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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바람의 수필] (15) 수십년 세월이 멈춘듯 그리운 얼굴들
2006/04/29 00:00
입력 조회수 : 775
따르릉. 전화가 왔다. 초등학교 친구 순명이였다. 얼굴이나 한번 보자는 것이었다. 일찍 퇴근을 하고 약속장소에 찾아갔다. 친구를 만났다. 언제 어디서 만나더라도 부담스럽지 않고 고향냄새 푹푹 풍기는 녀석들. 머리에 흰머리가 늘어나는 나이건만 얼굴만 보면 동심으로 들어가서 코흘리던 시절이 떠오르는 것은 인간의 본능일까.
수십년 세월이 흐르지 않고 정지된 기분이었다. 내가 군대입대할 때 이미 딸아이가 있던 친구는 벌써 아이가 대학생이 되었다며 요즘같은 불황에 등록금 부담이 커 걱정이라고 한다.
만나기로 한 친구들이 아직 다 오지 않았다. 늦더라도 꼭 참석할테니 자리뜨지 말고 기다리라면서 전화를 했다. 목소리만 들어도 반가운 사람들.
칠갑산 자락에서 가난하지만 자연을 벗삼아 뛰어놀던 어린시절이 그립다. 다락논을 휘젓고 다니면서 메뚜기잡아 구어먹기도 했었지. 무더운 여름이면 옥수같은 물이 흐르는 실개천에서 알몸으로 목욕을 해도 부끄러운줄 모르는 순진하기만 했던 촌놈들이었다.
심지어 체육시간에 체육복 바지 실밥이 터져 속옷이 하얗게 들어나는 아이들도 있었다. 왜 그렇게 하나같이 그때의 우리들은 땟국물이 졸졸 흘렀었는지 모르겠다. 겨울에는 동네어귀 논바닥에 물을 담아 얼음판을 만들어 썰매를 지치면서 하루를 보냈다.
앉을뱅이 썰매를 타고 온종일 친구들과 어울려 놀다보면 코는 딸기코가 되고 손발은 꽁꽁 얼어붙어 동상이 걸릴정도였다. 왜 하나같이 아망구 모자에 털귀마개를 하고 다녔는지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온다. 흰눈이 소복히 쌓인 겨울에 햇볕이 드는 양지녁 냇물에 모여 나뭇가지 긁어 모아 불을 피우고 가재 개구리 잡아 구어먹으면 배고픈 줄도 추운줄도 몰랐다.
개울을 몇 개나 건너야 갈수 있었던 초등학교. 집에서 7km나 되는 먼 거리였지만 집을 나서면 어려운줄도 모르고 단숨에 뛰어가곤 했다. 책가방도 없었다. 책보를 어깨에 대각선으로 걸쳐 꽁꽁 묶어매고 뛰어가면 필통속에 연필이 덜그럭 거리는 소리가 볼만 했다.
학교파하고 집에오면 책보는 풀지도 않고 방구석에 집어던져 놓았다가 그이튿날 그대로 들고 나오기가 일쑤였다. 집을 나설 때 양손에 생고구마를 들고 나오다가 냇물에 훌쩍 던져놓고 학교같다 오면서 배가 고프고 출출할때에 건져 올려 먹으면서 그것을 재미로 알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과외는 커녕 학교 다니는 것조차도 툭하면 빠졌다. 비오면 개울에 물이 불어서 못가고 눈이 많이 오면 위험해서 못가고 몸이 아프면 아파서 가지 못했다. 학교갈 때 신던 검정고무신이 다 떨어져 너덜거리면 바늘로 꿰메 신고 다녀도 즐겁고 신이 나기만 했다.
어쩌다 어머님이 새신이라도 사다 주면 행여 잊어버릴까봐 흰실로 꿰매어 표시를 해놓고 신지도 않고 손으로 들고 맨발로 걸어다녀도 기분이 좋았다. 학교에서 배급으로 나오던 뽀오얀 생분유를 자루에 담아 집에 오면서 손으로 집어먹으면 입에서 뽀드득 뽀드득 나는 소리가 우스워 깔깔대던 기억도 잊을수가 없다.
지금은 드라마 사극에서나 볼수 있는 꽃가마 타고 시집오던 아랫집 새댁의 수줍어 하던 모습도 눈에 선하다. 하얀 소금을 뿌려놓은 듯 산비탈 계단밭을 뒤덮은 메밀꽃과 송이 송이마다 툭 툭 터져 만발한 목화꽃은 바라만 보아도 황홀할 정도로 장관이었다.
어머니의 애타는 심정도 모르고 야들야들한 목화송이를 따내어 깨물어 먹으면 달콤한 단물이 나오면서 입을 즐겁게 하던 그 맛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학교다닐 때 키가 가장 커서 별명이 꺾다리였던 친구는 흐르는 세월따라 오그라 붙었는지 더 이상 크지 않고 그때 그대로의 모습이 우습기만 하다.
그때 우리동네에는 광산이 있었다. 은광이었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광산에는 자가발전으로 전기가 들어왔다. 카바이트로 불을 붙이는 손전등을 들거나 이마에 달고 지하 갱으로 들어가서 광석을 캐어 나오던 광부들의 모습을 신기한 모습으로 바라보곤 했었다. 지하에서 캐내온 광석을 고르기 위해 물레방아를 돌렸다.
