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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684부대 시리즈 2부] (6) 실미도 훈련병 김기정 여동생 김기자씨가 오빠들에게 보내는 편지
2007/01/10 00:00
입력 조회수 : 726
옥천출신 실미도 훈련병 오빠들, 저 김기정 오빠 동생 김기자예요.
오빠들이 너무너무 보고 싶어 늦은 밤이지만 몇 마디라도 대화하고 싶어 앉았습니다.
오빠들, 주무시는데 깨워서 죄송하지만 일어나서 제 얘기 들어주실 거죠?
제가 오빠들 때문에 이렇게 깊은 밤 잠 못 들고 앉아있는데...
옛날처럼 재미있는 놀이로 나를 즐겁게 해주셔야지요.
오빠들.
재미있는 놀이도 싫고 옛날얘기도 싫어요.
옛날처럼 웃으며 장난치고 나를 놀려 먹던 그 시절 모습으로 저를 찾아주세요.
오늘아침 아주 오랜만에 산엘 올라가봤어요.
맑은 공기를 마시면 답답한 마음이 좀 시원해질까 싶어서요.
그러나 산엘 가나, 먼 바다를 바라보나, 어딜 가도 오빠들과의 추억들이 되살아날 뿐 ...
오늘은 산에 아카시아 꽃이 제 눈가에 이슬을 맺게 하네요.
오빠들이 아카시아꽃잎을 입안에 물고 있다가 내 얼굴에 훅 품고 도망가면 나는 울면서 빗자루를 들고 따라다니다 약이 올라 물을 한대야 퍼서 숨어 있다가 뒤집어씌우기도 했죠.
오빠들한테 기집애가 못된 짓 했다고 엄마한테 야단맞고... 지금도 어제일 같단 말예요.
오빠들.
오늘도 그리운 오빠들 이름을 한번 불러봐야 잠이 편히 들것 같아서 오빠들 떠올립니다.
머리는 백발이 되어가나 마음은 오빠들과의 마지막 모습 때처럼 저도 20대랍니다.
다시 보고 싶은 우리 오빠, 대답 없는 이름 기정.
우리오빠랑 제일 친했던 복용, 우리오빠보다 나이가 아래면서도 가끔 담 너머로 "기정아 놀자"하고 달아나는 장난꾸러기 병염... 항상 말보다는 노래로 이야기하던 기성, 말수가 적으면서도 '형님‘ 소리를 잘하던 명기.
기수 오빠는 우리 집에 가끔 와도 나하고는 주고받은 말은 없지만 웃는 건 잘 웃었잖아요.
또 우리 집에만 오면 유달리 고구마를 찾던 광용 오빠... 모두들 너무 보고 싶어요.
오빠들, 죄송합니다. 늦은 밤에 잠 깨워서......
그래도 내일 또 찾을래요. 그만 오빠들도 편히 잠드세요.
잠 못 드는 밤에... 오빠들 동생 기자가.........
오늘은 사월 초파일.
옛날에 오빠들과 절에 가서 나물에 밥 비벼가지고 여럿이 둘러앉아 퍼먹던 생각이 납니다.
갈 때는 따로 가도 절에 가면 오빠들 만나서 머리에 꿀밤 맞고 집에 올 때까지 오빠들 호위 속에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생각이 납니다.
오빠들, 제가 오늘 오빠들만을 위한 기도 드렸어요.
그리고 오빠들을 위해 많이 애쓰고 계신 분과 전화 통화도 했습니다.
알고 보니 그분께서 오빠들의 얘기를 세상에 알렸다는 것 같습니다.
저야 잘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도 오빠들의 숨은 얘기가 하고 싶으신가 봐요.
오빠들의 궁금한 얘기를 들려줄 수 있겠냐고요. 제가 아는 만큼은 말할 수 있다고 했지만 오빠들한테 혹시 누가 되지는 않을까 조심도 돼요.
오빠들 걱정 마세요. 우리 기정 오빠 얘기만 할 테니까.
나중에 삐지지나 마세요. 잘 생각해보고 그대로 말할게요.
오늘은 그만 하고 일할게요,
오빠들도 옛날처럼 절에 울긋불긋 매달린 등 구경하시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오빠들을 아주 많이 그리워하는 동생 기자가....
"오빠" 오늘은 일찍 오빠를 찾았죠?
어제는 너무 늦게 만나서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했거든요.
우리 기정오빠와의 얘기를 하려면 끝이 없고 시간도 없고 눈물이 그치질 않아 시작하기도 어려웠지만 그래도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 같아 생각나는 대로 적어봅니다.
