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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바람의 수필] (24) 첫 월급 타던 날
2006/07/07 00:00
입력 조회수 : 576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지만 처음 굳세게 결심한 그때 그 기분으로 평생을 살아간다면 그 사람은 틀림없이 성공할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닥치다 할지라도 독하게 마음 먹고 달려들으면 못할 일이 없다고 본다. 대학 갓 졸업하고 첫 직장 잡을 때의 일이 갑자기 떠오른다.
요즘같은 불경기에 대학을 나와도 일자리 잡기는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아마 대학생들에게 가장 바라는 희망을 묻는 다면 십중팔구는 취직을 1순위로 꼽을 것이다. 취직하기 힘든건 지금같이 심하진 않았지만 과거에도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특히 나같은 지방대 출신은 서류전형에서 탈락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궁하면 통한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나는 대학 4학때 운신의 폭이 너무 좁았다. 아니 아예 입사원서를 낼만한 곳도 거의 막혀 있었다. 교사가 되라는 부모님의 간절한 희망을 저버리고 진로를 바꾼 것이 후회가 되기도 하였으나 이미 지나간 버스였다.
복학생의 처지로 차라리 이 꼴 저 꼴 안보고 삼년 후에 보자며 군에 입대하는 후배들이 한편으론 부럽기도 하였다. 그렇다고 앉아서 이대로 당할 수만은 없었다. 우선 나름대로 방향을 설정했다.
한우물만 파자고 다짐했다. 서류전형이 없는 곳을 골라 집중적으로 파고들었다. 쥐구멍에도 쨍하고 볕들 날을 학수고대하며 응시기회만 있으면 원서를 디밀었다. 떨어지고 또 떨어지기를 밥 먹듯 했다. 그러다 맞은 졸업. 백수가 되었다. 부양가족이 있는 백수. 어물어물 하다가 맞게 된 초라한 내 처지를 생각하니 참으로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어머니는 되레 큰아들 혹시라도 엉뚱한 맘먹을까 조심스럽게 위로를 해주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바늘방석이었다. 마누라가 생업전선에 뛰어들어 실질적인 가장노릇을 했다. 새록새록 세상모르고 잠들어 있는 젖먹이 아이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목이 메었다.
무어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박감이 밀려왔다. 할 일없는 하루는 너무 길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무엇을 할까 하는 고민으로 하루가 시작 되었다. 눈으로는 책을 보고 있지만 머리 속에 들어오기는커녕 이런 저런 공상으로 어지러웠다.
밤에는 잠이 안와 뒤척이다 날밤을 새기 일쑤였다. 사람 꼴은 안되고 건강도 갈수록 나빠졌다. 이따금씩 백수 친구와 서로의 처지를 자위하며 나누는 술자리가 차라리 마음 편한 자리였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속으로 사죄했다. 그야말로 찢어지게 가난한 시골의 빈농에서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겨우 겨우 대학까지 졸업시켰는데 백수라니 자격지심이 들어 견디기가 힘들었다.
취직을 한 친구들이 하나둘 찾아오면 쥐구멍이라도 들어가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 친구들 자기들 깐에는 취직 못한 나를 위로한답시고 마누라가 돈을 벌어 좋겠다며 한마디씩 농담을 건넬 땐 정말 속이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마누라도 집에서 방황하는 나를 보고 안쓰러웠는지 돈은 안 벌어도 좋으니 내남편 취직했다는 자랑이라도 할 수 있도록 아침에 넥타이 매고 출근해서 저녁때 퇴근하는 곳 있으면 아무데라도 들어가라는 말을 할 때는 목이 메어 밥이 안 넘어 갔다.
내가 살길은 한 가지 뿐이었다. 때는 이미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취업을 위해 책을 잡았다. 내가 생각해도 무섭고 독하게 파고들었다. 잠자는 시간도 쪼갰다. 하루 24시간중 밥먹고 생리현상 보고 나머지 시간은 방구석에 틀어박혀 자신과의 인생을 걸고 죽음보다 치열한 책과의 싸움을 했다.
남이 보면 그까짓것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얼마든지 해낼수 있는데 머리나쁜 놈 별수 없지라고 비웃을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내앞에 닥친 취업을 해야 한다는 현실이 생존을 건 절체절명의 지상목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마음도 어느정도 안정이 되어 잡념없이 책에만 몰두 할수 있었다. 드디어 기회가 왔다. 이미 여러차례 낙방의 경험을 맛본지라 그져 담담하게 마음먹기로 하고 시험에 임했다.
