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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피플] (18) “개성이 숨쉰다” 움직이는 디자인사전 박태준
2007/07/22 00:00
입력 조회수 : 1,096
[AD피플] (18) “개성이 숨쉰다” 움직이는 디자인사전 박태준
방문객을 압도하는 독특한 사이트가 주목을 받고 있다.
모노컬러의 고급스런 분위기와 디자인, 탄탄한 구성 및 독특한 플래시가 돋보이는 디자인애채의 웹사이트
(http://aechae.com)
를 보노라면
홈페이지가 표현할 수 있는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의문을 갖게 된다.
사이트를 직접 기획하고 제작한 디자인애채의 대표 박태준.
‘움직이는 디자인사전’이라는 별명답게 늘 바쁜 그이기에 약속잡기가 어려워 인터뷰를 미루려던 참에 그가 연락을 해왔다. 바쁜 일이 마무리 되어서 시간이 빈다는 것이었다.
그는 기자를 보자마자 대뜸, 때맞춰 내리는 비에 바람도 곁들이니 술 마시기에 그만인 날씨 아니냐며 아차산 밑의 포장마차로 이끌었다.
가을에 시집 두 권을 펴내려고 준비 중인, 등단시인이기도 하기에 디자이너로 불러야 할지 시인으로 불러야 할지 애매하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디자이너로 불리기를 더 원한다며 소주를 가득 채운 잔을 내밀었다.
그의 디자인은 독특한 개성만큼이나 고집이 세기로도 유명하다.
광고주가 흡족해 하여도 그 스스로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긴 시간 작업한 것을 휴지통에 버리고 다시 시작할 만큼 스스로의 디자인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무엇 무엇처럼 보이는 디자인이라면 그건 실패한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 무엇처럼 보이는 것이 아닌 무엇인지 메시지가 분명한 디자인이 되어야 하겠지요.”
그러면서 그는 디자인애채의 홈페이지를 만들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포트폴리오 부분에 영사기가 돌아가는 장면을 넣었는데 플래시로 만들어 놓고 보니 그게 썩 만족스럽지 못했다.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긴 하지만 실제 돌아가지는 않는, 착시현상을 이용한 눈속임처럼 여겨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돌아가게 하고 싶었습니다. 보는 각도가 있으므로 필름 통이 동그란 진원이 아닌 기울어진 모양인데 그것을 정말 돌아가게 하려니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효과 하나를 만들려고 먹는 것과 자는 것을 잊고 씨름하였습니다.”
그렇게 보름이 지난 새벽에 완성한 뒤, 그걸 보여 주려고 자고 있는 아내를 깨웠다가 핀잔만 들었다며 웃는 그에게서 일에 임하는 집중력이 엿보였다.
현역 시인이어서 그런지 그가 제작한 광고디자인들의 문구는 대부분 직설화법이 아닌 시적인 표현으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자신의 제품이 좋으니까 많이 사달라는 식의 직접적인 화법으로는 식상한 소비자들의 방어벽을 넘기 어렵습니다. 상상하는 즐거움을 소비자의 몫으로 비워 두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접근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보는 거죠.”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동안이기에 약간은 개구쟁이 기질도 느낄 수 있는 인상이지만 가끔 지난날을 회상 할 때의 그는 질곡을 살아온 사람답게 눈빛이 깊었다.
올해 마흔 넷인 그의 삶은 파란만장이라는 단어가 딱 어울릴 만큼 우여곡절이 많았다.
그의 지난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한사람의 삶에 그렇게 많은 일들이 일어 날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 까지 하다.
초등학교 사학년 때 갑작스런 부친의 작고 이후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기 시작하면서 그의 삶은 전환점을 맞게 된다.
“누구누구의 아들이었다가 하루아침에 육성회비조차 못내는 천덕꾸러기가 되어 버린 겁니다. 무슨 대회 때 마다 뽑혀 나가서 상을 받아 와도 정작 학교에서는 한반에 다섯 명에게나 주는 우등상조차 못 받는 참 서글프고 불공정한 유년기였습니다.”
5학년 때 전국아동 백일장에서 대통령상을 받은 것을 비롯하여 크고 작은 대회에서의 입상으로 학교를 알리고도 졸업식장에서 그는 다시 한번 부당함을 온몸으로 맛보아야 했다.
“육성회비가 밀려 졸업장도 못 받을 상황이었으니 상을 기대한건 아니지만 말썽만 부리던 아이들도 받는 모범상 하나도 차례가 오지 않고 박수만 치고 있으려니 눈물이 쏟아지는 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졸업 후 삼년동안 계속 원서를 넣었지만 그때마다 생기는 집안의 크고 작은 일로 그는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였다. 암담함을 못 이긴 그는 어머니에게 편지 한 장만을 남기고 열다섯 살에 가출하듯 집을 나서서 대구로 향했다.
