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전문기자가 쓰는 막노동판의 하루] (39) 배수로 눈청소
2004년 03월 06일
오늘의 임무는 배수로 눈청소. 도로가 뚫리는 양폭 끝으로 포크레인을 동원해 파 놓은 배수로에 쌓인 눈을 청소하는 작업이다.
백설탕처럼 하얀 눈을 친구와 둘이 플라스틱 큰 삽으로 푹 푹 퍼 올려 배수로 바닥을 깨끗하게 치우는 단순 노동을 계속 하다 보니 허리와 팔이 많이 아프다.
보통 눈을 치울때 지대가 높은 위에서 아래로 쓸어내리는 데 이와 반대로 밑에서 위로 퍼 올리려니 힘이 들 수 밖에...
처음에는 팔과 허리 힘만으로 가볍게 눈을 퍼 올리지만 계속 삽질을 하다 보면 가랑비에 옷이 젖고 낙숫물에 구멍이 뚫리듯 온몸에 힘이 쭉 빠진다. 그야말로 내 몸속에서 기운이 쭉 쭉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다.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듯이 팔과 허리 힘이 빠지면 온몸의 기운을 다 모아서 퍼올린다.
팔 다리 허리 힘에 더하여 열 손가락 마디 마디까지 힘이 들어간다. 그래도 힘이 달리면 양 무릎에까지 힘이 들어간다.
그러나 아무리 악을 써도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몸은 자꾸 지쳐만 간다. 그래도 삽질은 끝나지 않고 계속 된다. 그러다 보면 자기도 모르게 이가 악물어지고 얼굴이 오만상으로 찌프려 지며 목에 핏발이 선다. 이쯤 되면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파온다.
체력이 떨어지면서 능률이 안 오른다. 권투선수가 마지막 스파링을 마치고 나면 양다리가 풀려서 흐느적 거리는 기분을 알 것 같다. 나중에는 손가락이 떨리고 주먹을 쥐기 조차 힘이 든다. 이쯤 되면 배가 고파 허리가 꺾이는 기분이다.
그래도 안되면 정신력으로 버틴다. 내 인생 사전에 불가능이나 포기란 말은 없다. 지난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몸이 힘들면 힘들 수록 정신력은 오히려 더 강해짐을 느낀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이 이곳 노가다 현장에서 고스란히 적용되는 기분이다.
배수로에 쌓인 눈을 이토록 힘들게 치우면서 탁상 공론을 일삼는 정치인 생각을 했다. 행동이 따르지 않고 앵무새처럼 입으로만 정치를 할 것이 아니라 말보다 행동으로 국민앞에 뭔가를 보여주는 정치를 하면 얼마나 좋을까...
백년만의 폭설로 전국의 교통이 마비된 오늘같은 날 내가 한 일을 정치인들도 똑같이 해보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했다.
입으로는 앉으나 서나 국민을 위한다는 말을 밥먹듯 하지만 언제나 말뿐인 정치인들이 아니었던가. 오죽하면 정치인들을 빗대어 입만 뻥긋 하면 거짓말을 한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그런 정치인들에게 제안한다. 특히 국민이 뽑아준 국민의 대변자인 국회의원들에게 이번 폭설로 엉망이 된 도로를 청소하는 작업에 나서줄 것을 국민의 한사람으로 제안한다.
그리하여 정치는 말로만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직접 보여주기를 바란다. 폭설이 내리는 날 정치인들이 교통 대란을 막아 보겠다는 마음으로 너도 나도 삽을 들고 도로로 뛰쳐 나와 펑 펑 쏟아지는 눈을 맞으며 쌓인 눈을 치운다면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100마디 1000마디 말보다 그런 국회의원이 있다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이다.
오늘은 토요일. 집에 가는 날이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서울행 좌석버스에 몸을 실었다. 정신병원 버스 정류장까지는 같이 일한 친구가 자기 트럭으로 태워다 주었다.
고마운 친구. 자기는 집에 못가면서 내가 빨리 집에 갈수 있도록 남은 일을 모두 떠맡고도 싫은 내색을 전혀 하지 않는다. 친구를 배려하는 마음이 너무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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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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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04년 10월02일 09시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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