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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정신 칼럼 제 22호] 목소리
2005/05/30 00:00
입력 조회수 : 706
우드-득 우드-득 파란 비닐 우산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마치 한방울의 비물도 맞지 않겠다는듯 우산속에 작은 몸을 감추고
소년은 학교로 향한다
오늘같이 비오는 날은 책가방이 부담스럽다
도시락은 책가방 속에 넣었으나 신발 주머니는 별도로 들고 다녔다
도시락속에는 아마 계란 후라이도 들어 있을 것이다
소년은 도시락 속에 담긴 어머니의 따스한 사랑을 느끼며 집을 나섰다
집을 나와서 옆집에 사는 친구를 불렀다
병일아! 학교가자
병일이 아까 갔다
리어카를 끌며 채소 장사를 하는 병일이 어머니 목소리가 들렸다
웬일이지? 같이 안가고 엄마한테 혼났나
소년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이번에는 시장골목 끝 코너에 있는 희봉이를 불렀다
불종대집 아들이라고도 한다
불이 나면 종을 쳐서 온 동네에 알리기 위한 불종대가 옆에 있었는데
꼬마들은 아직 한번도 그 종이 울리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희봉이도 먼저 학교에 갔다
오늘따라 남주동 시장도 조용했다
장이 안서는 날이다
시장은 2와 7이라는 숫자가 있는 날에 장이 선다
장이 서는 날 소년의 집 앞에는 보따리 장사꾼들이 천막을 치고 장사진을 이룬다
소년은 이곳에서 맥(麥)고자 집 아들로 통한다
장날에는 시골에서 나온 농사꾼들이 소년의 집에 들러 밀짚 보리짚 또는 미루나무를 재료로한
하얀모자 등을 사기위해 북새통을 이룬다
공장에서 사면 한푼이라도 더 싸게 살 수있다고 생각해서이다
장날은 아버지 어머니가 더 활기차 보였다
장날은 용돈을 두둑히 타낼 수 있었고 만화가게도 마음놓고 갈 수 있었다
그래서 소년은 장날이 좋다
그러나 오늘은 장날도 아니고 비까지 주룩주룩 내리는 쓸쓸한 날이다
소년은 할 수없이 혼자서 학교로 향했다
어물전을 지나 골목길을 지나면
서문동이 나오고 양조장 앞을 지난다
조금 더 내려가면
무심천으로 흘러 들어가는 작은 하천이 있다
무심천에서는 헤엄도 치고 밤에는 횃불을 들고 밤고기도 잡는다
밤에 잡는다고 해서 밤고기다
다리밑은 아줌마들의 영역이다 낮에는 빨래하고 밤에는 목욕을 한다
목욕하는 동네 아줌마들의 목소리는 우리가 든 횃불의 침범을 막는다
밤고기와 달빛만이 아줌마들의 영역을 드나들 수 있었다
조치원에서 제천으로 연결된 철로는 무심천에서는 거대한 철교로
또 공업고등학교 위의 작은 도랑에는 작은 철교로 이어져 있었고
어른철교와 아이철교 사이는 자갈밭이고 자갈들 틈에 침목(枕木)이 박혀있다
육중한 기차를 지탱하는 고단한 자갈과 나무는 빗물로 씻어도 씻어도 까맣다
아이들에게 어른 철교는 너무 길어 보였고
감히 건너기가 두려웠다
기차가 자주 다니지는 않았지만 중간에 기차라도 만날까
중간에 대피소도 있었지만 그곳은 용감한 어른들만 어쩌다 한번씩 건너는 곳이었다
하지만 그 옆의 아이 철교는 만만해 보였다
아이들 한테 아이철교는 친구이자 놀이터 였다
침목을 징검다리 삼아 한칸 한칸 건너는 재미가 스릴 만점이었다
가위 바위 보를 하며 한칸씩 건너기도 하고
조금 대담해진 아이들은 달리기 시합까지도 하게 되었다
달리기 하다가 병일이는 뚝 떨어져 침목(枕木)을 사이에 두고 양 다리가 빠지기도 했다
마치 목마를 탄듯한 병일이는 고통을 호소하면서도 웃었다
또 아이들은 철길에 못을 올려놓고 둑방에 엎드려 기차가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기찻길에 귀를 대고 있으면 먼곳에서
기차가 달칵달칵 목소리를 내며 달려오곤 했다
잠시 피해 있으면 우렁찬 굉음을 내며 기차가 지나간다
이이들은 숫자를 센다 하나 둘 셋......
와! 길다 15칸이다
기차가 지나가고 나면 못이 납작해진다
그것을 갈아서 칼을 만들기도 하고 장난감 삼아 가지고 논다
아이들에게는 기차 보다 더 큰 구경거리가 없었고
기찻길에서 노는 재미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었다
한 소년이 오늘은 친구들과 떨어져
우산을 쓰고 철교를 건넌다
철교 아래로는 안전한 길도 있었지만 철교를 택했다
기차가 자주 다니지는 않았다
그곳을 건넌다고 말리는 사람도 없었다
소년은 철교위에서 징검다리 건너는 재미에 푹 빠져 있었다
비가와서 미끄러우니까 더 스릴이 있었다
비바람이 세찼다
맞바람이 불어와 우산을 방패삼아 앞으로 향했다
침목아래로 빗물이 강이 되어 흐르는 것을 보며 한칸 한칸 조심스럽게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들려오는 "야 임마!" 하는 다급한 목소리
고요한 철길위에서 멀리서 그러나 크고 또렷이 들려왔다
소년은 직감적으로 위기임을 알아차렸다
우산을 걷어치고 앞을 보니 집채만한 괴물이 달려 들었다
후퇴하는 것 보다는 앞으로 전진 하는 것이 빨라 보였다
번개돌이처럼 뛰었다 다행이 미끄러지지도 않았다
소년이 한발짝 더 빨랐다
곧 이어 굉음을 내며 자갈처럼 시커먼 기차가 지나갔다
한참을 지나갔다
사방을 둘러 보았다
누가 소리를 질렀을까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야 임마!" 하던 목소리만이 아직도 소년의 귀를 때린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보이지 않았다
소년은 학교에 가면서도 궁금했다 "누구일까"
소년은 그 후 철교를 건너지 않았다
안전한 길로 다녔다
하지만 소년은 어른이 되어서도 가끔 그 목소리를 듣는다
그 목소리는 어떤 위기 때
때로는 무언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을 때
지금도 그의 귀를 때린다
"야 임마!" 하면서.....
김동주
2002년 8월3일08시40분
[
피플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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