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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미도 684부대 시리즈 2부] (4) 장명기 훈련병 여동생 장명선 (2)
2006/11/12 00:00
입력 조회수 : 718
우리 오빠들의 아픔을 무엇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훈련병 오빠들의 인생은 불꽃이었다. 단 한번도 자유와 해방을 주지 않고 외출을 허용 안했던 정부. 인권을 철저히 유린당하고 이유 없이 고문당한 우리 오빠들.
꽃다운 젊은 넋, 어쩌란 말인가.
684 훈련병들은 유가족과 세상 사람들에게 큰 숙제를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37년이 흐른 지금. 세월은 가다말고 우리 앞에 침묵합니다.
2004년 5월3일 제보자가 시신이 있는 곳을 알려주어 경기도 벽제 공원묘지로 달려갔습니다. 재소자, 행려자들의 무덤도 한식 청명 때면 꼬박꼬박 정부에서 벌초를 해주는데 우리 오빠들은 벌초 한번 해주지 않았답니다.
정부는 무슨 권리로 이토록 34년간 단 한번도 찾아온 이 없도록 철저히 은폐하고 훈련병 유가족들에게 무서운 횡포를 부린단 말입니까.
영혼을 불사르신 우리 오빠들. 그들의 인생은 촛불이었습니다. 훈련병들의 국가에 대한 사랑은 불꽃이었습니다. 서럽도록 뜨거운 정열의 불꽃이고 촛불의 눈물이었습니다.
우리가 강만큼 바다만큼 눈물을 흘린다 하여도 오빠들의 서러움을 달랠 수는 없습니다.
들에 핀 들꽃도 함부로 꺾지 않는 것을 하물며 31명의 무고한 젊은 생명을 꺾은 권력의 죄악을 신은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그네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 인생일진데 권력가진 욕심과 탐욕 많은 분들은 천년만년 사실 줄 아나 봅니다. 욕심이 죄를 낳고 죄가 사망을 낳는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유가족들은 어이없는 국가의 만행에 큰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우리 오빠들 군번 없는 군인이라 하여 세상 사람들과 단절시키고 노예 아닌 노예가 되어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유령 인물로 살다 가셨습니다.
많은 밤을 소리 없는 통곡에 애통해하며 옛 추억에 돌아가 그 시간 속에 머물러 활짝 웃고 있는 우리 오빠 만나 봅니다.
세월이여 흘러라, 촛불이여 불타라.
강한 심지가 되어 역사 앞에 다시 서리라...
저희 유가족은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나가 소식이 끊긴 오빠들이 실미도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설마 살아 돌아오겠지 하던 한 가닥 희망마저 끊어져 살아서는 볼 수 없다는 서러움에 가슴이 미어지고 억장이 무너집니다.
제발 꿈이기를 바라며 유가족들이 실미도를 방문하여 보고 우리 오빠들이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알 수가 있었습니다.
3년 4개월 동안 그 모진 고통과 서러움을 잘 견뎠지만 살아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안 훈련병들. 입이 있어도 말할 수 없고 귀가 있어도 못들은 척 해야 했던 독재정권 시절 31명 훈련병들 입장을 생각하여 보니 국가의 만행이 얼마나 비정했던가를 알았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고슴도치도 제자식이 예쁘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물며 제일 귀한 장남인 아들을 잃은 부모 심정은 얼마나 괴롭겠습니까.
쌀밥한번 못 먹고 자란 우리 오빠... 장남으로써 동생들 잘 먹이고 돈이 없어 병원에 갈수 없었던 저에게 약도 사주고 싶어 목숨 걸고 간 실미도는 한달에 한번 가족에게 편지와 월급을 보내준다는 약속과 달리 외부와 단절된 삶과 군번도 주지 않아 휴가 한번 못 오고 25살 짧은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불쌍한 영혼들은 넋이 되어 울고 있습니다.
저희 오빠들은 전과도 없고 경찰서 한번 가보지 못한 순수한 의리의 청년들이었습니다.
군번이 없어 제대도 못하고 가족들에게 연락도 못하고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 속에 비극으로 희생된 훈련병과 그 시대 위정자들의 소행....
홧김에 만들어진 684부대. 애초에 만들지 말았어야 할 부대였습니다.
고향에 두고 온 부모형제를 떠올리며 먼저 죽을 때 눈을 제대로 감고 죽었겠습니까? 얼마나 억울하면 옥천 청년 7명은 서로 꼭 부둥켜안은 채 죽었다고 합니다.
저희 유가족들은 너무 가슴이 아파 눈물로 세월을 보냅니다.
이제 유가족들은 돌아가신 훈련병을 대신하여 은폐된 진실을 밝혀 만인 앞에 억울함을 호소하려 합니다.