낮은 목소리지만 힘이 넘치고 눈빛과 몸짓에 자신감이 습성처럼 배어 있어서인지 그의 이야기를 듣다가 보면 이 사람은 마음먹은 것이라면 반드시 이루고 말거라는 믿음조차 생긴다.
그는 그 자신감이 가출하여 떠돌면서 몇 번의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중학교 과정 검정고시를 끝내고 나서 생긴 것이라고 했다. 중학교 과정을 끝낸 다음해 고교과정 까지 검정고시로 마친 그는 1년 후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지만 그 기쁨은 오래 가지 못했다.
토론이 논쟁이 되고 감정다툼으로 커진 교수와의 마찰로 4년간의 장학금이 보장된 학교를 1학년도 못 채우고 미련 없이 자퇴해버렸기 때문이다.
검정고시 공부를 하면서도 지방방송국의 신인문예에 당선 후 추천으로 등단했던 그는 학교를 옮겨 글 쓰는 공부를 시작하였다.
고된 생활이 다시 시작 되었다. 배달 아르바이트부터 입주과외, 경비원, 심지어는 환경용역회사에서 쓰레기를 치우는 일 까지 했다.
"힘든 것 보다는 강의실에 들어가면 몸에서 쓰레기 냄새가 날까봐 더 신경 쓰였습니다. 4년간 미팅한번 해보지 못하고 그럴듯한 추억 하나 만들지 못한 채 졸업하였습니다.”
졸업 후 그는 문화원에 취업을 하였다. 무슨 일을 하든 제대로 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그였기에 이내 직장에서 인정을 받고 얼마 후 감사/교육 팀의 팀장을 맡게 된다.
“퇴근해도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습니다. 늘 타인의 잘못된 점을 캐내어야 하고 그것을 고치기 위하여 교육하는 부서이다 보니 그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부서 변경을 원하는 그에게 엉뚱하게도 문화원에서 발행하던 여성교양지의 편집장 감투가 덧 붙여졌다. 그로서는 혹 떼려다가 혹 하나를 더 얻게 된 격이었다. 스트레스와 과중한 업무 때문에 고민하는 그에게 아내는 그만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해보라고 권했다.
무엇을 할 것인지 고민하던 그가 찾아낸 것이 바로 디자인이었다.
때마침 동판인쇄 형태의 흑백과 금박 인쇄가 전부였던 명함시장에 오프셋 인쇄의 컬러 명함이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 틈새가 보였다.
색상만 요란한 단점을 보완하고 디자인을 가미시킨다면 승부가 될 것으로 믿었다.
그렇게 하여 명함에 디자인을 접목시킨 국내최초의 디자인명함과 디자인애채라는 회사가 탄생되었다. 의욕적인 출발이었지만 초기부터 디자이너들의 반발로 어려움에 부딪쳐야 했다.
유명대학의 디자인학과를 나와서 고작 명함이나 디자인해야 한다고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주위에서도 명함한통 납품해봤자 얼마나 남는다고 일류 디자이너들을 그런 일에 낭비하느냐며 핀잔들을 하였지만 그의 생각은 달랐다.
웬만한 업체들은 전부 다른 디자인회사들과 인연을 맺고 있는 상황을 뚫고 들어가려면 작은 것에서부터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디자인회사들이 거들떠보지 않는 명함에 정성과 디자인을 담아 작은 것에서부터 감동을 시켜 나가자는 전략이었다. 차츰 그의 디자인명함은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명함한통을 주문 받기 위해서 시안을 열 두 번이나 제출했던 업체도 있었고, 급하게 출국해야 하는 업체 사장에게 전달하기 위해, 폭설로 길이 끊어진 새벽에 전라도 광주까지 날아가다시피 한 적도 있었습니다.”
작은 것을 대하는 그의 정성에 시장은 서서히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였다.
명함을 주문하던 업체들로부터 매체 광고의뢰가 들어오고 카탈로그나 패키지 디자인 발주가 줄을 이었다. 회사가 자리를 잡아가자 그는 다시 야간대학의 시각디자인 학과에 입학하였다. 체계적인 이론과 깊이 있는 안목을 키울 필요를 느꼈기 때문이었다.
회사의 외형은 크게 늘었지만 그는 현장에서 인지도의 벽과 부딪칠 때가 많았다.
규모가 그다지 크지 않고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보니 브랜드나 C.I를 개발해주고도 개발자는 다른 큰 업체의 이름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많았다. 비록 관행이라고 하더라도 그는 속이 쓰렸다. 지명도를 높이려고 고민하던 그에게 뜻밖의 기회가 왔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실무능력이 떨어지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문가들을 교수로 초빙하는 대학들이 늘면서 그에게도 2년제 대학의 교수초빙이 들어왔던 것이다.
중학교도 진학하지 못하여 가슴 아파하던 그 소년은 그렇게 겸임교수가 되었다. 가르친 학생들이 졸업 후에 현장에서 인정받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의 뿌듯함은 아주 컸다. 그때가 그의 가장 보람 있는 시기였다.
