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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바람의 꽁트] (43) 출근길 꽃뱀에게 당한 억울한 봉변
2005/10/30 00:00
입력 조회수 : 768
세상에서 내가 가장 혐오하는 인간은 스토커. 인두겁을 쓰고 태어나서 오죽 할 일이 없으면 연약한 여성이나 괴롭히는 짓거리를 하고 다니나 싶어서다. 길거리서 그런 현장을 내눈으 로 목격하면 그 자리서 요절박살을 내버리고 말겠다고 평소에 생각했다. 그런 인간은 지구 상에서 완전 박멸 되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이따금씩 신문지상에서 오르내리는 스토커나 성추행 이야기를 볼때마다 입에 침이 튀기도록 분통을 떠트리기도 했다. 복잡하고 요지경같은 세상을 살다보면 본의 아니게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한다. 정신박약아를 강도로 몰아 경찰이 생사람을 잡은 일도 있다. 억울한 옥살이 8개월만에 누명을 벗고 풀려나기는 했지만 당사자의 속뒤집히는 심정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경찰이라면 시시비비를 분명히 밝히고 캐내어 한점의 의혹도 없이 사건을 풀어내야 마땅하거늘 오히려 그 반대로 멀쩡한 사람에게 죄라는 올가미를 뒤집어 씌워 옥살이를 시키는 세상이니 돈없고 빽없고 힘없는 소시민은 억울한 심정을 어디가서 하소연 한단 말인가.
워낙 각박하고 험악한 세상이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시대를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복잡한 도심 어디를 가도 넘쳐나는 인파로 숨이 막힌다. 출퇴근시간대 전철 환승역은 넘쳐나다 못해 박이 터진다. 오죽하면 푸시맨까지 등장했을까.
내가 출근길에 오늘 기막힌 일을 당했다. 그토록 내가 입에 거품을 물고 혐오하던 스토커로 몰렸다. 불과 10여분밖에 안되는 짧은 순간에 일어난 일이었지만 내게는 이보다 더 억울할 수는 없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나를 파렴치한 스토커로 몰아붙인 사람은 다름아닌 승객. 내 막은 이렇다.
시간은 10시쯤. 전철이 멈춰섰다. 문이 열리고 내가 객실로 들어갔다. 빈자리가 있어서 아무 생각없이 앉았다. 사건은 그순간부터 시작된다. 옆에 앉은 승객의 코트자락이 내 엉덩이에 깔렸다. 나는 미안한 생각에 반사적으로 엉덩이를 들어 코트를 옆으로 밀어내고 다시 앉았다.
전동차 객실안이 떠나갈듯한 괴성이 터졌다. "왜 몸을 만지고 추행하고 지랄이야" 나는 소리가 나는 옆자리로 고개를 돌렸다. 그소리는 다름아닌 바로 나를 겨냥해서 하는 말이었다. 여자는 나를 스토커로 몰아붙였다. 온갖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해댔다.
새파랗게 젊은 여자로부터 속사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욕을 먹는 당시 기분은 그야말로 황당했다. 20대 초반의 젊은 아가씨가 왜 나를 스토커로 몰아붙였을까. 그것도 앞자리 옆자리에 앉은 수많은 사람들이 두 눈 뻔히 뜨고 바라보고 있는데...
출근길에 날벼락처럼 당한 봉변에 머리가 띵했다. 그것도 성추행이니 스토커니 하면서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나쁜 말을 찍어다 붙이는 것이었다. 아니 자리밑에 깔린 옷자락을 빼낸것이 무슨 성추행이고 스토커라고 어거지를 쓴단 말인가.
성추행은 몸을 만지는 것이고 스토커는 특정인을 끈질기게 따라다니거나 전화등으로 괴롭히는 것일진데 만인이 보는 앞에서 그것도 대낮에 자리에 깔린 옷을 빼냈다고 그런 험한 말을 해대다니 말의 의미도 모르고 발악을 하는 것 같았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고 기가 막혀서 순간 당황했다. 백주대낮 출근길에 빈자리에 앉은 것이 그렇게 큰 욕을 얻어먹을 만큼 잘못한 일인가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무리 사실을 이야기해도 여자는 완전히 이성이 마비되어 발악을 했다. 온갖 험한 욕을 다하면서 얼굴에 삿 대질을 하면서 치한으로 몰았다.
