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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바람의 수필] (4) 도봉산에서 생긴일
2005/12/03 00:00
입력 조회수 : 742
93년 어느 봄날에 생긴 일이었다. 이제는 잊혀질때도 됐는데 엊그제일처럼 생생하게 떠오르니 그때 받은 충격이 크기는 컸던 모양이다. 모처럼 휴일을 맞아 늘어지게 늦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해가 중천에 떴다. 뭐 재미난 일이 없을까 생각 하면서 식사를 했다.
이런 저런 궁리 끝에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도 풀고 운동삼아 땀도 뺄겸 도봉산에 가기로 하고 민주와 현식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집에서 나올때는 날씨가 제법 따뜻해서 별다른 준비없이 운동화에 가벼운 외출복 차림이었다.
19번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 도봉산 입구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산행을 시작했다.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물을 한바가지 퍼서 목을 축였다. 해가 떨어지기 전에 내려올 작정으로 속도를 내 부지런히 걸어 올라갔다.
한참을 올라가니 숨이 차고 힘이 들어 발걸음이 무거워지고 뒤로 쳐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지치지도 않는지 뛰어가다싶이 저만치 앞서서 올라갔다. 휴일이라 그런지 등산객들이 어깨를 스칠 정도로 만원이었다.
벌써 산에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들도 많다.드디어 마당바위가 보인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컵라면을 사서 아이들과 같이 먹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었다. 민주도 현식이도 집에서는 잘안먹는 라면을 국물까지 안남기고 게눈감추듯 다 먹어 치운다.
"다시 출발이다." 아이들을 앞세우고 뒤에서 천천히 걸어올라갔다. 조금만 더 올라가면 정상이었다. 날씨가 갑자기 흐려지기 시작하며 기온이 뚝 떨어진다. 온몸에 한기가 느껴진다. 그래도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었다. 드디어 정상이 눈앞에 보였다.
"민주야 현식아 이 바위가 신선봉인데 여기까지 왔으니 올라가봐야지" 하고 바위에 오르기 시작했다. 10여미터만 오르면 정상이었다. 그런데 눈보라까지 휘날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춥다고 하면서 그만 내려가자고 한다. 나는 "안돼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5분만 올라가면 정상이니 조금만 참고 올라가" 하면서 아이들을 다그쳤다.
그런데 현식이가 이상했다. 모기만한 소리로 "아빠 추워 그만 내려가" 한마디 하고는 바위에 붙어서 움직이질 않는다. 아무말도 안하고 꼼짝을 안한다. 기온이 뚝떨어져 한겨울같이 춥고 갑자기 어두워지기 시작하였다. 내리던 눈은 진눈깨비로 변하였다.
겁이 덜컥났다. 현식이를 바라다 보니 얼굴이 거의 사색이 되었다. 추워서 온몸을 웅크린채 오들오들 떨면서 얼굴이 파랗게 질려있었다. 갑자기 닥친 위험에 눈앞이 캄캄했다. 혹시 이러다가 현식이가 어떻게 되는 것은 아닌지 하는 불길한 생각이 머리속을 짓눌렀다.
공포에 질려있는 현식이를 번쩍 안았다. 현식이의 온몸이 얼음장처럼 얼어붙었다. 우선 내 잠바를 벗어 현식이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는 조금이라도 나의 따뜻한 체온이 현식이에게 전달되도록 두팔로 꼭 껴안았다.
민주에게 "너는 아빠가 다시 올때까지 여기 꼼짝말고 있으라"고 말하고 현식이를 껴안고 아래로 뛰다싶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잠바를 벗어 티셔츠차림이었지만 현식이가 위험하다는 생각에 내자신이 추운줄도 몰랐다.
정신없이 아래로 내려오니 바위밑에 움푹파인 동굴같이 생긴 곳이 있었다. 그안에 현식이를 내려놓았다. 바람이 불지 않고 진눈깨비를 피할수 있어 아늑하고 따뜻했다. 현식이 얼굴에 드디어 생기가 돈다.
"현식아! 아빠는 누나 데리고 금방 올테니까 꼼짝말고 여기 있어라" 말하고 다시 민주가 있던 장소로 올라갔다. 민주가 추워서 공포에 질려 사시나무 떨 듯이 오들오들 떨면서 바위에 붙어 내가 오기를 눈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민주를 안고 내려와 현식이가 있는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서야 현식이는 얼었던 몸이 풀렸는지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빠 춥지 잠바 입어요" 하면서 걸쳤던 잠바를 벗어서 나에게 준다.
시작부터 종료까지 불과 삼십분도 채 안걸린 돌발상황이었지만 느닷없이 닥친 위기에 십년감수한 대사건이었다. 사랑하는 내가족들이 무사히 살아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이고 축복인지 뼈져리게 깨달았다.
평소에는 구두쇠 아빠로 불리는 나였지만 그날은 집에와서 아이들에게 뭐 먹고 싶은 것 없느냐며 호주머니를 몽땅 털었다. 나에게 큰 교훈을 안겨준 도봉산. 그날 이후로 나는 아무런 준비없이 산에 오른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하고 위험한 짓인가를 알고 있다.
김명수(
www.people365.pe.kr
)
수정일 2003년 02월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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