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회원가입
마이페이지
즐겨찾기
|
클릭이사람
뉴스
연예
스포츠
포토뉴스
동영상
클릭이사람
경제
정치
사회
문화
지구촌
방송
영화
음악
연예가소식
스포츠종합
야구
축구
골프
헤드라인뉴스
지구촌이모저모
문화/생활
스포츠종합
연예in뉴스
헤드라인뉴스
지구촌이모저모
문화/생활
스포츠종합
연예in뉴스
동영상
통통포토
클릭이사람
클릭이사람
Home
클릭이사람
클릭이사람
프린트
스크랩
메일전송
댓글달기
목록
이전
[이사람] (4) 암고치고 산삼캐고 인생대역전 안창호
2005/07/26 00:00
입력 조회수 : 733
행복하던 가정에 어느날 갑자기 병마가 찾아왔다. 대장암. 하늘이 무너지는 절망감에 빠졌다. 이대로 죽을수는 없었다. 살아야겠다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온가족이 하나되어 처절한 투병생활을 했다. 완치. 잃어버린 웃음을 다시 찾았다. 산삼까지 캤다. 그것도 한뿌리가 아니고 수십뿌리를…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인생을 대역전시킨 안창호씨(57).
4대가 한집에서 오손도손 살고 있다. 원주시 판부면 서곡리 456번지. 안씨는 그곳에서 장남으로 태어나 지금까지 뿌리박고 살아간다. 툭하면 이혼이네 뭐네 하며 가정에 금가는 소리가 판을 치는 요즘시대에 보기 드문 대가족이다.
8순의 부모를 모시고 있다. 그래서 하늘이 복을 내려주셨는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국도를 타고 달려 물어물어 찾아가 5대째 한집에서 살고 있다는 안씨를 만나 보았다.
어려서부터 집안이 어려웠다. 가진 농사처가 적으니 먹고 살기 힘들었다. 소작농사를 지어야 겨우 입에 풀칠을 했다. 당시 가난한 학생들이 다니는 육민관중고등학교를 나왔다. 학생시절 수업료를 내지 못하면 학교내 농장에서 일해야 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장작을 팔러 다녔다. 장작팔이 소년. 장작을 사다가 리어카에 가득 싣고 시내로 끌고 가서 이윤을 남겨 팔았다. 무거운 리어카를 많이 끌어서 아랫배가 손잡이에 눌려 음푹 들어갈 정도였다.
그때 찍은 졸업사진을 꺼내 보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 교복이 너덜너덜 다 떨어져 친구의 옷을 빌려 입고 사진을 찍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졸업사진 교복 명찰에는 안창호라는 이름대신 친구의 이름이 뚜렷하게 박혀 있다.
64년 군에 입대한다. 논산 훈련소 조교로 있다가 제대를 하였다.
제대후 친구와 서울로 돈벌러 갔다. 67년쯤으로 기억된다. 광화문우체국 신축공사장에서 일했다. 질통에 벽돌을 짊어지고 3∼4층을 오르내렸다. 길가 천막아래서 밥을 해먹어 가면서 그렇게 20일을 일했다. 그후 부친께서 찾는다는 바람에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지금 살고 있는 서곡리 이집으로…
아버지께서는 큰아들의 마음을 붙잡아 두기 위해 결혼을 시켰다. 장가를 보내면 마음을 잡고 서울로 달아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란다. 고향에서 농사를 지었으나 도저히 생활이 안되었다. 남의 논 얻어서 농사를 지어봤자 소작료 주고 나면 남는 것이 없었다.
공무원이 제일 나을것 같았다. 공무원이 되면 먹고 사는데는 아무 지장이 없겠지 싶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시험준비를 했다.
마침내 지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하여 70년 4월25일 판부면으로 첫발령을 받았다.
죽기살기로 일하다 보니까 인정을 받았다. 4년후 군청으로 영전된다. 당시 원주군청에 들어가 20년을 근무했다. 53살때 원주시와 시군통합되면서 사무관 시험에 합격하여 신림면장으로 보직을 받았다.
너무 일을 열심히 한탓일까? 몸이 이상했다. 대변을 보면 피가 나오고 변비가 심했다.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종합검진을 받아 보기로 하였다. 95년 8월1일부터 검사를 받았다. 19일 결과가 나왔다. 그때만 해도 별이상 없겠지 싶었다. 그런데 느낌이 이상했다.
