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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바람의 꽁트] (12) 고향떠난 형제, 불쌍한 조강지처
2005/03/19 00:00
입력 조회수 : 685
이기심으로 똘똘뭉친 개만도 못한형제. 사람들은 그들을 그렇게 생각한다. 그들이 살아온 방식은 한마디로 개차반이다. 형은 55살의 김치수. 동생은 52살의 김차수. 전라도 첩첩 두메산골이 고향이다.
꽁보리밥도 먹기 힘들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돈이 없어 소학교도 다니다 중간에 그만두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일어나 보리밥 한끼 뚝딱 해치우고 지게지고 산에가서 나무 한짐 해오는것이 그들의 일이었다. 농사처도 산자락에 손바닥만하게 붙어있는 논 댓마지기가 전부였다.
그들은 오전에 해온 나무를 오후에 지게에 짊어지고 이십리길을 걸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 형은 일하기가 싫었다. 가난이 지긋지긋했다. 하루빨리 고향을 떠나 서울가서 돈을 왕창 벌고 싶었다. 큰아들인 치수는 20살때 중매로 장가를 갔다. 동생인 차수도 20살때 결혼을 했다. 치수는 결혼을 하고 일년후에 군에 입대했다. 군에서 수송병과를 받았다.
군대생활 하는동안 기름을 드럼통으로 빼돌려 팔았다. 치수는 고참이 되면서
본격적으로 기름을 빼돌려 돈을 챙겼다. 군대제대할때까지 그렇게 해서 상당한 돈을
모았다. 치수는 병장으로 제대를 했다. 치수가 입대하기 전에 임신했던 마누라는 첫아들을 낳았다. 치수는 군부대기름을 빼돌려 모은 돈을 가지고 제대후에 서울로 올라갔다.
치수는 마누라와 아들을 시골에 둔채 돈을 벌어오겠다면서 혼자 서울에 갔다.
치수는 나중에 자리잡으면 그때 마누라를 데려가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치수는 혼자 서울생활을 했다. 치수 마누라는 시골에서 청상과부처럼 멀쩡한 남편을 서울로
떠나보내고 젖먹이 아들과 함께 지냈다. 동네사람들은 젊은 아낙이 남편과 떨어져 지내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다.
그러나 치수 마누라는 조금만 참고 지내면 남편이 돈을 벌어서 자신을 데릴러
올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서울에 올라간 치수는 한달에 한번꼴로 고향에 내려왔다. 고향에 와서는 마누라와 며칠을 함께 지내다가 다시 서울로 올라가곤 했다. 치수는 서울에서 일자리를 구해보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 그러나 배운것 없고 가진것 없는 시골뜨기를 받아주는 곳이 없었다.
치수는 다시 시골로 내려갈수도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앞날이 캄캄했다. 치수는 막일이라도 해볼작정으로 남대문시장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나 일자리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치수는 직업소개소를 찾아갔다. 하루를 기다린끝에 청소부를 뽑는다는 곳을 소개받았다. 남대문시장이었다.
치수는 우선 급한데로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청소부라도 해보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치수는 남대문시장에 청소부로 일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일도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밤12시가 넘으면 전국각지에서 소매상들이 물건을 구입하려고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뤘다.
흥청거리던 새벽시장이 아침이면 파장을 하는데 그때부터 치수는 몸이 두개라도
모자랄정도로 분주하다. 밤사이에 산더미처럼 쌓인 쓰레기를 치워야 하기 때문이다.
치수는 한달도 못가서 청소일이 싫어졌다. 치수는 다른 일자리를 구하려고 다시
직업소개소로 찾아갔다. 이번에는 지게꾼으로 일해보라는 제의가 들어왔다.
치수는 시골에서 지게질하던 기억이 떠올라 대답을 못하고 한참을 망설였다. 그러나 결심했다. 청소부로 일하는 것보다는 그래도 시골에서 해본 가닥이 있는 지게질이 더 편할것 같았다. 그러나 막상 일을 해보니 어렵고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 지게꾼으로 몇달을 지내다보니 치수는 이제 제법 서울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러면서 치수는 가죽의류점포에서 쏟아져 나오는 가죽쓰레기가 돈으로 팔려나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치수는 그것을 처분하는 루트를 알아냈다.
