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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쓰는 막노동판의 하루] (53) 야리끼리를 아시나요
2007/07/11 00:00
입력 조회수 : 1,003
[인터뷰 전문기자가 쓰는 막노동판의 하루] (53) 야리끼리를 아시나요
2004년 03월20일
어제는 용역 인부 두사람이 추가로 동원되어 자재 나르는 작업과 창고 정리를 했다. 생면 부지의 낯선 얼굴이지만 후줄근한 작업복 차림으로 공사판에서 만났다는 이유만으로 왠지 정이 갔다.
같이 온 두사람은 더욱 그랬다. 막노동꾼이라는 동병상련의 동지애를 느끼는 듯 자재를 나르면서도 바늘과 실처럼 항상 붙어 다녔다.
그 중에 나이 많은 분. 꾸부정한 어깨에 깡마르고 폼나지 않은 외모의 그는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산전 수전 공중전’ 다 겪은 파란 만장한 인생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용인에서 태어나 용인을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는 그는 젊은 시절 용인에서 내노라하는 땅부자로 떵떵거리며 살았는데 선친이 가산을 탕진하는 바람에 이렇게 하루살이 막노동꾼으로 전락하게 되었다고 털어놓는다. 도로공사 현장인 이곳도 손바닥 안의 손금보듯 훤하게 꿰뚫어 알고 있었다.
오전 10시가 넘어가면서 그는 배가 고파 도저히 일을 못하겠다면서 새참을 달라고 한다. 여기는 새참이 안 나온다고 하자 그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면서 다른 곳에서는 모두 새참을 먹었는데 왜 이곳은 없는지 모르겠다며 실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막노동을 하는 것도 서러울 텐데 배까지 곯아서야 되겠나 싶어 “숙소에 가서 라면을 끓여 드릴테니 좀 있다 전화를 하면 오십시오.” 했더니 그제야 얼굴이 환해졌다.
현장 사무실에 먼저 와서 라면을 끓여 놓고 두 사람을 불렀다. 허기진 사람이 먹을 음식을 앞에 놓고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두 사람이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고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을 실감했다.
얼큰한 라면 국물에 소주 한잔이 생각났는지 먹다 남은 술이라도 있느냐고 물어본다. ‘배짱한번 좋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곳 숙소엔 술이 없다.
오전 일을 마치고 점심을 먹으러 함바식당에 갔는데 식당 주인이 그를 알아본다. 오후에는 오전에 하던 일을 마치고 창고 정리를 시켰다. 하루 열시간을 모두 채우지 않고 일을 마치는 대로 손을 털고 집에 가는 속칭 야리끼리. 노가다 판에서 흔히 통용되는 말이다.
두 사람은 오후 4시가 돼서 맡은 일을 모두 끝내고 약속대로 그날의 일당을 받아 갔다. 그리고 저녁 때가 되어 다시 함바 식당에 갔다.
열길 물속은 알아도 사람 속은 알수 없다더니 세상에 이런 경우가 다있나... 식사를 하던 중 우연히 용역 인부로 나온 나이 많은 바로 그 사람 이야기가 나왔다.
“아주머니! 아까 점심때 나하고 같이 오신 나이 많은 분 옛날에 이 동네서 알아주는 땅 부자였다면서요?”
“땅부자 웃기고 있네. 그 양반 여기서 모르는 사람 없어요. 허구헌날 술타령에 집안 거덜 난 것은 동네 사람이 다 알고 있는데 무슨 소리를 그렇게 하신다요. 오죽하면 같이 못살겠다고 마누라까지 도망가 버렸을까요.”
“그래요? 그런데 왜 나한테 눈하나 깜짝 않고 그런 거짓말을 했지?”
사람의 자존심이 그런건가 보다. 아무리 더 이상 추락할수 없는 하루살이 인생으로 추락할 지라도 남 앞에선 기죽고 싶지 않은 오기 같은 자존심.
오늘은 토요일. 오후 일을 빨리 마치고 집에 가려고 했는데 빨리 끝나기는커녕 오히려 일이 많아 다른 날보다 더 늦게 끝났다.
공사구간내에 우회도로가 생기는 바람에 폐쇄된 기존 도로의 중앙분리대를 철거하는 일이었다. 내가 이런 일을 하게 될줄 누가 알았겠는가. 중앙분리대에 박힌 나사가 그렇게 많은 줄 예전에는 미쳐 몰랐다. 단단하게 고정된 나사를 일일이 풀어서 해체하는 일도 힘들었지만 그 무거운 철판을 친구와 둘이 들어서 한쪽으로 치우는 일은 더욱 힘들었다.
오랜 만에 일찍 끝내고 집에 가려고 마음먹은 토요일 오후에 이런 일을 하게 되니 더욱 짜증이 났다. 오후 내내 무거운 철판과 씨름을 하다 보니 기진맥진할 정도로 기운이 빠졌다.
내가 모처럼 서울 간다는 말을 듣고 만나기로 했던 세 친구와의 약속도 일이 늦게 끝나는 바람에 깨지고 말았다.
하루 일을 힘들게 마치고 현장 사무실에 들어와 번갯불에 콩 튀기듯 씻고 옷 갈아입고 저녁 8시가 넘어서야 출발을 했다.
샐러리맨 사이에 입만 열면 주 5일 근무제가 화두가 되는 세상에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힘든 일을 하는 이곳 공사판 현장의 현실이 이러니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는 것 같다. 철저하게 머피의 법칙이 적용되는 기분이었다.
집에 오니 밤 10시가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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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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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05년 05월27일 08시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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