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엿보기] (91) 한밤중 바다에서 죽음과 싸운 4시간의 사투 (3)
아무도 없는 바다 한가운데서 한밤중 조난당해 죽음의 체험을 한지 20일이 지났지만 그때 입은 내 몸의 상처는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초인적 정신력과 지혜를 발휘하여 죽음의 수렁에서 빠져 나오는 데는 성공했지만 몸이 더 긴장을 했는지 그날 이후 생체리듬도 완전히 깨져 버렸다.
밀물이 차오른 바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쳐댔는지 그 후유증으로 음식을 먹어도 설사가 나고 소화가 되지 않는다.
찍히고 찔리고 찢어진 온몸의 상처는 처절했던 그날을 증언이라도 하듯 딱지가 떨어진 그 자리에 고스란히 흉터로 남아있다.
혹자는 뭐 그깟 일에 호들갑을 떠는지 모르겠다고 할지 모르지만 극한 상황에 처해본 사람만이 피가 마르고 오장육부가 타들어가는 그 심정을 안다.
자신이 당해보지 않은 일에 이러쿵저러쿵 함부로 속단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잘못된 생각인지 이번 경험을 통해 다시 한번 뼈저리게 실감했다.
이 세상에 노력하면 안 되는 일이 없다는 자신감으로 살아온 나였다. 좋은 맘을 먹고 좋은 일을 행하면 행한 만큼 내 인생에 좋은 기운도 그만큼 한없이 뻗쳐나간다는 소신으로 행동하고 살아왔다고 자부한다.
아무리 천하제일의 권력자가 내 앞을 가로막고 위협한다 해도 단 한 치의 두려움 없이 당당하고 자신만만해왔던 것도 내가 살아온 삶이 한점 부끄럼 없다고 자부하기 때문이다.
넘치는 자신감과 자부심이 쌓이고 뭉쳐 더욱 강한 나를 만들었고, 무인도에 혼자 떨어져도, 바다 한가운데 홀로 버려져도 내 힘으로 살아남을 자신이 있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해온 나였다. 말이 씨가 되었는지 정말 나는 그런 상황에 처했고 기적처럼 살아나왔다.
하지만 나는 내가 바다 한가운데서 살아나온 것을 단지 행운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물속에서 살아나오기 위해서 순간순간 혼신의 지혜를 모으고 피가 마르는 결단을 한 노력으로 일궈낸 기적이라고 확신한다.
바다위에서 사느냐 죽느냐는 오직 자신의 행동에 달렸다. 바다에서 조난당한 순간 겁을 먹고 수영으로 빠져 나오려고 했다면 아마 나는 10분도 안돼서 체력이 달려 물귀신이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수영보다는 체력소모를 조금이라도 막기 위해 비닐봉투를 불어 기구로 만들었다.
분 단위가 아니라 초단위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순간순간마다 수만 가지의 변수를 압축하고 압축해서 가장 생존 가능성이 높고 확실한 한 가지를 선택해 행동해 나갔다. 구명의 상징인 손전등 불을 바다에 집어 던진 것도 그런 이유였다.
한밤중 망망대해에서 허우적거리는 나를 막연하게 누가 와서 구조해줄 것이라는 불확실한 믿음으로 후레시불을 흔들어대는 것은 그 자체가 욕심이고 과대망상이며 혼자 힘으로는 살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자포자기일 뿐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를 구원해줄 사람은 오직 나 자신뿐이라는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에 빠진 초반에 나를 지탱해준 구명도구 역할을 했던 비닐 봉투를 집어 던진 것도 역시 그런 선택이었다. 그보다 더 크고 안전한 부표를 손에 넣은 이상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 것 또한 욕심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내가 출발했던 하나개 해수욕장으로 돌아가겠다는 생각을 버린 것도, 오늘 밤이 아니라 내일 아침 날이 밝을 때까지 바다에 떠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바꾼 것도, 얼어 죽지 않기 위해 벗어던진 옷을 모두 다시 주워 입은 것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바다 한가운데서 사투를 벌이는 나를 향해 금방이라도 잡아 삼킬 듯이 달려드는 밀물을 보고도 겁을 먹지 않고 침착할 수 있었던 것도 내가 그깟 파도에 기가 꺾이면 그 순간 모든 것이 끝장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철저하게 내가 생각하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행동해서 육지로 나오는데 성공을 했으니 내가 바다에서 살아 돌아온 것은 행운의 기적이 아니고 나의 노력이 가져다 준 기적이라고 확신한다.
바다한가운데서 굵은 밧줄에 붙은 부표를 끊어내기 위해 손과 발을 얼마나 움직여 댔는지 왼쪽 다리에 쥐가 나서 꼼짝을 못하는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양손과 오른발로 뭉친 근육을 풀어 위기 속에 엎치고 겹친 위기를 하나하나 몰아내고 풀어나갔다. 다시 왼손 엄지와 검지 손마디에 쥐가 나는 위기의 연속.
차라리 비행기 사고로 추락되는 비극을 맞았다면 사고순간 의식을 잃어 모든 것이 끝장 나 버리기라도 하지만 바다위에서 내가 처한 상황은 너무 달랐다.
