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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23) 살아있는 차도의 달인 채원화
2006/01/09 00:00
입력 조회수 : 751
살아있는 차도의 달인 채원화. 그 유명한 전통차 반야로(般若露)의 맥을 30년이 넘도록 이어오고 있는 주인공이다. 효당차도본가인 반야로차도문화원 원장님. 쉽게 말해서 수장이자 주인이다.
그는 한국 차도계의 큰별 고 효당스님으로부터 반야로차의 제차비법을 전수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반야로차도문화원은 효당스님의 업적을 기리고 뜻을 이어가는 효당차도본가로서 한국 고유의 전통차도를 중심으로 선차수련, 수식관, 선사들의 어록을 비롯한 유,불,선 고전을 공부하는 곳이다.
반야로차는 반야로차도문화원 효당가 고유의 전통차. 맛과 향이 뛰어난 한국 최고의 정제증차(精製蒸茶)로 꼽힌다. '반야로'라는 차 이름은 효당스님이 직접 지은 것으로 지혜를 의미하는 반야(般若)와 이슬이라는 로(露)를 합쳐 '지혜의 이슬'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효당 최범술 스님은 13세에 경남 사천 다솔사로 출가하여 79년 입적할 때까지 원효 교학 복원과 차선 삼매로 일관한 인물이다. 또한 조국의 독립운동과 건국사업에도 참여했고, 특히 교육사업에도 큰 업적을 남긴 분이다. 47년 해인사 주지가 되었고, 이듬해 5·10선거당시 사천·삼천포에 출마하여 제헌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60년 이후에는 원효교학 및 차도연구에 열정을 쏟았다.
채원화 선생은 효당스님의 수제자이면서 부인. 채선생은 자신에게 가장 큰 축복은 효당스님을 만난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그만큼 그의 인생에서 효당이 끼친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효당스님을 만나기전 그의 삶은 어떠했을까. 중학교때 고향 진주에서 채정복(본명)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로 그의 유명세는 대단했다. 진주사범 병설중학교가 생긴 이래 가장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으니까. 시험만 치면 무조건 전교1등. 저렇게 공부를 잘하는 학생은 처음 보았다면서 선생님들도 그를 신기한 모습으로 바라보곤 했다.
독서광. 활자로 된 것이라면 뭐든지 닥치는 대로 읽었다. 그런데 하루는 문뜩 머리속이 텅 비는 기분이었다. 책을 읽으면 읽는 만큼 머리속에 뭔가 채워져야 하는데 오히려 그 반대로 뭔가 빠져나가는 듯한 묘한 느낌. 감수성이 가장 예민하던 중학교 3학년 어느날 갑자기 갈래머리 천재소녀는 그렇게 삶의 번뇌속으로 빠져 들게 되었다.
그뒤로는 공부가 싫어졌다. 아니 싫어졌다기 보다는 무의미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입시철이 다가오자 학교에서는 온통 개교이래 최고의 수재였던 그의 진로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이미 삶의 회의에 빠져들기 시작한 그는 우여곡절 끝에 진주여고 응시. 선생님들은 당시 전국 공동출제로 치루는 고입시험에서 그에게 전국수석을 기대했다. 진주여고 수석은 따논 당상이라고 생각하고 전국수석을.
마침내 시험일. 스포트라이트를 한몸에 받은 그는 전국 수석도 아니고 학교수석도 아니고 전교2등으로 합격을 한다. 선생님들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눈치였다. 그러나 가장 실망한 사람은 뭐니뭐니 해도 당사자 채정복. 난생처음 수석을 놓친 절망감에 자살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인생 최대의 수치와 모멸감이 들 정도로 깊은 좌절감을 느꼈다.
중3때부터 앓기 시작한 삶의 번뇌에 대한 열병은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더욱 심해졌다. 학교에 재미를 느끼지 못하자 아예 학교 가기가 싫어졌다. 교과서도 없이 건성으로 다니다 아예 장기결석. 학교를 너무 많이 빠지다 보니까 결국은 휴학으로 이어졌고 졸업도 그만큼 늦어졌다.
고등학교때 그는 세상 고민 혼자 다 떠 안은 것처럼 비틀거렸다. 인생은 무엇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그 해답을 찾고 싶어서 그는 처절하게 몸부림 쳤다. 그것은 자신이 스스로에게 던진 화두였다. 얼마나 고민을 했으면 밥도 안넘어가고 불면증까지 걸렸을까.
외삼촌은 번뇌에 빠져 잠들지도 먹지도 못하는 그에게 효당스님을 소개해 주었다. 그는 출가한 외삼촌을 따라 다솔사에 왔으나 그 당시 효당스님은 대학 강의 때문에 부재중이라서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다시한번 다솔사를 찾아갔지만 그때도 효당스님은 만나지 못했다. 그는 친척인 총무스님의 안내로 효당스님의 방을 구경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세월의 흔적이 묻은 낡은 벽지와 수많은 고서 등 옛 물건이 너무나도 깔끔하게 정리된 모습을 보고 새로운 세계를 접하는 듯한 경외로움을 느꼈다.