내가 오빠와 함께 손잡고 학교를 같이 다닌 건 1년뿐이다.
우리는 남들이 칠팔십년을 함께 나누는 시간을 짧은 시간 안에 다 즐기고 누려야하기에 유달리도 다정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행복했던 걸까?
날마다 나는 운동장에서 복도에서 오빠를 기다렸고 그런 나를 오빠는 심심하지 않게 하려고 오징어 다리를 사주고 눈깔사탕도 손에 쥐어주며 운동장 나무그늘에서 기다리라고 ..,, 얼굴까매진다고....
우리오빠는 부모님에게 큰 희망이고 대들보 같은 존재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우리오빠가 아들이라 그런 대접을 받는다고 까지는 생각 못했다.
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한글 읽는 것과 덧셈 뺄셈 공부를 이미 마친 셈이라 나는 시험 칠 때마다 100 점을 받았고 우리오빠는 그게 큰 자랑거리였다.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오빠네 교실에 가지고 들어가서 시험지를 높이 쳐들고 흔들어댔다.
나도 오빠가 좋아하는 모습이 너무 좋아서 시험지만 받으면 오빠네 교실로 달려갔다.
지금도 오빠네 담임선생님 얼굴이 눈앞에 또렷하게 떠오른다.
안경을 끼셨고 아주 인자하셨던 그 선생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우리오빠 소식을 알고계실까? 알고계신다면 얼마나 슬퍼하실까?
전교 학생 책읽기 대회가 있을 거라고 오빠는 집에 오기만 하면 책 읽는 연습을 시켰다.
나는 다행이 1학년에서 1등을 차지했다.
나는 좋은 건지도 모르겠는데 오빠하고 언니가 펄펄뛰며 좋아했다.
그까짓 종이 한 장과 학습장 몇 권이 그리 대단한 것 같지도 않았는데 그리 좋아했다.
나를 알아보는 언니 오빠들이 많아졌다.
오빠네 선생님께서는 복도에서 기다리고 있는 나를 자주 불러 심부름을 시키셨고 여러 가지로 말을 붙여 수줍기만 한 나를 아주 자연스레 교무실 출입까지 할 수 있게 만들었다.
다른 선생님들도 만날 수 있었고 어렵고 무섭게만 생각했던 선생님들과 대화도 할 수 있는 아이가 됐다.
운동장에서 혼자 줄을 그어놓고 팔짝팔짝 뛰고 노는 아이는 별로 흔하지 않아서 몇 번 이야기를 나누어본 선생님은 곧잘 불러서 심부름을 시켰다.
여름 방학이 되면 항상 오빠랑 외갓집에 갔다.
엄마는 항상 보따리에 오이, 참외, 가지 ,고추, 푸성귀를 싸주셨다.
외갓집은 우리 집에서 꽤 멀었다 .
아침 일찍 나서도 점심때가 지나야 도착한다.
어쩌다 짐 싣는 자동차가 한번씩 다닐 뿐 걸어 다닐 때다.
자갈이 깔린 신작로는 걸음걸음마다 먼지가 일고 양옆에 서있는 미루나무에선 매미가 울어대고 오빠는 보따리를 어깨에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같이 들고 가자는 말을 하지 않았다. 어린마음에도 오빠가 힘든걸 알았을까?
나뭇가지를 주어 보자기에 끼어 같이 들자고 하는 나를 오빠는 정말 기특하고 예뻐 죽겠다는 표정으로 얼굴을 만지고 어깨에 손을 얹어 살포시 안아주곤 했다.
노래하고 팔을 흔들고 가다 덥고 힘들면 나무그늘에 앉혀 놓고 나무위에 올라가 매미도 잡아주고 낮은 산길로 올라가 산딸기도 따다주고 목이 마르면 바위 틈새로 흘러내리는 물을 마시게 하려고 나뭇잎을 접어서 대주며 입을 대고 마시라고 했다. 배가 고프면 보따리에 있는 참외를 씻어 다가 나를 주고 오빠는 오이를 먹는다.
오빠는 오이가 더 맛이 좋다고 했다. 정말이었을까?
나는 바보였다. 그 말을 믿고 오빠는 이상하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때 참외를 나누어 먹지 못한 내가 원망스럽다.
그렇게 한나절이 훨씬 넘어서야 외갓집에 도착하면 할머니는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셨다.
