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즐겨찾기
|
클릭이사람
뉴스
연예
스포츠
포토뉴스
동영상
클릭이사람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지구촌
방송
영화
음악
연예가소식
스포츠종합
야구
축구
골프
헤드라인뉴스
지구촌이모저모
문화/생활
스포츠종합
연예in뉴스
헤드라인뉴스
지구촌이모저모
문화/생활
스포츠종합
연예in뉴스
동영상
통통포토
클릭이사람
클릭이사람
Home
클릭이사람
클릭이사람
프린트
스크랩
메일전송
댓글달기
목록
이전
(86) [바람의 꽁트] (40) 내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나
2005/10/13 00:00
입력 조회수 : 753
나는 아엠에프 피해자다. 나는 올해로 33살의 가장이다. 토끼같은 마누라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아이 그리고 아직 첫돌도 되지 않은 아들녀석이 있다.
네식구의 가장인 내가 하루아침에 직장에서 쫓겨나 거리를 헤메고 있다. 거리의 노숙자. 나와는 거리가 먼 남의 나라 이야기로 생각하던 불행이 나에게 닥쳐올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아엠에프사태가 오기전에 나는 1천만원짜리 단칸방 전세에 살고 있었다. 중소기업에 과장으로 근무중이었다. 모든것이 아름답게만 보였다. 희망이 넘쳤다. 이세상은 오직 나를 위해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불과 2년전만 해도 나는 가난하지만 남부럽지 않게 살았다. 앞으로 몇년이 걸릴지 몰라도 작은 아파트라도 한채 사서 살겠다는 꿈을 가지고 한달에 십만원씩 저축까지 하였다. 그렇게 모은돈이 벌써 5백만원.남들이 보면 작은 돈이지만 내게는
전재산이었다.
그러나 아엠에프가 단란했던 우리집에 풍파를 몰고 왔다. 나는 직장에서 해고당했다. 내가 왜 모가지가 달아났나 확실한 이유도 모른채 강제퇴출을 당한것이다. 한달에 월급 보너스 다합쳐 2백만원 조금 못되는 내월급이 우리집 수입의 전부였는데 강제해고를 당했으니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앞으로 살길이 막막했다. 대학나와서 군대 제대하고 27살에 회사입사하여 지금까지 열심히 일해왔는데 해고라니 억울했다. 퇴직금과 6개월치 월급을 위로금으로 받았다. 합해서 1천5백만원.
이돈으로 무엇을 해서 먹고 산단 말인가. 아내는 직장한번 다녀본적이 없는 토종 전업주부다. 나는 남편으로써의 무능함에 아내에게 부끄럽고 미안해서 집에 들어가기가 겁난다.
회사를 나온뒤 일주일째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그냥 발길 닿는대로 쏘아다녔다. 아내가 찾아왔다. 내자신이 부끄럽고 챙피해서 정말 죽고 싶었다.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었다. 아내는 울면서 사정했다. 제발 집에 들어가자고.
그러나 나는 들어갈수가 없었다. 이제 내나이 겨우 33살인데 집에서 백수가 되어 놀고 먹는 다는 것은 자존심이 상해서 상상도 할수 없었다.
아내는 그동안 벌어준것만 해도 고마우니 이제는 자신이 파출부 일을 할지언정 생계를 책임지겠다고 한다. 나는 아내의 말을 듣는 순간 눈물이 쏟아졌다. 내가 왜 울었는지 나도 이유를 모르겠다.
다만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목이 메이고 말로 표현할수 없는 그무엇인가가 내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쏟아지는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아내는 눈물을 흘리는 나를 부둥켜 안고 엉엉 울었다.
나는 아내의 손에 이끌려 집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좋아했다. 아빠와 하루종일 놀수있다는 것이 아이들에게는 최대의 행복이었던 것이다. 하루 이틀 사흘 열흘 한달이 지났다.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는 무능한 가장이 되었다. 아내는 보험회사에 취직을 했다. 나는 집을 봐주는 것이 하루 일이었다.
이제 겨우 첫돌도 안된 아들녀석의 우유를 타주는 것도 내몫이었다. 하루는 어머니가 찾아왔다. 어머니는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한 나를 보고 마음이 아팠던지 고생말고 시골로 내려와 같이 살라고 하신다. 고개를 들수가 없었다. 원서를 넣어봤다. 찬밥더운밥 가릴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를 뽑아주는 데는 단 한군데도 없었다. 심지어 공사판의 막노동꾼을 뽑는데도 나는 부적격자였다. 그런 자리라 할지라도 아무나 뽑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해본자만이 할수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들도 처음에는 많이 찾아왔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들의 발길도 뚝 끊어졌다.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백수생활 일년이 지나자 퇴직금도 생활비로 몽땅 써버리고 그야말로 완전히 빈털털이가 되었다. 세상이 무섭게 느껴졌다. 할수없이 적금을 해약했다.
우리의 미래의 내집마련 꿈이었던 적금통장을 해약하던 날은 비가 내렸다. 우리의 서러운 마음을 하늘이 알아차리기라도 했던지 억수같이 퍼부어댔다. 나와 마누라는 목놓아 울었다. 우산도 안쓰고 빗속을 헤메고 다녔다.