IMF는 그의 회사에도 영향을 미쳤다. 초창기부터 함께 해왔던 파트너나 다름없는 업체가 쓰러지고 그 여파는 그에게 까지 미쳤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 힘든 결정을 내려야 했다. 친동생처럼 아끼던 후배가 시한부 삶이라는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회사와 한사람의 생명 사이에서 고민하던 그는 후자를 택했다.
“회사는 쓰러져도 다시 살릴 수 있겠지만 생명은 그렇게 할 수 없기에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직원들에게 회사를 맡긴 그는 수술대에 누웠다. 퇴원 후 몸을 추스르기도 전에 그리 크지 않은 액수의 부도를 그는 막지 못했다. 그가 현장에 있었더라면 그 상황까지 가지 않을 수도 있었지만 중요한 시기의 3개월을 그는 병원에 누워 있었다.
상황을 받아들이고 학교와 회사를 정리하였다. 그 이전에도 커다란 위기는 몇 번 있었지만 특유의 추진력으로 해쳐 나왔었는데 큰 수술을 한 뒤인 그는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었다.
상황을 받아들인 그는 사무실의 임대 보증금과 장비들을 팔아 급여를 해결 하고 빈손이 되었다. 그 후 여전히 변함없는 신뢰를 보여주는 몇몇 업체들만 혼자 관리하면서 몸을 가다듬은 그가 새봄부터 재기의 움직임을 시작하였다. 그 첫 시도가 디자인애채의 홈페이지를 개편하는 일이었다.
“설명이 필요 없는 사이트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실력이 있는지 말로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뚜렷하게 눈으로 보여주는 뭔가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두 달간 죽을힘을 다하여 사이트를 만들었습니다.”
지금 그가 표방하는 것은 명품디자인이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디자인이 아닌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자신만의 색깔을 가진 디자인을 선보일 각오로 다시 일어서는 그에겐 든든한 지원군이 있다. 소수정예의 막강한 맨 파워가 그것이다.
그에게서 담금질 되어 정보통신부의 최우수사이버쇼핑몰상을 수상한 웹 디자이너와 신문사의 광고대상을 받은 디자이너 등, 이미 한 분야의 쟁쟁한 위치에 오른 전문가중의 전문가들이 그에게 합류하였다.
디자인애채는 별도의 사무실이 없는 논오피스 시스템이다.
그를 비롯하여 직원들은 모두가 재택근무를 한다. 초고속 인터넷 망과 고용량 웹디스크 등 E-비즈니스가 활성화 된 시대이기에 굳이 사무실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일상적인 회의는 화상회의를 하고 중요한 안건이 있을 때만 직접 만나서 회의를 합니다. 출퇴근에 시간을 빼앗기지 않으니 업무의 집중력과 효율성이 아주 높은 편입니다.”
자신의 손을 거친 디자인이 광고주와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을 때가 가장 기쁘다는 그는 최종적으로 자신의 브랜드로 시장에 진출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그리고 그때가 자신의 달음박질이 여유 있는 걸음으로 바뀌어도 되는 시기로 잡고 있다.
왜 디자인을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했다.
“제대로 한번 미쳐 보고 싶어서입니다. 전에도 미치기는 하였었지만 나중에 보면 늘 반걸음 정도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이번엔 제대로 한번 미쳐볼 생각입니다.”
요즘도 유수의 업체들에게서 좋은 조건의 스카우트 제의와 교수초빙이 가끔 들어오지만 그는 눈길을 주지 않는다. 잃어버린 것을 잃어버린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찾을 수 없겠기에 잃어버린 곳에서 다시 제대로 일어서기 위해서이다.
다시 돛을 올린 디자인애채호의 선장으로 숨 가쁘게 움직이는 와중에도 그는 가을에 두 권의 시집을 묶어 내기 위해 준비 중에 있다. 시집이 나오면 제일 먼저 기자에게 사인해서 보내 주겠다며 그는 아이처럼 웃었다.
그와 함께 한 시간은 매우 즐거웠다. 자신감이 몸에 밴, 전문가다운 그의 모습에서 기자는 크게 일어설 그의 내일이 미리 보이는 듯했다. 그와의 술자리를 겸한 인터뷰를 마무리 하면서도 그에 대해 채 못다 풀어낸 궁금증이 남아 있기에 아무래도 조만간 기자와 취재원이 아닌 사내 대 사내로서 다시 한번 질펀한 술판을 제대로 벌여야 할 듯싶다.
* 이 기사는 피플코리아의 허락 없이 그 어떠한 경우에도 무단 전재나 무단 사용을 금지합니다. 피플코리아에 실리는 모든 기사의 저작권은 오직 피플코리아에 있습니다.
<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korea.co.kr
>
2005년 06월10일 20시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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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기자 김명수의 클릭이사람 취재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 좋은 분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 피플코리아 운영자 김명수 / 전화 017-707-4827 이메일 people365@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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