유한양행 앞 버스 안에서 옥천청년 7명중 박기수 오빠가 관통상을 맞고 고향에 계신 부모님께 꼭 편지를 전해달라고 30분후면 죽는다면서 그 아픈 고통 속에서도 어머님에 대한 그리움에 절규하면서 마지막 유언으로 남긴 편지 내용은 지금까지 공개되지 않고 있습니다.
훈련병 오빠들의 부모님들 다 속병 걸려 돌아가시고 100살 되신 한 노모는 아들 사진을 가슴에 간직하고 살아 돌아오면 만나겠다고 하십니다.
84살이신 한 어머님은 자다가 누가 불러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을 눈물로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제야 소식을 들은 저희 유가족들은 초상집이 되었건만 시신이 없어 장례절차도 밟지 못하고 애를 태우고 있는데 영화사는 실미도 영화를 만들어 이들 훈련병의 영혼을 팔아 상업적으로 이용, 큰 돈을 벌어 잔치집이 되었습니다.
역사 앞에 강자와 약자의 엇갈린 운명이 유가족들을 또한번 울립니다. 영화사는 조심스럽게 재조명하여 다뤄야 할 사건을 상업적으로 이용하여 역사를 왜곡하고 사실을 밝힌다는 것을 믿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 이 영화 내용처럼 31명 훈련병들을 범죄자, 사형수, 뒷골목의 쓰레기인줄 알고 있습니다.
영화사 장본인들은 이 훈련병 31명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겼고 명예를 크게 훼손하였습니다. 허위 사실을 유포하였습니다.
우리 훈련병 오빠들이 사형수 무기수 전과자라면 우리 8명(옥천 청년과 나머지 1명)의 사실 근거 전과 기록을 제출하여 주십시오.
픽션의 자유가 있다면 책임져야 될 의무도 있습니다. 죽고 없다고 하여 훈련병 31명을 있지도 않은 흉악범으로 매도해 버리면 우리 훈련병 오빠들은 너무 불쌍합니다.
저희 유가족들은 실미도 영화를 보고 분노와 수치를 느꼈습니다.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우리 오빠들이 흉악범으로 둔갑하여 관객들에게 말거리가 되었습니다. 사실을 왜곡하는데 이 영화가 큰 힘을 발휘하였습니다. 실미도 영화가 세상을 바꾸었습니다. 영화 한편으로 훈련병들이 흉악범이 되어 다시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선진국인 미국 프랑스 등의 국가에서는 국가를 위해 죽은 유공자들은 영웅대접해주고 그 가족에게도 국빈 대접을 해준다고 들었습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청년들을 간첩이니 난동분자니 사형수 무기수라는 오명을 씌워 죽어서도 대접을 받지 못하는 현실입니다.
우리 훈련병 오빠들은 독재 정권에 항변하고자 세상에 알리러 나왔고 국가는 이를 철저히 은폐하였습니다.
이땅에 진정 법과 정의가 살아있다면 제발 잘못된 관행을 바꾸어 주시어 우리 오빠들의 명복을 빌어주십시오.
10년 전부터 영화계에서 실미도 사건은 뜨거운 감자였다고 합니다.
그 당시 금기시된 실미도 프로젝트는 여러 감독들이 영화제작을 하고 싶어 하는 탐나는 작품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유가족이 튀어나와 시끄러워질까봐 손대지 못한 것을 강우석 감독이 구미가 당기어 먼저 뜨거운 감자를 먹은 것입니다.
10년 전에는 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도 감히 만들지 못한 이유를 강우석 감독이 잘 모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71년 8월23일 유한양행앞 버스 자폭때 이미 옥천 청년 박기수가 나는 충북 옥천이 고향이고 박기수라는 이름을 밝혀 가족들은 실미도 사건을 대충 알고 있었답니다. 경향신문에 났고 가족들에게 죽었다고 사망신고 하라고 연락이 왔지만 그 당시 사건을 파고들기에는 너무 무서워 말 함부로 못하는 시대였다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금기시된 사건을 민주화가 되니까 강우석 감독은 마치 실미도를 통해 우리 유가족이 알았으니 고마워하라고 했다는 말을 그의 측근들에게 들었습니다.
이미 오래 전에 옥천 청년 7명의 유가족들은 실종된 계기와 박기수 사건으로 이 진실을 파고들고 있었습니다.
저희 유가족들은 정치도 권력도 잘 모르지만 남을 속이며 살아가지는 않습니다. 우리 아버지 법 없이도 살수 있는 동네에 소문이 자자한 호인이었습니다.
충북 옥천이 고향인 우리 오빠. 68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 시대였고 영부인 육영수 여사 고향인 바로 옆 동네였습니다.
68년 1월21일 김신조가 박정희 목따러 왔다고 하여 청와대에서 부랴부랴 만들어진 684부대.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우리 오빠들의 국가의 신뢰. 국가가 그들을 원했고 국가가 그들을 불렀습니다. 우리 오빠들은 돈 한 푼 받지 못하고 나중에 휴가 나갈 수 있다는 말에 부모님에게 죄송하지만 국가에 먼저 충성하려고 하였던 것이 무엇이 잘못입니까.
