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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이 설계하고 삶이 세운다
2007/02/11 00:00
입력 조회수 : 796
▲건축, 사유의 기호- 승효상/돌베개
저자의 과거 수상 내력을 일일이 나열하지 않더라도 그의 이름 석자는 책에 대한 ‘품질보증서’ 역할을 한다. 여기에 실린 16개의 각 장은 저자에게 깊은 영향을 남긴 건축과 건축가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20세기 불멸의 건축물을 통해 사유한 저자의 기록이다.
건축 기행문의 겉옷을 입고 있지만 그것만으로는 이 책을 설명할 수 없다. 기행문이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을 가벼움과 관조의 여유와는 거리가 한참 멀다.
무엇보다 책의 서문이 이토록 인상적인 경우는 많지 않다. 본문에 뛰어들기에 앞서 행하는 통상의 ‘준비체조’와는 다르다. 이 책의 12쪽짜리 서문은 책 속의 책이라 해도 무방하다. 책 제목에 건축과 사유라는 단어를 왜 함께 사용했는지를 이해하게 된다.
‘건축이 삶을 바꾼다’고 믿고 있는 저자는 건축의 외관은 부차적인 것이라고 선언한다. 건축을 조형예술 정도로 여기는 일반 사람들로서는 쉽게 와닿지 않는 말이다. 그는 “문학적 상상력과 논리력, 역사에 대한 통찰력, 그리고 사물에 대한 사유의 힘이, 이웃의 삶에 대한 애정이 건축을 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도구”라고 외치고 있다. 그의 눈에 건축은 인문학에 가깝다.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바이센호프 주거단지를 한 예로 삼아보자. 저자는 이곳을 둘러보면서 “주거라는 존재가 삶의 문제에서 벗어나 부동산의 처지로 전락한 지 오래이고 투전의 대상으로 인식되는 우리의 현실”을 되짚고 있다. 바이센호프 주거단지는 종래의 주택과는 판이했다.
“미래 여성의 역할에 관심을 가지고 가사노동 시간을 줄이기 위해 방들을 기능적으로 배치하고 짧은 동선으로 효율을 극대화했다. 주택 내부에 일광을 밝게 끌어들이는 등 환기와 위생에 각별한 정성을 쏟았다.”
이처럼 집은 오히려 하부구조이며, 그 집에 담기는 우리의 삶이 그 집과 더불어 건축이 된다는 저자의 철학은 이 책을 관통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의 국회의사당도 인간 삶의 가치를 확인해주는 모범적인 건축 가운데 하나다. 이를 설계한 미국인 건축가 루이스 칸은 건축에 있어 ‘모이는 기능’을 중시했다. 같이 모여 서로를 확인하고 서로를 나누는 공동성을 건축이 갖는 큰 의미라고 보았다. 국회의사당 중앙 홀을 중심으로 회랑이 돌고 그 회랑의 주위에 사무국과 회의실, 식당, 라운지 등을 배열했다. 이런 만다라적 구성은 동양의 철학과 종교에 대한 그의 깊은 이해에서 나온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1만8천원.
〈출처 경향신문〉
2004년 08월 20일 16:4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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