이제 검사도 다 끝나 결과만 보고 나가면 되는데 친척들이 모두 와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고개를 좌우로 흔들어대고 있는 그에게 의사선생님이 "대장암 입니다"라고 말한다. "예?"하고 반문했다. 그랬더니 의사가 "대장암이라구요"라며 다시 한번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큰소리로 말하는 것이었다.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그말을 듣는 순간 천리만리 땅속으로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얼이 빠져 멍멍한 그에게 의사가 "어짜피 이병은 수술해야 나을 병이니 하루 빨리 수술을 받으라"고 권한다.
그러나 그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아무말도 못하고 대신 뒤에 있던 가족들과 동생들이 수술하겠다고 대답한다.
부랴부랴 병가 신청하고 밀린 결재 다해주고 입원을 한다. 금방 까무러치는 기분이었다. 어떻게 시간이 가는지 안가는지 몰랐다.
8월25일 5시간에 걸쳐서 수술을 받았다. 추석을 사나흘 앞두고 퇴원을 하려는데 옆구리로 구린내가 났다. 수술이 잘못돼 내용물이 샌것이다. 암부분 아래위로 25cm씩 잘라내고 꿰맨 부분이 터져 버렸다. 의사를 불렀다.
담당의사말이 "선생님은 몸이 약해서 재수술을 못하니까 옆구리에 주머니를 차야 된다"고 한다.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었다. 세상에 이런일이 다있나 싶었다. 아내는 우리남편 살려내라며 울고 불고 난리가 났다.
그때 갑자기 무슨 생각이 났는지 아내가 의사를 만났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안먹으면 변도 안나올것 아닙니까? 굶겨가지고 변이 안나오게 해서 약을 쓰는 방법은 어떻습니까?"라는 아내말에 의사는 그렇게 하기로 했다.
밥을 안먹고 영양제를 맞으면서 목에 혈관을 뚫어 주사기를 박아 투약을 했다. 25일동안 밥을 굶어가면서 치료를 했다. 25일을 굶는 동안 영양제로 연명했다. 하루에 1kg씩 살이 빠졌다. 살빠지는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병실 창문으로 밖을 내다보니 한숨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한여름에 입원했는데 추석도 다지나고… 치악산에 울긋 불긋 단풍이 들고 밤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알밤이 벌겋게 벌어져도 퇴원을 못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비오듯 쏟아졌다. 나오는게 한숨이요 눈물이었다.
두달만에 퇴원을 했다. 아내의 제안대로 굶어가면서 약을 투여하는 방식으로 고친 것이다. 입원할때 몸무게가 78kg이었는데 퇴원할때 54kg으로 빠져 있었다. 거울을 보니 자신은 어디로 도망가 버리고 완전히 다른 사람이 서있는 것 같았다.
퇴원후 1년간 항암주사를 맞았다. 머리카락 다빠진 자신의 모습이 한심했다. 출퇴근도 어려워 아들이 차로 태워다 주었다. 다행이 시장님이 편한 부서로 보내줬다. 2년동안은 3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가서 약을 타다 먹었다. 그리고 4년 지나니까 6개월에 한번씩 오라고 했다.
다시 1년이 지나고 작년에 종합검사 받으러 갔다. 그런데 수술부위에 종양이 또 생겼다. 쌀알보다 작은 것 3개가 발견 되었다. 정기적으로 병원을 다닌 덕분에 빨리 발견해서 천만 다행이었다.
항문으로 올가미를 집어넣어 종양을 다 떼어내고 피가 나오는 부분을 레이저로 지졌다. 그때 생각했다. 건강이 최고지 돈도 명예도 다 필요없다는 것을 절실히 느꼈다. 99년 6월에 판부면장직을 그만 두었다. 29년 4개월간 이어온 공직생활이 그렇게 막을 내렸다.
'항암에는 삼이 최고라며 삼을 많이 먹으라고 의사가 말한다. 그때부터 삼과의 전쟁이 시작된다. 2년간 삼을 매일 한뿌리씩 먹었다. 생삼을 꿀에 찍어서 먹기도 하고 믹서기에 우유하고 갈아서도 먹었다. 장뇌까지 사다 먹었다.
그리고는 올해 다시 검사를 받았다. "올해는 깨끗하네요. 내년에 다시 한번 봅시다" 의사말을 듣는 순간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날아갈것 같았다. 그 이후로 아직까지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
한번 아파본 사람은 안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조그마한 과수원이 하나 있는데 거기서 일을 하면서 주로 시간을 보낸다. 과수원에서 일을 하다 보면 잡념이 없어지고 시간이 잘간다.
