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까만색 반부츠-누군가를 대신한 사랑 18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우리만의 저녁나들이는 계속 되었습니다. 어떤 날은 팝콘을 사들고 영화를 관람했고, 어떤 날은 아이스크림을 핥으며 밤거리를 거닐었습니다. 그리고 간혹은 야간에 개장하는 놀이 공원을 가기도 했으며, 회사 일이 바빠 야근을 할 때는 야식이라도 함께 하곤 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이해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가까워졌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은 한 번도 섹스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그런 분위기로 발전하는 것을 경계하는 눈치였지요. 그 점이 불만스럽다거나 아쉬웠다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보통의 연인사이라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을 일을 꺼리고 있다는 점이 불안했을 뿐입니다. 그렇다고 제 입으로 그런 말을 꺼낼 수는 없는 일 아니겠습니까? 다소 불안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즐거운 나날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세월도 빨리 흘러갔지요. 도심의 가로수가 신록으로 옷을 입는가 싶더니 어느새 장마가 오고, 회색 콘크리트가 뿜어내는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는가 싶더니 하늘이 훌쩍 높아지더군요. 당신의 향기에 취해 있는 동안 반년이란 세월이 느낄 새도 없이 흘러 가버린 겁니다. 시월의 밤은 제법 쌀쌀합니다. 특히 저처럼 추위를 심하게 타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러하지요. 하지만 저는 그 쌀쌀함이 오히려 좋았습니다. 당신의 따스함이 베어있는 외투를 뺏어 입을 수 있었으니까요. 그 날도 저는 약간 과장된 제스처로 추위를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당신은 입고 있던 베이지 색 가을 바바리를 미련 없이 벗어주셨지요. 그리고 옷깃을 여며주며 이렇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아들놈을 한 번 만나 주지 않겠소?" "네?" 저는 너무 놀라 걸음을 멈추며 당신을 올려다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반년 넘게 당신을 만나 오는 동안 저는 단 한 번도 당신의 아이에 대해서는 생각 해본적이 없었던 겁니다. 아니지요. 솔직히 말하면 아이에 관한 대화를 제가 일부러 피했다고 보는 게 옳을 겁니다. 아마 당신의 마음을 누군가와 공유한다는 것이 싫었던 것이겠지요. 그렇다고는 해도 이렇게 철이 없을 수 있을까요? 한 아이의 아버지인 당신을 매일 밤늦게까지 붙잡아 놓고선 아이 걱정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니... 물론 당신의 여동생이 가까운 곳에 살고 있어서 아이를 돌봐준다는 말을 언뜻 들은 적은 있었습니다. 그렇다 해도 제 행동은 너무 무책임했습니다. 스스로를 질책하고 있는 제 모습이 당황하고 있는 것으로 비쳤던지 당신은 곧 말을 바꿨습니다. "특별한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 부담 가질 필요는 없소." "아... 아니에요. 그런데..." "......" "오늘 가야 하나요?" "아니오. 사실은 사흘 뒤가 녀석 생일이오." "그렇군요." "세상에 태어나 아홉 번째 맞는 생일이지... 그리고..."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했지만 당신은 입을 다물었습니다. 하지만 그 정도는 저도 짐작 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에는 제 어미가 죽는 바람에 생일조차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소.' 아마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한동안 보이지 않던 당신의 우울한 눈빛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니까요. 백산 수정일 2002년 10월20일
- [ 피플코리아 ]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hsshss2927@hanmail.net
대한민국 대표 인물신문 - 피플코리아(www.peoplekorea.co.kr) - copyright ⓒ 피플코리아.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메일보내기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 더보기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