마누라는 발이 부르트도록 보험판매를 하고 다녔다. 그러나 요즘같은 불황에 누가 보험을 든단 말인가. 초보자 보험설계사로서 집집마다 보험들라고 초인종을 누르면서 돌아다니다 보면 서러움에 북받쳐 눈물이 절로 나왔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나. 부끄럽고 미안하구나 마누라야. 내아들아. 내딸아. 나는 다시 집을 뛰쳐나왔다. 전철을 타고 하루종일 돌아다녔다. 점심시간이 되면 서울역앞에 갔다. 노숙자들이 줄을 서서 밥을 얻어먹는 곳이다. 처음에는 얼굴이 뜨겁고 부끄러워 가질 못했다. 그러나 하루를 꼬박 굶고 나니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
나도 슬그머니 긴줄에 합류했다. 그러나 노숙자라고 하기엔 옷이 너무 깔끔했다. 나는 앞에 있는 사람과 옷을 바꿨다. 내가 새옷을 주고 헌옷을 받았다. 머리는 일부러 손으로 비벼 헝클어지게 했다. 내차례가 왔다. 밥을 탔다.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먹었다. 김치와 국 그리고 쌀밥. 더이상 줄일수 없는 가장 간단한 한끼 점심이었지만 하루를 굶주린 나에게는 진수성찬이었다.
밤이 되었다. 지하철계단으로 들어갔다. 이미 많은 노숙자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신문지를 펼치고 종이박스를 바닥에 깔고 누워 잠을 자는 노숙자들을 보면서 나도 조심스럽게 한쪽 공간을 차지했다. 신문지를 깔았다. 그위에 누웠다. 막 잠이 들려는 데 누군가가 나를 발로 찼다. 눈을 떴다. 노숙자였다. 자기자리니까 일어나라는 것이다. 이곳에도 주인이 있다는 것이다. 아무말도 못하고 자리를 빼앗겼다.
계단쪽에 겨우 빈자리를 잡을수 있었다. 날씨가 너무 추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자다 깨다 하다 보니 날이 밝았다. 노숙자들은 하나 둘씩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 자리를 정리했다. 마치 이부자리를 정리하듯 바닥에 깔았던 신문지와 종이박스를 깨끗이 치우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화장실로 가서 세수를 하였다.
노숙자들중에는 여자들도 눈에 띄었다. 거의 대부분의 남녀노숙자들은 아엠에에프 실직자들이었다. 아엠에프가 멀쩡한 사람을 노숙자로 전락시킨 것이다. 일주일을 노숙자 신세로 지내다 보니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화장실로 달려가 내몸을 보았다. 거울속의 나는 전혀 딴 사람같이 보였다. 바짝 말라깽이에다 얼굴은 못먹어서 부황이 들은듯 부어터졌고 옷은 남루하기 짝이 없었다.
괴물같았다. 그러나 현실이었다. 산에 올랐다. 예전같으면 지금 이시간쯤 직장에서 업무에 몰두할 때이다. 그러나 나는 할일이 없어 북한산에 오르고 있다. 나와같은 실직자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우리는 호주머니에 돈이 없다.
아침은 굶고 점심은 서울역앞에 가서 밥을 얻어먹는다. 저녁은 굶는다. 하루 세끼중 점심만 먹는 것이다. 나는 지하철 표를 끊지 않고 개찰구를 넘어 들어간다. 그리고는 하루종일 그안에서 보낸다. 종점까지 왔다갔다 하다 보면 하루가 지난다. 나는 더이상 내가 할일이 아무것도 없다. 집에는 이미 소식을 끊은지 한달이 넘었다. 가족들이 보고 싶지만 도저히 찾아갈 용기가 없다. 이제는 나 혼자만 남았다. 이세상에 나 혼자 외톨이라는 생각에 설움이 북받친다.
구걸을 했다. 행인들이 얼굴을 훔쳐본다. 눈을 딱감고 전철입구에 하루종일 앉아서 버텼다. 동전 떨어지는 소리가 땡그랑 땡그랑 이따금씩 들린다. 날이 어두워졌다. 깡통을 보았다. 동전이 제법 쌓였다. 모두 세어보니 일만 이천 삼백원. 오랜만에 만져보는 큰돈이다. 댓병 소주를 샀다. 안주는 마른오징어와 땅콩.
한강변으로 갔다. 소주를 마셨다. 오랜만에 빈속에 알코올이 들어가니 머리가 팽돌았다. 이를 악물고 다 마셨다. 어쩌면 오늘 세상의 끝이 온것만 같았다. 눈이 가물가물 했다. 잠이 들었다. 지하철 지하도가 아닌 한강변에서 술에 취해 잠을 잔것이다. 아침이 되었다. 눈을 떴다. 몸이 아파 움직일수가 없었다. 속에서 똥물까지 올라왔다. 몇시간을 계속 토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나 내가 생각해도 한심했다.
