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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순찬 굿피플] 그늘진 곳에 긍정에너지 퍼뜨리는 실버밴드 여성 드러머 조병진씨
2010/03/11 00:00
입력 조회수 : 62
4남매 키우고 스틱 잡은 늦깎이 희망 전령사 - "인생은 칠십부터!"
칠순 넘은 나이, 검은 머리가 파뿌리 된 지 오래지만 여전히 그녀는 미인이다. 세월의 갖은 고초를 겪은 얼굴치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곱고 평온하며 인자하다. 그런 그녀가 왜 드럼을 치게 되었을까.
얼핏 보면 아직도 철없고 욕심 많은 아이 모습인데, 가만히 눈망울 속을 들여다보면 실핏줄 너머로 강물이 흐르고 산맥이 꿈틀거린다.
실버(Silver) 드러머 조병진 씨. 일흔 한 살(1939년생)의 꽉 찬(滿) 나이지만 그녀의 얼굴엔 젊은이보다도 더 뜨거운 긍정 에너지로 충만해 있다.
▲ 4남매를 키운 늦깎이 드러머 조병진씨가 양평 연습실을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피플코리아 가순찬 사진
기자
: 언제부터 드럼을 치셨나요?
조병진
: 6.25 난리를 겪고서 충주여고 다니던 시절부터 교내 밴드부로 활동했다.
기자
: 전쟁 직후인데 밴드부가 제대로 가동되었나요?
조병진
: 당시는 학교 다닌다는 개념조차 모호한 시절이었다. 학도병 훈련 시키려면
맨 앞에 밴드부가 있어야 했는데 무용담당 선생님이 나를 밴드부원으로
지목하셨다. 그때부터 자연스럽게 악기와 친해지게 됐다.
기자
: 명문여고 출신이신데, 6.25 전쟁을 어떻게 기억하십니까?
조병진
: 아버지는 경찰관이셨다. 붉은 완장을 두른 사람들과 서로 죽이고 죽임 당하
는
끔찍한 시절을 겪었다. 어머니는 땅굴 속에 피신해 있었는데 그때의
충격으로 병석에 누워계시다 결국 돌아가셨다.
기자
: (벽에 걸린 초상화를 가리키며) 저 분이 바로 어머님이신가요?
조병진
: 내 어머니를 떠올릴 때마다 가슴이 찢어진다. 어머니는 나를 ‘이화전문’에
보내려고 입학 때 쓸 명주필목을 곱게 접어서 간직해 두셨던 분이다.
밴드 화음에 설움 녹이고, 드럼 스틱에 열정 쏟아 때린다
▲ 인고의 세월이 밴 부친과 모친의 초상화 ©피플코리아 가순찬 사진
6.25 경험담을 쏟아내는 동안 조병진씨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다. 충주경찰서 경찰관이었던 아버지는 포위된 학교 운동장에서 누군가가 받쳐준 등을 밟고 담장을 뛰어넘어 극적으로 탈출할 수 있었다. 등을 내준 이는 아버지와 절친했던 친구였다고 한다. 친구가 받쳐준 등허리 덕분에 날아오는 총탄을 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었던 것.
그녀는 비극적인 역사의 중심에서 맞닥뜨려야했던 설움과 고초를 언젠가는 악기 소리와 장단으로 토해내기 위해 한시도 악보를 손에서 떼지 않았다.
‘인생 칠십부터’라는 말은 조병진씨에게 딱 맞아떨어지는 말이다. 이순을 훌쩍 넘기고 종심(從心)에 이른 그녀가, 바로 이 순간 백발을 휘날리며 신명나게 드럼을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이 그걸 대신해준다. 그녀가 드럼에 몰입하는 동안 기자는 시종 눈과 귀를 의심해야 했다. 취미 삼아 치는 실력이 아니다. 고양시 호수실버밴드의 핵심 멤버로 활약하고 있는 그녀다.
기자
: 어떤 분들과 함께 활동하고 계신가
요?
조병진
: 일주일에 두 번씩 모여서 연습
을
하고 공연을 준비하는데,
호수실
버밴드의
단장님은 해군
군악대
출신으로 트럼펫을 분다.