치수는 자신이 할일은 바로 이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뒤로 치수는 자신이 직접
뛰어들 작정으로 가죽쓰레기를 모아서 처분하는 일을 몇달간 눈여겨 보았다. 드디어 치수는 서울에 올라온지 일년만에 가죽쓰레기 장사에 손을 댔다. 치수의 예상은 적중했다.
가죽점포에서 옷을 만들고 남은 자투리 가죽들이 쓰레기로 쏟아져 나오면 그것을 모아 영세 피혁공장에 파는 것이었다. 돈이 굴러들어왔다. 거의 갈퀴로 긁어모을정도로 돈을 벌었다. 치수는 사무실을 하나 얻었다. 사무실이라고 해야 겨우 5평짜리 공간이다. 여자직원도 한명 두었다.
치수는 돈을 벌자 더 많이 벌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치수는 식당을 해보고
싶었다. 돈버는데는 먹는장사가 최고라고 생각했다. 치수는 자신이 번돈을 가지고 우선 집을 한채 샀다. 이층집이었다. 일층은 세를 두고 이층에서 주인인 치수가 살았다. 그리고 남는 돈으로 식당을 차렸다.
국밥집이었다. 시장 상인들이 단골 고객들이었다. 치수가 차린 식당에 손님들이
몰려들었다. 치수는 돈버는 재미에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치수는 식당운영 3년만에
큰돈을 벌었다. 치수는 가죽쓰레기 장사를 할때 사무실에서 일했던 아가씨에게 식당
카운터를 맡겼다.
미스리라고 불리던 그 아가씨는 치수를 친오빠처럼 따랐다. 치수는 계산 빠르고
얼굴예쁘고 마음씨 좋은 미스리에게 마음이 끌렸다. 처음에는 종업원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호감이 갔다. 고향이 대구인 미스리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해서 일자리를 구하다가 치수의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된것이다. 미스리는 방을 얻어 혼자살고 있었다.
치수는 미스리에게 자신의 집에 방이 많이 있으니 들어와서 지내라고 했다. 방세를 받지 않는대신 아침에 밥만 해달라고 했다. 미스리는 순순히 그렇게 하겠노라고 치수의 말에 따랐다. 미스리는 치수와 함께 한집에서 살게 되었다. 식당 사장과 종업원으로 만난 두사람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 좋아하는 감정을 갖게 되었다.
치수는 미스리와 가까워지면서 시골에 내려가는 일이 뜸해졌다. 치수마누라는
서울간 남편이 내려오기를 눈에 빠지게 기다렸다. 그러나 돈벌면 와서 서울로 데려가겠다던 남편은 일년이 넘어도 오지를 않았다. 치수는 그때 미스리에 흠뻑 빠져 있었다. 미스리도 치수를 좋아했다.
치수는 식당영업이 끝나면 미스리와 함께 애인처럼 붙어다녔다. 그러던 어느날
치수는 미스리에게 결혼하고 싶다고 했다. 사실은 미스리도 치수와 결혼하고 싶었다.
두사람은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결혼식을 올리고 싶었지만 시골에 조강지처가 있었기 때문에 그럴수가 없었다.
미스리는 치수가 총각인줄로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날 일이 벌어졌다. 시골에서 남편이 오기를 기다리다 지친 치수 마누라가 서울로 올라온것이다. 치수 마누라는 아이를 등에 업고 물어 물어 식당에 찾아왔다. 미스리는 손님인줄 알았다. 그러나 치수의 조강지처라는 것을 알았다. 미스리는 그때서야 치수에게 조강지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것이다.미스리는 치수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고 하늘이 무너진것 같은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치수는 마누라를 끌고 밖에 나갔다. 치수는 나중에 때가 되면 서울에 데려올테니
어렵더라도 그때까지 시골에 가서 조용히 참고 기다리라고 마누라를 설득했다. 치수의 조강지처는 남편이 서울에서 새여자를 얻어 동거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제서야 알았다. 조강지처는 남편이 죽이고 싶도록 미웠다.