저녁을 먹고 나면 외사촌들과 놀러나간다. 그곳에서도 오빠는 인기가 좋았다.
외사촌 언니 동생이 오빠를 양쪽에서 잡고 뛰고 좋아서 난리다.
그 동네 거의가 우리 친척이고 외갓집 친척들이라 모두가 오빠고 언니동생들이다.
낮이면 산으로 들로 강으로, 밤 되면 감자 옥수수 삶아서 모깃불 피워놓고 연기를 피해가며 웃고 떠들며 놀고 그곳 친구들이 오빠에게 매달리면 살짝 와서 내 옆에 앉아 감자껍질을 벗겨 입에 넣어주던 오빠가 너무 그리워 돌아 버릴 것 같다.
나는 지금도 눈에선 눈물이 볼을 타고 줄줄 흐른다.
어찌 하여 나는 40년 세월이 훨씬 지나버린 이야기를 눈물 콧물 흘려가며 이 세상에선 만날 수 없는 오빠를 하루같이 만난 듯 착각하고 주절주절 혼자 중얼거리고 있는 걸까?
오빠가 중학교에 가고 난 뒤 나는 정말 걱정이 되어 잠도 오지 않았었다.
중학생 교복을 입은 오빠모습은 정말 멋있었다. 어린 내 눈에도 멋이란 걸 알았나보다.
너무 보고 싶은 우리오빠 기정.
이렇게 자리에 앉기만 해도 가슴은 떨리고 답답하다.
나는 오늘도 수십 년 세월을 되돌려 오빠와의 생활로 돌아간다.
기정 오빠가 6학년 겨울에 중학교에 가기위한 과외 공부를 했던 것 같다.
그 당시 과외라고 해야 지금의 고3 야간 자율학습 같은 거였다.
중학교에 갈 학생들만 밤에 늦게까지 교실에 남아 공부하는 정도였다.
기정오빠가 중학교에 가고 난 뒤 한동안 나는 혼자 학교에 갔다.
일찍 가고 늦게까지 학교에서 놀았다.
교무실에서 빤히 보이는 운동장 나무 밑에서 줄을 그어놓고 혼자 고무줄놀이를 하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가끔 선생님이 불러 심부름시키고 대화하는 게 좋았다.
오빠네 선생님덕분에 여러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오후 늦게까지 팔뚝에 노란 완장을 끼고 다니는 언니 오빠들이 나를 알아보고 말시키고 놀아주는 것도 너무 좋았다.
아침에 학교 갈 때도 고학년 언니 오빠가 완장을 끼고 교문 앞에 지키고 서서 좌측으로 줄서서 등교하라고 호루라기를 불어대고 지각하는 학생들 붙잡아 세우고 하는 그 언니 오빠들을 만나면 아는척하고 이야기 하는걸 자랑스럽기도 하고 그 언니들이 부럽기도 했다.
나도 고학년이 되면 꼭 저렇게 할 거라고 다짐도 하면서.....
기정오빠는 그런 나에게 용기를 주었다.
공부 잘하고 친구들과 잘 지내면 너는 분명히 할 수 있다고...
기정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교복을 탁탁 털어 언니가 예쁘게 십자수를 놓아 만든 옷 덮개에 걸어 놓고 큰오빠를 따라 들에 나간다.
큰오빠는 낫을 잘 들게 숫돌에 갈아놓고 기정 오빠 오기 전에 아버지가 만들어준 작은 지게에 풀을 가득 베어다놓고 기정오빠를 기다린다.
물론 나도 따라간다. 큰오빠는 낫질을 잘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기정오빠가 큰오빠를 따라간 건 큰오빠 동무해주려고 갔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았다.
기정오빠 나이가 많지 않았는데 어찌 그런 어른스런 생각과 행동들을 할 수가 있었을까?
큰오빠 비위를 잘 맞춰 주고 잘 추켜 주었다.
풀밭에서 팔씨름도 했고 엎드려 맞잡고 씨름도 했다.
기정오빠가 지는 건 당연하지만 몇 번 이기고 나면 큰오빠가 져준다.
그리고 작은오빠한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가르쳐준다.
그리고 밥 많이 먹으라고 등을 토닥거려주기도 한다.
그럴 때 기정오빠는 주먹으로 눈물을 쓱쓱 닦았다.
나도 별 수 없이 코끝이 찡하면서 눈에 물방울이 맺힌다. 우리는 그렇게 살았다.