학교갔다 집에 올때면 어김없이 물레방아가 돌고 있었다. 집보다도 더 덩치가 큰 물레방아가 우렁찬 물소리와 함께 뱅글 뱅글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곤 했었다. 물레방아가 돌지 않는 날엔 우리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물고에 흘러나오는 물을 대면 물레방아는 힘찬 소리를 내면서 자동적으로 돌아간다.
우리는 너나 할것없이 물고를 다른데로 돌려버리고 물레방아에 올라탄다. 그리고는 양손으로 살을 잡고 양발로 굴러 물레방아를 돌린다. 다람쥐가 쳇바퀴 돌리듯 물레방아를 돌리다 보면 정말로 시간가는 줄 모르고 신이 났었다.
지금은 물레방아도 광산도 사라져 버렸다. 대신 그 자리엔 커다란 저수지가 생겼다. 친구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바로 아래동네에 살던 친구도 왔다. 너무 반가웠다. 얼굴엔 주름이 잡혔지만 어렸을때의 모습이 겹쳐서 떠오른다. 어렸을때의 모습에 나이가 들어 오버랩된 것
처럼 보인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친구다. 요즘같은 아엠에프시대에 종업원들 임금을 줄이지 않고 옛날 주던 대로 주고 있다니 대단한 친구다. 이친구 얼굴을 보고 있노라니 옛날 일이 떠오른다. 그시절 이밥에 고깃국 먹을 정도로 잘살던 집이 누가 있겠냐만은 이친구는 정말로 보리밥 먹기도 힘들 정도로 가난하였다.
그런데 이친구 공부하나는 잘했다. 항시 명랑하고 밝아보였다. 남들은 중학교 들어가는데 이친구는 중학교도 들어가지 못했다. 그러나 이친구 자수성가해서 지금은 가장 성공한 친구중의 하나가 되었다.
이친구의 오늘이 있기까지 인생역정을 들어보면 눈물이 앞을 가린다. 초등학교를 마치자 마자 서울로 올라와 갖은 고생을 다해가면서 중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다녔다. 서적 외판원등을 하면서 대학교를 마치고 대학원까지 나왔다. 그리고 짠소금같이 돈을 모으고 아껴 지금은 공장을 두 개나 가지고 있는 어엿한 중소기업의 사장님이 되었다.
이친구가 지금의 자리에 까지 오르기까지는 피눈물나는 고생이 있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온갖 역경을 혼자힘으로 극복하고 요즘같이 어려운 시대에 적자를 내지 않고 회사를 운영한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뿐이다.
이친구는 지금도 옛날의 가난했던 시절이 떠올라 돈을 절대로 함부로 쓰지 않는다. 내가 다녔던 초등학교가 지금은 폐교될 운명에 처해있다. 그때는 우리 학년만 100여명이 되었던 제법 큰 학교였다.
그때만 해도 운동회는 학생뿐만 아니라 온동네 사람들이 다 참가하는 대규모 축제였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운동회는 커녕 학생수도 계속 줄어들어 이제는 전교생이 50명도 안되는 초미니 학교로 전락해 버렸다.
이번에 들어온 1학년은 겨우 한명뿐이라고 한다. 내가 다닌 학교가 폐교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져 버리게 되었다니 참으로 아쉽고 허탈하기가 그지 없다. 갈수록 폐허가 되는 농촌의 심각한 현실을 보는 것만 같아 안타까울 뿐이다. 가난하지만 때묻지 않고 순진하기만 했던 칠갑산의 아이들이었다.
지금은 관광지가 되어 휴가철이면 북적거릴정도로 사람들이 몰려오는 관광지가 되어버렸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마을이 전화까지 들어오고 요즈음은동네를 관통하여 칠갑산을 끼고 청양으로 연결하는 2차선 도로공사가 한참이다.
옥수같은 냇물도 관광객들이 늘어나면서 머지 않아 오염이 되고 말것이다.이미 가재와 메뚜기는 사라져 버린지 오래다. 도로마져 뚫리고 나면 자동차가 늘어날 것이고 그러다 보면 수천년을 보존해온 깨끗한 환경도 오염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가난하지만 욕심없이 살아가던 산골마을에 유일한 삶의 터전이던 손바닥만한 농토마저 신설도로예정지로 편입되는 바람에 주민들의 생계는 더욱 어렵게 되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이고 누구를 위한 도로공사인지 정말로 알수가 없다.
앞 뒤 생각없이 이루어지는 개발사업은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은 하나같이 도시로 떠나버리고 갈수록 황폐화 되는 시골이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여기저기 파헤쳐지고 파괴된다면 우리나라의 환경보존에 대한 미래는 없다고 본다.
한친구가 또 도착했다. 중학교까지 같이 다닌 친구다. 10km나 되는 중학교를 둘이서 걸어다녔다. 눈물이 나게 반가웠다. 서로가 처해진 환경에 바쁘다보니 몇 년만에 한번씩이나 볼까말까 하다.
막상 서로 만나 얼굴을 마주 하고 있으니 그져 마음이 편하고 정든 고향에 찾아온 기분이다. 친구들이 다 모였다. 모두 7명. 반가운 마음에 술잔을 주고 받으며 밀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 되었다. 모처럼 일에 파묻혀 지내던 현실에서 벗어나 옛추억으로 돌아간 시간이었다.
<김명수
www.people365.pe.kr
>
수정일 2003년06월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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