누구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의지할 상대도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촌음을 아껴 모든 생각과 지혜를 하나로 모아 나가고 결단을 해야 했다.
그날 이후로 나의 삶에 많은 변화가 왔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통해 나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서, 각박하고 혼탁한 이 사회를 조금이라도 더 밝고 건전하게 만들고 싶은 소망을 이루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왔다고 자부해왔다.
누구보다도 권력 학연 지연에 집착하지 않고 물질보다는 넉넉한 마음의 부자로 살아왔다고 자부해왔다.
늘 마음을 비우고 살고 있다고 자부해온 나에게 아직도 비워야 할 마음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도 큰 변화였다.
마음에 불쑥 불쑥 차고 들어오는 욕심을 털어내는 작업을 더욱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을 해본다. 하지만 그런 마음 자체도 이미 욕심이 아니던가.
세상은 공평하다.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 내가 바다에서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나온 것도 내가 노력한 대가로 얻은 기적이 아닌가.
이 세상에 죽을 각오로 노력해서 안 되는 일이 없다는 것을 체험한 것이 내가 바다에서 얻은 가장 큰 수확이다.
죽음의 체험을 한 이후로 나는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고 더 열심히 글을 쓰고 있다. 나의 생일을 한달 앞두고 백중사리 밀물을 정통으로 맞은 것을 나는 내 인생 최대의 축복으로 여긴다. 내가 평생 살아갈 기운을 몽땅 받은 느낌이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나는 앞으로 그 어떤 고난이 닥쳐와도 두려울 것이 없다.
죽을 각오로 최선을 다하면 이 세상에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기 때문이다.
아직은 비록 그날의 후유증으로 몸을 움직이기 불편할 정도로 아프고 쑤신 곳이 많지만 머지않아 몸은 예전의 상태로 회복 될 것이고 세월이 지나고 나이가 들수록 나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예전보다 훨씬 더 강해질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이튿날 실미도에 들어갔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발바닥 통증을 참아가면서 맨발로 한발 한발 실미도 땅을 내딛을 때마다 기분이 묘했다.
30여년전 냉전시대의 제물이 되어 억울하게 숨진 684부대 훈련병들이 3년 4개월간 이곳 실미도에서 지금의 나처럼 뼈 속까지 타들어가는 고통을 참으며 지옥훈련을 받았을 것이다.
지금 생각하니 그날 내가 겪은 죽음의 체험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684부대 훈련병 영혼들이 자신들의 억울함을 밝혀달라고, 실미도 취재를 전문으로 해온 나를 한밤중에 쥐도 새도 모르게 그들이 지옥훈련을 받았던 실미도 해협 한가운대로 초대한 느낌이다.
하필이면 해수면이 연중 가장 높이 올라간다는 백중사리에 마치 거대한 블랙홀에 한없이 빨려 들어가기라도 하듯 어쩌면 그렇게 아무런 공포도 두려움도 없이 실미도 해협으로 들어갔다 나왔는지 참으로 기이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날 내가 겪은 망망대해 죽음의 체험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실미도 훈련병 영혼들과 시공을 초월한 대화를 나누고 온 느낌이다.
684부대 훈련병 영혼들이 실미도 취재를 전문으로 해온 나를 알아보고 실미도 해협으로 초대해서 자신들의 억울함을 내게 하소연하고 안전하게 다시 해변으로 돌려보낸 느낌이다.
수십년 세월이 흐른 지금 실미도에는 684부대 훈련병들의 흔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실미도 사건이 터진 직후 국가에서 모든 시설을 폭파해 없애 버렸기 때문이다.
그 당시 시설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것은 우물이었다. 부대원들이 식수로 사용했던 물은 이제 나오지 않아 바닥이 말라버렸지만 우물터는 옛 모습 그대로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전국에 거센 실미도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실미도 영화 촬영 세트장도 모두 철거해 버린 지 오래 되었고 지금은 영화 내용을 담은 사진 푯말만 군데군데 박혀 당시 분위기를 설명해 주었다.
영화 촬영이후 실미도를 찾는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썰물 때 무의도에서 실미도를 안전하게 건너갈 수 있는 돌다리도 생겼고 매점도 생겼다.
세 차례나 실미도를 방문하려고 무의도까지 왔다가 밀물을 만나 실패하고 네 번째 죽을 고비를 넘기고서야 밟아본 실미도 땅. 실미도 훈련병들의 영혼이 깊은 ‘바다 속 대화’를 나누고서야 길을 열어준 것은 아닌가.
684부대 훈련병들이 외부와 철저히 은폐된 채 3년 4개월간 지옥 훈련을 받았던 은둔의 섬에서 국민의 관심사로 떠오른 관광의 섬으로 실미도는 그렇게 빠르게 변해가고 있었다.
어렵게 찾은 실미도 땅에서 죽음의 체험을 한 실미도 해협을 내려다보면서 기자는 한 가지 해야 할 일을 찾아냈다.
그동안 왜곡되고 뒤틀리고 은폐된 실미도 684부대의 모든 진실을 낱낱이 파헤쳐 훈련병들의 억울함을 풀어줘야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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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www.peoplekorea.co.kr>
2004년 09월20일 13시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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