토끼풀 ‘크로바’ 꽃으로 시계를 만들고, 꽃을 엮어 목걸이 만들고, 머리에 얹는 왕관도 만들어 주던 기정오빠는 우리들과 길게 아주 오래 살 수 없다는 걸 그때부터 알았던 걸까?
나는 "네잎크로바"를 찾는다고 풀밭에 앉아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아 꽃으로 시계를 만들어 큰오빠 하나 매주고 또 하나 만들어 기정오빠 매주고. 기정오빠는 그사이 목걸이를 두개나 만들어 큰오빠와 내게 걸어주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일이 벌어졌다.
내 동생 기태가 내목걸이를 잡아당겨 흩어져버렸다.
처음으로 목에 걸어본 목걸이를 그것도 세상에 둘도 없을 기정오빠가 만들어준 목걸이를 순식간에 작살을 냈는데 그냥 있을 수가 없었던 걸까?
사정없이 두들겼다. 동생이 아플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손으로 때리는 것이 아니라 빗자루로 두들기는데 아무리 남자라 해도 별 수 없었을 거다.
나하고 2살 차이라 힘으로 같이했다면 연약한 내가 맞아야 할 형편이었지만 대책없는 상태에서 성난 사자로 돌변한 내게 저항할 틈이 없었던 것 같다.
그래놓고 나는 도망쳐서 친구네 집 뒤 뽕나무 울타리 밑에 숨어있었다.
깜깜해질 때 기정오빠가 "기자야, 기자야" 하고 찾으러 다닐 때 살금살금 나왔다.
사랑방으로 가서 언니가 갖다 주는 밥을 먹을 때 기정오빠가 이마에 꿀밤을 주며 나중에 다시 만들면 될 걸 왜 동생을 때리느냐고 핀잔을 줬다.
그 뒤부터 동생은 나를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그때부터 용기도 생겼고 뭔가 모를 힘 같은 게 솟는 것을 알았다.
오늘도 오빠와의 추억 여기까지 하고 점심준비.......
오빠들 미안해요.
요 며칠동안 기정오빠 얘기만 해서 오빠들이 삐져 우리 기정 오빠를 미워하는 건 아닌지?
오빠들, 사실은 요즘 내가 바쁘거든요.
앞으로 당분간 오빠들 찾기가 뜸해질 것 같아서 미리 알리는 겁니다.
기수 오빠는 나하고 말은 잘 안하고 다른 오빠들이 나를 괴롭히고 놀리면 그냥 재미있다고 웃기만 했던 얼굴이 떠오르고 ....
청바지를 꽉 끼게 입고 두 손은 양쪽엉덩이 포켓에 걸치고 팔자걸음을 걸으며 뽐내고 으스대며 "야, 기자야, 어때 멋지지 않냐? 한번 빌려줄까? 입어볼래?” 말해놓고 웃어대던 장난꾸러기 복용오빠....
고구마 한입 물어 떼서 안쪽살만 베어 먹고 껍질은 제기 차듯 발로차서 내 얼굴에 명중시키던 광용 오빠...
우리 집에 왔을 때는 여러 오빠들이 나를 놀리고 심술부리고 해도 밖에 나가서 만나면 반가워하고 나를 모르는 오빠들한테, "얘가 우리 동생이다. 이쁘지? 그치? 너희들 우리 동생 몰라보고 까불면 알지?' 하면서 주먹을 쥐고 쳐들던 우리 일곱 명 오빠들이다.
어제도 오늘도 비가내리네요. 비가 내리는 날이면 우리 집에 모여들던 실미도 오빠들 말고 다른 오빠들은 차츰 멀어지더군요.
기정오빠가 그리워 한숨과 눈물로 세월 보내는 엄마를 대하기가 미안하기도 했겠지요.
그 오빠들도 한동안 몹시 슬퍼했어요. 나를 만나면 항상 울지 말고 기다려보자. 언젠가는 만날 날이 있을거다. 부모님 잘 보살피고 잘 지내라고....
오빠들도 이제 슬퍼하지 말고 편히 지내시고 부모님 만나 못다 한 효도도 하시고 마음껏 응석도 부려보세요
활짝 핀 웃음으로 다시 만나기로 해요.
기정오빠, 복용오빠. 병염오빠, 광용오빠, 기수오빠. 명기오빠. 기성오빠. 그리운 이름들. 보고 싶은 얼굴들. 오늘도 대답 없고 볼 수 없는 오빠들을 불러봤어요.
오빠들의 명복을 손 모아 빕니다..
오빠들의 귀여움 받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동생 기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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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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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7월29일 23시1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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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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