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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쓰는 막노동판의 하루] (57) 화려했던 옛날은 가라
2007/07/20 00:00
입력 조회수 : 1,028
[인터뷰 전문기자가 쓰는 막노동판의 하루] (57) 화려했던 옛날은 가라
2004년 03월24일
노가다 판에서 화려했던 과거는 소용이 없다. 아니 오히려 짐이 될 뿐이다. 막노동은 자기 입맛대로 골라서 하는 일이 아니라 말그대로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닥치는 대로 하는 막일이다.
그런 험한 노동판에서 남의 말에 시시콜콜 귀 기울여줄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아무리 과거가 화려했던 사람도 일단 날품을 파는 용역 잡부(보통 인부)로 오면 너나없이 똑같은 막노동꾼일 뿐이다.
과거는 과거고 현실은 현실이다. 노가판에서 같은 잡부로 일을 해도 서로 이름도 과거도 묻지 않는 이유를 시간이 지나면 알 수 있다. 화려했던 과거를 물으면 더 이상 갈 곳 없는 나락으로 추락한 현실이 너무나도 비참한 기분이 들 수도 있으니까.
그런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지난 과거를 무용담처럼 자랑스레 늘어놓으며 허세를 부리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백번 천번 큰 실수다. 심한 말로 자기 무덤 자기가 파는 꼴이다.
노가다 판에서 수 십 년 잔뼈가 굵은 친구의 말을 빌리면 용역 시장을 통해서 나오는 인부들은 천태만상이다.
전직 경찰, 공무원, 교사, 은행 간부 등 벼라별 사람들이 다 있다. 하지만 이곳에 오면 아무리 잘나가던 사람이라도 화려한 시절은 가고 막노동판 잡부라는 꼬리표가 붙을 뿐이다.
직함이 없으니 호칭도 어색하다. 특별한 명칭이 없이 “아무개씨!” 하거나 아니면 “김씨 아저씨!” 하고 대충 얼버무린다.
노가다 판에서 수십년을 굴러먹은 친구는 인부들이 와서 일하는 것을 척 보면 안다. 삽질 하는 것만 봐도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고생 한번 안 해본 사람이라는 것을 귀신같이 알아맞힌다. 저사람은 외모로 보나 말하는 것으로 보나 남의 밑에서 한번도 있어 본 적이 없는 사장님 출신이라는 것을 안다.
용역으로 온 사람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당신 뭐하다 이곳 까지 왔소?” 하고 슬쩍 한 마디 던진다. 순간의 대답에 따라 그날의 운명이 달라진다.
예를 들어 경찰이었다고 말하면 크게 실수한 것이다. 이곳이 어떤 곳인가. 사방팔방 어디를 둘러보아도 더 이상 추락할 곳이 없는 막장 인생들이 모인 막노동판이 아닌가.
막노동판에서 막일을 하는 사람들에게 화려한 과거는 오히려 나락으로 추락한 상대에게 미운털만 박히게 하는 불씨가 된다. 화려한 전직을 과시하듯 털어놓은 사람에게는 속으로 ‘어디 뜨거운 맛좀 봐라’ 하고 더욱 일을 심하게 시킨다.
아무리 항우장사라도 결국은 참다못해 “아저씨! 도저히 힘들어서 못하겠어요. 왜 이렇게 일을 심하게 시키는 겁니까? 좀 쉬었다 하면 안 될까요?”하고 꽁지를 내린다. 그러면 그렇지. 바로 그 말이 나오기를 기다렸다는 듯 즉시 되받아친다.
“전직 경찰 아저씨! 당신도 현직 경찰로 목에 힘줄 때 힘없는 사람이 들어오면 가만 놔두지 않았잖소. 내 말이 틀렸습니까?”
공무원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은 아무래도 이런 일 하실 분이 아닌데 무슨 일하다 오셨소?”하고 물으면 공무원을 하다가 왔다고 한다.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면 그날은 고생길이다.
어디 한번 노가다 판 쓴 맛 좀 봐라 하고 몇 배 더 강도 높게 일을 시킨다.
그렇게 화려했던 전직을 털어놓은 댓가를 혹독하게 치른 사람들은 차라리 거짓말을 둘러 댈지라도 두 번 다시 공무원이나 경찰 출신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노가다 판에서 일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면서 그렇게 스스로 자기 조절을 하고 자연스럽게 살아남는 노하우를 터득해 나간다.
그런가 하면 노가다 판에 어울리지 않는 이단아도 있다. 최고급 승용차 체어맨을 몰고 노가다 판에 와서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막노동을 하다 일이 끝나면 다시 체어맨을 몰고 폼나게 퇴근하는 사람이 있다면 과연 그 말을 믿을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하지만 사실이다. 이곳에 오는 이유가 걸작이다.
집에서 놀면 아까운 돈 만 쓰게 되니 이곳에 와서 기름값도 벌고 돈도 안쓰고 일석 이조를 누린다는 알 수 없는 말을 한다.
돈을 버는 게 목적이 아니라 있는 돈을 쓰지 않기 위해 더 이상 추락할 수 없는 막장 인생들이 하루 벌어 하루 먹는 노가다 판에 최고급 승용차를 몰고 오는 사람이 다 있다니 아무리 몇 번을 생각해봐도 격에 안 맞는 일이다.
그러니 세상은 요지경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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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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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05년 06월08일 09시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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