내옷을 왜 만지고 왜 몸을 더듬었냐고 뒤집어 씌우는 여자앞에서 나는 그만 할말을 잃었다. 여자는 나중에 내얼굴에 손찌검까지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가 참아야지 하고 분한 마음을 간신히 억제하던 나도 비수처럼 내려박히는 여자의 악담에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여자에게로 가서 내가 아무 잘못도 안했는데 왜 그렇게 심한 말을 하느냐고 큰소리로 물었다. 그러니까 여자가 내 뺨을 갈겼다. 그 순간 나는 너무나 황당하고 어이가 없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싶은 마음에 순간 이성을 잃고 말았다.
여자로부터 뺨을 얻어맞는 순간 반사적으로 여자에게 손을 대고 말았다. 금방 후회했지만 이미 사건은 수습할 수 없을 만큼 커지고 말았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한 대 때린 것이 여자에게는 치명상이 되었다.
사람들이 나와서 뜯어말리는 통에 사건은 수습되었다. 나는 아무리 뒤집어 이리 생각해보고 저리생각해보아도 너무 억울했다. 나름대로 작은 호의라고 생각한 행동이었는데 어떻게 그 여자에게는 치한의 짓거리로 보였는 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백주대낮이라 주위에 있던 승객들이 모두 목격한 일이어서 누명은 벗을수가 있었다. 그러나 너무 억울해서 가슴이 울렁거리고 화가 치밀어 올라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잠을 잘수도 없었다. 세상에는 이런 일도 다있구나 싶어 가슴이 터질것 같이 울화가 치밀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그런식으로 돈을 뜯어먹고 사는 꽃뱀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의협심이 강하다고 자부해왔다. 오늘까지 살아오면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세상을 되도록 따스하고 밝은 눈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했다. 다른 사람이 모두 부정하게 산다 해도 나만은 아니 나 하나라도 올곧게 살아보려고 노력했다.
경노석에는 아무리 텅텅비어도 앉아본 적이 없다. 비록 가진 것 없고 힘은 없지만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이런 일이 벌어지고 나니 억장이 무너지는 기분이다. 아무리 불신의 시대라 할지라도 이럴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어찌하여 우리사회가 이지경이 되었나. 서로 얼굴을 모르는 사이라 할지라도 몸이 살짝이라도 부딪히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기분 좋아야 할 출근길에 새파랗게 젊은 여자로부터 온갖 험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은 나는 회사에 와서 곰곰 생각해 보았다. 그런 상황이 다시 일어난다면 과연 어떻게 행동해야 하나. 그냥 앉아 있어야 하나. 아니면 다시 일어나서 아가씨 옷을 빼가시지요. 옷이 내 엉덩이 밑에 깔려있습니다. 하고 말을 해야 하나.
아니면 먼저처럼 소리없이 일어나서 내손으로 빼야 하나. 솔로몬의 지혜라도 빌리고 싶은 심정이지만 쉽사리 정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집에 오니 마누라가 얼굴에 웬 생채기가 났냐고 물어본다. 여자의 직감이 무섭다. 어제는 분한 마음이 온통 내몸과 마음에 가득차 아무일도 할 수가 없었다. 스토커. 여자가 남자를 괴롭히는 것도 스토커가 아닌가 싶다.
복잡한 전철안에서 별별 사람들이 다 있을 줄 안다. 스토 커. 날치기. 좀도둑. 치한. 성추행범 등등 온갖 기이한 자들이 당신 주변에 어슬렁거릴지도 모른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나처럼 엉뚱한 사람들이 억울하게 스토커나 치한으로 몰려 봉변을 당하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 분한 마음이 조금은 풀렸다.
미국이야기에서 길거리를 걷다가 차에 치여 쓰러진 응급환자를 보더라도 절대로 뛰어들어 가서 구조하지 말라는 말이 생각난다. 죽어가는 생명을 살려야겠다는 다급한 마음에서 도와주었다가 나중에 환자가 후유증이라도 생긴다면 온통 손해배상 책임을 뒤집어 쓴다는 것이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주니 고맙다는 말은커녕 왜 살려냈느냐며 내생명 책임지라고 어거지 쓰는 우리 속담이 생각난다.
무심코 베푼 작은 호의가 이렇게 엉뚱하게 발등을 내리 찍는 도끼가 되어 돌아온다면 세상은 얼마나 삭막할까 생각하니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끼친다.
김명수
수정일 2002년 12월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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