병은 이겨내겠다는 의지가 강해야 빨리 극복할수 있다. 이대로 죽을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장남으로서 할일이 태산같은데 그일을 못다하고 죽으면 부모에 불효하고 아비로써 천추의 한이 될것이라고 생각했다. 내 할일만 다하면 그때는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생각했다. 비록 고치기 어려운 암일지라도 살려는 의지가 강했기에 남들보다 쉽게 극복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작년에는 선산에 벌초하러 갔다가 산삼을 캤다. 처음에는 산삼인줄 몰랐다. 예쁜 열매가 달려서 꽃인줄 알았다. 꺾으려고 잡아당기니까 그만 뿌리채 뽑히고 말았다. 그래서 산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온통 산삼천지였다. 무려 8뿌리를 캤다.
심마니도 찾아내기 어려운 산삼을 캤다는 사실이 너무 신기했다.
살다보니 이런 횡재도 다 있구나 하는 기쁨에 그날밤 잠도 오지 않았다.
이튿날 아내와 둘이서 다시 올라갔다. 마치 자석에 끌려가듯… 산삼이 널려 있었다. 마치 산신령이 산삼을 가꿔놓고 어서 빨리 캐가라고 재촉하는 것 같았다. 21뿌리를 캤다.
그다음날 또 올라갔다. 7뿌리를 더캤다. 그해 모두 그자리서 36뿌리를 캤다. 자고 나서 가보면 또 있으니 이런 신기할데가 다있나… 누가 요술이라도 부리는 것처럼 또하루 지나서 가보면 또있고…
올해도 꿈을 꾸었다. 여름에 산에서 스키를 탄 하얀 노인이 불러서 그 역시 스키를 타고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꿈을 깨고 아내와 함께 그자리에 가보니 역시 산삼밭. 마치 산삼이 그한테 빨리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았다.
2년에 걸쳐서 그들 부부가 캔 산삼은 모두 47뿌리. 전문가에게 감정해본 결과 35년생에서 10년생까지 있었다. 그렇게 캔 산삼은 팔지 않고 가족 그리고 친척들과 함께 나눠 먹었다.
마음이 정갈하지 않은 사람은 산삼밭에 서있어도 보이지 않는 다는 산삼을 무려 네차례에 걸쳐서 47뿌리나 캔 이들 부부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만사 순리대로 살아야지 어거지로 되나요?"
*이 기사는 피플코리아의 허락없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전재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피플코리아 김명수기자/ www.people365.pe.kr>
2000/09/25 18:37:38
피플코리아 홈으로 바로가기
[
피플코리아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hsshss2927@hanmail.net
대한민국 대표 인물신문 - 피플코리아(www.peoplekorea.co.kr) - copyright ⓒ 피플코리아. 무단전재 & 재배포 금지
프린트
스크랩
메일전송
댓글달기
목록
이전
맨위로
메일보내기
보내는분
보내는분 이메일
받는분 이메일
내용
많이본기사
화제의 뉴스
북한산이 단풍 빛으로 물든다
도봉산 거북골 단풍이 황홀
북한산 진달래 꽃길을 걷는다
벤포벨S
관악산 병아리난초와 나나벌이난…
정치인으론 드물게 꾸준히 기부…
이름만 천사인 엔젤스 트럼펫
매혹적인 꽃무릇의 유혹
일본 호텔 '대머리 할인' 서비스…
"작은 도움으로 따뜻한 세상 만…
화제의 포토
화제의
포토
더보기
핫이슈
HOT
!
이슈
김진홍 부산 동구청장 1억 기부, 아…
제인 구달-최재천 DMZ서 생태-평화 …
양천구 홍보犬에 시베리안허스키 '부…
"여름휴가는 경기 바다로"...8~16일 …
딸기맥주 한모금에 더위 싹!...시음…
김희재 펜클럽 생일맞아 또 기부...1…
수원에서 펫스타..강형욱-박수홍 출…
국내 최대 '경기 반려마루 여주' 7월…
가수 이무송, 여주시 홍보대사에 위…
양천의 예비군 수송버스 전국으로 확…
회사소개
광고안내
제휴·광고문의
기사제보
정기구독신청
다이렉트결제
고객센터
저작권정책
회원약관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RSS
피플코리아(peoplekorea.co.kr) | 서울시 정기간행물 등록: 서울특별시 아 01152호
서울특별시 강서로 초원로 14길 1-6 나동 201호 | 대표전화 : 02-363-5521
등록일: 2010년 2월 22일 Copyright ⓒ 2009 피플미디어. All rights reserved.
대표 겸 발행인 : 이부영 | 편집국장: 장민
피플코리아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