젊은 시
절 방송국에서 일했던
분
이 키보
드를 맡고, 평생 음악에만
빠져
살아오신 분이 작곡을, 최연
장자
인
87세 할아버지는 베이스
기타
를 친다. 모두 프로들인데 나
만 아마추어 출신이다. 게다가
다
른 멤버들은 모두 명문대학에
서
음악을 전공한 막강 실력파들
이다.
분위기에 적응하기까지
마음고생도 많이 했다. 피나는 연
습을 통해 어려움을 잊고자 더 열
심히 노
력했다.
기자
: (경기도 양평에서) 고양시까
지 매
번 여섯 시간 왕복하는 일이
힘들진 않으
세
요?
조병진
: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라 힘들진
않다. 삶에 활력소가 되고 성취감
도 생긴
다. 실버밴드는 불우한
이웃이 있는 시설 그리고 여학교,
전국 곳곳의
복
지센터에서 공연 섭
외가 많이 들어온다. 가는 곳마다 오히려 활력을 충전받고 오
니 더 보람있다.
기자
: 활력을 받아오신다뇨?
조병진
: 그 분들과 감정을 교감하며 어울리다 보면 엄청난 에너지가 전해져오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내 삶의 활력소다. 경험해본 이라면 안다.
칠순은 이치에 어긋남 없이 솔직해지는 나이
▲스틱을 잡은 그녀는 늘 이웃에게 사랑을 전하고 꿈을 연주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 피플코리아 가순찬 사진
실제로 어떤 양로원에 공연갔을 때의 일이다. 연주를 마치고 서로 한 분씩 마주앉아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는데 상대편 어르신이 자신의 손을 와락 잡으며 “당신도 나이가 있는데 나를 위해 이렇게 와 줘서 고맙다. 우리 영감님이 살아있다면……“ 하고는 연신 눈물을 흘렸다.
어르신의 남편은 개척교회 목사로 외롭게 일했다. 혼신을 바쳐 교회를 일으켜 세우려다가 돌아가셨노라고 했다. 어르신은 결국 사택을 내주고 홀로 나오게 됐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어서 양로원에 들어왔다고 했다. 자신들의 뒷바라지보다 교회에 더 매달린 부모님을 원망스러워한 나머지 자식들마저 거들떠도 보지 않고 돌아서더라는 것. 억울하고 애통한 사연이었다. 조병진씨는 복받치는 설움에 어르신을 부둥켜 안고 펑펑 울었다.
▲ 호수실버밴드 단원들. 모두 막강한 실력파들이다.
앞줄 모자쓴 이가 조병진씨.
사람은 예순이 넘으면 자신의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게 되면서 욕심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있고, 지금까지의 생애에서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과 회한을 발견한다고 한다. 욕심 때문에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후회를 알게 되면서부터 세상 앞에 더욱 솔직해진다는 것. 그것은 일면 철없음이면서 인간 본연의 순수함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어르신들이 70에 이르러서도 어린아이의 천진함을 지니면서도 도리에는 어긋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에 솔직하면서도 살아온 길에 한 점 부끄러움 없는 경지, 그것이 바로 종심(從心)인 것이다.
조병진씨가 활동중인 호수실버밴드는 최근 유명세를 타고 공연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
지난 달만 해도 고양시 호수노인문화축제에 참가해서 성황리에 공연을 했고, 며칠 전에는 고양시장 취임식에 초대되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지난 2001년 창단 이래 지금껏 수백 차례의 내로라하는 공연과 수상 기록을 세웠다.