철저히 상업, 흥행위주로 만들어진 실미도 영화가 해외로 나간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왜곡을 진실로 받아들여집니다.
이 불쌍한 훈련병들의 영혼을 위로하여 주시고 20대의 짧은 생을 빛도 못보고 억울하게 죽은 원한을 풀어 주시어 부디 하늘나라에 가서 편히 쉬게 하여 주세요.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역사가 되지 않도록 영화사일을 바로 잡아 주시기를 연약한 유가족들이 간절히 호소 드립니다.
돌아가신 훈련병 오빠들을 대신하여 훈련병들이 사형수 무기수 흉악범이 아니니 영화 실미도 원본과 테이프 상영금지, 관련포스터를 폐기 시켜 달라는 부탁을 들어줄 의무도 저희 유가족들에게 있음을 강력히 호소 드립니다.
또한 평론가들은 영화실미도가 처음 공개 됐을 때 모두 비극적인 사건의 사실 여부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사건에 대한 관심은 흐려지고 1000만 관객 돌파 흥행기록만 남았다고 안타까워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실미도 사건은 전모가 밝혀지지 않은 채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국가의 폭력을 고발하게 된 영화가 이제는 예기치 않게 훈련병과 유가족들에게 폭력을 행사하게 된 것입니다.
영화 카피에 32년간 숨겨온 진실을 밝힌다고 온 국민들에게 선전하여 궁금하게 해 놓고는 정작 허구로 만든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은 영화속 내용이 사실이라는데 관심을 두었습니다.
제 주변 친구, 아는 분들도 저희가 아니라고 설명해 주어도 영화에서 사실이라고 하는데 무슨 소리냐고 화를 내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이 영화가 해외로 나가면 발 없는 말이 천리를 간다는 속담도 있는데 말이 아닌 영화로 소문이 나서 외국 교포까지 훈련병들이 흉악범으로 낙인찍힌다면 명백히 강우석 감독은 훈련병들에게 명예를 훼손하고 치욕스러운 불명예를 안겨주어 저희 유가족들은 죽을 각오하고 이 실미도 영화가 해외로 나가는 것을 강력히 반대합니다.
오빠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어머니는 내 아들이 돈 벌러 갔다가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하고 남 좋은 일 하고 살아 돌아오지 못한 서러움에 영정사진 붙들고 앉아서 주무시고 심한 우울증에 빠져 먹지도 않으십니다.
684 부대 훈련병 오빠들을 생각하면 하염없이 눈물이 납니다. 핏줄이 무엇인지 오빠 이름 장명기 세 글자만 봐도 서러움이 북받쳐 울컥울컥 눈물이 쏟아집니다.
오빠가 1971년 8월23일 유한양행 앞까지 나와 생사의 기로에서 싸우고 있을 때 동생인 저는 11살 소꿉친구들과 고무줄하고 놀았습니다.
37년이 흐른 지금 우리 오빠는 간곳없고 먼 추억 속에 오빠 얼굴 기억하며 조금이나마 잊혀질까봐 걱정되어 추억을 붙들고 옛 시절로 돌아가 오빠 만나봅니다.
2004년 5월. 그리운 우리 오빠 찾으러 벽제를 가는데 그날따라 비는 왜 그리도 내리던지 우리 오빠들의 울음인지 눈물인지 제 눈에서도 하루 종일 눈물이 내렸습니다.
이제 살아서는 영원히 못 볼 우리 오빠.
1968년 실미도에 끌려가기 전 오빠가 들려주던 노래가 이제는 동생의 가슴에 한이 되고 오빠의 유언으로 남아 귓가에 맴돕니다.
엄마 엄마 나 죽으면 앞산에다 묻어줘.
뒷산에다 묻지 말고 양지 쪽에 묻어줘.
비가 오면 덮어주고 눈이 오면 쓸어줘.
내 친구가 찾아와도 엄마 엄마 울지마.
지금도 미치도록 보고 싶은 오빠생각에 오빠가 가르쳐준 노래를 불러보는 이 동생은 오빠의 시신도 못 찾아 큰 죄를 짓고 있습니다.
국가에 충성하려고 했던 것이 무슨 죄입니까.
이제 우리 오빠들의 시신을 찾아 고향 양지 바른 곳에 묻어 드려 그 소원 이루려 합니다.
오빠 이 다음에 꼭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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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코리아/김명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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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05월16일 18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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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전문기자 김명수의 클릭이사람 취재는 앞으로도 계속 됩니다 / 좋은 분 있으면 추천해 주세요 / 피플코리아 운영자 김명수 / 전화 017-707-4827 이메일 people365@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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