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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에 젖어있는 열한 개의 소품] 이야기 하나 (6)
2005/05/14 00:00
입력 조회수 : 647
◇까만색 반부츠-누군가를 대신한 사랑 (6)
쇼핑백 안에는 아이보리색 바바리가 들어 있었습니다. 급히 사왔다고는 했지만 당시에 한참 유행하던 모델의 봄 바바리였지요. 그러나 그런 것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습니다.
이 사람은 왜 나에게 무엇인가를 자꾸 주려고 하지?
아무런 인연의 끈도 없을 때 부츠를 주었고, 이제는 단지 추워한다는 이유로 바바리를 사오셨습니다.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했던 걸까요?
혹시... 그전에도 저에게 부츠를 선물하지 않았던가요?
만약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라면 큰 실례가 될 일이었지만 이렇게 두서 없이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리를 따지기에는 제 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기 때문입니다. 제 질문이 의외였던지 당신도 약간은 당황하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곧 자조 어린 미소로 입을 열었지요.
출근 첫날 못 알아보기에 그 날 일을 완전히 잊은 줄 알았었는데... 기억하고 있었군요.
그럼 정말로...
실망하셨습니까?
아... 아니요. 실망했다기보다는... 약간 놀랐을 뿐이에요.
이렇게 말은 했지만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해 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 노숙자가 바로 당신이었다니... 저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있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저녁은 즐거웠어요. 그럼 저는 이만...
저는 일방적인 작별을 고하고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이상하게도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제 시선은 당신을 찾아 천천히 뒤로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결단코 제 의지가 시킨 일은 아니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제 뒤에 서 있는 당신, 표현 할 수 없는 허무함을 담고 있는 눈길, 더 이상 처연할 수 없는 넥타이 속의 장미... 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저를 옭매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잠시 시간이 멈춘 듯 했습니다.
술 한 잔 더 하시겠어요?
먼저 말문을 연 것은 저였습니다. 우습게도 하루에 두 번씩이나 한 남자에게 술 마시자는 소리를 하기 위해서 말입니다. 어쨌거나 그 말로 인해 시간은 다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만, 어쩌면 진정한 시간은 그 이후로 영원히 멈추어 버린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두 번째로 간 술집은 조금 시끄러운 곳이었습니다. 이십 초반의 청년들로 꽉 들어찬 왁자한 분위기의 그런 술집 말입니다. 귀청이 떨어질 듯한 음악 소리와 취객들의 소음으로 인해 어느 것이 말이고 어느 것이 음악인지 분간이 가지 않을 지경이었지요.
하지만 그런 것은 아무런 방해도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술잔만 비우고 있었으니까요. 간혹 한두 마디씩 던지긴 했지만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전혀 기억나지 않습니다. 기억나는 것은 제가 생애 처음으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했다는 것뿐입니다.
백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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