꿈을 나누며 행복 퍼뜨리는 아름다운 사람들
▲ 부부는 서로 닮는다고 했던가. 그녀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는 남편이다. 51년을 살아오는 동안 선한 눈매와 미소까지 닮아버렸다. 젊은 시절 6.25 참전(학도병 출신, 국가유공자)으로 인해 부상 입은 후유증과, 방송국 감독(기술PD)으로 활약하면서 무리를 한 탓에 건강이 나빠지긴 했지만 남편의 예전 건강을 되찾도록 각별히 신경쓰는 일도 그녀 몫이다. 경기도 양평으로 거처를 옮긴 이들 부부는 이제 남 부러울 것 없이 행복하다. © 피플코리아 가순찬 사진
▲ 맏아들 종용씨가 곁 사람들과 식솔을 거느리고 양평에 찾아왔다. 집 주변 보수공사에 땀범벅이 된 친구들과 후배는 "시골집에서 삼겹살이나 먹고 오자는 말을 듣고 별 생각 없이 따라왔는데 얼떨결에 코를 뀄다"며 투덜거리기도. 뒷줄 맨 오른쪽 모자쓴 이가 종용씨이고 그의 앞 노란색 스웨터 입은 이가 부인, 그리고 그 옆 녹색 점퍼 입은 남자 아이가 종용씨의 셋째 자녀다. © 피플코리아 가순찬 사진
호수실버밴드를 아끼고 사랑하는 많은 이들이 조병진씨를 비롯해서 멤버들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다. 하지만 조병진씨는
“시간을 철저하게 잘 지키는 것도 건강 유지의 비법”
이라고 했다. 미리미리 계획을 짜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잘 지키다 보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고 했다.
1959년에 결혼한 그녀는 이듬해에 아들을 봤다. 인터뷰 중에 큰 며느리가 들어와 과일 접시를 공손히 내려놓는다.
“우리 큰며느린데 저한테 너무 잘 해서 항상 고마워요.”
“어머님이 더 잘 해주세요. 저흰 늘 신세만 지곤 하죠.”
▲ 형편이 어려운 이웃에게 봉사하는 일은 그녀의 가장 커다란 행복이며 사명이다. 연꽃마을 우수 자원봉사자 메달을 들고 환하게 웃는 그녀가 아름답다.© 피플코리아 가순찬 사진
기자가 묻기도 전에 고부간에 칭찬과 자랑이 정답게 오간다. 4남매 모두 반듯하게 키워서 박사학위를 딴 연구원(첫째), 전업주부(둘째), 광고대행사 기획자(셋째), 방송국 여성 앵커(넷째) 등 우리 사회의 훌륭한 인재로 만들었는데, 에너지경제연구원에 다니는 큰아들 종용씨가 가장 든든한 후원자라고 털어놓았다.
매일 아침 아홉시면 어김없이 전화로 안부를 물어오고, 오늘 연주는 어떠셨는지, 힘들진 않으셨는지, 마치 어머니의 가려운 곳을 찾아내 살금살금 긁어주려는 마음 씀씀이가 고맙다고 했다.
공자가 말한 이순이든 종심이든 결국 헛된 욕심을 버리라는 뜻일 것이다.
스스로가 쌓아온 욕심에 대한 집착도 버리라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스스로의 마음을 솔직하게 해방시키고 나지막이 그 마음에 따르라는 것이다.
실버 드러머 조병진씨가 우리 곁의 수많은 어르신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도 이와 같다. 그녀는 10년 넘도록 비가오나 눈이오나 매주 두 번, 왕복 여섯 시간씩 전철을 타고 고양시와 양평을 오간다. 요즘은 자원봉사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학창시절을 마감하고 세파와 막닥뜨리면서 밴드에 대한 미련과 꿈을 접어야 했지만, 그녀는 강한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악보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희망의 끈을 놓지 않은 것이다. 4남매를 기르는 동안 늘 호주머니에 하모니카라도 넣고 다녔고, 일찍이 이화여대 평생대학원에서 사물놀이 강의를 하던 김덕수씨를 찾아가 장고를 배우며 장단 맞추는 법을 특별 전수받기도 했다.그녀는 치고 때리는 악기건, 부는 악기건, 손가락으로 누르는 악기건 닥치는 대로 가까이 하고자 노력했다.
사랑과 긍정 에너지를 퍼뜨리는 71세의 드러머(Drummer) 조병진씨가 우리 사회의 어르신들에게 드리는 메시지는 어쩌면 가장 소박한 부탁인지도 모른다.
“준비된 자에게는 기회가 꼭 옵니다. 자신이 좋아하는 것, 꼭 하고 싶은 것이 과연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마음이 허락하는대로 실행으로 옮기는 것이죠. 그리고 늘 감사하면서 누군가의 희망이 된다면 최고로 행복한 인생이 아닐까요?”
[
가순찬 기자
ediapr@hanmail.net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hsshss292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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