약국에 갔다. 수면제를 샀다. 몇군데를 돌면서 조금씩 조금씩 사서 모으니 한주먹이었다. 호주머니에 넣고 한강 다리위로 올라갔다.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한강물이 넘실거린다. 낭만이 넘치고 아름답게만 보이던 한강물이 아니었다. 나를 잡아 삼킬듯 무섭게 보였다. 뛰어내릴려고 눈을 질끔 감았다. 그러나 용기가 없었다. 다시 내려왔다. 산에 올랐다.
사람들이 많다. 지금은 월요일 대낮. 보통사람들이 하루의 일에 열중하는 시간인데 아무할일이 없는 나는 한낮 쓰레기 만도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세상에 아무 쓸데 없는 백해무익한 그런 존재가 나라는 생각에 더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숲속으로 들어갔다. 수면제를 꺼냈다. 입에 털어넣었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다. 세상이여 안녕. 가족들이여 미안하구려. 아내여. 내딸이여. 내아들아. 아빠는 먼저 간다. 부디 행복하게 잘살아다오. 이아빠를 원망하지 말아다오.
가물가물. 꿈인가. 생시인가. 눈을 떴다. 병원이었다. 옆에 마누라가 눈물을 삼키면서 내려다 보고 있다. 나중에서야 알았다. 어느 노숙자가 자신도 죽으려고 숲속으로 들어왔다 나를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급차를 부르고 병원에 실려왔다는 것이다. 의사말이 생명을 구한것은 기적이라고 했다.
마누라가 다시는 당신 혼자 두지 않겠다면서 눈물을 흘린다. 나는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가족의 소중함을 새삼 깨달았다. 아이들이 아빠 하면서 내몸에 안긴다.
고맙구료. 내마누라. 내아들. 내딸. 그래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돈만이 아니지. 죽을 각오로 한번 살아보기로 결심했다. 병원에 실려온지 일주일만에 퇴원을 했다.
마누라와 두아이들과 함께 집에 왔다. 얼마만인가. 마누라는 그사이에 보험회사 설계사로 꽤 인정을 받았다. 한달에 수입도 이백만원이 넘었다. 우리는 오랜만에 외출을 했다. 쏟아지는 햇살을 온몸에 받으며 4식구가 한강물을 바라보면서 결심을 했다.
내가 뛰어내리려고 했던 그 한강물은 오늘따라 밝은 햇살에 반사되어 눈부시게 아름답게 보인다. 섬찍하게 소름끼치던 바로 그 한강물이 이토록 아름다운줄 예전엔 미쳐 생각못했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어. 다만 약간의 시련만 있을 뿐이야. 달린다. 앞으로 앞만 보고 달릴거야. 사랑하는 내가족과 내자신을 위해서 다시 일어나야해. 마음을 새롭게 먹으니 탈출구없는 암흑의 터널로 보이던 세상이 아름답고 희망이 넘치는 장밋빛으로 보였다. 참으로 신기하고 놀라운 변화였다.
나는 그날 이후로 책을 잡았다. 부동산 중개사 시험준비서.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다시 재기할 작은 꿈을 키워나간다. 노숙자들이여 파이팅. 실직자들이여 파이팅.
김명수
수정일 2002년 11월30일
[
피플코리아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hsshss2927@hanmail.net
대한민국 대표 인물신문 - 피플코리아(www.peoplekorea.co.kr) - copyright ⓒ 피플코리아.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프린트
스크랩
메일전송
댓글달기
목록
이전
맨위로
메일보내기
보내는분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내용
많이본기사
화제의 뉴스
북한산이 단풍 빛으로 물든다
도봉산 거북골 단풍이 황홀
북한산 진달래 꽃길을 걷는다
벤포벨S
관악산 병아리난초와 나나벌이난…
정치인으론 드물게 꾸준히 기부…
이름만 천사인 엔젤스 트럼펫
매혹적인 꽃무릇의 유혹
일본 호텔 '대머리 할인' 서비스…
"작은 도움으로 따뜻한 세상 만…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
더보기
핫이슈
HOT
!
이슈
김진홍 부산 동구청장 1억 기부, 아…
제인 구달-최재천 DMZ서 생태-평화 …
양천구 홍보犬에 시베리안허스키 '부…
"여름휴가는 경기 바다로"...8~16일 …
딸기맥주 한모금에 더위 싹!...시음…
김희재 펜클럽 생일맞아 또 기부...1…
수원에서 펫스타..강형욱-박수홍 출…
국내 최대 '경기 반려마루 여주' 7월…
가수 이무송, 여주시 홍보대사에 위…
양천의 예비군 수송버스 전국으로 확…
회사소개
광고안내
제휴·광고문의
기사제보
정기구독신청
다이렉트결제
고객센터
저작권정책
회원약관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RSS
피플코리아(peoplekorea.co.kr) | 서울시 정기간행물 등록: 서울특별시 아 01152호
서울특별시 강서로 초원로 14길 1-6 나동 201호 | 대표전화 : 02-363-5521
등록일: 2010년 2월 22일 Copyright ⓒ 2009 피플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대표 겸 발행인 : 이부영 | 편집국장: 장민
피플코리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