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이사람] (45) 번지점프 시설·교육 전문가 전인춘
가느다란 한가닥의 생명줄에 몸을 맡긴채 수십미터 높이에서 허공으로 뛰어내리는 순간의 공포체험. 말이 필요없다. 해보면 안다. 번지점프보다 더 짜릿한 모험스포츠는 없다는 것을…

그누구도 따라하기 힘든 가장 특이한 직업을 가진 사람이 있다. 전인춘(43). 스릴과 모험의 대표적 레저스포츠로 등장한 번지점프 시설·교육전문가. 모험을 즐기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풀어주는 마법사라고나 할까…
그는 국내에서 유일한 번지점프 시설사업·교육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기계제작에서부터 안전교육·장비까지 모두 책임을 진다. 1996년 국내처음으로 자체제작한 번지점프대를 강촌에 설치한 장본인이다.
어려서부터 모험심이 강했던 전씨. 공무원출신. 전신전화국에서 일했다. 나무타는 재주를 그때 익혔다. 어떤 나무라도 어떤 높이라도 원숭이처럼 자유자재로 오르내릴수 있다. 원숭이재주를 닮은 인간. 그가 살아온 내력을 따지고 보면 자신의 타고난 성격과 번지점프시설이라는 직업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 셈이다.
번지점프의 기원은 파푸아 뉴기니. 1100년경 27m 높이의 받침대에서 24m 길이의 넝쿨식물을 발목에 묶고 점프하는 스타일로 성인남자가 되기위한 의식을 치뤘다. 이러한 뉴기니 원주민의 성인의식이 번지점프로 발전하였다.
배씨는 평창에서 건설업을 하였다. 그러다 1993년에 청각장애자인 아들의 교육문제로 사업을 포기하고 춘천에 왔다. 레미콘 회사에 다니면서 뭔가 자신의 사업을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때 마침 방송에서 파푸아 뉴기니 성인식을 치루는 번지점프 장면을 보았다.
"바로 저거다" 생각했다. 번지점프에 승부를 걸기로 했다. 그런데 막상 사업을 하려고 보니까 개인적인 여건이 맞지 않았다. 그렇게 어물어물 하는 사이 시간이 흘러갔다. 그리고 얼마 지나고 보니까 외국에서 번지점프가 유행하기 시작하였다.
대전엑스포가 열릴 때 외국관에서 번지점프 전시물을 보았다. 그때부터 다시 번지점프사업에 뛰어든다. 첫작품이 바로 1996년 강촌에 세운 22.5m 높이의 수상 번지점프대. 자체기술로는 국내최초의 번지점프 시설이다.
그뒤로 3년동안 스스로 점프하고 체험하면서 모든 노하우를 습득해 나간다. 스스로 시설을 하고 그리고는 직접 뛰어내린다. 처음에는 제작자인 본인이 직접 뛰어내림으로서 모든 시설의 안전성을 입증해 보였다.
1999년. 경포대에 30m 높이의 번지점프대를 설치한다. 그로서는 두 번째 작품. 바닷물에 점프시키는 번지점프대역시 국내최초. 경포대 번지점프는 자신이 직접 운영한다.
번지점프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빠른 대중화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런데 정부에서는 공식적인 레저스포츠로 인정하지 않는다. 번지점프 설치 인허가를 받을 때 공작물시설로 분류가 되는 실정이다. 신고제이면서도 정부에서는 허가를 내라고 한다.
원래는 허가를 낼 필요가 없이 신고만 하면 되는데… 막상 신고를 하면 인허가를 내라고 한다. 인허가를 내려면 담당할 부서도 없으면서… 서로 담당부서가 아니라면서 미룬다. 명확하게 지정된 부서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점에서 전씨는 어려움을 느낀다. 정부에서 모험놀이시설로 인정을 해주고 담당할 부서가 생기면 좋겠는데…
전사장은 자신이 설치한 점프대를 수시로 현장점검한다. 번지점프를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의외로 여자가 훨씬 많다. 뛰어내리는 사람중 70이상이 여자다.
번지점프를 설치하면서 느낀 또하나 애로사항은 우리나라사람들의 인식자체. 이용자들은 뛰어내릴 때 낙하지점을 처음부터 물속에 직접 넣어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이거야 말로 위험천만한 일. 처음에 물에 들어가면 수면하고 마찰하는 충격 때문에 부상을 입을 확률이 높다.