그러나 조강지처는 이혼한다는 것은 생각도 못했다. 친정부모님이 무서웠고
무엇보다도 이혼녀라는 말을 듣는 것은 죽기보다도 더 싫기 때문이다. 치수는 생활비를 넉넉하게 다달이 보내줄테니 시골에서 지내고 있으라고 조강지처를 설득했다. 조강지처는 억울하고 분했지만 시골로 내려오고 말았다.
그뒤로 치수는 한달에 한번씩 시골에 내려와서 조강지처와 하룻밤을 보내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곤 했다. 시골에서는 이미 치수가 서울가서 돈많이 벌더니 새파랗게 젊은 첩을 얻어서 동거생활을 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미스리는 처음에는 치수에게 속은 것이 분해서 팔팔 뛰면서 울부짖었다.
그러나 이미 미스리의 뱃속에는 치수의 아이가 자라고 있었다. 치수는 미스리를
달랬다. 자신은 본마누라와 이혼하고 정식으로 결혼을 해서 살겠다고 했다. 미스리도 뱃속에 아이가 자라고 있는 마당에 이제와서 치수와 떨어져 살수있는 처지가 못되었다. 미스리는 결국 치수를 떠나지 못했다.
그대신 미스리는 치수가 시골에 내려가는 것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치수는 시골에 있는 조강지처에게 평생먹고 살수 있는 돈을 보내주었다. 조강지처는 이제 남편과 함께 살수 있다는 희망을 포기하고 시골에서 눌러살기로 결심했다. 세월이 지나면서 치수는 명절때나 시골에 내려올뿐 조강지처와는 거의 남남처럼 지냈다.
동네사람들은 그런 치수를 보고 조강지처 버린놈이라고 욕을 하곤 했다. 미스리도 첫아들을 낳았다. 치수가 26살때였다. 미스리는 치수보다 4살이 적은 22살이었다. 치수는 돈을 많이 벌어서 시골에 한번 내려오면 동네에 몇십만원씩 기부를 했다. 동네사람들은 치수가 돈을 많이 벌어 크게 성공한것으로 알고 있다.
치수의 동생 차수는 결혼을 해서 딸만 내리 5명을 낳았다. 차수는 마누라를
구박했다. 차수는 아들도 못낳는다면서 마누라를 무슨 하인처럼 못살게 굴었다. 차수는 아들 못낳는 책임을 마누라에게 몽땅떠넘겼다.
차수는 노골적으로 마누라를 무시하고 학대했다. 그러면서 차수는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차수도 처자식을 시골에다 떼어놓고 혼자 서울로 올라갔다. 차수는 서울에 올라온지 3개월만에 형의 도움을 받아 식당을 하나 차렸다. 이를테면 형이 하는 식당의 분점인셈이다. 차수가 하는 식당도 장사가 잘되어서 돈이 굴러들어왔다.
차수도 식당을 연지 삼년만에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그형에 그동생이었다. 차수도 다른 여자를 하자 꿰어찼다. 동생도 카운터를 보는 여자와 눈이 맞았다. 동생은 카운터를 보는 미스최와 동거생활을 했다. 동생도 형을 닮았는지 시골의 조강지처를 버리고 첩을 얻은 것이다.
동네사람들은 치수형제가 나란히 첩을 얻어 딴살림을 차렸다는 소식을 듣고 집안의 내력이라면서 혀를 찼다. 차수는 명절때를 제외하고는 아예 시골에 내려오지를 않았다. 차수의 본처는 남편이 첩을 얻어 딴살림을 차렸다는 것을 알고도 별로 내색을 하지 않고 시골에서 아이들과 함께 조용히 살았다.
차수의 본처는 남편에게 아들못낳는다고 하도 구박을 받아서인지 아이들과 시골에서 지내는 것이 오히려 마음 편했다. 생활비는 남편이 다달이 보내주었다. 차수는
작은마누라와 동거생활을 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사는것같은 즐거움에 빠졌다.작은마누라가 임신을 했기 때문이다. 작은마누라는 아들을 낳아 차수의 소원을 풀어주었다. 차수는 이제는 조상님 뵐 면목이 생겼다면서 날아갈듯이 기뻐했다. 차수의 후처는 자신이 대를 이을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본마누라와 이혼을 하라고 남편을 닥달했다. 차수는 본처와 이혼을 했다. 동네사람들은 조강지처버린놈 천벌을 받을 것이라면서 차수를 비난했다.
