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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숭아물을 들이며..
2006/06/11 00:00
입력 조회수 : 630
입추를 지나고 나니 아침에 불어오는 바람이 제법 선선하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더위 때문에 잠을 잘 못 이루었는데 절기하나가 이렇게
계절의 느낌을 좌우하다니...
방금 일어나 세수도 안한 얼굴을 베란다 창문 밖으로 내밀어본다.
훅 ..하고 얼굴에 닿는 서늘한 느낌...
피부로 와 닿는 느낌이 이렇게 달라질 수 가 있을까?....
가을이라고 말하기에는 아직 이른감이 있지만 요즘 아침 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이 한여름에 불던 녹색의 바람과는 사뭇 다르다.
한낮의 태양은 아직도 용광로 처럼 이글거리고 나뭇잎들은 여전히 녹색빛을 띠고
있지만 여름날의 숨막힐 것 같은 더운 바람과는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별로 더위를 타지 않지만 여름밤을 불면으로 몰아가며 기승을 부리던 무더위가
물러갔다고 생각하니 어쩐지 섭섭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젠 우연히 남편 친구 집에 들렀다가 정원에 피어있는 빠알간 봉숭아꽃을 보고
딸애와 둘이서 이파리까지 섞어 한웅큼을 따왔다.
청주만 해도 여름에 봉숭아꽃을 보기가 여간 힘들지 않다.
시골에 가면 어느 집이나 골목에나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꽃이 봉숭아인데
내가 사는 곳엔 일부러 봉숭아꽃을 찾으러 다녀도 눈에 띄지가 않는다.
여름이 시작되면서 부터 봉숭아물을 들이고 싶어 안달을 하던 딸애는 집에 오자마자
빨리 손톱에 물을 들이자고 졸라댔다.
다행히 몇 년전에 봉숭아물을 들이고 남은 백반가루가 남아있어 딸애와 나는
백반가루를 넣고 찧은 봉숭아꽃물을 양손가락 모두 들였다.
꽃잎을 올려놓고 비닐랩으로 싸고 그위에 스카치테입으로 붙이니 새지도 않고
그만이였다.
어릴 때 엄마가 들여줄때는 커다란 봉숭아 이파리로 싸서 명주실로 동동 동여매어
밤새도록 손이 욱신거렸었는데 요즘은 봉숭아물을 들이기도 아주 쉬운 것
같았다.
어디 그뿐인가? 자고일어나면 하얀 옥양목 이불에 군데 군데 들어있는 봉숭아꽃물
때문에 야단을 듣기도 했는데 비닐로 싸서 테입을 부쳐놓으니 꽃물이 샐염려가
없어서 아주 좋은것 같았다.
밤새도록 손을 싸매고 있는 것이 어린 딸애한테는 무리였던지 어릴때는 자다가
일어나 모두 풀어내 버리고 자곤 했는데 어제밤에 딸애는 손톱이 예쁘게
물들도록 아침까지 그냥 잘거라며 양손에 일회용 비닐 장갑까지 끼고 잠을 잤다.
봉숭아 물이 첫눈올때 까지 손톱에 남아있으면 첫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딸아이는 아직도 믿는듯한 눈치였다.
하루가 멀다하고 내리던 비가 며칠째 소강상태 라고 생각을 했었는데
어둠으로 덮여있는 밖엔 다시 빗소리가 들려온다.
아마도 이비가 그치고 나면 가을의 전령사인 코스모스꽃이며 해바라기꽃들이
활짝 나고 가을이 한층 더 무르익어 갈것 같은 예감이든다.
자운영
2003년 08월12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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