기분이 웬지 좋았다. 예감이 왔다. 이번에는 될 것 같았다. 발표날이 기다려졌다. 잠도 오지 않았다. 드디어 그날이 왔다. 신문을 사러 다녔다. 그날따라 신문을 구할 수가 없었다. 마음이 급했다. 에라 모르겠다. 지름길로 가자. 회사에 바로 전화를 했다.
당락을 기다리는 초조한 심정. 짧은 순간이지만 심장이 타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다리가 떨리고 가슴이 두근 거렸다. 또 떨어진다면 어쩌나. 머리속이 어지러웠다. 침묵을 깨고 흘러나오는 안내원의 낭랑한 소리. 합격이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꿈인가 생시인가 내살을 꼬집어 보았다.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이 아픈 것을 보니 현실이었다. 어머니에게 마누라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선을 타고 축하한다는 목소리가 나를 울렸다. 내생에 최고로 기쁜 순간이었다.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마누라는 마누라대로 입이 벌어졌다.
하면 된다는 것을 불가능이란 없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준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내인생에 고생끝 행복 시작이라는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날아갈 것 같았다. 어깨가 으쓱했다. 남편으로써 가장으로써 체면이 섰다. 출근하는 날은 공교롭게도 내 생일이었다.
생일날에 첫출근이라고 생각하니 뒤늦게 터진 복이 넝쿨째 굴러 들어온것만 같았다. 앞으로는 내사전에 불행이란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넘쳤다. 날아갈것만 같은 기분은 나를 황홀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 누군가가 나에게 뜻깊고 보람있는 인생을 살아가라는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만 같았다.
출근첫날. 마누라의 극진한 배웅을 받으며 새벽같이 집을 나섰다. 회사에 도착하니 이미 동기들이 나와 있었다. 하나같이 설레이고 긴장된 표정들이었다. 모두 7명을 뽑았다. 수십대1의 경쟁을 뚫고 들어온 자랑스런 전사들이었다.
선배들은 참으로 하늘이었다. 하나 하나 일하고 행동하는 것들이 달라보였다. 나는 언제나 저렇게 할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다. 입사를 환영하는 파티도 줄을 이었다. 이래서 한잔 저래서 한잔 여기저기 술자리에 불려 다녔다. 선배는 돈도 많은가 보다 생각했다. 어디서 술값이 저렇게 나오는지 궁금했다.
그렇게 한달이 지나고 드디어 월급날이 왔다. 누런 봉투에 한달간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라는 문장이 박혀있었다. 조심스럽게 열어보았다. 얼마나 많은 돈을 주었을까 가슴이 뛰었다. 17만원. 세금 공제하고 남은 돈이었다. 그러나 액수가 무슨 상관이랴. 월급을 탔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흥분이 되었다.
어머니의 속옷을 먼저 샀다. 그날은 코가 비툴어지게 퍼마셨다. 집에 어떻게 들어갔는지 필름이 끊겼다. 눈을 뜨니 마누라가 해장국을 준비해놓고 옆에서 조바심이 나서 지켜보고 있었다. 월급봉투를 건네받은 마누라는 무엇이 그리 좋은지 싱글 벙글이었다. 모처럼 가장노릇한 남편이 고마웠던지 눈가엔 방울 방울 눈물이 맺혀 있었다.
입사후 첫 휴일을 맞아 마누라는 초라하면 안된다면서 양복을 맞춰주었다. 양복값이 10만원이었다. 넥타이에 와이셔츠에 이것 저것 모양새를 갖추다보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그렇게 시작된 직장생활은 날이 갈수록 새내기 티가 가시고 어엿한 회사원으로 조금씩 변해갔다.
입사동기 7명은 시시콜콜 몰려다니면서 끈끈한 동기애를 과시했다. 회사 초년병들이 겪는 실수와 애환을 털어놓으면서 술잔을 주고받다 보면 시간가는 줄 몰랐다. 나이도 각각이었다. 군대 갖다오고 결혼하고 취업 재수생 출신인 내가 가장 연장자 인줄 알았는데 그거야말로 큰 착각이었다.
어렵게 잡은 직장. 능력있는 사람들이야 쉽게 쉽게 시험에 붙고 취직을 하고 하는 일마다 운수대통 한다지만 내세울 것 없고 가진 것 없는 나로서는 학교졸업후 천신만고 끝에 들어간 첫 직장이 유일한 나의 삶의 터전이고 내인생을 받쳐주는 지렛대였다.
나는 첫직장에서 참으로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것은 나의 또다른 인생의 목표를 향한 출발점이었다.
<김명수/
www.pkore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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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일 2003년 10월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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