치수는 식당을 운영해서 큰돈을 벌어 부자가 되었다. 치수는 후처와 살면서 3남매를 두었다.치수는 아이들을 데리고 명절이면 시골에 내려갔다. 시골에 7순이 넘은 어머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어머님은 조강지처 버린 아들이 못마땅했다. 치수가 마흔다섯살이 되던해에 식당을 정리하고 4층짜리 상가건물을 샀다.
꼭대기층에 자신이 살고 나머지는 임대를 했다. 치수는 이제 임대료를 받아서
생활을 한다. 치수의 전처 아들 김행수는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마쳤다. 아버지집에서
살면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다시 어머니가 계신 시골로 내려와 살고 있다. 그러나 행수는 어머니를 버리고 새엄마를 얻어사는 아버지가 불만이었다.
행수는 어머니가 불쌍해서 견딜수가 없었다. 행수는 자신도 서울에서 살고 싶으나 어머니를 혼자두고 그렇게 할수는 없었다. 시골장날이었다. 행수가 장에 갔다 집에 오니 어머니가 쓰러졌다. 배가 아프다고 한다. 행수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의사가 고개를 내젓는다. 위암말기라고 한다. 이미 손을 쓸수가 없다면서 집에 가서 편하게 보내드리라고 한다.
행수는 눈물이 쏟아졌다. 아버지가 미웠다. 어머니는 그렇게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행수는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전화를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내려왔을때는 어머니는 이미 눈을 감으신 뒤였다. 행수는 아버지때문에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서 땅을 치고 통곡을 했다. 차수도 식당을 때려치우고 상가점포를 하나 샀다. 차수도 형처럼 거기서 나오는 임대료를 받아 생활하고 있다.
행수 어머니가 돌아가신뒤 꼭 일년만에 차수의 본처도 세상을 떠났다. 시골에서 장에 갔다가 버스에 치여 그자리에서 즉사했다. 동네사람들은 억세게 운도 없는 사람들이라면서 조강지처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차수는 자신의 본처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골에 내려왔다. 차수는 마누라가
죽은 것에 대해서 하나도 서운하거나 슬픈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붙어있는 혹이 떨어져 나간것같이 속이 후련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차수의 본처가 낳은 딸들은 우리어머니 살려내라면서 아버지를 붙잡고 울부짖었다.
차수는 시골의 집을 처분하고 본처가 낳은 아이들을 서울로 데리고 갔다.
조강지처를 헌신짝처럼 버리고 첩을 얻어 살던 이들 형제에게 불행이 닥치기 시작했다. 남편에게 버림받고 세상을 떠난 본처가 한을 품어서였나?
공교롭게 두형제는 나이가 들면서 되는 일이 없었다. 치수는 50살이 되던해에
중풍이 걸려서 왼쪽이 마비되었다. 병원비로 그동안 모은 돈도 다 날려버리고 결국은 상가건물까지 팔게 되었다. 치수가 병들고 번돈도 치료비로 다 날리자 후처도 남편을
구박하기 시작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후처가 낳은 아들이 오토바이를 훔쳐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현장에서 숨졌다. 사람들은 조강지처를 헌신짝처럼 버려서 죄를 받은 것이라고 차수형제에 대해 손가락질을 했다. 차수도 마찬가지였다. 등따습고 배부르자 도박에 손을 댔다.
결국은 재산을 몽땅 날리고 홧병을 얻어 쓰러지고 말았다. 결국 차수는 있는 재산
다까먹고 요즘도 병원신세를 지고 있다. 차수의 후처는 병든 남편을 노골적으로 구박하고 무시했다.
정말 조강지처를 버린 죄의 댓가가 이들 형제에게 닥친 것일까. 이들 형제는
이제서야 세상무서운것을 알고 조강지처에게 잘못한것을 후회하고 있다.
김명수
[
피플코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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