 성공드라마이다.
-몇 권의 시집을 내었는데 가장 아끼는 시가 있다면 무엇인가?
▲아파트 입구에서 수락산 귀임봉으로 오르는 길목에
가로
공원이 있다. 그곳에 ‘그리움 있기에’라는 내 시비(詩碑)가 세워져 있다. 내가 쓴 글 중에 애착이 가는 시가 몇 편 있지만 아무래도 그 작품을 자랑하고 싶다.
그리움 있기에
- 김길주
그리움을 묻어 둔 곳이
고향이라면
내 마음 머무는 곳에
그리움 하나 묻고 싶다
날마다 날마다
새소리 잎새이는 소리 듣고
철 따라 철 따라
꽃 가슴을 사랑할 수 있기에
행복한 날
수락산의 아침이 열리면
꿈꾸던 이슬은 깨어나고
하늘이 정답고 푸른 날엔
산까치처럼 긴 나래 펼치리
초록 바람이
어슬한 달빛을 감싸면
별같이 고운 미소로
달디단 소망을 안고
그대 곁으로 다가오리
그대 향한
그리움 있기에
-은퇴이후에 도전하는 게 있다면 무엇인지?
▲앞으로 도전하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우선 이번에 출간 될 <continue - 모든 성과는 계속에서 나온다.>책이 많은 사람이 찾으면 좋겠다. 내가 쓴 시가 국정교과서에 한편 쯤 등재 되었으면 하는 욕심이 든다. 새로 시작한 셀프리더십연구소도 성공적으로 운영되면 좋겠다.
셀프리더십연구소사업은 남들의 성공을 돕는 지식서비스사업이니 서로 윈- 윈- 이
가능
한 분야이다. 제1막에서 성공처럼 제2막에서도 성공하고 싶다. 그리하여 시니어 성공신화를 책으로 써보고 싶다. 또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한국의 큰바위 얼굴이 되고 싶다.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한국의 큰바위 얼굴이 되도록 적극 돕고 싶다.
-평소 좋아하는 글귀나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내가 좋아하는 단어는 ‘계속 도전’이다. 내가 그렇게 살아왔고 삶을 통해서 믿음을 갖기 때문이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는 인디언들처럼 도전은 계속되어야 한다. 한두 번으로 끝나는 도전은 의미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글귀는 ‘오랫동안 변치 않는 꿈은 마침내 보석이 된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유혹은 성공이다,’ 라는 말들이다. 후배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은 우리 인생은 재방송이 안 되는 일회성이다. 그래서 의미 있고 보람되게 살아야 한다. 인생은 무엇이 되기보다 어떻게 살았느냐가 중요한 이슈가 아닐까? 사회에 나와 보니 직장생활의 지위와 권한은 진정한 성공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성공은 내 사업으로 당당히 일어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돈 벌어서 종업원 봉급도 주고, 사업을 키워서 성공사례도 만들고, 사회에 공헌도 하고 이것이 진정한 성공이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도전은 아름다운 것이다.
nanabigtree@gmail.com
*필자/저서로 “생생라이브 경제학"(2008.12) "경제 초보자가 꼭 알아야 할 경제지식 105"(원앤원북스 2009.10) "봄에게 길을 묻다"(시집 2011.1) 등이 있다. 시인, 경영학 박사로서 국내 최고 도전자를 인터뷰하여 글을 쓰고 있다.
[
조영관
nanabigtree@gmail.com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hsshss292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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