로프가 공중에서 몇번 완충된뒤에 물속에 넣어주어야 안전하다. 그런데 그 사실을 모르고 물속으로 직접 낙하시켜 주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럴 때 답답함을 느낀다.
번지점프는 안전수칙만 잘 지키면 안전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수 있다. 6살꼬마도 뛰어내린적이 있다. 7순의 고령자가 뛰어내린 적도 있다. 안전수칙하나. 뜀틀에서 멀리 뛸수록 안전하다.
전사장은 수시로 뛰어내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번지점프로 해소한다. 점프하고 나면 스릴 만점. 마음속까지 후련하다. 그의 번지점프 예찬론. 담력이 커진다. 뭐든지 할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그는 자신이 제작한 번지점프대를 찾는 사람들을 보면서 보람을 느낀다. 번지점프를 하면서 즐기고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자부심을 느낀다.
번지점프대를 설치하려면 평균 3개월이 걸린다. 시설비 회수는 1년이면 가능하다고 그는 말한다. 많이 뛸때는 한 점프대에서 하루 4백명까지 가능하다. 물론 안전요원이 필수적으로 있어야 한다. 점프대 설치에 좋은 위치로는 우선 물이 있어야 한다. 유원지등 놀이객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가 좋다. 물이 없는 곳에서도 에어백설치로 가능하다.
전사장은 앞으로 번지점프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난다고 본다. 번지점프야말로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성격과 딱 맞아 떨어진다고 그는 생각한다.
IMF때 번지점프를 찾는 사람중 실직자들이 많았다. 자살하는 심정으로 뛰어내렸다는 실직자도 있었다. 좌절감을 이겨내지 못하고 자살충동을 느껴 뛰어내렸다는 실직자의 말을 듣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던지…
뛰어내리기 전에 말을 했더라면 돈이라도 받지 않았을텐데…전사장 자신도 IMF피해자이기 때문에 그들의 뼈아픈 심정을 누구보다도 이해한다. 그러나 그렇게 자살하는 심정으로 뛰어내리고 나서 다시 세상을 살아갈 힘을 얻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는 IMF때 라면한개도 제대로 못먹을 정도로 힘이 들었다. 번지점프 시설 수주가 되어있는 상태에서 IMF가 터지는 바람에 계약이 모두 최소되었다. 빚더미에 올랐다. 다행이 지금은 재기에 성공했다. 수주도 밀려있는 상태이다. 빚도 거의 다 갚았다.
돈을 많이 번다면 장애인 아들을 생각해서 사회사업을 하고 싶다. 국내에서 번지점프를 설치하고 교육까지 시켜줄수 있는 사람은 전사장 뿐이다. 그는 딸린 종업원이 없다. 다만 장비와 협력업체를 가지고 있다. 쉽게 말해서 신종벤처. 앞으로는 외국 진출도 생각하고 있다.
번지점프대를 설치할때마다 개성을 살리려고 노력한다. 시설 하나하나마다 특색있게 만들려고 한다. 안전복 로프 안전시스템을 직접 착용하고 실험해 보면서 더좋은 제품으로 계속 개발해 나가고 있다. 자신이 시설물 현장답사를 많이 하고 때에 따라서는 출장강연도 한다.
그는 지금까지의 노하우를 살려 가평 남이섬 입구에 55m의 번지점프대를 설치하였다. 아파트 20층에 맞먹는 높이로 국내최고를 자랑한다. 엘리베이터에 CCTV까지 설치하였다. 점프하는 전과정을 녹화하여 비디오 제작도 할 수 있다.
전씨는 내년봄 개장을 목표로 철원에 번지점프대를 세우고 있다. 다리 한복판에서 뛰어내릴수 있도록 설계가 끝나고 지금 시공중이다. 47M높이.
전사장은 사업에 실패해본 경험이 있거나 일이 잘 안풀려 비관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번지점프를 하라고 권한다. 죽고 싶은 심정으로 뛰어내려보면 마음이 바뀌고 세상을 살맛을 느낄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죽을 각오로 세상을 살아가면 뭐든지 이룰수 있다고 그는 확신한다. 자신이 그랬듯이…
◇사진은 자신이 가평 남이섬 입구에 설치한 번지점프대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전인춘씨. 55M로 국내최고높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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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6/20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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