그의 인생이 바뀌는 사건은 엉뚱하게도 화장실에서 일어났다. 밤에 화장실에 갔다가 휴지 대용으로 쓰이는 원고뭉치를 발견하게 된다. 놀랍게도 그것은 반야심경. 원문과 해설이 한 줄씩 번갈아 서술된 내용을 하나 하나 읽어나가다가 전광석화처럼 번쩍 하고 그의 뇌리를 스치는 글자 한자를 발견한다. 바로 공(空)자. 그 글자를 보는 순간 그토록 끈질기게 그를 괴롭혀온 마음의 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난다.
인생은 완성이 아니라 미완성이라는 것을 마치 득도하듯 거기서 알았다. 완성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나가다가 미완성인채로 죽는 것이 인생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핀셋으로 찍어내듯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직감적으로 오는 공(空)에 대한 파악으로 뜨거운 전율을 느꼈다. 황홀감에 눈물이 펑펑 쏟아졌다. 그는 자신에 대한 화두도 스스로 던졌고, 해답도 그렇게 스스로 풀어냈다.
화장실에서 나오자 마자 그는 집으로 돌아왔다. 끈질기게 그를 괴롭혔던 의문이 풀렸으니 효당스님을 만날 필요성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는 번뇌에 빠질때마다 밤하늘의 별을 보면서 마음대로 곡조를 붙여 반야심경을 애송하면서 위안을 삼았다.
대학은 연세대 사학과 출신. 대입시험에서 그는 또 한번 사고를 친다. 교과서 한권도 없이 건성으로 다닌 고등학교 실력으로 30명 모집에 668명 지원한 연대 사학과에 3등으로 합격하는 기적을 연출한 것이다. 눈이 휘둥그레 진 것은 교수들이었다.
저토록 불성실하게 고등학교를 나온 학생이 커닝을 하지 않는한 이렇게 좋은 성적을 낼 수는 없다는 것이 교수들의 한결같은 주장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고등학교 입시때 전국 수석을 바라볼 정도로 공부를 잘했다는 말을 듣고는 누구도 그의 3등합격에 더 이상 이의를 달지 않았다.
그는 연세대에서 괴짜 대학생으로 또 한번 이름을 날렸다. 연세대에서 청바지에 잠바를 걸쳐입은 최초의 여대생이었기 때문이다. 연세대에서 바지입은 채정복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대학 졸업논문을 쓰면서 그는 운명의 효당스님을 만나게 된다. 불교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원효사상에 대한 졸업논문을 쓰고 싶었다. 그때 원효사상에 대한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는 효당스님을 만나보라는 지도교수의 권유를 받고 그는 생애처음으로 스님을 만났다.
그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효당스님과의 만남은 그에게 불교에 대한 새로운 눈을 뜨게 해 줬다.
그는 효당스님이 자신의 생명의 은인이라고 믿고 있다. 효당을 만나고 나서 불교를 제대로 알았다. 불교를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체계적으로 파고 들어갈수 있게 해줬다. 그는 스님을 만난 이후로 지금까지 그분의 은혜를 갚기 위해서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효당스님의 수제자이자 반려자로 살아왔으면서도 정작 그는 스님이 아니다. 순수한 자연인으로써 차도와 참선을 통해서 늘 수도에 정진하려는 수행인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현대차도사의 거목이신 효당스님으로부터 제차비법을 전수받아 반야로차의 맥을 이어오고 있다.
그는 효당스님밑에서 반야로차 만드는 방법을 12년동안 배웠다. 스님 입적후 다솔사에서 3년을 더 만들었다. 그후 지리산 화개면 칠불사 아랫마을에서 16년간 반야로 차를 만들었다.
2000년부터 다시 경남 사천시 곤명면 그의 반야로 차밭이 있는 용산마을에서 반야로 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의 반야로차 제차경력을 다 합치면 30년도 넘는다. 그많은 노력을 쏟은 결과 그는 지금 국내 최고의 전통차도 거목이 되었다.
그가 원장으로 있는 반야로차도문화원은 83년 7월2일 문을 열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그동안 그의 강의를 거쳐간 차도인은 어림잡아 1천여명. 외국인들을 위한 다도강좌도 7년째 계속 해오고 있다.
전통차도 특히 반야로차도에 관심있는 차인들이 채원장의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에서 몰려온다. 현재는 진주문화원에 1년과정 다도강좌를 개설해서 그가 매월 둘째, 넷째 금요일마다 현지 특강을 나간다.
전통차도 계승자인 그는 정작 차를 즐길 때 특별한 격식이 없다고 말한다. 차도는 어려운 것도, 거창한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차 한잔을 마시면서 자신을 들여다보는 행위가 바로 차도라고 한다.
반야로차도문화원에 가면 수십년째 반야로차의 맥을 이어오는 살아있는 차도의 달인 채원화를 만날 수 있다.
그리고 매년 4∼5월이면 지리산 끝자락에서 가마솥에 장작불을 지펴 일일이 손작업으로 반야로차를 만들어내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 이 기사는 피플코리아의 허락없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피플코리아에 실리는 모든 기사의 저작권은 오직 피플코리아에 있습니다.
<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eople365.p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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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7/30 10: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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